194. 아저씨는 마법사에요?
우리가 서울에 도착한 것은 새벽 여섯 시!
몬스터를 처리하느라 지체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구조한 사람의 수도 점차 늘어나 여섯 마리의 몬야크 등에 아이들이 타고 있었다.
이제 성인들은 모두 내려 몬야크 주위에서 걸었다.
몬야크 가까이 있으면 몬스터들이 공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것이었다.
"저는 여기에서 가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30대 후반의 남자가 허리를 꾸벅 숙였다.
"조심하십시오."
남자가 허리를 한 번 더 숙여 보이더니 자신이 집이 있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한 사람, 한 사람 집에 데려다 주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은 없었다.
몬스터를 처리하기도 바빴기 때문이었다.
성인들은 집이 가까워지면 남자처럼 이별을 했다.
하지만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갈 곳이 없었다.
근처에 집이 있을 수도 있지만 충격으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건 전생에 숱하게 봤기 때문에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집을 말하지 않는 경우는 굳이 묻지 않았다.
소환식물들이 아이들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주변 환경에 보이는 반응만 봐도 근처에 집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가족을 만난 경우도 두 명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가족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은 몬야크의 등에서 잠이 들었다.
<무정한 것이 잠이지.>
"어리니까 더 그렇지. 많이 참은 거야. 자도 된다고 해도···."
아이들은 자도 된다고 몇 번 말을 해주었는데도 쉬이 잠들지 못했다.
새벽에 겪은 일의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갈수록 대기실에서 나와야 하는 몬야크의 수는 늘어났다.
그만큼 구조되는 아이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스걱! 스걱! 스걱!
몬스터는 끝도 없었다.
그렇게 몬스터를 잡으며 이동하니 국회의사당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새끼들 지들 살겠다고 다 달아났어. 썩을 새끼들.>
국회의사당은 당연하게 텅 비어있었다.
"저기서 몬스터가 나오는 것 같아. 아무래도 던전이 형성된 것 같은데?"
<애를 먹이네. 어제까지만 해도 없더니.>
우리는 어제도 이 부근에 왔었다.
전생에 이곳에 생기는 던전 때문에 피해가 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개방 던전이면 미리 클리어하고 소유권을 넘겨 받으려고 했다.
소유권이 넘어오면 개방 시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제까지도 보이지 않더니 던전이 오늘 불시에 생성된 것 같았다.
"반반아. 애들 데리고 여기 있어."
음머어어!
"몬스터는 걱정 없고, 혹시 공격하는 사람이 있으면 처리해도 좋아."
음머어어!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것을 보고도 얘들을 공격하겠어?>
"미친놈들이 많은 세상이야. 조심하는 것이 좋아."
누구라도 있으면 좋은데 당장은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성연아. 저기 보이지?"
"예."
"저기에서 괴물이 계속 나오고 있어. 아저씨가 저기 괴물들 다 해치우고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릴 수 있지?"
"무서운데···."
"무섭지. 하지만 소들이 너희를 지켜줄 거야. 예쁜 새들도."
아이가 몬야크 주위를 날고 있는 새들을 보았다.
전령조와 사냥조들이었다.
스걱! 스걱!
캬아아악! 캬악!
아이와 말을 하는 사이에도 몬스터들이 던전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아이들은 눈을 질끈 감기만 할 뿐 몬스터가 죽는 것을 보고도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다행스러우면서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잘 있을게요."
"그래. 이 새 이름은 쪼롱이야. 다녀올게."
쪼롱이가 성연이가 앉은 몬야크의 머리에 앉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다녀오기 위해 던전을 향해 달렸다.
마음이 바쁜데 덩굴손의 검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당연히 덩굴손의 검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탁!
꼬물!
^ㄴㄲㅇ!^
^ㅁㅈㅈㅁ!^
꼬물이가 다가오는 덩굴손을 쳐냈다,
하지만 덩굴손도 집요했다.
계속해서 덩굴손을 뻗어오며 어떻게든 검사를 하려고 했다.
탁! 탁! 탁!
꼬물!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
타아악!
몇 번을 쳐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덩굴손이 뻗어오자 강하게 덩굴손을 쳐내버리는 꼬물이었다.
툭!
덩굴손 하나가 떨어졌다!
덩굴식물의 덩굴손 하나가 떨어지는 일이 별거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건 놀라운 일이었다.
던전 입구의 덩굴 식물은 어떤 공격에도 손상되지 않았다.
이건 일종의 법칙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눈앞에서 깨지고 말았다.
<집사! 이거 뭐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던전 덩굴을 괴롭히면 반드시 응징을 당했다.
심할 경우에는 죽임까지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던전 덩굴이 뻗어왔다.
이제 덩굴손만 뻗어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줄기까지 뻗어왔는데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꿰뚫을 기세네.>
뻗어오는 덩굴손을 굳이 내가 쳐낼 필요는 없었다.
꼬물이가 다시 뻗어오는 덩굴을 쳐내버렸기 때문이었다.
꼬물!
^ㅁㅈㅈㅁ!^
^ㅁㅈㅈㅁ!^
^ㅁㅈㅈㅁ!^
^만지지 말라고오오!^
타아아악! 탁! 타아악! 탁! 타아아아아악!
투두두둑! 투두둑!
꼬물이가 다가오는 덩굴손과 줄기를 사정없이 쳐냈다.
꼬물이의 줄기가 닿는 순간 1회성 던전의 덩굴은 칼로 베인 것처럼 떨어져 내렸다.
마지막에는 상당히 굵은 줄기까지 떨어져 버렸다.
그러자 덩굴손들이 파르르 떨더니 움찔거렸다.
꼬물!
^물러나!^
무척이나 차갑게 말하는 꼬물이었다.
입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세가 얼음장 같았다.
마치 꼬물이의 명령을 들은 것처럼 덩굴손들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벌벌 떠는 것이 주눅이 잔뜩 든 아이들 같았다.
꼬물!
^까불고 있어! 가자!^
<으하하하! 으하하! 집사 가자!>
나호가 배를 잡고 뒤로 발라당 누워버렸다.
앞으로 덩굴손의 검사를 받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은 엄청난 혜택이었다.
<집사는 좋겠네.>
"좋다 뿐이야? 검사 당할 때마다 은근히 사적 영역이 침범당하는 것 같아서 불쾌했는데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거잖아."
꼬물!
^ㄴㄲㅇ!^
<으하하하!>
기분 좋게 던전에 입장했다.
몬멧돼지가 주로 서식하는 던전이었다.
멧돼지의 이빨이 유난히 발달한 것이 일반인들에게는 상당히 위협적으로 느껴질 것 같았다.
스걱! 스걱!
빠르게 몬멧돼지를 정리해 나갔다.
<여기만 클리어 해도 엄청난 사람을 구하는 것이 될 거야.>
"그렇지."
던전을 정리하는데 걸린 시간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다.
그만큼 빨리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띠링! 축하합니다. 1회성 던전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10분 후 던전이 소멸합니다.]
"다른 보상은 없지?"
[없습니다.]
"그럼 바로 퇴장시켜줘. 바빠."
[알겠습니다.]
1회성 던전은 클리어와 동시에 던전이 소멸했다.
그래서 시스템이 퇴장시켜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10분을 이곳에서 낭비할 수 없었다.
번쩍하더니 던전의 입구가 있던 곳으로 나와 있었다.
"사라졌다아!"
성연이였다.
내가 나타나면서 던전이 사라진 것이 신기했는지 소리를 지르다가 재빨리 제 입을 막았다.
그런데 몬야크 주위로 제법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너희 이거 어디서 났어?"
"아저씨도 한 번 타 봐도 되니?"
"안 돼요!"
"너희만 있는 거야?"
아이들이 타고 있는 몬야크를 욕심내는 사람들이었다.
"욕심 부리지 마세요! 아이들 덕분에 안전한 것 같은데···."
한 사람이 나서서 제지를 했다.
"뭔 상관이야! 욕심을 부릴 수도 있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가져서 좋을 일이 없다고!"
세상에는 생각보다 뻔뻔한 사람이 많았다.
철썩! 철썩!
욕심을 부리던 사람은 겁도 없이 몬야크를 두드렸다.
내가 던전에 들어간 사이 몬야크들이 움직이지 않자 겁을 상실한 모양이었다.
"반반아! 애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
음머어어!
퍽! 퍽! 퍽!
"으아악!"
"으악!"
"으어어억!"
몬야크를 함부로 다루던 사람들은 하나 같이 바닥에 눕게 되었다.
"가자!"
차츰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국회 의사장 잔디위의 몬야크들은 제법 멋지게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 앉은 아이들에게 햇살이 닿자 아이들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것 같았다.
<보기 좋다! 새로운 희망 같잖아! 전생에 아이들은 애물단지였는데. 이번 생은 조금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
대변혁 이후의 세상에서 노약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 자기 자식마저 버리고 달아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그런 세월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재앙은 사람의 민낯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스걱! 스걱! 스걱!
아직 몬스터를 상대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몬스터는 어디를 가나 넘쳐났다.
던전에 들어갈 회수에 제한이 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던전을 몇 번 들어갔는지 다섯 번 이후로는 굳이 세지 않았다.
<집사! 아이들 배고플 것 같은데?>
아이들은 배가 고파도 고프다고 칭얼거리지 않았다.
무서워도 무섭다고 하는 아이도 없었다.
무서우면 몬야크의 등에 바짝 엎드릴 뿐이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미칠 것 같았다.
어느새 대기실에 남아 있는 몬야크는 없었다.
화순에 남겨두고 온 세 마리의 몬야크를 제외한 모든 몬야크가 노약자를 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몬야크가 더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이들은 하나 같이 몬스터 가죽을 망토처럼 두르고 있었다.
지금은 쉽게 구할 수 없는 검은 몬늑대 가죽이었다.
아이들을 먹일 만한 장소를 찾아야 하는데 어디서 나오는지 끝도 없이 몬스터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꾸루야! 공원 좀 찾아봐. 아이들 밥을 먹여야겠어."
꾸!
꾸루가 날아가더니 5분도 되지 않아 돌아왔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채 10분도 되지 않은 곳에 공원이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아이들 밥을 먹일 겁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연거푸 인사를 해왔다.
던전이 무너지며 살고 있던 건물이 통째로 무너져 버린 사람들이 몬야크 주위로 몰려들어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그 난리통에서 겨우 살아남았지만 아무것도 챙겨 나온 것이 없었다.
잠옷 차림으로 차가운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에게 우리는 구원자와 같았다.
특히 자녀들이 안전해졌다는 것에 만족감을 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릇이 부족할 것 같은데···?"
"돌아가면서 먹어야죠. 우선 아이들부터 먹이겠습니다."
대변혁 전 대기실의 치유물통에 죽을 담아두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한 것이었다.
삶은 고구마나 감자도 대기실에 많이 보관했는데 아주 요긴한 식량이 되고 있었다.
<대기실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러게.'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상태창이라는 것에서 나오는 거라잖아. 인벤토리 말이야! 게임과 비슷한 거."
눈치 없이 묻는 사람에게 대답을 해주며 내 눈치를 보는 남자였다.
가장 뒤의 몬야크 등에 자신의 아이를 태운 남자였는데, 아이를 태운 이후로 계속해서 눈치를 살폈다.
혹시라도 자신의 아이를 내리라고 할까봐 걱정스러운 것 같았다.
어떻게든 아이를 지키려는 본능 같은 것이었다.
감자와 고구마, 옥수수를 받아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따뜻했기 때문이었다.
"물 한잔씩 마시고 드세요."
긴장의 연속인데다 춥기까지 했다.
이럴 때 감자나 고구마는 자칫 체하기 쉬웠다.
종이컵에 담긴 따뜻한 물 한잔을 받아든 사람 중에는 눈물을 보인 사람도 있었다.
지금 서울의 사정이 그만큼 나빴다.
<이 정도가 양호하다는 것을 이들은 알까?>
'우리도 전생에 몰랐잖아. 더 이상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서 다른 나라가 어떤 상황인지 알 길이 없지.'
소리, 소문 없이 대변혁이 시작됐지만 그 여파는 생각보다 거대했다.
보이지 않지만 몸에 지니지 않은 모든 금은 사라졌다.
지금은 그런 것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금만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중요 지하자원도 모두 사라졌다.
이제 지하자원이 필요하면 던전으로 가야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이 혼란만 잠재워지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경찰들은 다 어디로 간 거야?"
"구급대원들도 없어. 병원도 비었고."
"자기들 살기도 바쁜데 출근하겠어?"
"그래도 이럴 때 꼭 필요한 사람들이잖아."
어른들이 불만을 터뜨리는 사이 아이들은 죽을 먹느라 바빴다.
아이들에게는 따뜻하게 구워낸 빵도 하나씩 주었다.
대기실에 보관하는 것은 무엇이든 보관할 당시의 온도가 유지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저씨는 마법사에요?"
그럼 가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