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 기세
열 마리의 몬야크의 행렬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충분했다.
적극적으로 동행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눈치만 보는 사람도 있었다.
부모를 모두 잃은 아이들은 아이가 말을 하지 않아도 몬야크의 등에 태웠다.
꼬물이와 도뮤가 이런 판단은 기가 막힐 정도로 잘 했다.
그런데 길을 가다보면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나에게 호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나통이 내 수중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10%의 차이가 엄청나네. 너 높아지면 어떻게 될지 무서울 정도야.'
<그러니 전생에 미우라 놈이 그렇게 쉽게 우리나라를 떡 주무르듯이 주무를 수 있었던 거야.>
미우라는 나만큼 좋은 마나통 저장고는 가지고 있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미우라에게 열광했었다.
특히 매국노들은 그 정도가 더 심했다.
마나통을 빼앗겨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정도를 넘어선 모습이었다.
아마 사리사욕만을 중요시 여기는 개인의 특성이 시너지 작용을 일으켰을 것이 분명했다.
'전생에 좋았던 인연 한둘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우연은 없는 모양이야.'
<지금 월평에 거의 초대되어 있잖아. 집사 은근히 사람 욕심 많은 것 같아.>
'전생에 한풀이 같은 거지 뭐.'
전생에는 너무 많은 사람을 맥없이 잃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강대국으로 성장한 나라에서 어깨 좀 펴고 살아보고 싶었다.
동료들과 함께 말이다.
"저기 저 괴물들을 죽이면 마나라는 것이 오른다고 하던데 그것이 정말입니까?"
아이를 업은 남자가 물었다.
아이를 업고도 창을 든 남자였다.
지금은 창으로 아이의 엉덩이를 받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습니다. 잡을 때마다 오르네요."
"정말이었군요. 상태창이라는 것이 나타났다고 해서 미친 소리로 알았는데···. 그런데 오션 28이 다시 시작된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저는 갑자기 다 나았는데 말입니다."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함께 이동 중인 사람들 중 입 냄새와 가슴 통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저도 갑자기 다 나았습니다."
"조금 전에 하신 것은 도축이죠? 어렴풋이 어딘가에 다녀온 것을 기억하는데 거기서 선생님께서 하신 것과 같은 것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스킬을 기억하는 것을 보니 정말 제 몫은 할 사람 같았다.
"얼마나 기억합니까?"
"저는 세 번 어딘가로 불려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명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세 번이면 많이 기억하시네요."
"그저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발현율이 궁금했지만 먼저 말하지 않는데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발현율로 각성자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기도 해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말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게임 같다고 사람들이 말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마나홀이나 마나통이니 처음 듣는 말만 적어져 있고 다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인벤토리 같은 것도 없고요."
<이 아저씨 귀엽네. 집사의 인벤토리가 궁금한데 차마 묻지 못하고 이러잖아. 말해줄 거야?>
'말해줘도 당장 얻지도 못해. 열심히 사냥해야겠지. 인벤토리는 빨리 얻는 것이 좋으니 말해 줄 수도 있고.'
능력치를 개방하는 것이 더 급할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인벤토리가 더 시급하기도 했다.
개인 지갑을 갖는 것은 변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기본이기 때문이었다.
'세 분은 구매를 잘 하셨는지 모르겠네?'
<별 걱정을 다해. 그 정도 설명을 했으면 유치원생도 해. 걱정하지 마. 천 마나씩 드리기까지 했으면서 뭔 걱정이 그리 많아?>
'그러게.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보는 것 같아.'
<그게 아버지께서 집사를 보는 마음이야. 하하하!>
나호가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주변 환경은 웃음을 터뜨리면 안 되는 상황이기는 했다.
무너진 건물과 각종 사고로 뒤엉킨 자동차!
그 사이를 오가는 몬스터들!
전생에 비하면 양호한 상황이었지만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저기네요."
몬스터가 나오고 있는 던전이었다.
저 던전을 클리어 해야 이 주위가 잠잠해질 것이 분명했다.
<여기도 분명히 미리 확인했었는데···? 이상해?>
'최소한은 남겨두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우리가 워낙 미개방 던전을 잘 찾으니 몇 개는 일부러 찾지 못하도록 만든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오해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곳이 던전이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들어가서 처리를 해야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겁니다."
"한 번만 정리를 하면 되는 겁니까?"
"경우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아! 저도 함께 들어가고 싶은데?"
등에 업은 아이를 의식하며 남자가 말했다.
"함께 가셔도 좋습니다."
"아이가 괜찮을까요?"
"새들이 지켜줄 겁니다."
"아! 그럼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남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던전에 들어가고 싶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내려놓고 싶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계속 아이를 업고 있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정말 마음에 드는 남자였다.
"저도 함께 가고 싶습니다."
"저도!"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게임의 민족이라고도 불리는 한국인이었다.
세상이 게임과 비슷하게 변한 것을 눈치 채자 사냥이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깨달은 것 같았다.
세세한 정보를 파악하는 데는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사냥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좋습니다. 함께 가시죠. 쪼롱아! 애들 잘 지켜."
쫑!
화순에 이백 마리를 두고 왔지만 아직 사냥조는 110마리가 더 있었다.
더구나 쪼롱이가 있으면 현재는 어떤 몬스터가 접근한다고 해도 걱정할 것이 없었다.
"이상한 사람들이 오면 공격해도 돼."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쪼롱이에게 말을 하는데 던전에 함께 들어가지 않는 성인 몇이 자신 있게 말했다.
<이상하게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하면 불안하더라.>
'맡겨봐야지. 문제가 생기더라도 쪼롱이와 몬야크가 있으니 걱정할 거 없겠지.'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사람들을 뒤로 하고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를 데리고 던전 입구를 향해 걸었다.
함께 가겠다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네 사람은 긴장하는 것이 역력했다.
"어어어···."
"엄마야아아···."
얌전하게 있던 덩굴손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덩굴손을 보며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괜찮습니다. 입장할 수 있는지 살피는 것뿐입니다. 그대로 계시면 됩니다. 검사가 끝나면 들어오십시오."
말을 하며 앞장섰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입장을 하면 앞 사람은 앞쪽의 덩굴이 검사를 했다.
그래서 앞으로 나간 것이었다.
적당히 앞으로 나아가자 당연하게 덩굴손이 다가오려고 했다.
그 순간 무서운 기세로 꼬물이의 뿌리가 나왔다.
가늘고 하얀 뿌리가 나온 것이 아니었다.
두텁고 강해보이는 뿌리가 나오더니 다가오는 덩굴손을 사정없이 쳐내버렸다.
꼬물!
^ㄴㄲㅇ!^
단 한방에 덩굴손이 떨어져버렸다.
던전 덩굴이 놀란 모양이었다.
다가오려던 덩굴이 파르르 떨었다.
<프하하! 이런 일은 생각지도 못했을 거야. 얼마나 당황스럽겠어. 으하하!>
나호가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전생에 던전에 입장하려 할 때마다 당하던 일들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다가오려던 덩굴이 꼬물이의 뿌리를 보더니 움찔했다.
꼬물!
^꺼져!^
얼음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뿌리였다.
그 기세를 느꼈는지 덩굴손이 꼼질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꼬물!
^까불고 있어!^
1회성 던전만이 아니고 상시 던전에서까지 꼬물이의 기세가 통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정말 인벤토리에 무얼 넣고 다니든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던전에 들어가 둘러보니 던전은 전생과 별 다를 바 없었다.
"여기는 힘들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모르겠네."
전생에 상시 던전이었던 이곳은 상시 던전이 되고 난 후에는 어렵지 않은 던전이었다.
첫 클리어 전에는 난이도가 조금 더 높은 던전이 있어서 주의가 필요했다.
['서울'던전에 관한 정보가 있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클리어 전의 정보라면 좋아."
[클리어 전 서울 던전은 D급 던전 수준이었습니다. 클리어 후에는 E급 수준으로 고정됩니다.]
[나타나는 몬스터는 '거대 몬멧돼지'입니다.]
<밖으로 나오는 몬스터는 들개류인데 몬멧돼지가 나온다고?>
[그렇습니다. 몬멧돼지가 주류를 이루고 몬들개와 몬들고양이도 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던전에 대한 정보까지 파악했을 때 네 사람이 던전에 입장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불쾌했어요. 성희롱으로 고소해야 하는데···."
저렇게 말하는 경우도 많았다.
덩굴손이 만지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특히 처음 입장하는 경우는 더 불쾌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저는 왜 그리 머리를 만지는지···.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혹시 우울증이나 조울증을 앓았습니까?'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할 뻔했다.
덩굴손이 유난스럽게 만지는 곳은 질병을 앓았던 곳이나 현재 질병이 진행되는 곳인 경우가 많았다.
<저 남자 유심히 봐야겠다. 저런 경우 폭주하거나 정신을 놓는 경우가 많았어.>
'그런 경우도 없지 않았지. 하지만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경우가 더 많았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팀을 짤 겁니다."
상태창에 주변 인물이 나타났다.
이름과 나이만 나오는 것이어서 확인이 필요했다.
"김사랑 씨?"
"접니다. 이름을 어떻게 아셨는지···?"
"팀으로 묶으려고 하니 나타나네요. 서종호 씨?"
"접니다."
"저는 소가훈입니다."
"저는 정수백입니다."
네 사람의 이름을 확인하고 팀을 결성했다.
팀명은 여전히 월평으로 했다.
"제가 허락할 때를 제외하고는 뒤만 따라오십시오."
"예."
네 사람은 마치 신병이 된 것처럼 우렁차게 대답했다.
<저 아이가 신기하네. 보통은 입장이 안 되는데···. 혹시 각성을 한 건가?>
나호가 정수백의 등에 업힌 아이를 보며 말했다.
네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각성을 했을 리는 없었다.
보통은 저렇게 어린 아이는 던전에 입장이 되지 않는데 신기한 일이기는 했다.
"아이는 꾸루에게 맡기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겠죠? 아이가 깨면···."
남자가 아이를 내려 꾸루에게 맡겼다.
꾸루는 전령조 중에 가장 덩치가 큰 녀석의 등에 아이를 업혀주었다.
<저 녀석 영광으로 알아야겠다. 전령조의 등에 업힌 최초의 아이잖아.>
'그러네. 나도 아직 업혀보지 못했는데 말이야.'
떨어지지 않도록 긴 띠를 가지고 잘 묶어주었다.
아이는 잠시 칭얼거리더니 이내 전령조의 등에 얼굴을 대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세상 어느 곳보다 따뜻하고 안전한 곳일 것이다.
<어쩌면 저 아이 가장 어린 입장 기록을 깼는지도 모르겠다.>
'자발적인 입장이 아니면 계수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아! 맞아 그랬지. 그런데 어째 시스템이 조용하네.>
'별다를 것이 없으니까.'
아이를 등에 태운 전령조 주위로는 사냥조 서너 마리를 배치했다.
아이는 모르고 있지만 현재 상태로는 대통령보다도 더한 경호를 받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들어가겠습니다."
"예!"
네 사람 중 소가훈은 각성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입에서 입 냄새가 나고 있었다.
발현율이 0%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각성에 관한 말은 하지 않았다.
미리부터 실망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아직은 각성자와 일반인의 차이가 없을 때였다.
누구도 자신의 마나를 사용할 줄 모르기 때문에 발현율이 아무런 효력을 내지 못할 때였고, 능력치를 구매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마나를 버는 것이 중요했다.
각성하지 않은 사람이 능력치나 스킬을 구매해서 마나를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던전의 안쪽으로 들어섰다.
안전구역이 있었는지 던전에서 300미터 정도 들어가자 몬스터들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안전구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정도만 설명해도 젊은 사람들이라 바로 이해하는 것 같았다.
"몬들개입니다. 개라고 만만하게 보시면 절대로 안 됩니다. 생존이 걸린 상황이기 때문에 필사적입니다. 숨이 완전히 끊어질 때까지 방심하지 마십시오."
처음인 이들에게 나름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네 사람이 그렇게 느끼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긴장해서 걷는 것마저 어색한 상태여서 기계적으로 대답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밖에서 사냥하는 것을 돕기도 했는데도 던전이어서 그런지 바짝 긴장해 있었다.
긴장을 풀어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주로 쓰는 창을 넣고 이들과 같은 죽창을 꺼냈다.
죽창을 들고 몬들개 무리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