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고정관념
서울을 출발한지 한 시간!
혼자였다면 반반이를 타고 달려 이미 화순에 도착했을지 모를 시간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겨우 판교에 도착했을 뿐이었다.
중간에 열이 나는 아이들이 몇 있어서 시간이 지체됐기 때문이었다.
고속도로를 통해 이동 중이었기 때문에 판교분기점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남하하고 있었다.
<집사! 저 사람들 어떻게 할 거야? 계속 따라오는데?>
서울에서 알아듣게 이야기를 했는데도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몬야크의 기세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는데도 기를 쓰고 따라오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를 따라 오는 것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따라오는 사람 대부분은 이미 집을 잃은 사람들 같았다.
서울에 있어도 갈 곳이 없으니 그나마 든든해 보이는 우리를 따라오겠다는 것이었다.
"자기 발로 따라오겠다는데 그것까지 막을 수는 없잖아."
<그냥 두겠다고? 지금까지는 안전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럼 어떻게 해? 아등바등 따라오겠다고 저러는데···."
<에휴우! 마음이나 곱게 쓰던 사람들 같으면 일행으로라도 받을 텐데···. 그런 사람들도 아니고···.>
나호가 한숨을 쉬었다.
안타깝다는 이유로 아무나 일행으로 받을 수는 없었다.
"일행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까다롭게 하는 것이 좋아. 이미 합의 됐던 거잖아."
<그렇긴 한데···. 저런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편하지 않네.>
따라오는 사람 중에는 절뚝이는 사람도 있었다.
성치 못한 몸을 이끌고 어떻게든 따라오겠다고 기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도뮤와 꼬물이도 안 된다고 한 사람들이야. 그러니 맘 접어."
<에궁!>
죽을 위기에 처한다면 외면은 하지 못하겠지만 우리 일행으로 넣어주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더 걸었을 때였다.
아이들 때문이라도 더 가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
"여기서 자고 가겠습니다."
백여 명의 일행과 걸음을 멈춘 곳은 평택부근이었다.
고속도로 위에서 불을 피우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잠을 잘 만한 곳을 찾아 멈춘 것이었다.
주변의 잡목을 모아 불을 피우려고 하자 몇몇 사람들이 우려를 표했다.
"불을 피워도 되겠습니까? 괴물들이 불을 보고 접근할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불을 피울 준비를 하니 함께 이동하던 사람들이 돕기 시작했다.
다리가 많이 아플 텐데 내색하지 않고 하나라도 더 돕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불을 피우면 몬스터들이 몰려드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계속 이동할 수는 없었다.
몬야크들이 최대한 흔들림이 없도록 조심을 하고 있었지만 아이들도 쉴 필요가 있었다.
계속 걸어서 이동하는 성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바닥에 가죽을 두껍게 깔아서 잠자리를 마련하고는 따뜻한 물을 마시게 했다.
이제 야외에서의 첫 밤을 지내야 했다.
아이들은 몬야크의 등 위에서 그대로 잠을 자거나 몬야크 품에서 잠이 들었다.
몬야크의 따스한 체온이 추위를 잊게 해주는 것 같았다.
성인들은 돌아가면서 보초를 서기로 했다.
2인 1조로 한 시간씩 보초를 세우고는 정찰을 핑계로 자리를 벗어났다.
정수백이 함께 오겠다고 했지만 데리고 오지 않았다.
스걱! 스걱! 스걱!
주변의 몬스터를 정리했다.
불을 보고 접근하는 놈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사는 잠자기는 틀렸네.>
"나는 괜찮아. 치유 버섯이 있잖아."
<이 부근에 던전이 터진 것 같은데? 가봐야 하는 것 아니야?>
"몬스터부터 정리하고 가자."
<좋아! 누구 데리고 들어갈 거야?>
"함께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데리고 가야지. 빨리 성장하면 나도 좋으니까."
<네 사람이 뻘뻘 날기는 하더라. 자기들의 공격이 먹히니 좋은가봐.>
팀으로 묶인 순간부터 공격력과 방어력이 각각 15% 상승했다.
그러니 네 사람이 활약이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왜 말하지 않은 거야?>
"함께 할지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까."
<하긴 15%라면 그것 때문이라도 함께 하겠다고 하겠다.>
스걱! 스걱!
30분 정도 주변을 정리하고 나니 몬스터의 울부짖음이 확실히 잠재워진 것 같았다.
주변을 정리하고 우리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더니 보초를 서던 두 사람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김주은 씨, 남정열 씨."
작은 소리로 두 사람을 불렀다.
작지만 명확한 목소리였기 때문에 두 사람이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깜빡···."
"보초를 이렇게 서실 거면 차라리 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소환수가 있어서 우리 일행이야 그럴 일이 없지만 다른 팀이었다면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
여자인 김주은 씨야 그렇다 치더라도 군대까지 다녀온 것으로 보이는 남정열씨가 잠이 들었다는 것이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사람들의 코고는 소리에 그만···."
남정열 씨가 뭘 말하는 것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냥 보초도 아니고 잠들어 있는 사람들 옆에서 보초를 서면 정말 곤욕스러웠다.
애써 잠을 쫓아도 코고는 소리와 새근거리는 숨소리에 수마가 몰려오는 것이었다.
아무리 저항을 해도 폭군처럼 덮쳐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만들곤 했다.
"피곤하신 것 같아서 1번 순번을 드린 것인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보초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죠?"
"알고 있습니다."
"몬스터도 몬스터지만 사람도 조심해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를 따라 오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저 사람들은 아군이 아닙니다."
적군이라고도 할 수 없지만 아군도 아니었다.
"아! 그렇죠. 죄송합니다."
우리를 따라 이동하던 사람들은 우리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들도 우리처럼 보초를 서고 일부는 잠자리에 든 상태였다.
우리는 가죽이 있어서 바닥에 깔고 덮었지만 저들은 잡목을 모아서 불을 피운 것만으로 추위를 이기고 있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따뜻한 잠자리를 빼앗기 위해서도 언제든 덮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있어야 했다.
우리의 전력(戰力)을 아니 섣부른 행동은 하지 않겠지만 춥고 배고프면 사람은 겁을 상실하기 마련이었다.
"이번 한 번은 넘어가지만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뒷말을 듣기 무서운지 힘차게 대답하는 김주은이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김주은은 은근히 강골이었다.
지금도 자신의 실수가 부끄러운지 얼굴이 잔뜩 붉어진 상태였다.
눈빛을 보니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주변에 던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던전에 함께 갈 다섯 사람을 차출하려고 합니다."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저도."
두 사람이 함께 가겠다고 나섰다.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볼 생각인 것 같았다.
김주은 씨는 각성 예외자는 아닌 것 같았다.
입 냄새도 나지 않고 가슴 통증도 느끼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정열 씨는 각성 예외자였다.
이 사람의 마나통은 이미 내가 수거한 상태였다.
그래서 더 나를 따르는 것 같은데 본인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려야 하잖아? 언제 알려줄 거야?>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남정열의 고향은 광주였다.
외동아들인 남정열은 광주로 가면 부모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남정열의 부모님은 오늘 돌아가셨다.
몬스터에게 먹혔는지 아니면 건물에 깔렸는지 알 수 없지만 오후 1시쯤에 가족관계에서 부모님이 사라져버렸다.
그 어떤 것보다도 확실한 사망 확인이었다.
하지만 남정열에게 그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하면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광주에 도착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전생에 비해 사상자가 대폭 줄었기는 한데···.>
대폭 줄었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많은 곳에서 몬스터에 의해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서울도 우리가 대강 정리를 하고 왔지만 새롭게 열린 던전이 있을 가망성도 있었다.
전생과 거의 비슷하게 던전이 생성되었지만 전생에는 보지 못했던 던전도 있었다.
혼자서 모든 재앙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걸 보고 있을 시스템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럼 30분 후에 출발합시다. 보초 시간은 채우고 가야죠. 저는 주변 정리 좀 더 하고 오겠습니다."
"쉬셔야···."
김주은이 쉬라는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빠르게 이동했다.
몬스터가 접근했다는 꾸루의 보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걱! 푸욱!
쫑! 쪼로롱!
사냥조들이 사냥을 도왔다.
삼십여 마리의 몬스터는 금세 정리가 되어서 사라졌다.
<어떻게 보면 저 사람들이 현명한 거야.>
나호가 우리 일행과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곳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월평 부근에 자리를 잡으려고 하겠지. 그나마 안전할 테니까."
<울타리 안으로는 들일 생각이 정말 없구나?>
"당연하지. 꼬물이와 도뮤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들일 생각 없어!"
<우아! 우리 꼬물이와 도뮤에게 잘 보여야겠네.>
꼬물!
^ㅎㅎㅎ! 좋아!^
<어쮸? 너 은근히 권력을 즐기는 거냐?>
꼬물!
^ㄴㅎㅂㅂ!^
<너랑 초성 게임은 하지 않기로 했어. 널 당할 수는 없더라.>
꼬물!
^승! 승! 승!^
<그래. 네가 이긴 걸로 해.>
나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사이 나는 일행이 자리를 잡은 곳에서 더 멀리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었다.
<너무 멀리 가는 거 아니야?>
"무슨 걱정이야? 몬야크와 사냥조들이 있는데?"
<사람들이 몰려오면 대처를 잘하지 못하던데.>
"죽이지 않으려고 하니까 그렇지. 무작정 죽여서도 안 되고. 마나 열심히 벌어야지. 그래도 첫 날이어서 그런지 마나를 넉넉하게 주는 것 같아."
<집사도 그렇게 느꼈지? 첫 날이어서 30% 정도 마나를 더 주는 것 같기는 하더라. 계속 이렇게 주면 살만할 텐데.>
"생각보다 약탈도 적어서 우리나라는 빠르게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우리나라 같은 곳은 거의 없을 거야.>
미개방 던전을 미리 클리어 하고 내 소유로 돌리고는 개방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던전은 안정되는 것을 봐가면서 개방을 할 생각이다.
<워프 게이트가 있는 곳은 개방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그래야지. 그래야 길바닥에서 죽는 사람이 줄어들지."
<마법사가 있어야만 워프 게이트가 작동을 하는 것도 아니니 문제될 것은 없지.>
마법사가 있으면 워프 게이트 작동이 좀 더 수월하고 절차도 간단했다.
그래서 워프 게이트만 작동해주고 소정의 마나를 받는 마법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마법사가 없다고 해서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천안의 아수라 던전이 생각났다.
"아! 고정 관념이라는 것이 이렇게 나빠. 아니 우리가 이렇게 걸어서 이동할 필요가 없잖아. 워프 게이트를 이용해도 됐는데 말이야."
<어? 그러네.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 서울에 아직 장프가 형성된 던전이 열리지는 않았지만 집사가 가진 던전 한 곳 열어서 이용했어도 됐는데···.>
전생에 워프 게이트는 그야말로 마나가 차고 넘치는 헌터들이나 이용을 하는 것이었다.
워프 게이트를 이용할 때 마다 지불해야 하는 마나가 적지 않아서 벌벌 떨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무료로 이용할 때가 아니면 워프 게이트 이용은 최대한 자제를 했었다.
그 습관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워프 게이트를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마나가 없어서도 이용이 어렵긴 했겠다. 언제 본 사람들이라고 그 많은 마나를 대주고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게 해? 안 그래?>
"그렇기는 한데. 아이들은 워프 게이트로 이동하면 훨씬 안전하게 화순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도 같고."
<비용 감당 못해. 자그마치 113명이야. 천안에서 이용한다고 해도 11,300마나가 필요해.>
"처음이어서 할인해 줄지도 모르지."
절반으로 할인해 준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잠시 후 시스템의 냉정한 음성을 듣고는 꿈을 접어야 했다.
[아수라 던전에 생성될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실 생각이신 것 같은데 강대한 님 본인을 제외하고는 할인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우리 팀이라도?"
[그렇습니다.]
<집사 소유의 던전인데도 워프 게이트 이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거야?>
[당연히 지불하셔야 합니다. 강대한 님께서 워프 게이트를 작동시키시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할 말 없게 만드는 시스템이었다.
세상 그 누구도 시스템이 제공하는 것과 같은 워프 게이트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었다.
꿈을 접고 주변을 정리하고는 일행에게로 돌아왔다.
그런데···.
입장이 거부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