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입장이 거부된 이유
<이건 뭐. 자리만 비우면 문제가 생기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일행이 있는 곳에 돌아오자 낯선 사람들이 와 있었다.
하지만 우리 일행 옆으로 자리 잡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우리와 우리 옆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피운 불을 보고 온 사람들이었다.
<열정이 대단하다. 이런 시국에 한 밤 중에 불빛을 보고 찾아오고 말이야. 성경 구절이 떠오르려고 하네.>
나호가 넉살을 부렸다.
몰려 든 사람들이 괜찮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서울에서 오시는 길이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정수백이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몰려온 사람들은 삼십여 명!
우리가 자리 잡은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산불이 났다고 생각하고 불을 끄기 위해 나왔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멀리서 지켜봤다고 했다.
가까이 접근을 했으면 전령조에게 바로 적발이 됐을 것이다.
이들은 마을에서 망원경을 통해 우리를 살폈던 모양이었다.
영리한 사람들이었다.
"라디오는 간간이 잡히는데 방송과 인터넷이 끊겨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있어야죠."
마을 사람이 답답해하며 말을 이었다.
"우리 마을에 회관도 있고 빈집도 제법 있습니다. 와서 자도 좋습니다."
마을 이장이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괜찮습니다. 아! 저기 우리 대장이 오네요."
정수백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대장이라고 하지 말라니까 꼭 대장이라고 하더라.>
나호가 불만을 드러냈다.
꼬물!
^대장이 가장 부르기 적당하니 대장이라고 하는 거야! ㅂㅂ!^
<너 이번에는 정말 바보라고 한 거지?>
꼬물!
^아닌데? '발발'이라고 한 건데? 네가 걷는 모양이 발발 기는 것 같아서 발발이라고 한 거야. 발발 기어 다니는 아기 호랑이!^
꼬물이가 나호를 살살 놀리기 시작했다.
발발 긴다는 말에 나호가 허공답보를 멈추었다.
나호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허공답보를 발발 긴다고 표현했으니 나호의 충격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충분히 우아하고 멋진 허공답보인데 꼬물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꼬물이와 나호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이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손을 내밀었다.
"젊은 분이신 것 같은데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이끌고···. 적든 많든 사람을 이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김기현입니다."
"아예! 저는 강대한입니다."
"강대한요? 익숙한 이름이네요. 대한? 강대한?"
이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몇 달 전부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름이니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아! 월평 주식회사의 강대한 씨입니다."
정수백이 냉큼 이장님의 궁금증을 해소해주었다.
"아아아! 그렇군요. 저희 마을에서 거기 회사에 놀러간 적도 있습니다. 거기 대표이사 되시는 분이 정말 좋으시······."
김기현이라는 이장은 자분자분하게 말씀을 참 잘했다.
침착하고 서두르지 않는 것이 대변혁 시대를 잘살아갈 것 같았다.
이곳에 대뜸 찾아오지 않고 마을에서 우리의 동태를 한 시간 정도 살핀 것도 칭찬할 만했다.
<입 냄새가 나지 않네. 각성을 하셨을까? 아니면 독도를 드셨을까?>
'알 수 없지.'
<마을에 내려가서 잘 거야?>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저 사람들이나 데려가 재우라고 해야겠다.'
우리 일행 옆으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려고 할까?>
'동사 하는 것 보다는 낫지.'
"하하하! 그래서 제가 두 번이나 더 월평에 갔다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대표이사께서 취업까지 권하셨다니까요."
큰아버지께서 정말 취업을 권했다면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분인데···.
<들은 적 있어?>
'큰아버지께서 만나시는 분이 한둘이야? 내가 다 어떻게 알겠어? 일본에 있었던 시간이 더 많은데···.'
<혹시 전생에 인연이 있는 사람인가?>
'평택의 김기현이라는 이름은 기억에 없어.'
권능 기억도 반응이 없었다.
"제가 우리 마을 사람들을 두고 갈 수 없어서 가지 않았습니다."
"저희 이장님은 안 되죠. 우리 마을을 지금의 마을로 만드신 분인데 가시긴 어딜 가신다고 그러십니까?"
옆에 있던 50대 남자가 말했다.
아주 신뢰를 받고 있는 이장인 것 같았다.
"아무것도 없던 우리 마을을 살게 해주신 분입니다. 이장님 이사 가신다면 우리는 다 따라갈 겁니다."
주변의 사람들까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자꾸 떠나는 사람이 있는데 뭘. 나도 이제 다 늙은 거야."
"다 잘 돼서 가는 거잖아요. 나이 들고 은퇴하면 다 돌아온다고 집도 팔지 않고 갔잖습니까."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큰아버지께서 탐을 낼만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마을에는 괴물이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정수백이 물었다.
"왜 나타나지 않았겠습니까? 소와 염소들의 희생으로 사람들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몬스턴지 괴물인지 하는 것들이 흑염소를 그렇게 좋아하더라고요. 몸에 좋은 것은 알아가지고. 애지중지 키우던 것인데."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체험 학습장처럼 운영하는 흑염소 농장이 있었습니다. 소도 몇 마리 키웠고요. 몬스터들이 동물들을······."
김기현 이장님께서 차분히 설명을 하셨다.
몬스터들의 관심이 동물에게 쏠리는 사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하로 대피를 했다고 했다.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지하실과 다락이 있는 집을 하나 지어둔 것이 마을 사람 모두를 구했습니다."
"그것도 이장님께서 강력하게 주장하셔서 지은 거잖아요. 올 여름에 완공한 거고.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장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들이 평상시에 어떻게 살아오고 있는지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모두 함께 오신 겁니까?"
"거동이 불편한 십여 명을 제외하고는 다 같이 왔죠. 혹시라도 괴물이 나올지 몰라서 무장까지 하고 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죽창이나 도끼, 낫 등을 들어보였다.
평상시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모습이었지만 대변혁 이후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괴물 울음소리가 현격하게 줄어들어서 이때다 싶어서 와본 겁니다. 여기 분들이 분명 괴물들을 처리한 것 같아서."
<상황파악 능력이 아주 좋네. 튼튼한 지하실이 있는 집을 지은 것도 그렇고.>
요즘은 건물을 지어도 지하실을 잘 만들지 않았다.
건축비가 상승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골 마을에 몬스터가 침입할 수 없을 정도의 지하실을, 그것도 마을 사람 모두가 들어갈 정도의 크기로 지었다는 것은 마냥 우연의 일치로 보기에는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어디든 괴물이 나오는 곳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모기도 고인 물이 있어야 생기지 않습니까? 괴물들도 어딘가 나오는 곳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똑똑하기까지 하네. 이런 사람이 왜 전생에 활동하지 않았을까?>
'알 수 없지.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 때문에 죽었을 수도 있지.'
하루 이틀은 지하실에 몸을 피할 수 있지만 계속 지하실에서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생에는 몬스터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던전이 열렸고 거기에서 나온 몬스터는 충분히 굶주려 있었다.
경쟁자가 많으니 몬스터도 더 날뛰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었다.
"저쪽에 몬스터가 나오는 곳이 있었습니다."
"정말 있었군요? 거기에 들어가서 다 때려잡아야 하는데···. 우리 마을과 가까우니 편하게 살려면 화근을 없애야죠."
"던전에 들어가서 정리를 할 생각입니다."
"정말이요? 이런 감사할 때가···. 그럼 우리도 동행하겠소. 우리 마을 일이기도 하니 뒷짐 지고 있을 수는 없지. 다들 동의하지?"
"이장님께서 가자고 하면 저희는 가죠. 저희가 때려잡은 멧돼지가 한둘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하!"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체험학습 온 아이들을 덮치려는 놈들만 잡은 겁니다."
"요즘 그물을 치지 않으면 밭농사도 힘들다는 것은 들었습니다."
"그물도 소용없어! 아주 징해! 잡지를 못하게 하니···. 우리는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지. 더 시골은 멧돼지 무서워서도 살지 못한다고 하더라고."
이장님께서 질색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멧돼지도 문제지만 들개와 들고양이도 문제야.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잖아. 반려동물이든 애완동물이든 키우려면 칩을 다 심으라고 해야 해. 의무조항을 만들어야지. 에휴우.>
버려지는 동물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적지 않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권장 사항에 그치고 있었고, 칩이 있는 경우도 잃어버렸다고 하면 어영부영 넘어갔다.
"그럼 함께 가시죠. 지병이 있는 분들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내는 될랑가 모르것네. 최근에 암 완치 판정을 받기는 혔는디?"
"저는 괜찮을 겁니다. 고혈압이 있기는 해도···."
"나는···."
다들 50대 이상이었는데도 던전에 들어가는 것에 적극적이었다.
동네 분위기 자체가 진취적인 것 같기도 했다.
동네 어르신 열다섯 분과 우리 일행에서 다섯 명이 던전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것들 들고 가! 죽창으로는 부족할 것이여."
"이것도!"
동네 어르신들이 자신들이 들고 있던 쇠스랑이나 낫 등을 우리 팀원들에게 건네기도 했다.
<괜찮네. 큰아버지께서 이주를 권했을만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니 좋은 사람이 더 잘 보이셨을 거야.>
'그렇지.'
우리 일행에서 던전에 가기로 한 사람은 김주은, 남정열, 정수백, 김사랑, 서종호였다.
꼬물!
^담배는 어디에 뒀을까? 이번에도 뺏길 텐데. 던전은 담배를 싫어해!^
꼬물이가 노래처럼 담배를 들먹였다.
<너 주책바가지라고 알아?>
꼬물!
^무슨 바가지?^
<주책바가지?>
나호가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적지 않은 책을 읽은 꼬물이가 바로 알아먹고는 빠르게 바닥에 글을 썼다.
꼬물!
^사랑바가지겠지! 나는 적어도 주책바가지는 아니야.^
꼬물이가 자존감을 드러냈다.
<주책바가지 되는 거 순식간이야. 그러지 마! 이건 널 사랑하니까 하는 충고야!>
꼬물!
^치이이! 알겠다 뭐. 충고 접수다. 하지만 던전은 담배 싫어해.^
꼬물이가 담배에 대해 저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있었다.
전생에 담배를 허용하는 던전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던전은 술, 담배, 카드, 화투 같은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왜 그런 것을 던전에 가지고 가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말이다.
던전 중에는 공략하는데 몇날며칠이 걸리는 던전도 있었다.
무료하니 그런 것을 가지고 가는 헌터들도 있었지만 저런 것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팀은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또 싫어하는 것이 뭐야? 던전에 가지고 갈 수 없는 거 말이야.>
꼬물!
^던전마다 다르지. 덩굴들이 싫어하는 것은 제각각이니까.^
그렇게 우리 모두는 던전의 입구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많은 사람이 입장을 하는 것이라 살짝 긴장이 되었다.
덩굴손의 검사를 처음 받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당황하며 거부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수백이 나서서 차근하게 설명을 다시 해서 진정을 시켰다.
나이도 많지 않은데 정수백은 묘하게 안정감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던전 덩굴손에 의해 거부당하는 사람이 생겼다.
마을에서 온 어르신 한 분과 김주은이었다.
<각성자로 보이는데 왜 거부당하지?>
각성자라도 경우에 따라서 입장을 거부당할 때가 있었다.
거부된 이유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유도 모른 채 돌아서야 했다.
어제까지는 입장했는데 오늘은 입장할 수 없게 할 때도 있었다.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답답하지만 덩굴손이 거부하면 입장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아니 왜?"
덩굴손이 막아서자 김주은이 당황하며 말했다.
어르신 한 분도 당황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저는 아픈 곳도 없는데? 평생 병이라는 것은 앓아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청년 회장 건강한 것은 내가 보장하지."
50대로 보이는데 청년회장이라고 했다.
70대가 청년회장인 마을도 있다고 하니 50대 청년회장이면 많이 젊은 편이었다.
<너는 알지? 저 두 사람 거부당한 이유 말이야.>
꼬물!
^주책바가지 되기 싫어. 말하면 주책바가지라고 할 거잖아?^
꼬물이가 튕겼다.
하지만 대변혁 이후 던전입장이 거부되는 첫 사례이기 때문에 왜 거부되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저기 봐! 집사도 궁금해 하잖아. 그냥 말해봐. 주책바가지라고 하지 않을게.>
꼬물!
^정말? 계속? 쭈우욱?^
<그래! 어서 말해봐. 궁금해 죽겠어. 알아야 속이라도 시원하지.>
꼬물! 꼬물! 꼬물!
^네가 원해서 말하는 거야! 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사실 저 두 사람이 입장이 거부된 이유는···.^
뚫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