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 언제까지
화순도 문제가 없다고 하고, 우리 일행에도 문제가 없었다.
우리 일행의 뒤를 따라 오는 사람들이 간간이 기분 나쁜 내색을 하며 신경을 긁었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저어···. 대장! 할 말이 있습니다."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을 때 김주은 씨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예. 말씀하십시오."
꼬물!
^발 냄새! 꼬랑내 나는 발! 발! 발!^
<넥! 그만! 꼬물이 예쁘다, 예쁘다 했더니···. 이 녀석! 상투 머리에 앉으려고 하네. 혼난다!>
나호가 뇌성과 같은 소리로 꼬물이를 혼냈다.
영체 상태였으니 다행이었지 실체를 가지고 있었으면 모든 사람들이 벌벌 떨었을 것이다.
꼬물!
^죄송해요. 나는 친근해서 그런 건데···. 예전에 나도 냄새 났으니까. 아무도 다가오지 않을 때 가장 아팠거든요. 놀리더라도 옆에 있어주는 것이 좋아서.^
<놀리지 않고 옆에 있어주면 더 좋잖아. 김주은 씨는 더구나 여자야. 여자들은 저런 거에 더 민감할 거야. 아무리 네 말을 듣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러는 거 아니야.>
꼬물!
^알겠어요. 안 그럴게요. 근데 발 냄새 나도 좋은 사람인데.^
뮤! 뮤! 뮤!
^저 사람 발에서 냄새 난다고? 나는 모르겠는데. 냄새 좀 나면 어때? 저 사람 괜찮은 사람이야. 좋은 냄새 나.^
도뮤는 몸에서 나는 냄새에는 관심이 없었다.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도뮤에게 중요한 것은 영혼의 향기인 것 같았다.
그런 도뮤가 평하길 김주은 씨는 좋은 냄새가 나는 사람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이 듣지 않은데서 말하고 싶은데?"
무슨 말을 하려는지 무척이나 조심스러워했다.
"거리를 조금만 벌리죠."
걷는 속도를 높여서 일행과 거리를 두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들어주세요."
"예. 말씀 하십시오."
"저기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 말이에요. 언제까지 달고 가실 거예요?"
"예?"
"언제까지 달고 가실 거냐고요? 저도 따라가는 입장에서 이런 말씀 드리는 것이 주제 넘는 다는 거 알고 있는데요. 저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아요. 거리를 벌려서라도 따로 움직였으면 좋겠어요."
누구든 이런 말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계속 해서 신경을 긁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택에서 마을 사람 십여 명을 합류시키고 난 후에는 특히 더 그랬다.
그렇지 않아도 슬슬 짜증이 나고 있던 상황이었다.
내가 가장 앞에서 걷고 있어서 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별별 말을 다 하는 사람들이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여자에게 부화뇌동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지금보다 더 빨리 움직이는 것은 힘듭니다. 노약자가 많아서."
우리를 따라오는 사람들은 젊은 사람이 많았지만 우리는 노약자가 많았다.
그래서 몬야크가 있는데도 속도가 비슷했다.
"저기 큰 새들이 애들을 업을 수도 있을 것 같던데. 애들도 좋아할 거고요. 아이들이 내린 자리에 성인들이 타고 움직이면 저 사람들 따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름의 대안까지 가지고 온 것을 보면 그저 불만만 제기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제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야크들도 쉬기도 해야 하고, 새들 의향도 물어봐야 합니다."
<저 사람들이 불쌍하기는 하지만 하는 짓이 밉기도 해. 어찌 저러는지. 고마운 것은 하나도 생각하지 못하고. 우리 때문에 안전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말이야.>
일행에 끼워주지 않는 것만 생각하고 불만만 터뜨리는 사람들이었다.
불만만 쏟아 부을 것이 아니라 차라리 김주은 씨처럼 뭔가 대안을 가지고 협상을 해왔어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받아들여주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그런 노력은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들은 투덜투덜 불만만 늘어놓으면서 흠집 내기에 급급했다.
"꾸루야 어때?"
전령조들의 덩치는 거대했다.
성인을 업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어린 아이들은 가능할 것 같았다.
아이들이 무서워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꾸!
^가능해요. 단단히 묶어만 주세요.^
음머어어!
^우리도 밤새 걸을 수 있다. 우리 몬야크는 지치지 않는다.^
꼬물!
^우리도 도울 수 있어. 거대한 광주리 만들어서 아이들 태울 수 있어!^
꼬물이가 생각지도 않은 말을 했다.
오전에 은실 엄마를 옮겨온 것처럼 사람을 태울 수 있다고 말한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대기실의 입구를 조금 더 높여놓으면 성인도 옮길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아니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집사! 정말 가능하겠다. 소환식물들의 뿌리를 이용하면 전령조들이 굳이 업을 필요도 없을 것 같아.>
꼬물!
^ㄴㅎㅊㅈ!^
<이거 꼬물이에게 칭찬 들은 거야?>
꼬물!
^ㄴㅎㅊㅈ! ㅎㅎ!^
^ㄴㅎㅊㅈ! ㅋㅋ!^
칭찬을 하는 건지 확실하지 않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가능해?"
꼬물!
^가능해! 가능해! 아이들 태우면 너무 좋을 것 같아!^
꼬물이의 꼬물체에 즐거움이 묻어났다.
아이들을 태운다는 생각만 해도 즐거운 모양이었다.
"좋아. 그럼 먼저 아이들을 태울 바구니?, 요람? 무엇이든 아이들이 타기 좋을 것을 만들어봐. 보고 결정할게."
꼬물!
^아이 신나! 아수라 아수리가 나서면 최고의 요람이 만들어 질 거야.^
꼬물꼬물!
고물고물!
꼼지락 꼼지락!
덩굴 식물들이 전에 없이 부산스러웠다.
<저렇게 공을 들일 필요는 없는데···.>
"이왕이면 잘 만들면 좋지."
<그렇기는 한데···.>
여섯 덩굴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요람은 세 개였다.
아수라와 아우리의 뿌리로 만든 요람은 간결함이 돋보였다.
의자나 요람만 전문으로 만든 공방에서 나올 것 같은 모양이었다.
공방에서 만들어진 가구는 죽은 가구이지만 아수라와 아수리 뿌리로 만든 것은 살아있는 가구였다.
뿌리위에 가죽까지 깔아서 아이들이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했고 춥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쓴 태가 났다.
황이과 금이는 뿌리는 물론이고 줄기를 까지 이용해서 풍성함이 돋보였다.
아수라, 아수리가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가죽을 깔았는데 가죽 밑에 곡물 자루를 얇게 깔아서 푹신함을 강조했다.
꼬물이와 꼬마가 만든 요람은 꼬물이의 일곱 뿌리가 장난감처럼 갖가지 모양으로 변화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골라 타는 재미가 있겠네. 다들 춥지 않도록 신경도 많이 썼고."
소환 식물들이 만든 요람은 마차 부럽지 않았다.
가죽으로 감싸서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했기 때문이었다.
밖을 내다 볼 수 있도록 가죽으로 커튼까지 만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는데?>
"미리 준비해 온 돌난로까지 넣어주면 완벽하겠다."
어젯밤에 잠을 불을 피울 때 주위의 돌을 모아서 돌을 달구어 두었다.
오늘 오전에 마을에서 음식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추위를 이기기 위한 대비였다.
달구어진 돌을 가죽에 잘 싸서 대기실에 넣어두었는데 그것을 요람에 넣어주면 따뜻할 것 같았다.
달군 돌을 각 요람에 넣어주었다.
"아이들 손이 닿지 않게 배치해줘."
혹시라도 호기심에 가죽 안에 손을 넣으면 큰일이었다.
그래서 말을 했더니 소환식물들이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은 곳에 잘 배치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저기 봐! 아이들 벌써 호기심이 동했어.>
갑자기 허공에 마차 같은 요람이 한 개도 아니고 세 개나 나타났으니 놀랄 만도 했다.
"우와아아! 신기해요. 타고 싶어요."
은실 엄마가 나무에 의해 옮겨지는 것을 봤던 아이들이 특히 소환식물들이 만들어낸 요람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우리 저거 타도 돼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럼. 타 볼까?"
"우와아!"
타겠다고 손을 드는 아이들에게 소환 식물의 뿌리가 다가갔다.
타겠다고 했지만 꿈틀거리는 뿌리가 다가오자 아이들이 움찔거렸다.
"겁먹지 않아도 돼. 착한 아이들이야."
"아이에요?"
"아이야. 저기 봐!"
소환 식물들이 여린 뿌리들을 아이들에게 보였다.
꼬물이를 제외하고는 여린 뿌리는 하나씩만 가지고 있었다.
꼬물이만 일곱 개의 여린 뿌리로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 내며 아이들을 유혹했다.
<꼬물이 좀 봐. 아이들 심리를 아주 잘 파악하는 거 같아.>
꼬물이가 토끼 귀 모양을 만들더니 귀를 접었다 폈다 하고 있었다.
여리고 하얀 뿌리로 만든 토끼 귀를 굵은 뿌리 위에 올려두었기 때문에 요람 안에 토끼가 들어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했다.
아이들의 호기심이 동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와아! 나는 토끼에게 갈래."
"나는 저기 공주 마차로 갈 거야."
"나는 여기 푹신한 마차가 좋아."
요람을 확인한 아이들이 자신들이 타고 싶은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뿌리에 의지한 채 요람으로 이동했다.
한두 명 이동을 하자 서로 먼저 옮겨가겠다고 서두르는 아이들이었다.
"나두···."
성연이가 언제 눈을 떴는지 꼬물이의 요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꼬물이가 성연이와 은실엄마를 함께 자신의 요람으로 이동시켰다.
"저까지 함께 와도 되는지."
"괜찮습니다. 아이들을 돌봐주시면 감사하죠."
"고맙습니다."
덩굴 식물들이 만든 요람으로 옮겨간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몬스터가 나오고 갑자기 건물이 무너지며 혼자가 된 아픔들을 잠시 잊는 것 같았다.
"······."
정수백의 등에 업힌 아이가 아수라, 아수리가 만든 요람을 가리켰다.
아이가 뭔가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정수백의 얼굴이 환하게 펴지며 냉큼 아이에게 물었다.
"저기 타고 싶어?"
네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 아니 팀장님! 제 동··· 동생도 타고 싶다고 하는데···."
"타야죠."
아수라의 뿌리가 아이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아이가 정수백의 등에 꽉 안기며 한 손만을 내밀었다.
"아이가 수백 씨와 함께 가고 싶은 것 같습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의사표현을 하다보면 잃었던 말도 머지않아 찾겠다.>
꼬물!
^아빠래. 아이가 아빠라고 해요.^
꼬물이의 여린 뿌리 하나가 대기실로 복귀하더니 글을 썼다.
'정수백 씨를 아빠라고 부르고 있다고?'
꼬물이에게 심상으로 물었다.
꼬물!
^아이가 속으로 아빠라고 부르고 있어요. 형이 아니라.^
<형이면 어떻고, 아빠면 어때. 정수백 씨는 크게 상관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겠지. 저기 봐.'
아수라와 아수리가 함께 정수백 씨와 아이를 자신의 요람으로 옮겼다.
"가장 뒤의 요람에도 어르신이 한 분 탔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을 돌볼 겸 요."
"그럼 저기 감나무 댁을 태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평택에서 합류한 어르신이 아주머니 한 분을 가리켰다.
"저는 괜찮습니다."
"남자인 우리 보다야 감나무 댁이 낫지. 어서 못이기는 척 타. 저기가 덜 흔들릴 것 같으니까."
어르신이 감나무 댁이라는 아주머니를 이끌었다.
아주머니가 못이기는 척 따라오셨다.
꼬물!
^얼레리꼴레리! 알라리깔나리!^
<흐하하! 흐하하! 꼬물이가 눈치는 참 빠른 것 같아. 혼을 내야 하는데 웃음이 먼저 나오네.>
꼬물이가 하는 짓에 나호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꼬물이가 만든 요람 위의 하얀 뿌리들이 하나 같이 하트를 만들어서는 열심히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대기실 바닥에 쓰는 글씨를 우리만 볼 수 있어서 다행이지 다른 사람도 볼 수 있다면 실례도 이런 실례가 없었다.
"그럼 제가 타도록 할게요."
"감나무 댁이 타야지. 다리도 좋지 않으면서."
어르신은 조금이라도 빨리 아주머니를 요람으로 태우고 싶으신 모양이었다.
꼬물!
^사랑은 감출 수 없는 거야. 그치?^
바닥에 글씨를 쓰면서 이응(ㅇ)을 쓸 때마다 하트(♡)로 쓰는 꼬물이었다.
이렇게 글을 쓰자 꼬물체가 사랑체가 되는 것 같았다.
황이와 금이가 감나무 댁이라는 아주머니를 자신의 요람에 태웠다.
아이들이 요람으로 옮겨가고 나자 몬야크의 등은 빈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몇 분이 타고 있었지만 빈자리가 넉넉했다.
음머어어! 음머어어! 음머어어!
반반이가 갑자기 긴 소리로 세 번 연속 울었다.
꼬물!
^반반이가 이대로 십 분만 이동하면 좋겠대요. 몬야크들 잠시 쉬게 해주고 싶대요.^
튼튼함으로 따지면 세상 어느 생명체에도 뒤지지 않을 몬야크이지만 등에 인간을 태우고 이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로에 간간이 장애물도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당연히 쉬게 해줘야지. 이대로 십 분만 이동하겠습니다. 소들도 잠시 쉬게 해줍시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말을 하고는 앞장 서 걷기 시작했다.
천벌을 받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