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210화 (210/350)

210.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사람

<집사! 왜 그래?>

"저기! 저 사람 보여?"

반야에게서 50미터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누구? 저 많은 사람 중 집사의 이목을 끄는 사람이 누굴까?>

이제 제법 어두워져서 누군가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은 시간이기도 했다.

"저기 검은 코트를 입은 사람!"

<집사의 목소리를 들으니 반가운 것 같은데? 영입하고 싶었던 사람이야?>

"어! 그것도 무척이나. 하지만 제거해야 할 놈과 함께 있네."

<그런 조합이 있을 수 있어? 그럼 내가 알 텐데? 누구지?>

나호가 눈을 밝히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기 때문에 찾지 못한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영입하고 싶은 사람이면 당장 만나러 가야 하지 않아?>

"귀환부터 끝내고. 저 놈과 함께 있으면 멀리 가지 않을 거야?"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거야? 검정 코트를 입은 사람이라고?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통 구분이 가질 않네.>

나호가 열심히 사람을 찾는 사이 반야가 마지막으로 장벽을 넘었다.

모두 무사히 귀환을 한 것이었다.

"고생했다."

아버지께서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얼굴표정이 나빠 보이지 않아서 다행스러웠다.

"저 잠깐 나갔다 와야겠어요."

"오자마자 또?"

나간다고 하자 함께 왔던 일행들이 살짝 불안해했다.

나만 믿고 함께 왔는데 내가 자리를 비운다고 하자 끈 끊어진 연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

"30분 이내로 돌아올 거예요."

"그럼 어서 다녀와. 식사 준비해둘 테니."

어머니께서 빨리 돌아오라는 말을 돌려하셨다.

"그럼 다녀올게요."

모두 정문 쪽 장벽을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내가 향한 곳은 던전이 있는 뒷산이었다.

그쪽의 장벽을 넘어서 갈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문 쪽으로 넘어가면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차근히 볼 수 없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던전을 지나 장벽을 훌쩍 넘었다.

산에까지 장벽을 세워두었기 때문에 마을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한 것이었다.

높은 산이었으면 불가능했겠지만 우리 산은 야트막한 야산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장벽을 넘어 정문 쪽으로 오자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사람들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힘을 잃은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있어서 살짝 마음이 약해지려고 했다.

<집사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거지?>

'나도 사람이야.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 하지만 아무나 입장시키지는 않아. 장벽 밖에서 사는 것이야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말이야.'

<장벽을 벽을 삼아 저렇게 집을 짓는 사람들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장벽 아래로 텐트를 치거나 차를 세워서 자신들만의 거처를 만든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마을로 드나드는 정문 옆으로 그런 것이 많이 세워져 있었다.

서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운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다.

텐트는 그렇다 치더라도 차는 어떻게 끌고 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큰 문제만 만들지 않는다면 놔둬야지. 장벽 아래에서 산다는데 내가 뭐라고 할 것은 아니잖아. 내 땅도 아니고.'

<집사가 많은 땅을 사둔 것이 정말 잘한 것 같다. 월평에 입주한 사람들은 알까? 저 넓은 땅이 개인의 것이라는 것을?>

'알든 모르든 무슨 상관이야? 이제 함께 살아갈 사람들인데.'

<우리 마을처럼 안전한 거처는 매달 상당한 마나를 지불해야 얻을 수 있었어.>

전생에는 전세는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매달 일정액의 마나를 지불하기로 하고 집을 세 내놓았다.

몬스터에게 안전한 집은 크든 작든 월세가 만만치 않았다.

전생에 작은 집이라도 안전한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모른다.

각성자가 아니었으면 자칫 빼앗겼을지도 모르지만 각성자였기 때문에 집은 지킬 수 있었다.

'알아주는 날이 오겠지.'

<그래야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은 다 내쫓을 거야. 그런데 경비는 철저하게 서야 할 것 같아. 장벽 위로 철조망을 두르든지.>

장벽에 바짝 붙여서 차를 세워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봉고 버스처럼 차체가 높은 차들이 있어서 장벽을 넘어올까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시스템에게 경계에 관한 아이템이 있는지 물어봐야지.'

경비를 열심히 서는 것도 좋지만 워낙 면적이 넓어서 24시간 완벽하게 경비를 서는 것은 어려웠다.

그러니 시스템에게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이 나았다.

<경비는 세우지 않고?>

'왜 안 세워? 세워야지. 날로 먹게 하지는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마.'

나호와 심상으로 대화를 나누며 조금 전에 봤던 사람이 있던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반야의 등에서 봤을 때는 바로 보이던 사람이 그 사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시야가 달라져서 찾지 못하는 것인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시스템의 메시지가 들렸다.

[띠링! 강대한 님께서 문의하신 아이템은 아직 구비되지 않았습니다.]

<뭐래? 문의한 적 없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마을을 경계하는 아이템은 아직 입고된 것이 없습니다.]

시스템이 묻지도 않은 말은 반복했다.

<정말 장사 하나는 확실하게 한다. 이런 것은 시스템에게 배워야해. 그치?>

'그렇지. 장사는 시스템에게 배우면 확실하지.'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시스템의 목소리가 유난히 밝은 것 같았다.

꼬물!

^좋대. 좋대. ㅎㅎㅎ!^

꼬물이의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 당장 경비가 걱정이기는 하네. 전령조들에게 계속 경비를 맡길 수도 없고 말이야.'

차츰 전령조의 경비를 줄이고 사람들이 경비를 서는 것으로 바뀌어 나갈 것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완벽한 경비를 기대하기 어려워서 살짝 고민이 되었다.

'거위를 이용해볼까?'

<거위?>

'초소경계용으로는 거위만한 것이 없잖아. 귀도 예민하고 영역에 대한 것도 확실하고. 낯선 것이 나타나면 시끄럽게 울기도 하고.'

전생에 나는 빌라에 살아서 거위를 키우지 않았지만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몬스터의 접근을 알아차리기 위해 거위를 키우는 사람이 많았다.

처음에는 한두 사람이 키우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개만큼이나 많이 키우는 가축이 되었다.

<거위가 좋기는 하겠다. 그때 구해둔 알을 부화시킬 거야?>

'그래야겠지.'

대변혁을 준비하면서 각종 알도 많이 구비를 해둔 상태였다.

계란은 유정란이 아닌 것도 많지만 나머지 알은 대부분이 유정란이었다.

'발전기 망가지기 전에 부화기부터 작동시켜야겠다.'

마을 안쪽 장벽 밑으로 거위를 키우면 한밤중이라도 쉽게 담장을 넘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나저나 누구를 봤던 거야?>

'구완!'

<누구? 지금 구완이라고 했어?>

'어! 구완을 봤어.'

<정말 구완을 봤다고? 그렇게 찾아도 없더니?>

'그러게. 신기하게 '이근택'과 함께 있더라.'

<누구와 함께 있었다고? 이근택? 내가 생각하는 이근택을 말하는 거야? 친일파 이근택?>

'그래. 그 이근택! 분명해. 내가 어떻게 이근택과 구완의 얼굴을 잊겠어?'

<구완은 도대체 어디 있다 이제야 나타난 거야?>

'그건 나도 모르지. 큰아버지께서도 알아내지 못했으니까.'

반야의 등에서 봤던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친일파로 유명했던 이근택과 그의 친구인 구완!

친일파인 이근택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사람이고 그의 친구인 구완은 반드시 구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전생에 이근택은 처음부터 친일파는 아니었다.

세상이 변하기 전에는 친미주의자였다고 하는데 미우라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나서는 이완원과 함께 대표적인 친일파로 활동하던 놈이었다.

이놈도 현재 판사로 재직 중인 놈이었다.

그런 놈이 복도 많아서 구완을 친구로 두고 있었다.

구완은 이근택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산 사람이었다.

나중에 이근택을 제거하려다 죽임을 당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구완은 구해야했다.

구완을 특히 구해야 하는 이유는 구완은 일찍부터 미우라를 의심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미우라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때 거의 유일하게 미우라를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가 당한 고초도 상당했다.

그런데도 그는 꿋꿋하게 자신의 소신을 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둘이 함께 우리 장벽 앞에 와 있었다.

아마 이근택 때문에 함께 온 것 같았다.

이근택은 힘의 흐름을 귀신보다 더 빨리 알아채던 놈이었다.

그 흐름이 월평으로 흐른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든 접점을 찾기 위해 방문을 했을 것이다.

<박쥐새끼가 나타났다는 거네? 거머리보다 더 나쁜 놈의 새끼가 왔어. 전생에 몸이 자유로웠다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찢어죽이고 싶었던 놈인데.>

'이근택은 전생과 다른 행보를 보일 거야. 그건 내가 장담할 수 있어.'

<그렇겠지. 귀신같은 놈이었으니까. 놈이 월평에 충성할 것처럼 하면 받아들여줄 거야?>

'미쳤어? 아까 그 낯짝을 보고도 당장 때려죽이고 싶었어. 놈이 했던 일이 생생한데 어떻게 한솥밥을 먹어?'

<그래. 그런 놈은 절대로 안 돼. 사리사욕이 목까지 차다 못해 뇌까지 잠식한 놈이야. 절대로 안 돼. 그 놈 재판도 돈 받고 있는 놈 편을 많이 들었다고 했어.>

대변혁 전에는 쉬쉬하던 이야기였지만 대변혁 후에는 놈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직접 떠벌리고 다녀서 누구나 아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모은 재산이 대변혁과 함께 사라졌으니 미치고 팔짝 뛰었을 것이다.

하지만 놈은 대변혁 이후에도 단 한 번도 힘들게 살지 않았다.

힘 있는 사람 옆에 붙어서 단물을 쪽쪽 뽑아 먹으며 살았다.

저런 놈을 우리 마을에 들이면 우리 마을의 단물이란 단물은 다 뽑아 먹고 버리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정말 먹음직스럽게 보이면 어떻게든 자신이 차지하려고 할 것이고 말이다.

<구완과 이근택이 친구라는 것이 이해할 수 없어.>

'구완은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이근택은 종처럼 생각하겠지.'

구완은 어릴 적 이근택의 집에 살았다고 한다.

구완의 아버지는 이근택 아버지의 기사였고, 어머니는 가정부였다고 알고 있다.

어릴 적부터 친구처럼 자랐다고 하지만 이근택이 구완을 친구로 생각했을 리가 없었다.

구완이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지 않았다면 핍박을 많이 받았을 것이 분명했다.

구완은 이근택이 무시할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어서 이근택이 핍박하거나 괴롭히지 못했다고 한다.

어쨌든 그 둘이 동시에 나타났다.

그 말은 이근택이 구완의 도움을 받아 월평에 들어오고 싶어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괴물이 돌아다니는 세상에서 판사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 분명했다.

시류는 귀신같이 알아채던 놈이었으니···.

<구완의 과학적인 두뇌를 이용해서 들어오려고 했다는 거네?>

'그렇지.'

구완의 두뇌를 알면 누구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사람이 많기도 했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지고 있는데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장벽 주위로는 몬스터가 들이닥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장벽 너머를 향해 소리를 몇 번 더 지르더니 포기하고는 태울만한 것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이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눈까지 왔으면 노숙하기 더 어려웠을 것이다.

<마음 편하지 않지?>

나호는 나에게 묶여 있어서 그런지 내 마음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편하면 이상하지. 그래도 여기 있으면 몬스터 공격은 받지 않겠지.'

반반이가 주기적으로 울기만 해도 몬스터가 접근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허락도 없이 몰려든 사람들이 짜증스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이들도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장벽 밑으로 마을이 생기고 도시가 형성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까 보니까 아주 못 된 사람들도 있더라. 그런 사람들은 쫓아내야 해.>

'자연스럽게 유도할 생각이야. 억지로는 쫓아낼 명분도 없어. 어! 저기 있다!'

한참을 찾아 헤매던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구완과 이근택은 나란히 걷고 있었다.

걷는 모습만 봐도 두 사람의 성격이 여실히 보이고 있었다.

어깨를 펴고 당당히 걷는 구완과 혹여 옆 사람과 부딪치기라도 할까봐 잔뜩 몸을 사리는 이근택!

전생과 어찌 저리 똑같은지 모르겠다.

<구완! 정말 보고 싶었는데.>

나호가 감회에 젖어들었다.

꼬물!

^누군데 그래요?^

'전생에 은혜를 입은 사람과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사람.'

꼬물!

^저기 두 사람 요? 오른쪽이 은혜를 입은 사람이고, 왼쪽이 죽이고 싶은 사람이에요?^

차려진 밥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