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차려진 밥
"뭐라고?"
너무 놀라서 심상으로 말을 하다 밖으로 말을 뱉고 말았다.
내가 보기에는 오른쪽이 죽이고 싶은 사람이고, 왼쪽이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전생에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심성은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꼬물!
^이쪽이 오른쪽! 이쪽이 왼쪽!^
<프하! 프하하! 우리 꼬물이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까지 갖추었네. 정말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나호도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요람 때문에 대기실을 나에게서 살짝 떨어뜨려 놓았다가 가깝게 배치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나와 대기실 사이의 거리가 생겼고 두 사람이 그 안에 들어온 것이었다.
그러니 내가 보는 오른쪽과 꼬물이가 보는 오른쪽은 같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머리가 더 짧은 사람이 영입하고 싶은 사람이고, 조금 더 긴 사람이 죽이고 싶은 사람이야.'
꼬물!
^아! 미안! 죽이고 싶은 놈이 얍삽하게 생기긴 했네.^
"그냥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이상한 괴물을 타고 다니는 것이 영 불안해."
구완의 목소리였다.
"너 내 감 믿지? 내 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 알잖아? 어떻게든 연결 고리를 찾아보자고. 분명 월평이 대세로 자리 잡을 거야."
"너, 가족은 걱정되지 않아? 이런 때는 함께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가족을 걱정하니까 이러는 거야. 그리고 우리 아버지 알잖아? 나이 드시고는 말이 통하지 않아."
"그래도 잘해라. 돌아가시고 나니 다 후회되더라."
"됐어! 혈혈단신인 네가 부럽다. 부러워. 홀가분하니 얼마나 좋아."
"미친놈! 그거 네 가족에게 실례되는 말이야. 맘에도 없는 소리하지 마!"
<구완은 이근택의 실체를 모르나 보네. 자신이 착하니 남도 착하게만 보는 것 같은데?>
'그러게. 구완만 영입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저런 경우 구완이 이근택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우리와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할 것 같았다.
<어렴풋이 느끼지 않을까?>
'뭐? 이근택의 됨됨이? 느끼겠지. 왜 모르겠어? 모른다면 바보지. 받은 은혜가 있으니 적당히는 봐주는 거겠지.'
<어떻게 할 거야? 바로 접근 할 거야?>
'아니! 그러려고 했는데 이근택을 보니 그런 마음이 싹 가시네. 전령조와 사냥조 한 마리씩만 배치해 두자.'
전생에 내가 구완을 알았을 때는 이미 두 사람이 틀어진 다음이어서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무리 봐도 구완만 데리고 오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쪼롱이와 꾸루에게 말했다.
'머리 긴 사람은 위급해도 굳이 구할 필요 없어.'
쫑!
꾸!
쪼롱이와 꾸루가 사냥조와 전령조 한 마리씩을 배치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상상도 못하겠지만 말이다.
'이제 돌아가자.'
다시 산으로 해서 마을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정문을 지나 산 쪽으로 이동을 하는데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대한아! 대한이 맞지?"
제법 큰 목소리였다.
뒤를 돌아보니 어디선가 본 얼굴이 서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함께 있는 세 사람도 왠지 낯이 익었다.
본지 너무 오래된 얼굴이라 이름까지는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분명 아는 사람 같았다.
[앞에 서 있는 사람에 대한 정보가 있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좋아.'
회귀를 하고 난 후 당혹스러운 것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나는 본지 20년도 더 된 사람이지만 상대는 며칠 되지 않거나 몇 년도 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었다.
회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으로 가버려서 아는 사람들을 마주친 적은 많지 않았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너, 설마 나를 기억하지 못하···."
상대의 얼굴에 실망이 드리운 순간 권능 기억의 음성이 들렸다.
[앞에 있는 사람의 이름은 '왕소요'입니다.]
이름을 듣는 순간 바로 생각이 났다.
워낙 특이한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대학에서 '대학 중국어' 과목을 가르쳤던 분입니다. 고향은 광주입니다. 대변혁이후에는 기억에 없는 분입니다.]
'옆의 세 사람도 낯이 익은데?'
[함께 교양과목인 대학 중국어를 들은 사람이지만 다른 학과여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교수는 무슨···. 아직도 시간 강사인데···."
"여기는 어떻게?"
"여기 있는 사람들과 다를 것 있겠니?"
왕소요의 눈이 기대감에 반짝였다.
좋은 사람이라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은 없었다.
어차피 마을에 일손은 많이 필요했다.
이왕이면 모르는 사람보다야 아는 사람이 나았다.
'꼬물아 어때?'
왕소요 씨에 대한 것은 이름 이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었다.
나에게는 20년도 더 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왜? 아무래도 난처하지?"
"제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네가 여기 책임자라는 말이 있기도 했지만···."
왕소요 씨가 기억하는 나는 도저히 그런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대학에 입학 하고 난 후 열심히 놀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학사경고를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놀았으니 왕소요의 기억 속에 내가 어떤 사람일지는 뻔한 일이었다.
솔직히 나를 기억하고 이렇게 찾아온 것이 신기한 일이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여기서?"
"예. 여기 세 분은 일행인 것 같은데?"
"맞아. 제자들이야. 내게 중국어를 배우고 있어. 우연히 우리 집에 왔다가 이 난리를 만나서···."
"네 사람 모두는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괜찮으세요?"
"잠깐만···."
네 사람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사는 저런 경우 어떻게 할 것 같아?>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겠어?'
<잘 빠져나가네.>
'잘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그럴 거야.'
"결정했어. 우리를 모두 받아들여준다면 고맙지만 안 되면 한두 명이라도 받아줘."
"그럼 결정되면 말씀드릴게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불안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꼭, 꼭 기억해줘야 해. 그냥 가면 안 돼. 우린 지금 아무 것도 없거든."
목소리에 절박함마저 느껴졌다.
알았다고 하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젊은데. 집사를 가르쳤어?>
'기억에 없어.'
<저렇게 예쁜 여자 교수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집사 성적 취향이 이상한 거 아니지?>
꼬물!
꼬물이의 굵은 줄기 하나가 나호의 영체를 가르고 지나갔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 나호에 대한 응징이었다.
"얼굴이 낯이 익기는 한데 저렇게 젊은 교수는 없었던 것 같은데 이상해. 성형을 했나?"
[분명히 강대한 님을 가르친 시간 강사입니다.]
권능이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주었다.
<이름도 그렇고 중국 사람인가?>
나호가 관심을 가졌다.
"왜 그리 관심이 많아?"
<예쁘게 생겼잖아. 집사와 나이차이도 많지 않은 것 같고. 시간 강사라고 하니 아는 것도 적지 않을 거고. 괜찮잖아.>
꼬물!
^어딜! 나이 차이를 생각하라고!^
다시 한 번 꼬물이 뿌리가 허공을 갈랐다.
맞았으면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겠지만 나호는 지금 영체 상태였다.
<집사! 그런데 왜 그냥 가는 거야? 지금 바로 결정해도 되잖아?>
"안에 들어가서 하려고. 그것이 좋을 것 같아서."
<안에서? 어떻게?>
"조금 후에 보여줄게."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빠져나가 산으로 접어들었다.
조금 전에는 없던 사람들이 몇몇 산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인간의 생존 본능은 늘 상상을 초월해.>
"동물도 마찬가지야."
산으로 접어들면서 은신 상태로 움직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를 잘 인식하지 못했다.
아직은 은신 D등급만 돼도 만족스러웠다.
장벽을 넘어 마을로 들어와 바로 꼬물이와 도뮤에게 조금 전에 보았던 사람들에 대해 물었다.
꼬물!
^왕소요는 나쁜 사람은 아니야. 아니 보탬이 될 거야. 그런데 한 사람은 안 되겠더라. 눈이 찢어진 남자 말이야.^
뮤! 뮤! 뮤!
^내 생각도 같다. 쥐새끼처럼 생긴 사람은 안 된다.^
<누군지 알겠네.>
"알았어. 나도 그 사람 인상은 마음에 들지 않았어. 내 또래인 것 같은데 눈빛이 곱지 않더라고."
왕소요 씨를 좋아하는 건지 은근히 나를 경계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제 어떻게 데리고 들어올 거야? 또 나가?>
"또 나가면 안 되지. 세 분과 서울에서 함께 온 일행이 기다리는데."
<나는 잊어먹은 줄 알았네.>
"잊기는?"
말을 하며 정문 쪽 장벽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꼬물이에게 도움을 청했다.
꼬물!
^놀라지 않을까?^
"네가 잡으면 말할게."
꼬물!
^그럼 마음 놓고 움직일게.^
꼬물이의 굵은 뿌리가 대기실을 출발했다.
그리고 그대로 왕소요를 향해 나아갔다.
왕소요 일행은 기대감을 가지고 정문과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금세 꼬물이의 뿌리가 왕소요에게 닿았다.
"으악! 이게 뭐야?"
"선생님! 괴물 같은데요?"
왕소요와 다른 세 사람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마을로 받아들일 사람만 그 나무가 안으로 들일 겁니다."
생각보다 내 목소리가 컸던 모양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장벽 위를 쳐다보더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하고 호기심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고 꼬물이의 뿌리를 보고 멀찍이 떨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꼬물이가 지체하지 않고 왕소요를 먼저 안아 올렸다.
"어어어···."
"선생님!"
꼬물이의 뿌리는 그대로 장벽을 넘어서 왕소요를 마을에 내려놓았다.
"고, 고마워! 다른 아이들은?"
"두 사람만 더 데리고 올 겁니다."
왕소요에게 이야기를 하는 사이 꼬물이의 다른 뿌리가 두 사람을 동시에 데리고 왔다.
뿌리가 여러 개이니 이런 일은 어렵지 않았다.
세 사람이 마을로 들어오고 한 사람만 들어오지 못하자 들어오지 못한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는지 얼굴이 벌게졌다.
"우리도, 우리도 안으로 들여···."
"여기요! 여기요오오!"
"여기 아이와 노인이 있어요. 제발···. 노숙을 하다가는 얼어 죽을 거예요. 제발···."
"살려주세요."
장벽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장벽에서 뛰어내렸다.
"고, 고맙다. 그런데···."
"그 청년은 안 된답니다. 인성 심사에서 떨어졌어요."
"인성 심사라고?"
"예."
"언제···?"
"바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식사부터 하시러 가시죠."
다른 두 사람도 뭔가 이야기를 하려다 말았다.
세상이 변한 것을 충분히 느낀 모양이었다.
세 사람을 데리고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에는 이야기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몬스터는 걱정도 없습니다. 속이 다 시원했다니까요."
평택에서 함께 온 어르신이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내고 계셨다.
이곳까지 오면서 겪은 일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이야기 속의 나는 마치 영웅처럼 묘사되고 있었다.
<왜 그래?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지나쳐서 좋을 거 없잖아.'
<저 정도는 괜찮아. 너무 그럴 거 없어. 어차피 구심점은 필요해.>
'그 구심점이 큰아버지나 아버지가 됐으면 해서 그렇지.'
<행정은 세 분이 맡고 무력은 집사가 맡으면 돼.>
"대한아! 세 사람은 어디서···."
"아! 여기는 제 대학···."
"아! 저 대한이 선생님입니다. 한 학기 가르쳤던 적이 있습니다. 여기 앞에서 만났습니다."
교수라는 호칭이 부담스럽다고 하더니 왕소요 씨가 냉큼 자기소개를 했다.
"왕소요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기는 제 제자들입니다."
"김바다입니다."
"이소리입니다."
"하나같이 이름들이 특이하구만. 요즘에는 참신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어. 우리 때는 작명가가 좋다는 이름으로 지었는디."
"할아버지. 가만히 계세요."
만약고 어르신의 말씀을 가로막는 손자였다.
손자의 눈이 세 사람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하나같이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놈 성적 취향도 이상한가? 왜 남자에게까지 눈을 빛내고 지랄이야?>
'또래를 보니 좋은 거겠지. 그리고 김바다가 아니라 이소리를 보고 저럴지도 몰라.'
이곳에 만약고 어르신 손자 또래의 남자들이 몇 있기는 했지만 잘 어울리지 못했다.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니 눈을 빛낼만 했다.
"그래요. 어서 이리 앉아요. 뭘 해도 밥부터 먹어야지."
"밥!"
세 사람은 음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코까지 벌름거리는 것이 밥을 먹은 지 좀 된 것 같았다.
"어서 앉아요."
차려진 밥이 유난히 정겹게 느껴졌다.
식사를 하며 둘러보니 이곳은 정말 대변혁이 빗겨간 것 같았다.
매우 만족스럽지만 이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었다.
변한 세상을 정확하게 알리기도 해야 했다.
'은실 엄마에게 무슨 일 있나?'
<어? 정말. 왜 저렇게 표정이 좋지 못하지?>
지금까지 본 얼굴 중 가장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두운 정도가 아니라 분노로 가득한 것 같았다.
'어디가 불편하시나? 그나저나 이제 시스템에게 조제법 사야겠다. 지금쯤 입고가 됐을 거야.'
<독도?>
특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