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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214화 (214/350)

214. 합격! 불합격!

사람들이 바보라고 할지라도 아버지께서 미루라고 하면 며칠은 미룰 용의가 있었다.

아무리 좋은 일이고 필요한 일이라도 아버지의 마음까지 상하게 하면서 하고 싶지는 않았다.

회귀를 하고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픔을 덜어 들이는 것이었다.

각성을 했다면 쉬운 일이었지만 각성은 실패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으로 통증을 느끼지 않게 해드려야 했다.

통증을 느끼지 않게 해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도 편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특히 지금 아버지의 마음이 공허하다고 한다.

상태창을 얻고 나니 각성을 하지 못한 것이 실감나는 것 같은데 이럴 때는 충분한 대화가 필요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모두 채워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아버지."

"미룰 수는 없지. 미뤄서도 안 되고.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미안하다. 대한아."

"괜찮아요. 밤에 저랑 산책 가실래요?"

"순천 말이냐?"

"예. 아버지 순천 좋아하시잖아요?"

"좋아하지. 순천만에 가보고 싶기도 하고. 변화가 있는지도 궁금하고."

고향인 화순에서 가까워서 그런지 아버지께서는 순천만을 좋아하셨다.

그곳의 물길이 좋다고 나를 데리고도 자주 가셨었다.

"함께 가요. 아버지. 한희준 씨 병원에서 의료품도 챙겨올 겸 해서요."

"좋지. 미안하다."

"그런 말씀 마시고요."

"도움이 돼야 하는데···. 네게 짐만···. 아니다. 이런 소리도 네게 해서는 안 되는 소리인데."

꼬물!

^아버지는 길을 찾고 있어요. 자신의 길! 그런데 아직 발견하지 못했어요.^

대변혁 이후 자신이 뭘 하고 어떤 포지션에 서야 하는지 혼란스러우신 것 같았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겪을 혼란이고 어려움이기도 했다.

"들어가요. 혹시 보시기 힘드시면···."

"아니다. 언제까지 피할 수도 없지. 들어가자."

아버지께서 앞장을 서셨다.

회관에는 우리 회사 직원을 비롯해서 사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이들은 제외한 숫자였다.

아이들까지 하면 우리 마을은 현재 오백 명에 가깝다.

"왜 이 저녁에 모이라고 한 거지? 불안하네."

"설마 이런 밤에 내쫓지는 않겠죠?"

"그런 말은 하지도 마. 불안해."

"저기 직원들이 부럽네. 직원들은 내쫓지는 않을 거 아니야. 여기 취직하라고 권유를 받았을 때 이주해오는 건데."

"이제는 늦었어. 처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잖아."

"어떤 사람은 내쫓아도 절대로 안 나간다고 하는 사람도 있던데···."

"내쫓는데 어떻게 안 나가? 나가야지."

"나도 모르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안 나가겠다고 하더라."

웅성웅성 작은 목소리로 떠들었지만 너무도 잘 들리는 말소리였다.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안해하고 있었다.

불안해하는 사람 중에는 만약고 어르신의 손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와그리 떨고 그랴. 복 달아나게?"

"할아버지는 겁 안나?"

"왜 겁이 나? 죄 지은 것이 없는디?"

"밖에는 괴물이 돌아다닌단 말이야. 아유 답답해. 상황 파악을 해야지 할아버지! 이 사람들이 내쫓으면 우리는 무조건 죽어. 죽는다고!"

만약고 어르신의 손자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가족들이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잊은 모양이었다.

"겁 묵지 말어. 할애비가 지켜줄 테니께."

"할아버지가 어떻게? 저기 젊은 놈? 아니 저기 사장 아들과의 친분으로?"

"그 입 좀 조심혀. 니는 젊은 사장보다 나이도 많음시롱 어찌 철은 젊은 사장의 반토막도 안든겨?"

"에이! 또 그 소리야? 비교 좀 하지 말라고! 이런 때도 할아버지는 비교야? 짜증나게!"

<하여튼 사람 안 되는 것들은 때를 가리지를 않아!>

나호가 만약고 어르신의 손자를 보고 혀를 끌끌 찼다.

아무리 자식 겉 낳지 속까지 낳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아들과 손자가 만약고 어르신과 어떻게 저렇게 다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만약고 어르신은 자신의 옆에 바짝 붙어 앉은 손자와 아들, 며느리가 좋으신 것 같았다.

정말 오랜만에 가족과 가까이 있는 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때는 몰랐는데 지척에 두고도 자주 보지 못하니 더 힘들어 하셨던 만약고 어르신이었다.

"큰아버지! 시작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래. 이리 앉아라."

우리 마을의 회관은 이런 때를 대비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사백여 명의 사람이 바닥에 앉고 바닥에서 약간 높은 단상에 우리 가족과 회사의 간부 두 사람이 더 앉았다.

그리고 큰아버지께서 마이크를 잡았다.

"아! 아! 밖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충분히 아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큰아버지께서 상황을 설명하고 모든 사람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까도 백 명이 넘는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이럴 거면 그 사람들을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죠.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는 것도 아니고."

저 말을 한 사람은 우리 회사의 직원이 아니었다.

직원들은 그래도 나름 안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덜 불안해했다.

물론 만약고 어르신의 손자와 아들은 예외였지만 말이다.

나에게 대들고 싸우려고 했던 일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지 단상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만약고 어르신에게 바짝 당겨 앉은 것이 본능적으로 할아버지 옆에 있는 것이 살 길이라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여자가 한 말은 틀린 말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다 맞는 말도 아니었다.

저 말을 한 사람은 이곳의 박힌 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낯선 얼굴인 것을 보니 불청객이 분명했다.

어쨌든 여자의 날카로운 말에 서울에서 함께 온 사람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저 여자가 저런 말을 하지 않아도 눈치가 보였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대놓고 저런 소리를 들으니 불안감이 엄습한 모양이었다.

"오늘 이 마을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

이미 큰아버지께 이들에 대한 검증이 끝났다는 것은 말을 해둔 상태였다.

큰아버지의 말씀에 서울과 평택에서 왔던 사람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조금 전에 장벽 앞에서 데리고 들어온 세 사람도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러분은 이쪽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큰아버지께서 위치를 지정하셨다

자리를 옮기면서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혀 떨 것 같지 않은 김주은 씨마저도 손을 잘게 떨고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큰아버지의 지시대로 한 사람씩 우리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단상에 올라와서 그냥 지나가게만 하면 나중에 말이 생길 것 같아서 한두 가지 질문을 했다.

질문의 내용은 공통된 질문도 있고 각기 다른 질문도 있었다.

회사 직원부터 시작된 심사는 순조롭게 이어졌다.

지금까지 심사를 본 사람들은 모두 오늘 입주한 사람이 있는 곳으로 보내졌다.

"저쪽이 합격한 사람들 아닐까? 오늘 데리고 들어온 사람을 내보내지는 않을 것 같은데?"

"다들 저쪽으로 보내는 것 보니까 어지간하면 다 받아줄 것도 같은데?"

"저 사람들은 회사 사람들이잖아. 이곳에서 살고 있고, 애들도 키우고 있고."

"진작 이주를 했으면 이렇게 불안하지도 않을 텐데."

이주 제안을 거절했던 사람들이 더 불안해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쫓아낼까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드디어 만약고 어르신의 손자와 아들이네. 똑똑한 것 같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이야. 욕심도 많고.>

"우리 아들과 손주여! 좀 못나기는 혔어도. 어쩔 것이여. 잘 봐줘."

애써 미소를 짓고 계셨지만 막상 단상 위로 올라오니 만약고 어르신도 긴장이 되시는 것 같았다.

"어르신은 볼 것도 없이 합격입니다."

"고마워. 우리 손주허고 아들, 며느리는?"

어르신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아들과 손자는 앞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겁이 상당히 많은 것 같았다.

"세 사람은 불합격입니다."

휘청!

만약고 어르신이 휘청하시며 넘어질 뻔 했다.

그 순간 꼬물이의 거대한 뿌리가 만약고 어르신을 부축했다.

"헉! 저, 저것은 뭐야?"

요람을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니 소환 식물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정체를 모르는 뿌리가 움직이는 것은 괴기스럽게 보이기 충분했다.

나에게는 사랑스러운 존재이지만 말이다.

"배, 뱀 아니에요?"

"엄마야아아!"

뱀이라는 말에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만약고 어르신은 꼬물이의 뿌리에 몸을 의지하며 중심을 잡으셨다.

정말 현명한 어르신이었다.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뿐만 아니라 뿌리가 나와 관계된다는 것까지 파악하신 것 같았다.

"불, 불합격이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회사 직원 중에 처음으로 불합격 통보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주위가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불합격 통보를 받은 사람이 어디로 가게 될지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오늘 입주한 사람이 서 있는 곳으로 가면 지금까지 모든 사람이 심사를 통과한 것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모든 사람이 내쫓기게 되는 것이었다.

손자가 벌벌 떨면서 말했다.

다른 때는 할아버지 옆에도 가지 않던 놈이 할아버지를 부축하고는 할아버지에게 통사정을 했다.

"할아버지! 저 할아버지랑 떨어지기 싫어요."

"내도 싫어. 내도 니그랑 함께 나갈 것이여."

"할아버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어떻게든 우리도 붙여달라고 해야지! 우리와 같이 나간다고 하면 어떻게 해? 아이고 답답해!"

<저 놈이 미쳤나? 이런 상황에도 제 할아버지를 가르치려고 드네! 어이가 없어서! 하여튼 사람 안 되는 것들이 있다니까.>

나호가 어이없어했지만 손자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만약고 어르신의 몫이었다.

"미안허요. 처분대로 허것소. 지금까지 돌봐준 것도 어딘디."

"아버지! 통사정을 해도 될동말동하는 판에 왜 그러세요! 정말 아버지는 답답해 죽겠어요!"

중년의 아들놈까지 소리를 질렀다.

"이놈아. 목소리 낮춰. 인간이 얼굴이 붉은 동물이라는디 니는 와 그라는 것이여!"

"그 소리도 듣기 싫어 죽겠어요. 제가 창피를 모르기는 뭘 몰라요? 그리고 인간만 얼굴이 붉은 것은 아니에요! 알지도 못하면서!"

"미안허요. 이놈들은 인간되기는 글렀는갑소. 시간이 지나먼 사람이 될 줄 알았는디···."

애가 타는 것은 만약고 어르신뿐이었다.

"아버님 죄송해요."

"괜찮다. 그래도 니가 낫다!"

며느리의 얼굴은 그래도 살짝 붉어져 있었다.

며느리라고 해서 만약고 어르신을 잘 챙긴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이러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아는 것 같았다.

"어르신은 합격이고 세 사람은 솔직히 불합격입니다. 하지만 어르신이 우리 마을에 공헌한 바가 큽니다."

"내가 뭔 한일이 있다고."

"아버지. 가만 계세요. 붙여줄 것 같은데 초 치지 마시고."

만약고 어르신의 아들이 만약고 어르신의 말을 잘랐다.

"세 사람이 이 마을에 살 수 있었던 것은 처음부터 어르신 덕분이었습니다. 그걸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뭔가 말하고 싶어 입이 삐죽거렸지만 손자와 아들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큰아버지의 말씀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앞으로 열흘! 이곳에 있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열흘 후에 다시 세 사람은 평가를 받을 겁니다. 그때도 같은 평가를 받으면 나가셔야 합니다."

"열흘요?"

"어서 감사하다고 혀! 열흘이 어디여! 열흘이! 밖에 있는 사람들이 들어오고 싶어서 환장허는 거 알제? 어서 인사허지 못혀!"

"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세 사람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르신께 잘하세요. 어르신 아니었으면 바로 추방이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제 말 허투루 듣지 마세요. 어르신께 잘해야 이 마을에 계속 살 수 있습니다."

아들과 손자를 주시하며 강조했다.

두 사람의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것 같았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어째 저렇게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인정하지 않을까? 정말 좋은 분인데? 이해가 되지 않아.>

나호의 말대로 두 사람은 도통 만약고 어르신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와아아아아!"

한쪽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전까지 합격, 불합격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네 사람이 단상에서 내려가고도 계속 심사가 이어졌다.

그러다 한 사람이 단상에 오르는 순간 은실 엄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살인마 도둑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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