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가만두지 않을 거야!
여자의 저항은 거셌다.
하지만 내 앞에서 저항은 무의미했다.
꼬물이의 기다란 뿌리가 대기실에서 나와서 여자를 붙들었다.
평상시처럼 안정적으로 안은 것이 아니었다.
양팔을 대롱대롱 잡은 꼬물이가 그대로 여자를 들어올렸다.
"아악! 월평이 사람 죽이네! 월평이 사람 죽여! 가만두지 않을 거야!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여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꼬물이가 들어 올리는 대로 들려서 그대로 회관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순간 눈치 좋은 경호원들이 회관의 문을 활짝 열었다.
여자가 어떻게 되는지 회관 안에 있는 사람이 모두 볼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꼬물이의 뿌리는 회관을 나가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마을의 장벽을 넘었다.
여자의 고함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뿌리만 돌아왔다.
여자를 장벽 너머로 보내버린 것이었다.
뿌리가 돌아오고 나자 다시 회관의 문이 닫혔다.
순간 정적에 휩싸인 회관이었다.
"저 여자는 부하직원을 지속적으로 괴롭혀서 자살에 이르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획안이나 각종 아이디어를 직위를 이용해서 지속적으로 빼앗았다고 합니다. 자살에 이른 직원의 가족에게 사과 한 마디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갖은 모욕적인 말로 상처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을 우리 일행으로 들일 수는 없습니다."
큰아버지께서 짧고 굵게 여자가 내쫓김을 당한 이유를 말씀하셨다.
회관에 있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긴장하는 것이 보였다.
이미 심사를 마친 사람들은 그나마 나았지만 아직 심사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누가 말해주는 것 같지도 않던데?"
"심사관 중에 과거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걸까?"
"설마! 하여튼 무섭네."
"지은 죄가 없는데 뭐가 무서워?"
"기억하지 못하는 죄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까 그 여자 못 봤어? 여자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잖아?"
"그건 그 여자가 나쁜 거지. 지금이 어느 시댄데. 아이디어를 뺏고, 왕따를 시켜."
사람들이 작게 웅성거렸다.
<은실 엄마 좀 봐.>
은실 엄마는 동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눈물을 흘리고는 있었지만 감격에 겨운 것 같았고,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해맑은 미소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 생각도 그래. 성연이도 야무지고 똑똑하니까 둘이 잘 지낼 것 같다.>
은실 엄마의 얼굴은 홀가분해졌지만 경석 형의 얼굴은 여전히 말이 아니었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든 엄마와 연락을 하고 싶은 것 같았다.
'꾸루야! 내가 말하는 곳으로도 전령을 보낼 수 있지?'
꾸!
'그럼 이곳으로 전령조 한 마리만 보내줘.'
전생에 경석 형의 집이 있던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꾸루가 바로 전령조 한 마리를 파견했다.
<잠시 후면 생존을 알 수 있겠다.>
'살아계셔야 할 텐데.'
경석 형의 어머니는 참으로 좋으신 분이었다.
다리가 불편하셨지만 대장부 못지않은 분이셨다.
불편한 몸으로 부업을 해서 자식을 대학까지 가르쳐 대기업에 취직시킨 대단한 분이었다.
'전생에 얻어먹은 음식들이 생각나네.'
<그때는 뭐든 맛있었어.>
조만간에 서울에 한 번 다녀와야 할 것 같았다.
경석 형의 어머니도 모시고 와야 하지만 서울에 새로 생긴 던전도 공략해야 하고 몇 개의 던전은 개방도 해야 했다.
"내가 왜 안 된다는 거야? 내가 국민을 위해 얼마나 헌신을···."
"당신 스스로 잘 알 겁니다. 저쪽에 서 계시면 곱게 나가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리죠."
"당신들 후회하게 될 거야! 현직 국회의원을 이렇게 대하고도 무사할 것 같아? 월평이 독도로 재미 좀 보더니 겁을 상실했구······."
<염병지랄을 떨어요. 욕을 먹고 싶은가봐. 누가 오랬다고 와서는···.>
저 사람도 불청객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합격했지만 간간이 꼬물이와 도뮤가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 남자처럼 확실한 이유가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당장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잠재적 이유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내쫓기게 된 사람들은 수긍을 하지 못했지만 판단이 번복되는 일은 없었다.
"저기, 아까 누구 손자, 누구 아들은 봐줬잖아! 그런데 나는 왜 안 된다는 거야? 내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얼마나 불철주야 애를 썼는데?"
"그러는 사람이 여기 와 있습니까? 국민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이, 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않을 거라고!"
"알아서 하시고. 저리 가서 서세요.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이놈들! 월평이 어떻게 컸는데!"
꼬물!
^시끄러운데 내보낼까?^
"내보내버려."
대답을 하자마자 다시 단상에서 뿌리가 나타나 떠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대로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을 잡아챘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듯이 이제는 익숙하게 경호원들이 문을 열었고, 그대로 장벽 너머로 내보내졌다.
국회의원과 경찰관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정말 국회의원이나 경찰이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인드부터 잘못된 사람들이었다.
열 시부터 시작된 심사는 열두 시가 되기 전에 모두 마무리 되었다.
장벽 밖으로 내쫓긴 사람은 총 32명이었다.
내쫓긴 사람들이 장벽 밖에서 시끄럽게 떠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혹시 나가고 싶으신 분?"
지금 같은 상황에서 밖에 나가고 싶다고 말할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이 가족과 함께 참석해서 밖에 나갈 이유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에궁! 경석 형 발을 동동 구르고 있네.>
어리석은 사람이었다면 당장 나가서 서울로 가겠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석 형은 소심하지만 상황판단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집이 지하실인 것도 한몫 했을 것이고 대변혁 직후에 자신의 어머니와 잠깐이라도 통화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없으시네요. 그럼 여러분은 모두 여기에서 사는 것에 동의했다고 봐도 좋겠습니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초대해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가족과 함께 오라고 강조하셨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의······."
여기저기서 감사 인사가 터져 나왔다.
특히 이번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고마움을 많이 드러냈다.
일부는 강권하다시피해서 참석한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석하지 못한 가족이 있는 경우 집 주소를 알려주시면 생사 확인을 해드리겠습니다."
큰아버지의 말씀에 다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우선은 직계에 한합니다."
"당연하죠. 직계도 어디입니까? 안 그렇습니까?"
"고맙죠. 밖으로 내보내지 않은 것만도 어딘데···."
<집사! 전령조에게 아직 연락오지 않았어?>
'도착했는데 창문이 닫혀 있어서 안쪽의 상황을 확인하지 못했대.'
<집을 찾아가기는 했다는 말이네?>
'그렇지. 보낸 지 한 시간이 넘었으니 당연히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지. 생존이 확인되면 바로 연락하라고 했어.'
"숙소는 지금 현재 배당된 곳을 이용하시면 되고, 좁거나 불편하신 사항이 있으면 여기 관리부장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심사를 봤던 관리 부장이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이 이후로도 큰아버지께서 기본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다.
미리 공개하기로 한 정보까지만 풀어놓은 것이었다.
"상태창을 확인하면 된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혹여 마나를 얻으신 분은 절대로 아무것이나 구매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상태창을 얻었다고 해서 각성을 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각성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발현율이라고 있습니다. 보입니까?"
큰아버지께서 차근하게 설명을 하셨다.
잠깐 밖에 나갔다와도 좋을 것 같았다.
조용히 한희준 씨에게 접근했다.
"잠깐 보시죠."
"아예!"
한희준 씨를 불러낸 후 경석 형도 잠깐 보자고 했다.
내가 한희준 씨와 경석 형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자 아버지께서도 밖으로 나오셨다.
'큰아버지! 저희 밖에 좀 다녀올게요.'
큰아버지께 심상으로 말씀드렸다.
'조심해서 다녀와. 여기는 걱정하지 말고. 정보도 미리 합의된 것까지만 풀 테니 걱정하지 말고.'
'예!'
큰아버지께 말씀드려놓으면 무엇이든 걱정할 것이 없었다.
"강대한입니다."
"아! 장경석입니다."
"저보다 형 같은데 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전생에 경석 형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야기한 것이었다.
"저야 감사하죠."
"저도 형 같은데?"
한희준 씨가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전생에도 그렇더니 참 밝은 사람이었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치료에만 몰두하는 것이 조금 흠이기는 했지만 그래서 더 믿음이 갔다.
"희준 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좋지. 나는 강 팀장이라고 부를게."
"대한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러면 안 되지. 다들 강 팀장이라고 하는데. 지금 출발할 거야?"
희준 형은 벌써 뽀뽀를 만난 것 마냥 좋아하고 있었다.
막상 집에 갔는데 뽀뽀가 잘못 되기라고 했으면 어쩌려고 저러나 싶기도 했다.
"바로 출발 할 겁니다."
"저는 왜?"
경석 형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서울 집에 침입 흔적은 없습니다. 확인했습니다."
"예? 그게 무슨···. 아! 정말입니까?"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더니 이내 눈치를 채고 좋아했다.
"예. 정말입니까?"
"정말입니다. 깨진 유리창도 없습니다."
경석 형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되도록 가족과 함께 오라는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엄마도 은근히 여기 와보고 싶어 했는데···.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해합니다. 문이 닫혀서 안쪽 상황까지는 살피지 못했습니다. 놀라실까봐 밖에서만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 밖으로 나오시지는 않으셨을 거예요. 제가 나오기 전에 문단속을 했거든요. 여기서 하루 자고 가게 될 것 같아서 다른 날보다 신경 써서 단속을 해두었습니다. 비상식량도 늘 넉넉하게 챙겨두기도 하고···. 간혹 갑자기 출장 가야 할 때가 있어서······."
생수까지도 넉넉하게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밖에서 안으로 침입한 흔적만 없다면 안심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럼 이삼 일 안에 모시러 가죠."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소심하고 말이 많지 않은 경석 형인데 오늘은 말이 참 많았다.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되어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경석 형 어머니가 안전하다도 하니 더 기쁜 일이었다.
"밖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기 새들 보이시죠? 저 새 한 마리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연락이 올 겁니다."
"고맙습니다."
<아이고! 허리 부러지겠네. 그나저나 이번 생에서는 어떤 직업을 사야할까? 경석 형은 전생에 직업을 잘못 골라서 효율은 좋지 않고 고생만 했잖아.>
'마법이나 원거리 직업을 갖는 것이 좋겠지.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직업을 갖지 않아도 좋고.'
직업은 꼭 가질 필요가 없었다.
특성이 확실한 사람은 직업을 가지면 좋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직업을 가질 마나로 능력치를 하나라도 더 사는 것이 이로웠다.
경석 형을 회관으로 돌려보내고 아버지와 희준 형과 함께 반반이의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훌쩍 반반이가 장벽을 넘었다.
"이거 생각보다 안정적이구나."
흔들림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자 깜짝 놀라신 것 같았다.
그런데 놀란 사람은 아버지뿐만 아니었다.
회사의 정문 앞쪽으로 텐트나 차를 옮겨놓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피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마을에서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야이 나쁜 놈들아! 우리가 얼어 죽으면 다 월평 탓이야!"
"가만두지 않을 거야! 고소할 거라고!"
우리가 장벽을 넘어가자 조금 전 쫓겨났던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웃기는 사람들이네. 마치 자신의 집에서 내쫓김을 당한 사람들처럼 굴고 있어.>
"그러게. 양심들은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음머어어어어!
반반이가 소리를 한 번 내자 찍소리도 못 내고는 달아나는 사람들이었다.
<저럴 거면서 도대체가 이해가 되지 않아.>
나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속도를 조금 내겠습니다. 떨어질 것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꼬물!
^미리 방비를 해두면 안심이 되지.^
말을 한 꼬물이가 반반이 등 뒤로 뿌리와 줄기를 뻗더니 안전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앉든 눕든 편안함이 보장된 잠자리였다.
반반이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강 팀장! 이거 은근 스릴 있어. 재미있네. 이 속도면 순천에는 금세 도착하겠어."
"그럴 겁니다."
순천 신대지구에 있는 희준 형네 병원에 도착한 것은 마을을 출발한지 채 30분도 되기 전이었다.
"장애물이 없다면 더 빨리 도착하겠어."
"그렇겠죠. 어서 올라가요."
"그래. 우리 뽀뽀 보러가야지."
사기 진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