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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217화 (217/350)

217. 사기 진작

전생에 희준 형을 만났을 때는 이미 병원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난 후였다.

하지만 순천에 올 일이 있으면 꼭 병원에 있던 자리에 오곤 했던 희준 형이었다.

<정말 7층 건물이었네. 이 형 정말 부자였구나. 대변혁만 아니었으면 순풍에 돛 달았겠다.>

'그렇지. 그래서 더 아픔으로 기억됐을 거야.'

전생에 겨우 대출을 다 갚고 나니 대변혁이 일어났다고 억울해 했었다.

이 정도 규모의 병원을 지으려면 엄청난 금액이 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땅, 건축비, 각종 의료 장비와 집기 등 우리 같은 서민은 상상도 하지 못할 금액이었을 것이다.

평생 빚만 갚다 이제 빚이 없는 삶을 살게 됐다고 부모님이 좋아하셨다는데 그런 평화로운 시간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대변혁의 날 부모님을 잃은 것은 물론이고 1년도 되지 않아 병원이 있던 자리에 던전이 생기면서 병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니 살아가는 낙이라는 것이 없었던 희준 형이었다.

오로지 치료사로 활동할 때만 자신이 살아있는 것을 느낀다는 말을 종종했었다.

그러면서도 늘 밝게 생활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물론이고 진짜배기 의사였고 치료사였다.

"우리 뽀뽀 정말 예뻐! 애교도 많고."

계단을 오르며 희준 형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달리다시피 해서 꼭대기 층의 집으로 들어서자 개가 한 마리 희준 형에게 반가움을 드러냈다.

"뽀뽀!"

멍! 멍!

강아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노견(老犬)이었다.

<에궁! 많이 늙었네. 이래서 더 걱정이 됐겠다. 이렇게 늙으면 챙겨놔도 혼자서는 잘 먹지 못하던데. 배고팠겠다.>

나호가 뽀뽀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멍! 멍!

뽀뽀가 희준 형 주위를 살피더니 나와 아버지의 냄새를 맡고는 다시 희준 형에게 돌아갔다.

"눈이 좋지 않아서 냄새로 확인하는 거예요.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고 있는 것 같아요. 뽀뽀야! 엄마 아빠 보고 싶지? 가자!"

멍!

희준 형이 뽀뽀를 안아 들었다.

"의약품은 밑에 있어. 내려가자."

"입원 환자는 없었어요?"

"마침 없었어. 빚 갚은 기념으로 병원 단장 중이었거든. 완전 새 병원이 됐는데···."

<그래서 페인트 냄새가 심했구나.>

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정상 진료를 봤을 거야. 입원 환자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지. 혹여 입원환자가 있었으면···. 생각하기도 싫어."

희준 형 말대로 병원은 말끔했다.

완전 새 단장을 했는데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속상하시겠네요."

"어쩌겠어. 그래도 가족 모두 무사하니 만족해야지. 나중에 안정을 찾으면 다시 돌아오면 되고. 여기 의약품들 챙겨가야 하는데···. 저기 야크에게 실어야 하나?"

"여기에 넣으면 돼요."

공간 주머니와 인벤토리에 의약품을 넣었다.

"의외로 많네요?"

"이거? 많은 것도 아니야. 병원 단장 중이 아니었으면 더 많았을 거야. 그게 조금 안타깝기도 하네."

병원에 보관 중인 의약품을 모두 챙기고 희준 형의 개인 물건도 챙겼다.

이제 가야할 시간이었다.

"이제 가야 해요."

"가야지. 다시 올 수 있겠지?"

"그럼요. 30분 만에 오는 거 보셨잖아요?"

"왠지 한동안 못 올 것 같아서."

<이 건물이 무너진다는 것을 알면 더 속상하겠지?>

'미리 말할 필요는 없지.'

던전 식물을 미리 발견한다면 다른 곳으로 옮겨주겠지만 발견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우리는 희준 형의 병원에서 나와서 다시 몬야크를 타고 이동했다.

자정을 넘긴 시간이라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몬스터는 간간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몬야크를 인식하고는 멀찍이 달아났지만 말이다.

"무적 같아."

희준 형이 반반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충직하기도 하죠."

"그래? 혹시 의사소통이 되는 거야?"

"되죠. 소환수니까요."

"그거 신기하다. 나도 그런 직업 가졌으면 좋겠다."

"형은 치료사가 어울릴 것 같아요. 의사이기도 했고."

"아무래도 그렇겠지? 우리 뽀뽀도 낫게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녀석 잘 보지도 잘 듣지도 못하거든. 독도를 먹어서 건강을 회복했다는 사람이 있어서 독도를 조금씩 먹여보기도 했는데 효과가 없었어."

희준 형은 뽀뽀를 무척이나 애지중지 하는 것 같았다.

꼬물!

^꼬마가 뽀뽀 좀 만져보겠대요.^

꼬물이가 그렇게 말한 직후 꼬마의 하얀 뿌리가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이건?"

"그대로 계시면 돼요."

꼬마는 희준 형에게 안긴 뽀뽀의 몸 이곳저곳을 만지더니 다시 대기실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방금 그건 뭐야?"

"제 친구들이에요. 뽀뽀에게 가장 좋은 약을 지어줄 거예요."

"그런 것도 가능해?"

"가능하죠."

"우리 뽀뽀 다시 건강해지면 좋겠다. 어릴 때는 정말 활발했는데···."

지금은 물에 불린 사료를 겨우 먹는 것 같았다.

이도 다 망가져 버린 것이었다.

꼬마가 약을 조제하는 사이 우리는 순천만에 도착했다.

정작 순천에 사는 희준 형은 이곳이 오랜만이라고 했다.

"학교 다니고 병원에서 경력 쌓느라 순천을 떠나있던 시간이 많았어. 전문의 따고 순천에 돌아왔지."

이 이야기는 전생에도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였다.

부모님께서 아들을 옆에 두고 싶어 하셔서 전문의 따자마자 내려왔다고 했었다.

아마 병원을 물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들이 돌아오니까 병원도 새로 정비했던 거고···.

희준 형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순천만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어쩔지 모르겠지만 감각 수치가 높은 나는 순천만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아쉽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구나."

아버지께서 아쉬움을 드러내셨다.

"몇 시간만 지나면 훨씬 나을 거예요."

<집사! 열렸다! 저기! 방금 열렸어. 봤지? 신기해!>

아버지께서 순천만을 보고 싶어 하셔서 오기도 했지만 이곳에서 꼭 들어가고 싶은 던전이 있었다.

대변혁 전에 몇 번 왔는데도 던전 덩굴도, 미개방 던전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조금 전 우리 눈앞에서 던전이 형성되었다.

그동안 응축된 에너지가 한꺼번에 폭발하듯이 바닥에서 던전 덩굴이 올라오며 일시에 던전이 생성된 것이다.

"저렇게 던전이라는 것이 생기는 거냐?"

"예! 저게 던전이에요. 쟤는 갑자기 생성이 된 거고 보통은 서서히 성장하죠."

"성장하고 있을 때 없앨 수는 없고?"

"없앨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불가능해요."

"우리 마을에 있는 던전도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거지?"

"축복이 될 거에요."

"불안한 축복이지."

지금은 던전을 축복이라고 떠든다면 다들 미쳤다고 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던전은 잘 관리만 하면 분명 축복이었다.

미우라 같은 놈의 장난질만 없다면 말이다.

"강 팀장! 저기 들어가려고?"

희준 형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들어가야죠. 빨리 적응할수록 좋아요."

특히 형은 더더욱 그렇다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우리 뽀뽀 괜찮을까? 우리 뽀뽀가 겁이 많거든?"

<희준 형이 겁이 많겠지.>

덩치에 비해 겁이 많은 성격이었다.

저러다가도 흥분을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면도 있었다.

전투에 있어서는 중간이 없는 성격이었다.

그걸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아서 다행이었지만 말이다.

"들어가요."

"저기 검사 같은 것도 한다고···? 강 팀장! 우리 뽀뽀 데리고 들어가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여기는 몬스터가 득실거리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혹여 뽀뽀 데리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 여기 덩굴손들이 보호해줄 거예요."

"그거 믿을 수 있어? 찢어 죽일 것만 같은데?"

이곳의 덩굴 식물은 유난히 괴기스럽게 보이기는 했다.

희준 형이 덩굴손을 좋지 않게 말하자 덩굴손 하나가 쑥 뻗어오더니 희준 형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

탁!

하지만 덩굴손은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꼬물이가 쳐냈기 때문이었다.

꼬물!

^어딜!^

덩굴손을 쳐낸 꼬물이가 빠르게 물 컵을 하나 건넸다.

꼬물!

^꼬마가 만들었어! 뽀뽀에게 좋은 약이래.^

꼬물이가 제 뿌리로 하트를 만들어 흔들었다.

제 짝의 성과물이 아주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팔불출 기질이 다분한데 밉지 않아.>

'보기 좋잖아. 서로 잘 지내는 것이.'

꼬물이와 꼬마의 하얀 뿌리가 살짝 빛났다.

기대감을 가지고 보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거 뽀뽀약이랍니다. 먹여보십시오."

"내가 아무 약이나 뽀뽀에게 먹이지 않아. 하지만 강 팀장이 주는 것이니까 믿고 먹여볼게."

희준 형이 컵을 뽀뽀에게 가지고 가자 뽀뽀가 먼저 반응을 보였다.

개들이 약을 잘 먹지 않으려고 하는데 뽀뽀는 당장이라도 먹고 싶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어? 뽀뽀야. 먹고 싶어?"

멍!

"그래. 어서 먹어!"

컵을 가져다 대주자 컵까지 먹을 기세로 약을 먹는 뽀뽀였다.

"뭐라도 잘 먹으니 좋네."

크으윽!

뽀뽀가 트림을 했다.

개 트림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상당히 냄새가 심했다.

"아 미안!"

"괜찮아요. 소화가 잘 되나 보네요. 이제 들어갈게요. 그대로 계시면 돼요."

이대로 몬야크를 타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이곳에서도 덩굴손은 나를 만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희준 형은 철저하게 검사를 했다.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 검사가 철저한 것이었다.

"늘 이렇게 검사를 하는 거냐? 이거 여자들은 반발이 심하겠는데? 남자인 나도 살짝 불쾌한데···."

"처음이라 꼼꼼하게 하는 거예요. 다음에는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하지는 않아요."

"그럼 다행이지. 매번 이러면 기분 나쁘지. 어? 뽀뽀! 우리 뽀뽀를 왜?"

덩굴손이 희준 형이 안고 있는 뽀뽀를 안아 올렸다.

희준 형이 손을 뻗어보았지만 덩굴손을 잡을 수는 없었다.

꼬물!

^검사하는 거야.^

꼬물이의 반응을 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뽀뽀를 데리고 간 덩굴손은 한참 동안 뽀뽀를 내려놓지 않았다.

희준 형이 걱정스런 시선을 거두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충 할 덩굴손은 아니었다.

"해치지는 않겠지?"

희준 형은 자신이 검사를 받을 때보다 더 떨고 있었다.

만약 뽀뽀를 던전에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하면 자신도 들어가지 않겠다고 할 것 같았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먼저 공격하지는 않아요."

"우리 뽀뽀 높은 곳 무서워하는데···."

희준 형에게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꼬물!

^끝났다! 통과!^

꼬물이의 말과 동시에 뽀뽀를 검사하고 있던 덩굴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오더니 희준 형의 품에 뽀뽀를 다시 안겨주었다.

멍!

"다친 데는 없지?"

멍!

"다행이네. 형이 얼마나 걱정했다고! 별일 없어서 다행이다."

덩굴손의 심사가 끝나자 반반이가 다시 던전으로 들어갔고. 우리는 '최초로 소환수를 타고 입장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보상도 주어지지 않았다.

'보상 없어?'

살짝 속상한 마음에 시스템에게 물었다.

[모든 것에 보상이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럼 이런 타이틀은 왜 붙인 건데? 말이라도 하지 말든지. 괜스레 기대하게 말이야.'

<우리 집사 잘한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따지려고 했는데.>

['사기 진작'을 위한 것입니다.]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저런 말처럼 맥 빠지게 하는 것이 없는 것 같아.>

시스템의 말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와 희준 형은 타이틀을 얻은 것만으로도 즐거워했기 때문이었다.

"이거 은근 재미있습니다."

"그러게. 던전이라고 걱정했는데···. 닥터 한도 던전은 처음이지?"

"예. 저는 처음입니다. 선생님은 들어와 보신 걸로 아는데···."

"공략을 위해서는 처음이야. 이전에는 아내와 형님이 주도적으로 공략했거든."

"아! 각성하지 못하셨다고 하셨죠?"

"못했어. 그래서 운동을 더 열심히 하고 있어. 던전쥐는 몇 마리 잡기는 했는데···."

"그럼 저보다 나으시네요. 저는 완전 초짜입니다."

"다들 처음은 있는 거야. 자네는 분명히 좋은 치료사가 될 거야."

"그럼 정말 좋겠습니다. 마나를 모아서 스킬과 능력치를 사봐야 정확한 것을 안다고

하는데···."

"던전에 들어오면······."

두 사람에게 던전에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꼭 필요한 일인 것은 물론이고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아무리 익숙한 던전도 방심은 금물입니다."

"던전에 들어갈 때마다 경계를 서는 보초병이 됐다고 생각하마."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그런데 저것도 몬스터지?"

"저것은···."

던전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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