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 던전의 끝
이 던전에 온 이유가 있었다.
이 던전은 섬멸을 할 필요가 없는 던전이었다.
더 좋은 것 중의 하나는 이곳에 살고 있는 생물을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만큼의 관리가 필요했지만 상당한 이점을 가진 던전임에는 틀림없었다.
"몬스터이기는 한데 몬스터가 아닐 수도 있어요."
"무슨 말이야?"
희준 형이 뽀뽀를 안은 채 물었다.
"자세히 보세요."
"오리나 거위 비슷한데? 덩치가 훨씬 크기는 하지만···."
"저기 양쪽 옆구리에 낀 것은 알이에요."
"혹이 아니고 알이라고?"
"예. 저 알은 수거해서 가져가면 부화시킬 수 있어요."
"알도 먹을 수 있는 거냐? 계란이나 오리 알처럼?"
"알을 먹는 것보다 부화를 시키는 것이 더 좋아요. 실상 껍질이 두꺼워서 먹을 것도 얼마 되지 않고요."
알이 참외만 해서 먹을 것이 많아 보이지만 깨고 나면 계란 한 알보다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알을 낳기 때문에 껍질이 두꺼운 알을 낳는 것이었다.
"몬스터의 알이니 궁극적으로 몬스터 아니야?"
희준 형이 다시 물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생명체를 어미라고 느끼는 종이에요. 데리고 나가서 부화를 시키면 어지간한 반려동물보다 낫죠."
엄밀히 말하면 몬스터는 분명하지만 기르기에 따라서 가축도 될 수 있는 녀석들이었다.
알을 자주 낳지 않은 것이 흠이지만 경계용으로 기르면 이 녀석들보다 좋은 녀석들도 없었다.
"그럼 저 몬스터는 죽이고 알은 가지고 가야 한다는 거지? 마을의 경비병으로 삼기 위해서?"
"예. 거위 알을 부화시켜서 적당히 클 때까지는 저 녀석들에게 경비를 맡겨도 좋을 것 같거든요."
거위가 부화해서 자라고 나면 같이 키워도 좋았다.
서로 잘 생활하는 것을 전생에 보았기 때문이었다.
"슬슬 몰려오는데? 허풍오리와 비슷한데 조용하구나."
"지금은 조용하죠. 하지만 잠시 후에 놀라시게 될 거예요. 괜히 경비병으로 쓰려고 한 것이 아니니까요."
쾍! 쾍! 쾍! 쾍! 쾍!
오십여 마리의 '경비 거위'가 몰려오며 시끄럽게 울었다.
우리가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우!"
희준 형이 깜짝 놀라며 귀를 막았다.
"이걸 끼시면 좀 괜찮을 거예요."
미리 준비한 귀마개를 두 사람에게 건넸다.
"우리 뽀뽀는?"
"여기요."
개를 위해 준비한 귀마개는 아니었지만 끼지 않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건넸더니 냉큼 뽀뽀의 귀를 막아주었다.
"목과 다리가 약점이에요. 생각보다 빠르니 조심하시고요. 높이 날지는 않지만 날아오르기도 하니까 신경 쓰시고요."
두 사람이 창을 들고 경비 거위를 주시했다.
스걱! 스걱! 스걱!
쾍! 쾍!
마구잡이로 달려들던 경비 거위가 둥글게 우리를 에워싸더니 다시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경비 거위는 공격력이 높지 않았다.
맨살을 물리면 피가 나지만 맨살을 드러낸 채 던전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아야!"
한 마리가 날아올라 희준 형의 머리를 물고 늘어졌다.
아마 두피에 상처가 났을 것이 분명했다.
거위의 발톱이 물갈퀴가 있어서 날카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니었다.
원래 거위의 발톱은 날카로웠고 경비 거위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쫑!
쾍!
희준 형을 문 경비 거위는 쪼롱이에 의해 명을 달리했다.
꼬물!
^나도 도울까? 이 녀석들 모가지 잘 비틀 수 있는데.^
이런 녀석을 상대하는 것은 소환 식물들도 잘했다.
특히 목이 길기 때문에 더 상대하기 쉬웠다.
"열 마리는 해치워도 좋아."
꼬물
^공격!^
꼬물이가 공격이라고 말하자 대기실에서 뻗어 나온 황이과 금이가 순식간에 경비 거위의 발목을 낚아챘다.
그 순간 아수라와 아수리가 경비 거위의 모가지를 비틀어버렸다.
무시무시했다.
<와우! 목이 긴 애들은 소환 식물들에게는 밥이겠다. 저 녀석들 상대하는 것은 나보다 잘하는 것 같은데?>
스걱! 스걱! 스걱!
소환식물들이 잘하고 있다고 해서 놀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도 안 되고.···.
바로 죽이기도 했지만 다리만 잘라서 흘리기도 했다.
"아이고 죽겠다."
"우리 뽀뽀가 이런 거 보면 안 되는데···."
희준 형의 말이 너무 웃겼다.
지금 희준 형은 경비 오리를 상대하느라 모르고 있었지만 뽀뽀는 반반이에게서 내려와서 이미 죽은 경비오리를 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모습을 보면 희준 형이 기겁을 할 것 같았다.
입 주변이 피범벅이어서 피를 빨아 먹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좋은 것은 알아가지고 말이야.>
나호가 뽀뽀를 보며 하는 말이었다.
뽀뽀는 지금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죽을 경비 오리를 확인 사살하듯 물어뜯고는 깨진 경비 오리 알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경비 오리 알은 효과는 미미했지만 체력을 회복시켜주는데 보탬이 되었다.
덩치가 큰 인간에게는 효과가 작을지 모르겠지만 뽀뽀에게는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었다.
<저 녀석 배부른가봐.>
열심히 먹던 뽀뽀가 꾸벅거렸다.
꼬물이의 뿌리 하나가 뽀뽀를 안아서 반반이의 등에 올려주었다.
저렇게 자고 나면 몰라보게 건강이 좋아질 것이 분명했다.
"도축할게요."
"그래."
"도축!"
두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소리 내어 도축을 실시했다.
경비 오리의 전리품이 정리되었다.
"신기하네. 강 팀장! 이거 나도 할 수 있는 거지?"
"도축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스킬을 사기만 하면요. 물론 각성자에 한해서요."
"거위 잡았다고 거위 털을 준다는 것이 웃기네."
"이거 의외로 유용한 거예요. 보온성이 정말 좋거든요. 이게 좋은 것이 이렇게 부피가 줄어든다는 것도 좋아요. 물론 던전에서만 가능하지만요."
부피가 큰 경비 거위 털은 던전 밖으로 가지고 나갈 때까지만 부피를 줄여주는 기능이 있었다.
"이렇게 부피를 줄여서 인벤토리에 넣고 나가면 돼요. 물론 인벤토리도 구매해야 하지만요. 이거 아버지 인벤토리에 넣어보세요."
인벤토리는 마나만 있으면 누구나 구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희준 형에게는 놀랍게 들리는 모양이었다.
"선생님. 벌써 인벤토리 구매하셨어요? 대단하시네요. 부럽습니다. 상태창 확인하고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이 인벤토리였는데···."
그렇게 열심히 떠들던 희준 형이 갑자기 뽀뽀를 찾았다.
"어? 우리 뽀뽀!"
"먹고 자요. 저기."
어깨 높이가 5미터인 반반이의 등 위에 누운 뽀뽀가 제대로 보일 리 없었다.
그래도 하얀 찹쌀떡처럼 누운 뽀뽀를 보더니 안심을 하는 희준 형이었다.
"피를 보면 흥분한다고 하더니···. 어느 틈에 뽀뽀를 잊고 있었어."
그 사이 아버지께서 전리품을 챙기셨다.
거위 털과 고기였다.
"부화시킬 알은 인벤토리에 넣으면 안 돼요. 부화가 되지 않거든요."
"죽어 버리는 거니?"
"예. 조금 전 넣으신 거위 털은 던전에서 꺼내면 줄어든 부피로 그대로 있지만 던전 밖에서 꺼내면 조금 전 부피로 돌아와요."
"알았다. 아무데서나 꺼내지 않으마."
아버지께서는 인벤토리에 물건을 넣고 빼는 것을 몇 번 더 연습하셨다.
이미 화순 던전에서 충분히 연습하셨지만 이곳의 마나가 조금 다르니 다시 연습을 하신 것이었다.
"얼마나 있어야 인벤토리를 구매할 수 있습니까?"
희준 형이 아버지께 물었다.
"상점 개방이 50마나고, 인벤토리는 10마나더라고. F급 하나가 그 가격이야."
"그런데 그렇게 많은 고기가 들어갑니까? 한 개의 크기가 제법 큰 모양이네요? 저도 어서 60마나 모아서 사야겠습니다."
희준 형의 얼굴에 희망이 감돌았다.
"가로 세로 높이 각각 10센티미터야!"
"예? 그럼 이만하다고요? 고기도 압축돼서 보관됩니까?"
"그럼 얼마나 좋겠나. 그렇지 않으니 문제지. 나는 인벤토리를 좀 많이 샀어."
아버지께서 대답을 한 순간 희준 형이 나를 쳐다보더니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좋은 아드님을 두셨네요. 저도 부모님께 도움이 돼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변한 세상을 이해하시는데도 시간이 걸리실 텐데."
"의사시니 똑똑하실 텐데 무슨 걱정인가. 우리 같은 사람도 살아가는데."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이세요. 공부 머리하고 생활 머리는 별개라는 것을 두 분을 보면 아시게 될 겁니다."
희준 형이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자기 분야에서는 수재니 천재니 하는 사람들이 그 외의 분야에서는 일반인보다도 못한 경우는 얼마든지 있었다.
"이해하기 시작하면 금방 하실 거야.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고 우리 대한이가 도울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초대 명단이 그냥 작성됐다고 생각하나?"
"그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순천에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는 표정을 짓는 희준 형이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들어가시죠."
"이게 끝이 아니라고?"
"시작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겁니다."
"그럼 여기 알은?"
"반반이에게 실으면 되죠."
인벤토리에 보관 중이던 커다란 천 가방에 알을 담아서 반반이의 등에 걸어주었다.
"이런 것도 미리 준비한 거야?"
"나름 철저하게 준비했죠."
"외계인과 소통을 했다더니···. 그건 아닐 것이고···. 이런 변화가 올 것을 알았구나?"
"알았죠. 그래서 그렇게 준비했고요. 이 일이 결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죠."
"어떻게?"
"예지몽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차마 회귀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일로 회귀했다고 해도 나를 미친 놈 보듯이 하지는 않겠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예지몽에 나도 나온 거야?"
"예."
"예지몽에서도 화순에 와 있었어?"
예지몽이라고 했더니 호기심이 폭발했는지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나라도 누군가가 이런 변화를 미리 알았다고 하면 이것저것 물을 것 같기는 했다.
"아니요. 순천에서 오지 않았죠. 그래서 거듭 청했던 거고요."
"그럼···? 아니 말하지 마! 생각하기도 싫으니까."
말할 생각도 없었다.
딱 이 정도가 적당했다.
전생의 아픔까지 짊어지고 살 필요는 없었다.
<전생과는 다른 삶을 살 거야. 희준 형은. 경석 형도 그렇고. 화순에서는 지금쯤 팀을 모두 짰겠지?>
'그렇겠지. 다 주무실 거야. 꾸루야! 전령조들 경계 확실히 서라고 해. 이상 있으면 바로 사냥조와 몬야크에게 알리라고 하고.'
꾸!
꾸루가 바로 화순에 있는 전령조들에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돌아가며 경비를 서고 있었지만 다들 피곤한 상태였다.
일부 사람들이 쫓겨났기 때문에 정신적인 피로도 심했을 것이다.
저런 상황에서는 경계가 소홀해지기 쉬웠다.
스걱! 스걱!
쾍! 쾍! 쾍!
"이 거위들은 몰래 접근하지는 않는 거야? 늘 소리를 내네?"
"낯선 생명체가 접근하거나 이상함을 느끼면 본능적으로 저러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경비병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거죠."
"이 거위를 데리고 나가는 것은 안 되는 거지?"
"던전이 폭발하기 전에는 살아있는 몬스터는 밖으로 나가지 않아요."
소환수 계약을 맺으면 가능하지만 그것까지 지금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양쪽 다리를 절단해서 흘렀는데 이제는 한쪽 다리만 절단하고 흘려도 잘 잡았다.
그 상태에서도 긴 목을 이용해서 공격을 하려고 했지만 두 사람은 요령껏 잘 피하며 경비 거위를 잡아내고 있었다.
"아싸! 1마나! 이거 재미있네. 내 힘으로 한 마리를 잡으면 2마나가 들어오는 건가?"
"이 거위는 2마나가 들어오네요. 같은 경비거위라도 조금 더 크고 강하면 3마나도 들어올 수 있어요."
"그럼 금방 60마나 모으겠다. 어서 모아서 상점 개방하고 인벤토리 사야지."
상점을 개방하지 않고 내가 사서 줘도 되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벌써부터 의지하게 해서 좋을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자꾸 스스로 하게끔 유도해야 했다.
제대로 된 길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도움이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그걸 알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스걱! 스걱!
"쇠로 된 창은 아직 무리겠지?"
"무거워서 오히려 지금은 독이 될 수 있어요. 자신이 든 무기에 다칠 수도 있고요."
아버지와 내가 든 창이 부러웠던 모양이었다.
"아! 맞아. 어설프게 칼 휘두르다 다쳐서 온 사람 여럿 봤어. 차근히 익혀야겠네."
희준 형은 전생에 창을 제법 잘 썼다.
치료사였지만 치료사라고 해서 몬스터가 공격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본적인 호신술은 익히고 있었다.
"형은 잘 할 거예요."
이번 생에는 전생에 비해 훨씬 뛰어난 치료사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 던전의 끝은 어디야? 알을 저 정도 모았으면 된 것 같은데?"
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