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새 생명
마을에 도착하면 할 일이 많았다.
던전도 개방해야 하고, 경비 거위의 알도 부화시켜야 했다.
장벽 보강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지금은 몬스터만 조심하면 되지만 앞으로는 인간도 대비를 해야 하니 미리미리 대비를 해두어야 했다.
'가장 먼저는 쉬어야지.'
<맞아. 쉬기는 해야 해. 너무 쉬지 못했어.>
'따뜻한 방에 눕고 싶기는 하다.'
방에 눕고 싶지만 누울 수 없었다.
경비거위의 부화를 지켜봐야하기 때문이었다.
던전을 나오고 난 후 24시간 안에 부화하지만 그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24시간 후에 부화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부화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었다.
<마을에는 도착하고 부화되겠지?>
'그렇지. 30분도 되기 전에 도착하는데 별 걱정을 다해.'
변한 세상은 우리에게 여유라고 하는 것을 주기 싫은 모양이었다.
던전에서 나온 지 5분도 되기 전에 보비가 울었다.
괙! 괙!
^서둘러야 해! 부화가 임박하고 있어.^
보비가 처음으로 건넨 말은 부화와 관계되는 말이었다.
경비 거위다운 말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부화가 임박했다면 서둘러야 했다.
"알이 부화하려고 한대요. 속도를 높일게요."
"그래라. 이런 한데서 부화를 하게 할 수는 없지."
몬스터여서 어디서 부화하든 추위를 타지는 않지만 그걸 모르시는 아버지께서는 걱정이 되시는 모양이었다.
희준 형도 부화라는 말에 긴장했다.
"반반아! 서둘러야겠어."
음머어어!
반반이가 대답을 하더니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반반이 가족을 비롯한 몬야크들도 걸음을 빨리 했다.
천이나 가죽으로 만든 가방 안의 알들이 달그락거렸다.
알끼리 부딪치고 있었지만 저 정도 충격은 문제없었다.
던전에서도 매우 튼튼한 알이지만 밖으로 나오면 껍질이 더 단단해지기로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서두르자."
몬스터인 녀석들이라 막 알을 깨고 나와도 추위를 타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는 영역 때문이었다.
경비 거위는 자신들이 지킬 영역 안에서 부화하는 것이 좋았다.
물론 간혹 이주를 해서 그곳을 지키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처음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인식한 곳보다는 느슨한 것이 사실이었다.
괙! 괙!
^부화가 임박했다. 부화가 임박했다!^
대기실 입구로 와서는 뚫어져라 알을 내려다보는 보비였다.
<눈으로 알 뚫겠네.>
'불안해서 그럴 거야. 길에서 오리들이 나올까 걱정이 되는 거겠지.'
도로에 장애물이 없었다면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장애물이 자꾸 발목을 잡고 있었다.
괙! 괙! 괙!
꼬물!
^가만히 좀 있어! 너 때문에 더 불안하잖아.^
괘액!
꼬물이에게 혼이 나더니 시무룩해져서는 도뮤 옆으로 가서 앉는 보비였다.
하지만 이내 일어나서 불안감을 드러내는 보비였다.
보다 못한 꾸루가 보비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뭐라고 열심히 말하는 꾸루였다.
아마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보비는 꾸루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확실히 안정이 되고 있었다.
<부화를 보는 것은 처음인가?>
'처음일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불안해하지는 않겠지.'
보비가 불안해하는 만큼 부화가 가까워졌다는 말이기도 해서 반반이의 걸음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월평이다! 월평이야! 조금만 참아라. 알들아!"
희준 형이 마을을 가리키며 말했다.
순천까지는 30분이 걸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 절반도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그만큼 빨리 돌아왔지만 심정적으로는 훨씬 더 걸린 것만 같았다.
"괴, 괴물이다. 다시 괴물이 몰려온다!"
장벽 밑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 중 몇몇이 진로를 방해하려고 했다.
우리 마을에서 내쫓김을 당한 사람들이었다.
"나갈 때는 분명 한 마리였는데···. 어디서 괴물을 몰고 온다! 월평이 이 일의 원흉이다!"
"월평이···!"
음머어어어!
장벽 앞에 진을 치고 목소리를 높이려던 사람들이 반반이의 소리에 놀라 뒤로 물러났다.
<저럴 거면서 왜 저러는지 몰라! 짜증나! 다 몰아내고 싶은데···.>
'조만간 일손이 필요해. 일부 사람들은 받아들이고 나서 조치하자.'
마을 안의 던전을 모두 개방하면 상당한 일손이 필요했다.
이왕이면 찾아온 사람들 중에서 괜찮은 사람을 받아들일 생각이다.
<하긴 모두 이상한 사람은 아니니까.>
괙! 괙!
^부화할 것 같다! 곧 나온다!^
보비가 대기실 앞에서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좀 가만히 있으라고 밀하고 싶었지만 보비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되어 그대로 두었다.
그 순간 반반이가 장벽을 넘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몬야크들이 차례로 장벽을 넘어서 마을로 돌아왔다.
괙! 괙!
^부화! 부화!^
"그래 어서 나와!"
보비를 대기실에서 나오게 했더니 알 옆에 바짝 붙어 섰다.
하지만 알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자그마치 천 개의 알이 여덟 마리의 몬야크 등에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보비는 몬야크 주위를 오가며 알을 살피려고 했지만 알이 제대로 보일 리가 없었다.
보비의 키는 2미터!
목이 길기 때문에 키가 크기는 하지만 몬야크에 비하면 작은 덩치였다.
몬야크의 등에 실린 가방이 축 쳐져있다고 해도 안까지 제대로 보일 리는 없었던 것이다.
"내려줄게. 잠깐만 기다려."
괙!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가기는 했지만 정말 이렇게 많은 알을 얻어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디서 알을 부화시킬지 미리 생각해 둔 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회관이 좋을 것 같다. 넓기도 하고. 찬바람도 막을 수 있으니."
"좋아요."
몬야크의 등에서 가방을 내리는 것은 소환 식물들의 몫이었다.
이런 일은 인간들보다 더 능숙하게 잘하는 소환식물들이었다.
꼬물!
^조심! 그렇지. 거기에 둬!^
꼬물이는 능숙하게 소환 식물들을 관리했다.
각성하기 전에도 소환 식물들을 잘 관리했지만 지금은 더 능숙했다.
가방을 내려놓고 가방에서 알을 꺼내는 것도 소환식물들의 몫이었다.
덩굴손과 줄기로 섬세한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이게 다 뭐니?"
우리가 돌아온 것을 본 마을 사람들이 회관으로 몰려들었다.
몬야크의 등에 뭔가가 잔뜩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위 알이에요."
"거위 알이라고? 무슨 거위 알이 이렇게 크다니?"
어머니께서 깜짝 놀라시며 물으셨다.
잘 자란 참외만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크기였던 것이다.
"곧 부화할 것 같아서 우선 옮길게요."
"안으로 들이면 되는 거지?"
어머니께서도 소매를 걷어붙이셨다.
소환 식물만으로도 금세 끝났을 일이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까지 돕자 더 빨리 마무리 되었다.
괙! 괙! 괙!
<신기하네. 저렇게 부지런히 다니는데 전혀 밟지 않아.>
알 속의 거위를 부르는 듯한 소리를 내며 알을 돌보는 보비는 지금 정신이 없었다.
천 개 알의 부화를 혼자 도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꼬물!
^우리가 도와줄게.^
대기실에서 나온 덩굴들이 알을 굴렸다.
보비가 하는 행동과 비슷한 행동이었다.
뮤! 뮤! 뮤!
^나도 우리 막내 도와줄게. 우리 도깨비들이 나서면 금방이지.^
도뮤가 대기실에서 나오더니 도깨비들을 불러냈다.
"도뮤지?"
어머니께서 대기실에서 나온 도뮤를 보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
"귀엽구나."
도뮤가 들으면 썩 좋아하지 않을 이야기였다.
도뮤가 던전 도깨비 전체를 불러냈지만 세 분을 제외한 누구도 보지 못했다.
던전 도깨비는 나와 던전도깨비가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도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알 위에 도깨비들이 앉아 있으니 동화 같다.>
갖은 색깔의 던전 도깨비들이어서 정말 동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도깨비들도 알을 돌렸다.
보비가 하는 것과 비슷한 동작이었다.
<저러다가 도깨비를 엄마라고 따라다니는 거 아니야?>
"알을 깨는 순간 다들 들어가라고 해야지."
<과연 뜻대로 될까?>
나호가 걱정을 하는 이유가 있었다.
경비 거위의 알은 어느 순간 깨지고 튀어나오듯이 거위들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막 부화했을 때는 병아리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엄청난 성장 속도를 자랑해서 일반 거위의 두 배까지 자라는데 보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녀석들이었다.
던전 밖에서 부화한 경비 거위는 육식을 하지 않고 채식을 하는 것도 특성 중의 하나였다.
"보비가 있으니 그런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괙! 괙!
곧 부화를 한다고 호들갑을 떨던 보비가 막상 회관으로 돌아와 안정을 찾자 차분해졌다.
그리고 소환 식물과 던전도깨비까지 돕자 더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봐도 부화할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부화하지 않는 거야?"
괙!
^안정을 찾아서···.^
보비가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웃기다. 급하게 달려오던 것이 생각나네.>
길바닥에서 부화를 할까 미친 듯이 달려왔는데···.
조금 허탈하기도 했다.
괜스레 회관 앞에 있는 반반이를 쳐다보았다.
몬야크들에게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음머어어어!
^괜찮아! 충분히 이해한다. 반야가 새끼를 낳을 때 나는 더 심했다. 보비는 천 마리의 새끼이니···.^
반반이가 대답하자 반야도 고개를 끄덕였다.
"왜?"
"안정을 찾아서 당장 부화할 것 같지 않다고 하네요. 곧 부화할 것 같아서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그래? 아이를 낳을 때와 비슷하나보네. 진통이 시작되면 곧 나올 것만 같거든. 하지만 아니지. 이러다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순간이 몇 번 지나고야 겨우 낳을 수 있거든."
어머니께서 미소를 지으시면서 말씀하셨다.
괙! 괙!
보비가 어머니께 친근감을 드러냈다.
제 편을 들어준 것을 아는 것 같았다.
<이 녀석 특성에 참견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더니 사교적인 성격인 것 같아.>
"사교적이면 좋지. 경비를 잘 서려면 주위 사람들하고도 친해져야 하니까."
"어쩜 이렇게 깨끗할 수 있을까? 목걸이도 잘 어울리고."
괙!
"새끼가 천 마리나 태어나면 힘들어서 어쩌니?"
괙!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하고!"
괙! 괙!
어머니 품에 얼굴을 기대기까지 하는 보비였다.
<어쭈! 친정 엄마를 보듯이 하네. 소환수가 많으니 성격도 제각각이야. 보는 재미가 있어.>
나호가 어머니와 보비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어머니께서 보비를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보비가 살짝 눈을 감고는 그 느낌을 즐기고 있었다.
<집사! 여기서 쉬어야겠다.>
"그래야겠어."
아직 해가 뜨려면 두 시간 이상은 더 있어야 했다.
그래서 주민들은 들여보냈다.
이제 회관에는 함께 순천을 다녀온 희준 형과 부모님, 큰아버지뿐이었다.
알을 그만 돌려도 된다고 해서 던전 도깨비들도 대기실로 모두 돌아갔다.
보비는 어머니 옆에 앉아서 잠이 들었다.
제 몸통 위에 머리를 올려둔 채였다.
평화롭기까지 한 모습을 보니 조금 허탈한 느낌도 들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희준 형이 물었다.
"기다려야죠. 24시간 안에는 부화할 거예요."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거야?"
"예. 힘드시면 들어가셔도 되는데."
"이왕 기다린 거 끝까지 봐야지. 우리 뽀뽀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고. 그렇지? 뽀뽀!"
멍!
이제 힘을 제법 찾은 뽀뽀가 힘차게 대답했다.
뽀뽀의 소리에도 보비는 잠에 빠져있었고, 이 상태가 유지된다면 부화에도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았다.
"이쪽으로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난로 옆 자리를 권하며 그 옆으로 앉았다.
자리에 앉자 피곤이 몰려왔지만 잠들 수는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막 해가 떠오르는 시간이 되었을 때 뭔가에 놀란 듯 보비가 급하게 일어났다.
그러더니 알을 살피는 것이었다.
괙!
^정말 부화다! 부화!^
괙! 괙! 괙!
부화를 알리더니 시끄럽게 소리를 내며 알 주위를 배회했다.
그 순간!
파삭!
파삭!
파사삭!
파삭 소리 한 번에 거위 한 마리가 알에서 나왔다.
몬스터들답게 나오는 모습이 힘차기 그지없었다.
알에서 나온 경비거위들은 숨을 들이쉬더니 이내 보비를 쳐다보았다.
베약! 베약! 베약!
알에서 나온 경비 거위 새끼들은 독특한 소리를 내면서 보비 주위로 모여들었다.
<신기하네. 이렇게 많은 경비 거위의 부화는 처음이야.>
"이런 모습은 앞으로도 볼 수 없을 거야."
괙! 괙! 괙!
베약! 베약! 베약!
부화를 재촉하는 소리와 어미를 찾는 소리가 회관을 가득 채웠다.
새 생명의 탄생은 늘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신기하구나. 귀엽고."
"밖에서 부화한 녀석은 귀엽지만 던전에서 만나는 경비 거위는 무섭죠."
멍! 멍!
그때 갑자기 뽀뽀가 경비 거위들 사이로 달려 나갔다.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