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 우리 월평은···.
<저놈이 미쳤나? 저 사람 비서도 아니고 경호원 아니야?>
나호가 경호원이라고 무시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말투가 너무나 거칠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말이야. 상전의 권세가 등등하면 종의 위세가 장난이 아니었어. 종이 상전의 권세를 믿고 양인을 패 죽인 일도 있었다니까! 그런데 저놈 하는 짓이 그런 종을 떠올리게 하네.>
나호가 목청을 높였다.
"이것이 손님을 맞이하는 월평의 자세냐고 물었소."
경호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 그냥 내려가요. 대꾸할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네요."
"그, 그래."
아버지께서 잠시 망설이더니 돌아선 나를 따라 몸을 돌리셨다.
그때였다.
"강 사장님! 강 사장님!"
박원일이었다.
차에서 나왔는지 박원일이 절박한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강 사장님! 아랫사람이 실례를 했습니다. 너그럽게 용서를 하시고 잠깐만 시간을 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잠깐 부리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계속 옆에 두는 사람이라면 그게 딱 네 수준이야! 집사! 대거리할 필요도 없어.>
그대로 내려오려는데 아버지께서 걸음을 멈추었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잠깐 들어보기라도 하는 것이 어떠냐?"
"저 사람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 없어요. 사정을 해도 들을까 말까 하는데···."
"우리는 확실하게 알지만 저 사람들은 아직 세상이 바뀐 것을 모르니 이해를 해주어야지."
세상이 바뀐 것을 알아도 쉽게 이전의 사고방식을 벗어 던지지 못할 거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왜 오셨소? 초대한 적이 없는데."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들어가서 말씀을 좀 나누고 싶은데···. 긴히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박원일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주변에 터를 잡고 있는 사람들을 의식하는 것이었다.
<들을 말만한 것도 없을 것이 분명한데. 무슨···.>
아버지께서 나를 쳐다보셨다.
고개를 저었다.
창일의 경호원이 박원일과 우리가 서 있는 곳을 손전등으로 비추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고개를 젓는 것이 보였을 것이다.
박원일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께서 거절의 말을 하시기도 전에 박원일이 냉큼 말을 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거절의 말은 듣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굳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좋습니다. 제 차로 오셔서 대화를 하셔도 좋습니다."
장갑차를 닮은 차를 가리키며 박원일이 말했다.
'미쳤나? 우리가 자신의 차를 타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 사람은 변하지 않아. 어찌 하는 짓이 전생과 저리 똑같을까.'
<그러게 말이야. 우리를 소인배로 만들려는 거야.>
'알고 있어.'
박원일은 기업인이었지만 영악하기 그지없었다.
여론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을 저놈보다 잘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내려갈 생각 없소. 할 말 있으면 하시오."
아버지께서 제법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단 5분이면 됩니다. 무서우신 겁니까?"
박원일이 도발했다.
쫑!
쪼롱이가 반응을 보였다.
허락만 하면 자신이 공격을 하겠다는 표현이었다.
<쪼롱아! 싸버려! 저놈들 대갈통에!>
나호가 화가 나서 말하는 순간 쪼롱이와 사냥조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장벽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장벽 너머에 터를 잡은 사람들은 사냥조들이 장벽을 넘어서자 재빨리 앉으며 몸을 움츠렸다.
잘못 보이면 쪼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창일에서 나온 사람들은 아니었다.
새를 부린다는 것은 알지 못한 모양이었다.
<저래서 정보가 중요한 거야.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남의 집을 찾아오려면 준비를 했어야지.>
나호가 혀를 끌끌 찼다.
세상은 변했다.
나호의 말대로 어디든 함부로 갔다가는 목숨을 잃기 딱 좋은 세상이었다.
창일에서 나온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의 행동마저 인식하지 못했다.
주변사람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었다.
하지만!
"으···."
"으악! 뭐, 뭐야?"
"우산! 우산 펴서 회장님 보호해!"
"회장님부터 지켜!"
쪼롱이를 비롯한 사냥조들이 정문 앞을 선회 비행을 했다.
곡선을 그리고 날다 창일의 무리 위에 다다랐을 때 찍!
한두 마리의 새가 분비물을 떨어뜨려도 찝찝하고 불쾌한데 백 마리 이상의 새가 거의 동시에 배설을 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 머리와 양복 위로 새의 분비물이 비처럼 떨어져 내린 것이었다.
<으으으! 쪼롱 너무 사랑스러운 것 같지 않아?>
나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직업 정신들이 대단하네.'
우산을 가지러 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몸으로 박원일을 지키는 경호원들이 더 많았다.
이미 머리와 양복에 새똥을 맞기는 했지만 박원일은 경호원들 사이로 몸을 완전히 감췄다.
<얍삽한 놈! 그러니 네가 지도자가 되면 안 되는 거야.>
경호원들 사이에 숨어 위험 요소가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박원일을 보며 나호가 하는 말이었다.
'저 놈에게는 저것이 일상이었을 거야.'
창일은 국내 굴지의 회사였지만 그만큼 원성도 많이 들었다.
어디를 가나 떠받듦을 받지만 동시에 돌이 날아오기도 했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저렇게 몸을 사렸을 박원일이었다.
시원하게 볼일을 본 쪼롱이와 사냥조들이 멀찍이 날아가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이내 마을로 돌아오겠지만 창일 측에서 당장 그걸 눈치 챌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여튼 쪼롱이 녀석 똑똑하다니까.>
새들이 멀어지자 경호원들이 물티슈를 가지고 와서 박원일을 닦아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이가 몇인데···.'
<저런 놈이 더러운 것을 스스로 닦겠어? 있는 놈들 사는 것을 집사가 못 봐서 그래. 돈만 있고 가풍이라는 것이 없는 집안은 정말 꼴불견이야.>
나호가 고개를 저었다.
인간사에 관심이 없었다고 하더니 그래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나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미우라 놈을 봤으니까.'
<맞아! 미우라 놈이 있었지. 집사! 그런데 대변혁 이후에는 그놈이 보고 싶더라. 흐흐흐! 어서 보러 가면 좋겠다.>
나호가 미소를 흘리는 사이 박원일이 양복을 탁탁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흠흠! 강 사장님은 괜찮으십니까?"
박원일이 우리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괜찮습니다."
아버지께서 담백하게 대답하셨다.
<새들도 변소는 구분한다고 하셨어야 했는데···. 아깝다.>
"제가 이렇게 직접 찾아온 것은···."
깩! 깩! 깩! 깩!
웃는 소리가 분명한 소리였다.
갑자기 괴상한 소리가 나자 다시 박원일과 창일의 경호원들이 긴장을 했다.
'무슨 소리야?'
몬스터 소리와 비슷해서 꾸루에게 묻는 것이었다.
꼬물!
^쪼롱이가 장난치는 거예요.^
'쪼롱이가 저런 소리도 내는 거야?'
꼬물!
^간혹 더 이상한 소리도 내요.^
꼬물이가 친구의 장기를 자랑하듯이 말했다.
<끄끄끄! 재미있네. 이거 재미있어. 저놈들 좀 봐. 저러다 오줌지리겠다.>
잔뜩 긴장한 놈들이 주변을 경계했다.
어디에 있다가 이곳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는 길에 몬스터를 한두 번 만난 것이 아닐 것이 분명했다.
"괴물이 몰려오는 것 같은데···. 회장님만이라도 안으로 모시게 해주시오!"
"됐어!"
아버지의 체면을 생각해서 가만히 있었는데 경호원이 설치는 것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단호하게 말을 했더니 기분이 상했는지 다시 경호원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지들이 화를 내면 어쩔 건데? 웃기지도 않아! 집사! 뭉개버릴까?>
예전에는 실체를 가질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러라고 하면 언제든 실체를 갖추고 뭉개버릴 수 있었다.
'네 발을 더럽힐 필요는 없지.'
<그렇지. 내 발을 더럽힐 필요는 없어.>
나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똑똑하지만 간혹 무척이나 단순한 나호였다.
"할 말 없으면 들어가겠습니다."
어쩐 일인지 아버지께서 세게 나가셨다.
"잠깐만요! 있습니다. 있어요! 잠깐만요! 정보가 될 수도 있어서 말씀을 드리지 못했는데···."
우리가 내려가기라도 할까봐 걱정이 되었는지 박원일이 다시 급하게 우리를 잡아 세웠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말씀하십시오."
<잘하시네. 이 정도만 해주셔도 좋지. 그치?>
'그렇지.'
아버지께서 단호하게 나오자 잠시 박원일이 망설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듣지 않았으면 하는 것 같았다.
"일본으로 가는 길이 모두 막혔습니다."
"······."
아버지께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우리 동생, 여동생은 원미 하나입니다. 도와주십시오."
"도와달라니요? 창일도 하지 못하는 일을 동네 구멍가게에 불과한 우리 월평이 어떻게 돕겠습니까?"
<큭큭큭! 그러게 말조심을 해야 하는 거야.>
"월평은 미리 준비를 하지 않으셨습니까? 월평만큼 많은 준비를 한 곳이 없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압니다."
"그걸 지독하리만큼 방해한 곳은 어디였습니까?"
<와우! 아버지! 은근 무서운 면도 있구나!>
'융통성이 없을 만큼 원리원칙을 중시하시잖아. 저 사람들은 미운 털 박혔어.'
<아! 쌤통이네. 흐흐흐!>
나호가 활짝 웃었다.
소환수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대기실 입구로 몰려들었다.
음머어어!
반반이가 대기실 입구에 서서 박원일을 주시했다.
눈에서 불꽃이 일고 있었다.
마지막에 월평에 찾아왔을 때 이놈들이 했던 막되 먹은 행동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꼬물!
^저놈 눈깔을 파버릴까?^
<허걱! 집사! 들었어?>
꼬물체로 글씨를 썼는데도 살기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허락을 하면 꼬물이의 줄기나 뿌리가 박원일의 눈알을 뽑아버릴 것 같았다.
'참아. 참을 줄도 알아야하는 거야.'
꼬물!
^왜 참아요? 저렇게 나쁜 사람인데? 대변혁 이후에는 언제든 처리할 것처럼 이야기했잖아요.^
그랬다.
그간 대변혁 이후가 되면 언제든 나쁜 놈들을 한방에 쓸어버릴 것처럼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놈을 처리할 수는 없었다.
보는 눈이 너무 많기도 했지만 직접 손을 더럽힐 필요가 없었다.
'직접 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리고 저놈들도 안 되는 일도 경험해 봐야지.'
꼬물!
^그게 의미가 있어요?^
'의미 있어. 그것도 많이. 죽이는 것은 너무 쉽잖아. 놈들도 당해봐야지. 철옹성 같은 부가 허물어져 내리고,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줘야지.'
전생의 박원일은 수많은 사람들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변화한 시류를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국민들을 매도했었다.
이완원은 선한 가면이라도 썼지만 박원일은 가면을 쓸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던 놈이었다.
국민들의 고혈을 쪽쪽 빨아먹고 살면서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더 빨아먹지 못해서 안달을 했었다.
'잃어봐야 알지.'
<맞아. 재벌이라고 하는 놈들은 절대로 자신들의 부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세상이 바뀌어도 말이야. 그래도 이런 시국에 동생 일 때문에 찾아온 것이 가상하기는 하네.>
정말 의외이기는 했다.
바깥에서 낳아온 동생인데 저렇게까지 챙긴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이런 위험한 시국에···.
"저희 집안의 등불 같은 아이입니다. 조금만 도움을 주시면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꼬물!
^등불이 아니고 원수겠지.^
'무슨 말이야? 저게 모두 연극이라는 소리야?'
사람을 많이 보아온 내 눈에도 진심으로 보였다.
절절하게 동생을 위하는 오빠로 보이는데 거짓이란다.
꼬물!
^재산 때문이야.^
'무슨 말이야?'
꼬물!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원미가 가진 주식이 알짜배기래.^
'그런 것까지 읽을 수 있는 거야?'
꼬물!
^저놈이 계속 생각하고 있으니까. 속으로 원미와 제 아버지 욕을 엄청 하고 있어. 집사와 월평 욕도.^
꼬물이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았다.
뮤! 뮤! 뮤!
^냄새! 지독해! 저놈은 음식물 쓰레기보다 심한 냄새를 풍기고 있어.^
도뮤가 대기실의 황금 던전에서 나오다 급하게 코를 막았다.
뮤! 뮤! 뮤!
^집사! 저런 놈과 친하게 지내지 않을 거지? 저런 놈과 가까이 하지 마! 그럼 도깨비마을 좁아져. 우리 힘도 약해지고.^
'걱정하지 마! 저런 놈과 친구할 생각 없으니까.'
뮤! 뮤! 뮤!
^그래야지. 친구는 잘 사귀어야 해. 유유상종! 초록동색! 알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문자까지 쓰는 도뮤였다.
"방해라니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그저 여기저기 문의를 한 것뿐입니다. 월평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어 실수를 할까 싶어서···. 선배 된 도리로···. 아니 이것이 아니고···."
지나치다는 것은 깨닫기는 한 모양이었다.
지금은 자신이 부탁을 하는 상황인데도 평상시 습관이 그대로 나온 것이었다.
한번도 '을'이 된 적이 없으니 저러는 것이었다.
"우리 월평은···."
일미의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