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228화 (228/350)

228. 방어막

반반이가 살기를 드러내자 주위가 초토화되었다.

제대로 서 있는 경호원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오줌을 지리는 것을 넘어서 똥까지 줄줄 쏟는 경호원도 있었다.

부리나케 달아나는 놈도 세 명이나 되었다.

<저런 놈들은 각성했겠지?>

"각성했으니 저리 달아나지."

달아나는 놈 중에는 박원일을 가장 가까이서 돌보던 경호원도 있었다.

반반이가 드러낸 살기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은 박원일이 달아나는 자신의 경호원을 바라보았다.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은 것 같았다.

열심히 달아나던 놈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제야 제 행동을 자각한 것 같았다.

걸음을 멈추고 박원일을 돌아본 경호원의 발짓에 고민이 가득했다.

돌아올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두세 번 발을 내밀까 고민을 하던 경호원이 그대로 등을 돌려버렸다.

등을 돌린 경호원은 그대로 멀어져갔다.

다시는 박원일에게 돌아올 것 같지 않았다.

달아났던 다른 두 명의 경호원은 고민도 하지 않았다.

방금 전 경호원이 향한 방향을 향해 달렸다.

"팀장님! 팀장님! 같이 가요."

"저도···."

두 명이 팀장이라며 소리를 치는 것으로 보아 경호팀장이었던 것 같았다.

팀장과 팀원 두 명이 이탈을 했지만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은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살펴 가! 내 아량을 베풀어서 차 한 대는 남겨줄게."

박원일은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가자. 반반아!"

음머어!

반반이가 살기를 싣지 않았는데도 심하게 움찔거리는 놈들이었다.

반반이에게 완전히 질려버린 것 같았다.

터어어어어엉!

반반이가 차를 도로 아래로 밀어버렸다.

차가 도로 아래로 굴러서 논에 처박혀버렸다.

그렇게 두 대를 굴리고 난 후 한 대는 멀쩡하게 두었다.

약속을 했으니 한 대는 건너 뛴 것이었다.

한 대는 부수지 않았지만 멀쩡한 차가 도로를 질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었다.

반반이가 나머지 차들을 밟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와우! 우리 반반이 뒤끝 있네! 멋지다!>

뒤끝이 멋짐의 상징이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찌됐든 속은 시원했다.

꼬물!

^쌤통이다! 쟤는 앞으로 '변소 창일'이라고 해야겠어.^

<변소 창일? 우하하하! 박원일이 들으면 뒷목 잡고 넘어가겠다. 으하하하!>

박원일의 인생에 가장 수치스러운 별명이 붙여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살아난다면 말이다.

<집사! 저대로 두고 갈 거야? 후환을 남기는 거 아닐까?>

"후환거리가 될까?"

<총까지 구하는 거 보니까 정리를 확실하게 하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은데? 저런 놈들이 은근히 무서울 수 있거든.>

"내가 정리하지 않아도 정리될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꼬물!

^ㄴㅎㅂㅂ!^

대변혁 이전에도 그랬겠지만 대변혁 이후의 세상에서는 직접 적을 처리하는 것은 하수(下手)에 속했다.

직접 처리하지 않아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굳이 직접 손에 피를 묻힌다?

어리석거나 살인을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었다.

<하긴 저 상태에서 살아서 제 집으로 돌아간다면 천운이기는 하겠다.>

반반이의 살기를 완전히 지우기만 해도 몬스터들이 냄새를 맡고 달려들 것이었다.

"달아났던 경호원들이 돌아와서 처리해버릴 수도 있어."

<설마? 그건 아니다.>

"박원일의 성격을 알면 그렇게 할 거야."

<아! 박원일을 안다면 선택이 아니고 필수일 수도 있겠구나?>

"그렇지."

꼬물!

^설명을 해줘야 알아듣는 나호는 ㅂㅂ!^

<으으으! 집사! 나···.>

나호가 뭔가 불만을 터트리려고 할 때 비명소리가 들렸다.

꾸!

우리가 구하기 위해 달려왔던 구완과 이근택인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아니라고?"

꾸!

두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총 열네 사람이 함께 이동 중이었단다.

그래도 여러 사람이 뭉쳐서 이동 중이었던 것 같았다.

몬스터를 의식했다는 증거였다.

탁! 탁!

"아악! 죽어!"

"으악!"

"엄마아아! 아악! 죽으라고!"

혈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처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부딪치는 소리로 봐서 나뭇가지를 꺾어서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쾌애애액! 쿠에에엑!

이들은 운이 좋지 못했다.

몬멧돼지 무리를 만난 것 같았다.

몬멧돼지는 이빨이 얼마나 긴지에 따라서 강함이 드러났다.

그런데 슬쩍 보니 E급은 되어 보이는 몬멧돼지가 두 마리나 있었다.

<운이 좋지 못했네. 아직 일반인이 E급은 상대하지 못하지. 지금 저 정도면 재앙급이라고 할 수 있잖아.>

'아직은 각성자도 무리야.'

도심에 나타나면 수십에서 수백에 이르는 사람을 해칠 수도 있는 것이 몬멧돼지였다.

꼬물!

^주리를 틀면 간단한데.^

<으으으! 갈수록 꼬물이가 무서워지고 있어. 너는 귀여운 이미지로 남아있어도 좋아.>

꼬물!

^누구 좋으라고?^

<집사! 나 꼬물이 무서워!>

꼬물!

^으흐흐!^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꼬물이의 방금 웃음은 나호의 웃음과 닮아있었다.

그것을 나호도 알았는지 허옇게 질려가고 있었다.

쫑!

^꼬물이와 나호 친해!^

쪼롱이가 꼬물이와 나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빠 미소였다.

덩치는 자그만 녀석이 은근히 보스기질을 내뿜는 쪼롱이였다.

소환수들의 장난을 뒤로 하고 구완이 어디 있는지부터 살폈다.

몬스터도, 사람들도 전투에 열중하고 있어서 우리의 접근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저기 있다!>

구완이 나무를 휘두르며 몬스터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구완의 뒤로는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한 명 있었다.

꼬물!

^어? 저거 옻나무인데···.^

구완이 들고 있는 나무가 옻나무였던 모양이었다.

자세히 보니 정말 옻나무였다.

손에 쥐고 흔들기 적당해서 꺾어서 무기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옻나무 조심해야 하는데···. 옻나무뿐만 아니지···. 모르고 만졌다가 고생하는 나무 은근히 많은데.>

만지고 놀다 자기도 모르게 그 손으로 음식을 먹으면 죽게 되는 나무도 있었다.

그런 나무가 주위에 없으면 다행인데 대변혁 이후에는 위험한 나무가 우리 주변에서 자랄 수 있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것 중에 하나가 함부로 어떤 것도 만지지 마라는 것이었다.

어떤 나무는 오래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위험하기도 했다.

뮤! 뮤! 뮤!

^위험한 나무들이 이상하게 꽃은 예쁘다! 예쁜 것은 늘 조심해야 한다. 아픔을 유발한다.^

실연의 상처가 있나?

아니 어딘가에 자신의 짝이 있는 것처럼 말하기도 했는데···?

아무튼 구완은 제법 야무지게 나무를 휘두르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어설펐다.

<집사! 이근택이 보이지 않는데?>

'저기 있잖아.'

혹시라도 누가 들을까 심상으로 말했다.

아직은 감각 능력치를 개방한 사람이 없을 것 같기는 한데 세상일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어디?>

'저기 나무 아래! 아이 한 명을 감싸고 있잖아.'

이근택은 덤불 속에 몸을 감추고 있었다.

그냥 숨기는 민망했는지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을 안은 채였다.

소년을 입을 막고 있었는데 왠지 그것이 찝찝하게 느껴졌다.

<저놈 저 버릇 고치지 못했네. 나쁜 놈의 새끼! 저거 대변혁 이후에 생긴 것이 아니고 그 이전부터 저런 버릇 있었던 거 아니야?>

'알 수 없지.'

이근택은 나쁜 놈이었다.

그래서 늘 목숨의 위협을 받았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근택을 죽이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이근택 본인이었다.

그런데 이근택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아주 독특하고 분노를 자아내는 것이었다.

우연이라도 저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생기게 된 것이 분명한 방법은 바로 아이들을 이용한 것이었다.

이근택은 자신의 옆에 늘 아이를 두었다.

이것은 낮에든 밤이든 동일했다고 한다.

차량으로 밖에 이동할 때도 늘 자신의 양쪽에 아이를 앉혔고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도 화동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저,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놈! 아이들만 아니었으면 구완도 놈의 암살에 성공했을 거야.>

'구완만 그랬겠어? 아이들을 옆에 두지 않았다면 구완의 차례도 오지 않았을 거야.'

<누가 그런 방법을 생각하겠어? 생각하더라도 직접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아.>

'판사였다고 하잖아. 머리는 좋았던 거지. 그리고 사람들이 아이들을 향해서는 공격을 날리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 거지. 더구나 자기를 죽이러 들어오는 놈이 악인이 아니라는 것을 더 잘 알았을 거고 말이야.'

<다른 놈은 몰라도 저 놈은 죽이자. 집사! 저놈 저런 행태를 보니 더 살려두면 안 되겠어.>

'같은 생각이야. 저런 행동이 나온 이상 살려두면 안 되지. 어디서 나쁜 것만 배워서는···.'

저 놈의 더 미운 것은 저런 행동마저 합리화를 시켰다는 것이었다.

말도 되지 않은 이유를 들먹이며 아이들을 자기 주위에 두는 것을 미화시켰다.

꼬물!

^저 놈이 뭘 했는데요? 저놈의 생각은 잘 안 읽혀요. 거리가 있어서 그러나?^

<맘이 하도 시커먼 놈이라 읽히기 않을 수도 있어. 저놈 아이들을 자신의 방어막으로 사용하던 놈이야. 이번 생에는 다를 줄 알았더니 똑같네. 나쁜 놈의 새끼! 저기 봐. 은근히 아이의 머리를 앞으로 밀고 자신이 뒤로 가잖아.>

꼬물!

^저놈만 빼낼 수 있는데···. 꺼낼까요?^

'구완에게 우리가 개입한 것이 드러나면 안 돼. 구완은 아버지 못지않게 고지식한 사람이야. 두뇌는 좋고 의리도 있는 사람이고.'

<둘이 함께 다니는 것 못지않게 둘이 갈라서게 된 사연이 궁금하기는 해. 어지간해서는 구완이 이근택을 죽이려들지는 않았을 텐데.>

'고지식한 사람이기 때문에 한 번 돌아서면 무서운 거야. 어제도 말했지만 구완도 어느 정도는 이근택의 심성을 알았을 거야. 바보가 아니니까. 계기가 없었을 뿐이야.'

<헤어질 계기 말이지?>

'그래.'

꼬물!

^놈이 제 발로 튀어나오게 하면 되잖아요. 저 그거 잘할 수 있어요.^

꼬물이의 눈이 있다면 밝게 빛났을 것이다.

글을 쓰는 하얀 뿌리가 순간 반짝했다.

기대감을 드러낸 것이었다.

'좋아. 해봐.'

지금 우리는 이들과 50미터 정도 떨어진 수풀 뒤에 있었다.

반반이가 살기를 감추고 옆으로 돌아선 상태였다.

이근택 무리가 있는 쪽에서 보면 검은 벽이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아무튼 50미터나 떨어져 있는데 꼬물이의 뿌리 하나가 대기실을 나오더니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그대로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식물이 스스로 심겨지는 것 같아. 살짝 징그럽기도 하다.>

굵은 뿌리가 땅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뱀이 땅을 파고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살짝이 아니라 상당히 징그럽게 보였다.

하지만 저렇게 스스로 움직이기 때문에 힘차고 역동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소환식물의 뿌리 길이는 상상을 초월했다.

던전을 모조리 뒤덮을 정도의 길이이니 50미터 정도는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었다.

땅속으로 이동하는 꼬물이의 뿌리를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소환식물이어서 그런지 어디로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속한 나호도 마찬가지였다.

<집사! 소환 식물이 최고야! 소환수보다 백배는 나은 것 같아. 이렇게 접근할 수 있는 소환수가 어디에 있겠어?>

뿌리를 이용해 접근하는 꼬물이를 보고 감탄을 토해내는 나호였다.

'모두 소중해. 각기 가진 재주가 다른 것뿐이야.'

<그래! 우리 집사는 참 착해. 그래서 내가 우리 집사를 좋아하잖아.>

나호가 귀엽게 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실체를 갖추고 덩치를 키울 때가 아니면 고양이 크기밖에 되지 않는 나호는 가만히 있어도 귀여웠다.

그런데 저런 표정을 지으면 정말 살인적이라고 할 정도의 매력을 발산했다.

입을 닫고 있으면 최고의 귀염둥이가 될 재목(材木)이었다.

입을 열면 세월이 느껴지며 묘한 괴리감을 주었지만 말이다.

뮤! 뮤! 뮤!

^내 친구 잘한다!^

꼬물이는 동시에 여러 동작이 가능했다.

지금도 통역을 하면서 침투까지 하고 있었다.

침투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소환식물들을 관리 감독까지 하는 꼬물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해냈다.

꼬물!

^준비 됐어! 말만 하면 이놈 제 발로 튀어나가게 할게.^

'좋아. 가장 좋은 때를 기다려야지. 저 놈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날 시간 말이야.'

그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꼬물이에게 신호를 보냈다.

운도 좋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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