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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229화 (229/350)

229. 운도 좋은 놈!

멧돼지를 닮아서 몬멧돼지라 불리는 몬스터는 의외로 대변혁 이후 자주 볼 수 있는 몬스터였다.

던전을 나와서 산 속에 터를 잡고 살면서 개체수를 늘리고는 먹이를 찾아다니는 녀석들이었다.

숲속에서 동물만 잡아먹고 살면 좋은데 인간의 맛을 본 녀석들은 꼭 인간만을 노렸다.

몬스터는 종류를 불문하고 처리해야하지만 이런 녀석들은 반드시 처리해야했다.

지금 구완 일행을 노리는 몬멧돼지는 대변혁의 날 던전이 열림과 동시에 나왔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인간 맛을 이미 본 녀석들인 것 같았다.

몬멧돼지의 수는 새끼까지 합쳐서 총 아홉 마리나 되었다.

이 녀석들을 상대하고 있는 사람의 수도 아홉 명에 불과했다.

함께 이동하던 열네 명 중 네 명은 어린 아이들이었고, 한 명은 이근택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명이라도 더 몬멧돼지를 상대해야 하는데 이근택은 아이를 지킨다는 핑계로 수풀에 몸을 숨기고는 슬금슬금 뒤쪽으로 빠지는 중이었다.

이대로 이들이 몬스터에게 당할 것 같으면 가장 먼저 달아날 사람은 바로 이근택이었다.

<전생과 다른 상황일 텐데 어찌 하는 짓은 저렇게 똑같을 수 있을까?>

이근택의 품에 안긴 아이만 이근택의 움직임을 파악한 것 같았다.

아이의 눈이 커지며 이근택을 보았다.

이근택은 입을 다물라는 듯 눈을 부라렸다.

아이가 움찔하며 이근택의 눈을 피했다.

이근택이 만족스러운 듯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저리가! 가라고!"

아홉 마리의 몬멧돼지가 모두 성체였으면 이들은 이미 죽임을 당했을 것이었다.

그나마 이들이 이렇게 시간을 끌며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폭죽 때문이었다.

누가 처음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폭죽을 가지고 있었고 몬멧돼지들은 쉽게 달려들지 못했다.

펑펑 소리를 내면서 불꽃을 피우는 푹죽에 위협을 느낀 것이었다.

여기에 모두들 무기를 들고 있으니 더 앞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몬멧돼지는 멀리 달아나지 않고 있었다.

적당히 멀어지다 다가오고 다시 적당히 멀어졌다 다가오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돼지들이 폭죽이 다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거야. 크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파악한 거지.>

몬스터는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영리했다.

호락호락하게 생각했다가는 큰코다치는 것이 몬스터였다.

그리고 지금 구완 일행이 상대하고 있는 몬스터도 마찬가지였다.

쿠에에엑! 쿠에엑!

그러다 몬멧돼지 새끼 한 마리가 이근택이 아이와 함께 숨은 수풀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근택이 확인했다.

당연히 이근택은 뒤로 빠지며 제 살길만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이 모든 상황을 우리가 보고 있었다.

'꼬물아! 지금이야!'

꼬물!

꼬물이가 알았다는 반응을 보인 순간이었다.

"으아악! 뭐, 뭐야아아!"

숨을 죽이고 뒤로 슬슬 빠지던 이근택이 엄청난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무언가에 엄청나게 놀란 듯한 반응을 보인 이근택이 자신의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전장의 한복판에 서있었다.

"어어···."

<이 동네는 '뭐야'가 유행인가 봐.>

박원일에 이어 이근택까지 '뭐야'라고 외치자 하는 말이었다.

'군림만 하던 사람들이라 그래.'

쿠에엑!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온 이근택을 보고 덩치가 큰 몬멧돼지가 반응을 보였다.

"저리가! 저리가! 돼지새끼야!"

이근택이 손에 쥐고 있던 작은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며 말했다.

그리고는 재빨리 뒤로 빠지려고 하는 놈이었다.

<그렇지. 저래야 이근택답지. 징글징글한 놈! 저놈만 죽어도 수천 아니 수만, 수십만의 우리 국민들이 다리 뻗고 잘 수 있을 거야. 징글징글한 법조인 새끼들!>

이상하게 대변혁 이후 국민을 힘들게 하는 직업군에 법조인이 많았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더니 일본 강점기를 생각나게 했다.

하지만 일반인이 뭔가를 해볼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왕래는 물론이고 통신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대다수의 국민은 자신이 왜 힘들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기도 했었다.

아무튼 이근택 저놈도 판사 출신이었다.

"아악!"

이근택이 뒤로 급하게 빠지며 근처에 있던 여자를 앞으로 확 밀쳐버렸다.

몬멧돼지 앞으로 여자를 던져버린 것이었다.

<네 놈이 이렇게 나올 줄 알았어!>

몬멧돼지 앞으로 철퍼덕 넘어져 버린 여자가 무척이나 당황했다.

코앞에 몬멧돼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쿠에에엑!

자신의 앞으로 넘어진 여자를 보고 몬멧돼지가 기쁨의 포효를 지르고는 여자를 공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몬멧돼지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쿠에에엑! 쿠에엑!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몬멧돼지가 당황하는 사이 이근택은 자신만 살겠다고 자리를 이탈하려고 했다.

"근택아!"

구완이 이근택을 불렀다.

하지만 구완의 부름에 멈출 이근택이 아니었다.

이근택은 듣는 시늉도 하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

아직 불을 붙이지 않은 폭죽을 들고 벌벌 떨고 있는 두 명의 아이들에게 다가가더니 폭죽을 빼앗아 들었다.

"내놔!"

한 아이에게서 두 개의 폭죽을 빼앗았으면 만족을 할 것이지 옆의 아이가 든 폭죽까지 잡아당기며 하는 말이었다.

"안 돼요! 아, 아저씨! 놓으세요. 이거 제 거예요."

"놔!"

이근택의 발이 들렸다.

그대로 아이의 얼굴을 향해 발길질을 할 기세였다.

그 때였다.

"아!"

발을 들어 올리던 이근택이 중심을 잃고는 크게 비틀거렸다.

조금 전까지 수풀 속에 함께 숨어있던 아이가 이근택의 다리를 당겼기 때문이었다.

넘어질 뻔한 이근택의 고개가 내려갔다.

자신의 다리를 당기고 있던 아이를 확인한 이근택의 얼굴이 잔뜩 붉어지더니 그대로 발길질을 했다.

하지만 그 발길길은 아이에게 닿지 못했다.

아이가 옆으로 뱅그르 구른 것이었다.

꼬물이가 뿌리를 이용해서 아이를 굴린 것이었다.

아이조차 자신이 이근택의 공격을 어떻게 피한 것인지 깨닫지 못한 것 같았지만 말이다.

헛발질을 한 이근택은 크게 넘어졌다.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크게 발길질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악! 이것들이 정말! 이 버러지 같은 것들이! 내가 누군지 알고!"

넘어진 충격이 상당했는지 이근택이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근택은 독종이었다.

그 상태에서도 다른 아이가 쥐고 있던 기다란 폭죽을 빼앗으려고 했다.

"놔! 버리지들아!"

"아저씨! 이러지 마세요."

"우리 꺼야! 우리 가게에서 가지고 온 거라고!"

폭죽을 먼저 빼앗겼던 아이가 이근택의 팔을 때렸다.

이근택이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더니 다시 아이들을 공격하려고 했다.

크르르!

"뭐하는 거요! 당신 미쳤어!"

아이의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아이들 앞으로 서며 이근택의 접근을 저지했다.

그러자 이근택이 칼을 꺼내 들었다.

"다 내놔! 폭죽 다 내놓으라고!"

크르르! 쿠에엑!

펑! 퍼엉!

구완과 일부 사람들은 이 사이에도 몬스터를 어떻게든 멀찍이 밀어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근택이 하는 짓이 보이지 않을 리 없었다.

"근택아! 뭐 하는 거야? 정신 차려!"

"정신? 정신! 정신은 너나 차려! 새끼야! 혼자 살기도 급급한 판국에!"

그 말과 동시에 몸을 낮추던 이근택이 잽싸게 움직이더니 푹죽을 빼앗았던 아이를 잡았다.

인질을 삼은 것이었다.

"아빠!"

자신의 목에 차가운 칼이 닿자 아이가 놀라며 아빠를 불렀다.

"이 미친놈이!"

아이의 아빠가 나무 몽둥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이근택은 영리한 놈이었다.

아이를 방패삼아 아이 아빠의 공격을 피하더니 칼을 아이의 목에 찔러 넣었다.

"아아! 아, 아, 아빠아아!"

지금까지 잘 참고 있던 아이의 바지가 축축해지더니 바닥으로 노란 오줌이 흘러나왔다.

"아이씨! 더러운 것들!"

퍽! 퍽!

아이의 오줌이 자신의 신발이 있는 곳까지 흘러오자 아이의 머리를 칼자루 끝으로 찍었다.

살살 찍은 것이 아니었다.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찍는 이근택이었다.

아이가 고통에 눈물을 주르르 흘렀다.

기절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다.

<저놈은 아이를 방패로 삼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어. 썩을 놈!>

"폭죽 가진 거 다 내놔!"

이근택이 소리를 질렀다.

어떤 무기보다 폭죽이 몬스터의 접근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폭죽만 있으면 혼자서도 충분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여기요. 우리 동생 풀어줘요."

여자 아이가 폭죽을 이근택에게 건넸다.

"다 가지고 가! 우리 아들은 풀어줘. 풀어달라고!"

"저기 더 있잖아! 저기 있는 것들도 가지고 와!"

"그럼 우리는 죽어! 몇 개만 남겨···."

"아악!"

아빠가 그 말을 하자 아이의 목에 칼을 더 들이미는 이근택이었다.

아이의 목에서 붉은 피가 더 흘러내렸다.

아이를 인질로 잡고 있자 다른 사람들도 가지고 있는 폭죽을 건넸다.

"다 가지고 와!"

아이 아빠가 폭죽을 모두 챙겨오자 아이에게 폭죽을 들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여전히 아이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는 뒤로 빠지려고 했다.

"우리 동훈이는 놓고 가야지!"

"따라오면 죽어! 물러서! 충분히 멀어지고 난 후 아이는 풀어줄 테니까 가까이 오지 마!"

"아, 아빠아아!"

크르르르! 쿠에에엑!

폭죽이 사라지고 나자 몬멧돼지가 공격을 하지 않을 이유도 함께 사라졌다.

지금까지 대치를 하고 있던 균형이 깨진 것이었다.

몬멧돼지가 사람들을 향해 전진했다.

붉은 피를 흘리고 있는 아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몬멧돼지였다.

이근택도 그것을 느꼈는지 급하게 폭죽에 불을 붙이려고 했다.

그 순간!

'꼬물아!'

꼬물이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 정도면 구완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이근택의 실체를 알았을 것이 분명했다.

이제 이근택을 응징할 시간이었다.

"왜 이리 안 붙어!"

폭죽에 빨리 불이 붙지 않자 이근택이 짜증을 부렸다.

마음이 급한데 라이터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이근택이 팔에서 힘이 조금 풀렸다.

그리고 그 순간 잡힌 아이가 아주 용감한 행동을 했다

이근택의 발을 강하게 밟고는 뒤로 확 밀쳐버린 것이었다.

<와우! 용감하네! 태권도 학원 좀 다닌 것 같은데?>

아이가 하는 것이 정말 태권도 학원에서 배운 호신술 같기도 했다.

이근택이 뒤로 약간 밀렸다.

아이는 나름 세게 밟고 밀쳤지만 생각보다 힘이 강하게 실리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시도자체는 아주 훌륭했다.

스스로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아이는 들고 있던 폭죽을 다가오고 있던 몬멧돼지에게 모조리 던지고는 옆으로 피했다.

그 순간 아이의 몸이 살짝 들리는 것 같았다.

저건 꼬물이의 도움 때문이었다.

아이의 몸에 뿌리들이 감기며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버린 것이었다.

방어막으로 세웠던 아이가 사라지자 이제 몬멧돼지는 이근택이 홀로 상대해야 했다.

"왜, 왜 안 되는 거야! 왜에에!"

폭죽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라이터가 고장이라면 아무리 많은 폭죽도 무용지물이었다.

"사, 살려줘! 도와줘어! 아아아악! 아아악! 완아! 완아아! 도와···. 아아악!"

이근택이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도 이근택을 돕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아이를 방패막으로 삼고 칼을 들이 댄 남자를 도와줄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그것은 구완도 마찬가지였다.

"아아악! 아악! 아아악!"

<운도 좋은 놈! 이렇게 죽다니···. 정말 운도 좋은 놈이야. 살면서 두고두고 고통을 받아야 하는데 말이야.>

이근택을 죽이자고 했으면서 막상 죽어가는 것을 보자 본전 생각이 나는 모양이었다.

나호만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전생에 놈이 저질렀던 일을 안다면 누구든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었다.

으드득! 으드득!

살벌한 소리가 났다.

몬멧돼지가 이근택을 공격하고 그 자리에서 물어뜯는 소리였다.

배가 많이 고팠던 것 같았다.

이근택이 죽자 새끼 몬스터들이 이근택에게 다가갔다.

어미 몬스터가 불러들인 것 같았다.

숨이 끊어진 이근택으로 인해 잠시 몬멧돼지의 공격이 느슨해졌지만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제 이들을 정말 구해야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몬스터를 여기서 다 잡아버리면 이근택의 시체가 그 자리에 남았다.

이근택은 시체도 보기 싫었다.

그래서 반반이에게 부탁을 했다.

반반이가 길게 울었다.

살기를 적당히 담은 울음이었다.

불청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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