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 불청객
반반이의 소리를 들은 몬스터들이 움찔거렸다.
자신들은 상대도 되지 않은 강자의 등장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살기를 제대로 드러냈다면 당장 달아났겠지만 적당히 위협을 하면서 물러날 것을 권하듯이 하자 몬멧돼지들이 이근택의 시체를 물고는 사라져버렸다.
"근···."
구완이 이근택을 부르려다 말았다.
저런 처지가 되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을 안 것이었다.
몬멧돼지가 물러나고 나자 사람들이 반반이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 사람들은 반반이의 소리를 들을 때부터 더 긴장을 하고 있었다.
약하지만 살기를 품은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구완은 반반이를 한 번 본 적이 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다.
더 크고 무서운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생각을 했는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폭죽을 챙겨드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상당수가 이미 망가진 후였다.
"몬스터 아닙니다. 저기 사람이 타고 있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신 것 같습니다."
구완이 반반이 등에 앉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람들이 시선이 쭈욱 올라오더니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는 것이 보였다.
이렇게 거대한 몬스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동훈아! 동훈아!"
아이의 아빠가 동훈을 껴안고 아들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더니 목을 감쌌다.
출혈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반반이에게서 뛰어내려 아이의 아빠에게 다가갔다.
"이걸 바르면 피가 멈출 겁니다."
치유수 아이의 목에 부어주었다.
버섯 치유수였다.
버섯 치유수를 목과 머리에 충분히 발라주고는 조금 마시게 했다.
사실 외상만 있기 때문에 마실 필요까지는 없지만 아이의 안정을 위해 마시게도 한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동훈아! 괜찮아?"
"괜찮아. 아빠! 나 하나도 안 아파."
"그래! 다행이다. 다행이야."
"아빠. 내가 나쁜 아저씨 혼내줬어!"
아이는 생각보다 씩씩했다.
"아빠도 봤어. 아주 멋졌어."
"헤헤. 내가 호신술 만점 받았다고 했잖아."
"그래. 그래."
아이가 해맑은 만큼 아빠의 가슴은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아이들도 느끼고 있겠지만 어른들은 더 막막할 것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이런 세상에서 아이들을 지킬 수 있을지···.
아빠의 눈가가 붉어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구완이 아이의 아빠에게 와서 사과를 했다.
이근택의 잘못이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
"구완 씨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러지 말아요."
"맞아. 이 아저씨가 나 구해줬어."
구완 씨의 뒤에 숨어 있던 아이가 말했다.
"그런데 월평의···."
구완이 말끝을 흐렸다.
"월평? 화순에 있는 그 월평을 말하는···?"
월평이라는 말에 주변 사람들이 바로 반응을 보였다.
"광주로 가시는 길이었습니까?"
"집이 거기여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차에서 며칠을 버텼는데 더는 안 될 것 같아서···."
동훈의 아버지가 말끝을 흐렸다.
아이들이 듣는 데서 좋지 않은 상황을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저희 집도 광주입니다. 운 좋게 일행을 만나서 함께 움직였는데···."
그렇게 말하던 남자는 피가 낭자한 바닥으로 잠시 시선을 주었다.
이근택이 목숨을 잃은 곳이었다.
그곳에는 피만 남은 상태였다.
"광주에 기다리는 가족이 있습니까?"
"그것은 왜? 우리는 이렇게 셋이 전부입니다."
동훈이의 아버지가 말했다.
"부모님께서 광주에 계십니다."
"저는 아내와 아이들이···."
동훈 가족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주에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광주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무사하기는 한 건지···."
우리나라는 그래도 자정에 대변혁을 맞아서 이산가족이 적은 것이었다.
한참 활동을 할 시간에 대변혁을 맞은 나라들은 가족의 생사를 모르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고 한다.
겨울이어서 문단속을 잘 해둔 것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어쨌든 이들에게 월평에 갈 것이냐고 물었다.
이미 꼬물이와 도뮤의 심사를 통과한 사람들이었다.
이들만 좋다면 모두 데리고 월평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동훈이 가족과 구완은 좋다고 했지만 나머지 아홉 명은 의견이 분분했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어서 바로 광주로 가고 싶다는 사람과 우선은 월평으로 합류하겠다는 사람.
"당장은 광주를 갈 수 없지만 조만간 가족들을 데리러 가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정말입니다. 아마 보름 안에 갈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저희도 월평에 합류하겠습니다. 저희끼리는 무사하게 집에 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가시죠. 아! 아이 옷을 갈아입히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동훈 아빠에게 바지를 건넸다.
동훈이에게는 클 것 같지만 젖은 옷을 입는 것 보다는 나았다.
1월의 찬바람이 부는 곳에서 동훈의 바지를 갈아입히는 동훈 아빠였다.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제야 추위를 느끼는지 동훈이가 몸을 심하게 떨었다.
몬털쥐 가죽으로 만든 담요로 동훈이의 몸을 감싸주고는 따뜻한 물과 음식을 건넸다.
"이것부터 드시고 움직이시죠."
"이것이 어디에서···?"
허공에서 따뜻한 물은 물론이고 음식까지 나오자 눈이 휘둥그레지는 사람들이었다.
"그···. 상태창과 연관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인벤토리를 얻으면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구완이 자신이 아는 것을 설명했다.
"1월 1일부터 생겼다고 하는데 저는 어제야 알았습니다."
"나는 오늘 알았어."
상태창이라는 말이 나오자 사람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었다.
지금은 어디를 가나 몬스터와 던전 그리고 상태창 이야기였다.
생각지도 않던 것이 생겨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조금 전에 저를 도와준 것도 형이었어요?"
이근택과 함께 수풀에 있던 아이가 말했다.
꼬물이의 뿌리를 느꼈던 모양이었다.
"······."
"누가 나 도와준 것 같았는데? 이상한 아저씨가 나 때리려고 할 때."
"그랬어?"
"예. 나를 이렇게 잡고 휘리릭 했는데···. 그때······."
아이가 열심히 이야기를 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의성어와 의태어가 난무했기 때문이었다.
꼬물!
^표현력이 좋은 아이야! 귀여워!^
꼬물이가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꼬물이는 아이들을 좋아했다.
당장이라도 볼을 만지고 싶은데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저희도 타고 갑니까?"
반반이의 등을 올려다보고는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타면 생각보다 안정적입니다."
"아빠 나는 타보고 싶어!"
"나도!"
"내가 가장 먼저 탈거야."
"내가 누나니까 내가 먼저 탈거야."
의외로 아이들이 적극적이었다.
"그럼 올려줄게. 겁먹지 말고."
뿌리가 다가오자 움츠러드는 사람들을 안정시켰다.
꼬물이의 뿌리가 동훈이를 가장 먼저 안아 올려서 반반이의 등에 앉혔다.
"아빠아아! 나 올라왔어! 엄청 높아! 저기 멀리까지 다보여! 불빛도 보여!"
어둠이 내려앉아서 멀리까지 보일 리는 없었다.
불빛이 보인다는 것을 보니 멀리 인가(人家)가 있는 것 같았다.
"동훈아! 목소리!"
"미안. 아빠! 근데 하나도 안 무서워. 어서 올라와."
아이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어서 말을 했는데 그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다행이다. 반반이를 타는 흥분으로 이근택을 잊어버리면 좋겠다.>
'그럼 좋지.'
반반이의 등에 모든 사람이 타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반야와 반크까지 동원되었다.
허공에서 반반이와 필적하는 몬야크가 두 마리나 등장하자 미리 말을 했는데도 엉덩방아를 찧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반반이 가족을 타고 월평으로 향했다.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동훈이 아버지가 꾸벅 인사를 했다.
동훈이 아버지를 시작으로 모두들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했다.
<그래도 나쁜 사람들은 아닌 것 같네. 다행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쁘지 않아.'
<아직은 그렇지. 아직은 법과 규율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니까.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볼만할 거야.>
'이번은 조금은 다르겠지.'
<조금!>
세상이 변하고 어려움이 몰려오면 서로 힘을 합쳐서 이겨내려고 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대변혁 이후의 세상은 선하고 순한 사람보다는 강하고 독한 사람이 살아남기 쉬웠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아무튼 돌아오는 길은 순탄했다.
길에 방치 차량을 길 밖으로 밀어두었기 때문에 이동하는 것이 더 쉬웠다.
<집사! 박원일 일행이 있던 곳이야.>
장갑차를 연상시키는 차들이 눌려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차 혹시···?"
구완 씨가 납작 눌린 차를 보며 물었다.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 말이 아니고, 힘이 놀라운 것 같아서요."
고지식하기로 유명한 구완에게 나온 대답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집사! 박원일 없어! 사라졌어. 피가 낭자한데···. 무슨 일이 있었을까?>
눌린 차를 지나자 멀쩡하게 남아있는 차가 보였다.
그런데 완전히 멀쩡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유리창이 피범벅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차안으로 피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방탄, 방검 유리인가? 그렇지 않았다면 저 정도로 필사적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나호의 말대로였다.
정말 필사적으로 누군가가 차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것 같았다.
도로에 피를 보아하니 상당한 전투가 치러진 것이 분명했다.
전투의 흔적으로 보아 몬스터도 왔다간 것 같았다.
하지만 인간의 발자국도 제법 보였다.
"몬스터에게 당한 겁니까?"
동훈 아빠가 물었다.
"그런 것 같네요."
"몬스터도 몬스터지만 사람끼리도 싸운 것 같습니다. 저기 어지럽게 찍혀 있는 발자국들을 보면······."
구완이 바닥에 찍힌 발자국과 차량에 남은 흔적을 가리키며 말했다.
확실히 구완은 다른 사람에 비해 관찰력이 좋았다.
<보는 눈이 다르네. 이 사람이 이근택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다른 일에 매달리면 어땠을까 말들이 많았는데···. 기억하지?>
'당연하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인생을 바치기에는 아까운 사람이었어.'
전생에 어떤 일로 구완이 이근택에게 그렇게 칼을 갈았는지 모르지만 구완은 자신의 인생을 이근택을 죽이는데 사용했다.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지만 말이다.
'인생을 돌아오고서야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거네.'
<집사 덕분에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될 사람들이 많을 거야. 이미 인생이 달라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긴 하지만.>
우리나라만 해도 엄청난 사람을 구했다.
원수 같은 일본 놈들의 피해도 상당히 줄였고 말이다.
물론 이대로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어? 몇 사람은 살아서 나간 것 같습니다. 저쪽으로 발자국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구완 씨의 눈썰미는 확실히 좋았다.
피 묻는 발자국이 도로 밖으로 이어지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과학수사를 해도 잘했겠네. 형사를 하든지.>
'구완 씨는 연구자에 적합해.'
<그렇기는 한데 연구실에 박아두기에는 아까운 감각이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겠지.'
<집사는 궁금하지 않아? 박원일이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갔는지 아니면 죽었는지?>
'궁금해. 꾸루만 불러서 확인하면 바로 알 수 있잖아. 그래서 서두르지 않는 거야.'
박원일에게 전령조를 한 마리 붙여두었다.
<집사! 지금 확인해 보자. 궁금하다.>
'나쁘지 않지.'
꾸루를 불렀다.
꾸루와 함께 전령조 한 마리가 날아왔다.
박원일에게 붙여두었던 전령조였다.
'여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꾸루에게 묻는 순간 꾸루가 전해주는 정보가 전달되었다.
우리가 떠난 후 몬스터가 몰려왔다.
강한 살기가 있다가 사라지자 몬스터들이 더 몰린 것이었다.
주워 먹을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아무튼 총을 빼앗긴 놈들은 처절하게 몬스터를 상대했다.
하지만 한두 명씩 몬스터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경호원들이라 제법 잘 몬스터를 상대했다.
F급 몬스터만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몬스터의 수가 너무 많았다.
죽임을 당한 경호원의 수가 적지 않았지만 어찌어찌 한 번의 공격은 이겨낼 것도 같았다.
그리고 그때까지 박원일은 살아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얼굴들이 등장했다.
불청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박원일의 운명을 갈랐다.
냄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