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 냄새
<쟤들은 도대체 누구야?>
나호가 박원일 일행 앞에 나타난 사람들을 보며 혼잣말처럼 하는 말이었다.
나에게 묶여 있는 나호는 꾸루가 전해주는 정보를 볼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람이야. 쌓인 원한이 많은 모양이지.'
사실 바닥에 찍힌 발자국을 보고 달아났던 세 명의 경호원들이 돌아와서 박원일을 처리했다고 생각했다.
몬스터도 어쩌면 경호원들이 박원일 일행이 있는 쪽으로 유인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한참 몬스터에게 공격을 받고 있을 때 나타난 사람들은 복면을 쓴 다수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박원일 일행 전부를 죽이고는 박원일의 시체를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버렸다.
그리고 그 시체는 몬스터의 먹이가 되었다.
이곳에 이렇게 피가 낭자한 이유도 복면을 쓴 사람들이 칼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내부 소행이겠지?>
'그럴 확률이 가장 높지 않을까?'
박원일이 이곳으로 향한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었다.
혼란한 틈을 타서 사고를 위장해서 죽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덤터기를 씌우고 싶은 누군가일 수도 있고.'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차량의 위치가 우리 마을과 너무 가까워. 우리가 쫓아내다시피 한 이후에 우리가 마을에서 나왔잖아. 구완을 구하러 간 것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어.>
오해를 사는 것은 걱정하지 않지만 민심을 잃는 것은 싫었다.
지금은 언론이 잠잠하지만 사회가 복구되면 기레기들이 다시 날뛸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때 이 일을 어떻게 보도할지 눈에 선했다.
<집사 어떻게 해? 이거 치울 거야?>
'우리가 왜? 신경 쓰지 않아. 오히려 치우면 더 의심할 거야. 내비 둬. 이 사람들이 함께 목격했잖아.'
반반이 가족 등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놈들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리면 그만이야.'
<와우! 아주 마음에 드는 대답이네. 우리 집사 많이 컸네.>
'그래 아주 고맙다.'
"이대로 가실 겁니까?"
구완 씨가 물었다.
"전투가 있었던 것 같지만 아무도 없으니 가야죠."
"혹시 이 근처에 생존자가 있지는 않을까요?"
"없습니다. 이미 둘러보았습니다."
"예? 언제···?"
질문을 하던 구완이 어깨로 내려앉는 쪼롱이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물과 소통이 가능하신 것 같습니다."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구완의 나이는 지금 마흔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내게 깍듯하게 대하고 있었다.
전생에도 누구에게든 친절했던 사람이었다.
"······."
그저 미소를 지어보였다.
구완이 내 미소의 의미를 알았는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둘만 있는 곳에서도 개인이 가진 재능에 대해 묻는 것은 실례였다.
그런데 지금 반반이의 등에는 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동물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을 직접 인정을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제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일부러 그러신 것은 아닐 테니까요."
<적절한 대답이다. 영리한 사람이니 집사가 이렇게 대답한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했을 거야.>
"형! 그 새, 형이 키우는 거예요?"
아이들은 동물을 닮은 몬스터가 공격을 하는데도 아직 동물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친구야. 쪼롱이!"
"쪼롱이요? 귀엽게 생겼다. 만져 봐도 돼요? 그 새 머리의······."
동훈이는 잠시도 입을 쉬지 않았다.
모든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이근택에게 공격을 당했던 것은 까맣게 잊은 것 같아서 다행스러웠다.
그렇게 걸음을 옮겨 월평에 도착했다.
그런데 월평에 몬야크를 타고 나타나자 다시 이전과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나만 타고 있었으면 동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반이 가족 등에 사람들이 타고 있는 것을 보고 동요를 한 것이었다.
"사람을 태우고 돌아왔어."
"아이들이야. 아이들을 태웠다고!"
"어디선가 구해온 것이 분명해."
"우리도! 우리도 받아주세요."
"너무 춥습니다. 아이들도 추위에 떨고 있고···."
<그러게 왜 멀쩡한 집을 두고 여기서 고생을 하고 있냐고! 답답하네. 정말!>
나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답답한 상황이었다.
밖을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는다면 전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되어 있었다.
대변혁이 일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스스로 살려고 노력은 해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유에서 찾아온 사람들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이···."
동훈이 아빠가 놀라워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왔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죠?"
"예. 정말 의외입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말 멀리에서 온 사람도 있더군요."
허풍인지 아니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강원도에서 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대변혁 직전에 화순 인근에 볼 일이 있어서 와있었을 가망성이 높지만 말이다.
음머어어!
반반이가 경고하듯 소리를 내자 사람들이 물러나며 조용해졌다.
<집사! 냄새가 나는데? 이거 오래 방치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장벽을 넘어가려는데 갖은 냄새가 올라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는 냄새였다.
장벽 아래에서 터를 잡고 살면서 아무 곳에나 생리현상을 처리하기 때문이었다.
"으! 냄새!"
장벽을 넘어가는데 동훈이가 코를 막았다.
"동훈아! 그러는 거 아니야."
동훈이 아빠가 주의를 주었지만 냄새가 나는 것이 사실이었다.
동훈이는 코에서 손을 내리지 않았다.
<간이 화장실은 없는데···. 한쪽으로 재래식 화장실을 만들어 줘야 하나? 월평을 위해서라도 화장실은 필요할 것 같은데?>
대변혁 이후에는 재래식 화장실이 한동안 다시 사용되었다.
아직까지는 수돗물이 나오지만 조만간 나오지 않는 곳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이런 시골은 물이 나오지 않아도 해결할 방법이 많지만 도심은 아니었다.
그래서 대변혁 이후에 씻고 싸는 것은 먹고 사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 되었고 갈등의 원흉이 되었다.
'화장실을 만들어주면 이곳에 사는 것을 허락한 것이라고 생각할 거야. 불편하면 스스로 만들겠지. 조금 더 지켜보자.'
아이들만 있다면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 받아들이고 그것이 힘들다면 필요한 시설은 무엇이든 마련해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벽 아래에 모인 사람은 거의 성인이었다.
자신의 일쯤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이었다.
솔직히 화장실 하나도 만들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볼일을 보는 것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우리는···."
"담장 아래에서 죽어가는 우리는 버려두고!"
"가족은 내팽개치고 불우이웃은 돕는다더니 딱 그 짝이군."
"그러게. 얼굴 날 일만 하겠다는 거지. 실망이야."
"우리가 독도를 사먹은 것이 얼만데."
"맞아. 월평이 이런 준비를 하는데 우리도 일조를 한 거라고!"
반야까지 장벽을 넘어 마을로 들어오고 나자 불평을 쏟아내는 사람들이었다.
아무도 듣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두 사람이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하자 들풀이 번지듯 번져나갔다.
"너무 그러지들 말라고! 그래도 여기 있어서 괴물들로부터는 안전하지 않은가."
"참 별꼴이야. 월평에서 뭐 받아먹었어요? 왜 그리 월평 편을 들고 그래요? 속이 상해서 그러는데 함께 씹지 않을 거면 가만이나 있어요!"
"너무 심한 것 같아서···."
"심하기는 뭐가 심해요? 동상 걸릴 것 같은데. 우리는 쫄쫄 굶고 있는데 고기를 굽는지 어쩐지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던데···."
"맞아요. 배려라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춥고 배가 고프니 자신들이 음식 냄새에 예민해진 것은 생각하지 못하지. 아니 배가 고프면 뭐라도 해서 먹을 생각은 않고 왜 저러는 거야? 집사는 이해가 돼?>
'담장 너머에 음식 창고나 다름없는 곳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럴 거야. 우리 마을에 들어왔던 것의 절반 이상이 음식이라는 것은 소문이 났을 테니까.'
<그러니 이해가 되지 않고 어이가 없다는 거야.>
나호가 열을 내는 사이 우리는 회관에 도착했다.
회관 앞에는 마침 아버지께서 나와 계셨다.
"다친 데는?"
"없어요. 제가 다칠 리가 없잖아요."
"부모 맘은 그렇지가 않아. 네가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것을 알아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이 부모야."
생각해보니 그랬다.
세 분은 현재 내가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거기다 백여 개의 던전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계셨다.
그런데도 세 분은 조심하라는 말씀을 달고 사셨다.
"나가면 자주 전령조 보낼게요."
이 방법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으음! 집사는 현명해. 걱정을 하시면 최대한 걱정하시지 않도록 하면 되지. 자주 연락만 해도 걱정을 줄일 수 있을 거야.>
'그렇지.'
"그렇게 해주면 우리야 고맙지. 그런데 이 분들은?"
"아! 나갔다가···."
"여긴 내가 알아서 하마. 회관에 들어가 봐라. 오래 기다렸어."
"예."
순번을 정해서 던전을 함께 가기로 했기 때문에 2팀은 제법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날이 어두워진 이후여서 미안하기도 했다.
회관에 들어가 2팀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일 들어가도 좋다고 했지만 2팀원들은 자신들도 빨리 던전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저희도 무기를 얻고 싶습니다. 1팀이 얻은 무기를 봤는데 정말 멋졌습니다."
"모든 던전에서 무기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무기가 나오는 던전이 특별한 던전이었다.
그 사실을 주지시킨 후에 2팀을 데리고 '월평 황이'던전에 입장했다.
2팀은 어머니께서 1조 조장을 맡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어머니께서 2팀의 팀장이라는 말이었다.
조장 다섯 명과 심상 대화를 연결한 후 던전의 검사를 받고 입장했다.
황금이 나오는 던전답게 던전을 개방하자 몬스터가 튀어나왔지만 무난하게 정리를 하고 입장한 참이었다.
<황금이 나오는 던전은 늘 그 대가를 원하더라.>
대변혁이 일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이 던전에서 처음 튀어나온 것은 E급 중반의 몬스터였다.
던전 밖으로 E급 중반의 몬스터가 튀어나왔다면 던전 안으로 들어가면 D급 몬스터까지 나올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함께 들어간 팀원들은 일부러 흘린 몬스터만 상대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 던전은 아직은 팀원끼리 입장할 수 없는 던전이기 때문에 소환수들까지 나서서 공략을 앞당기고 있었다.
마을에 있는 열 개의 던전을 최대한 빨리 개방하고 다른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집사! 이제 마을 사람들 각성 여부 정도는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팀을 운용하는 것이 편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도 생각하고 있었어. 마을 사람들이 던전은 한 번씩 경험하고 난 후에 조사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거든.'
<밝히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그렇지. 그렇게 교육을 하고 있기도 하고.'
아직은 능력치를 구매한 사람이 없어서 각성자와 비각성자의 차이가 거의 없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었다.
팀원들이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며 시간을 두는 것도 있었다.
"도축한 고기는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2팀의 팀원 한 명이 물었다.
몬스터의 고기가 제법 맛깔스럽게 보인 모양이었다.
"보관도 하고, 새들이 먹기도 합니다."
팀원들이 주변의 새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환수들은 계속해서 조금씩 늘고 있었다.
"사람도 먹을 수 있는 겁니까?"
"이 고기는 먹을 수 있습니다."
조금 전에 잡았던 몬스터는 '던전 돼지'였다.
토종 돼지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던전 돼지는 던전에서 청소부에 속했다.
특별히 가리는 것이 없이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데 직접 사냥은 꺼리는 녀석들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던전 돼지에게는 '몬'을 붙이지 않았다.
어쨌든 던전 돼지는 대변혁이후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냥감이었다.
잡기도 쉽고 많은 고기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냥 먹어도 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돼지하고 흡사한데 맛도 그러니?"
어머니께서 물으셨다.
질문을 하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모두들 던전 돼지의 맛이 궁금한 것 같았다.
"비슷한데 더 맛이 있어요. 냄새도 멀리 퍼져서 던전에서 요리를 해서 나가는 것이 좋죠."
"그 정도야?"
"예."
대답을 하는 순간 입 안에 군침이 고였다.
분신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