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 독도 업그레이드
10억 개!
마나통을 십억 개 사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마나통보다 빚이 먼저 생각났다.
이천만 마나!
아니 정확하게는 이천이만 마나였다.
이만 마나는 2월 말일까지 이자를 지불하지 않지만 이천만 마나는 자정이 되는 순간 어김없이 이자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천만 마나를 올해까지는 반드시 상환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1월 1일이 되는 순간부터 364*50에 해당하는 마나를 이자로 지급해야했다.
다음날은 365*50 그 다음날은 366*50이었다.
어마무시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이자였다.
10억 개의 마나통을 듣는 순간 빚이 생각났다는 것이 조금 우습기는 하지만 빚 때문에 마나통 구입이 늦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생각이기도 했다.
"분신술을 생각할 때가 아닌 것 같다. 독도를 업그레이드 해야겠어. 그것도 지금 당장!"
<어머니 아직 던전에서 나오지 않으셨는데? 그리고 이 야밤에 하겠다는 거야? 혼자?>
나호의 질문이 쏟아졌다.
"기존의 독도에 마나만 넣어서 가슴 통증까지 경감시키는 거니까 혼자서도 가능해. 그리고 어머니는 던전에서 아직 나오시지 않았지만 큰아버지와 아버지 계시잖아. 어서 가자."
늦은 시간이어서 두 분이 집에 계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계시지 않았다.
"어디에 가신 거지?"
<아직 회사에 계신 거 아니야?>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바로 집 옆에 위치한 회사로 가자 두 분이 소파에 앉아계셨다.
"왜 이곳에 계세요?"
"이야기 좀 하느라. 네 엄마도 아직 오지 않았고."
아버지께서 대답하셨다.
두 분이 보리차를 한 잔씩 앞에 두고 계셨는데 표정을 보니 맥주가 당기시는 모양이었다.
"한 잔씩 하고 싶으신 거죠?"
"그럼 좋지만 끊어야지. 약속했으니."
어머니도 마찬가지이지만 두 분은 주사(酒邪)가 없으시다.
그런데도 세 분은 세상이 변하면 술을 드시지 않기로 하셨다.
간혹 한두 잔 마시는 술은 몸에 이롭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대변혁 이후를 살아본 내 입장에서는 술은 달갑지 않았다.
수많은 문제가 술로 생기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변혁 이후 우리 마을에서는 술은 없애기로 했다.
물론 마시는 술만 없애는 것이었다.
우리 마을에는 다양한 도수의, 다양한 술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것은 마시기 위한 용도가 아니고 재료로 보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두 분이 지금 술이 생각나시는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으세요?"
"일은 무슨. 네가 말하는 대로 모든 것이 흘러가는데."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이 복잡해서 이야기 좀 나누고 있었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아서."
큰아버지께서는 조금 더 솔직하게 말씀하셨다.
"이거 한 잔씩 드세요. 피곤해 보이시네요."
버섯 치유수를 건넸다.
그것을 받아드는 두 분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왜 그러시지?>
'나도 모르지.'
"정말 무슨 일 있으신 거 아니죠?"
"정말 아무 일 없다. 둘이 이야기를 하다가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을 하니···."
아버지께서 울컥하셨다.
전생을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대변혁을 겪어 보니 내 전생이 어느 정도 그려지시는 것 같았다.
아버지께서 내 손을 잡으셨다.
"대한아···."
아버지께서는 더 이상 말씀을 잊지 못하셨다.
<집사! 나 두 분이 어떤 마음일지 알 것 같아.>
나호가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두 분을 바라보았다.
"그러실 거 없어요. 다 지나간 일이에요. 이제 다 좋아질 거고요. 그리고 전생도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
"그래. 그래. 내가 어떻게든 힘이 돼야 하는데 딴소리나 하고 있었으니···. 앞으로는 네가 꽃길만 걷게 내가 궂은 일은 도맡아 하마."
아버지께서 밝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달라지려고 애를 쓰시는 것 같았다.
"그래. 우리가 도와줄 테니 너는 하고 싶은 거 다 해. 세상이 이렇게 변했지만 하고 싶은 것이 있을 거 아니냐."
큰아버지께서도 거드셨다.
"있죠. 그것도 많이."
"뭐부터 도와주랴? 여기에 온 것을 보니 우리를 찾았던 것 같은데 맞지?"
"독도를 업그레이드 시키려고요. 가슴 통증이 시작됐잖아요."
아주 어린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세상 모든 사람이 대변혁으로 인한 가슴 통증과 입 냄새를 경험했다.
대변혁 전에는 마나통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통증을 계속해서 느꼈고, 대변혁 이후에는 마나통을 보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모든 사람이 통증과 입 냄새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사람이라는 동물은 참으로 간사했다.
대변혁이 되면서 통증이 사라진 사람은 다시 통증을 가지게 된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느꼈던 통증인데 말이다.
각성 예외자가 된 사람이 90% 이상이다 보니 통증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묘한 우월의식까지 갖는 실정이었다.
아직 우리 마을에서는 그런 모습들이 보이지 않지만 곧 이런 모습들이 나타날 것이 분명했다.
그 전에 약을 만들어서 보급하고 마나도 벌어들여야 할 것 같았다.
"그럼 좋지. 그런데 지금 사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구나."
"당장은 마나가 없어서 사먹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이 다 사먹게 되어 있어요. 그냥 견딜 수 있는 통증이 아니거든요."
"통증이 점점 심해진다고 했지?"
아버지께서 자신도 모르게 가슴 언저리에 손을 가져다대며 말씀하셨다.
"점점 심해질 거예요."
전생에 부모님께서는 어떻게든 약을 사드시지 않으려고 노력하셨다.
하지만 참을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마나를 주고 약을 드실 수밖에 없었다.
그건 비단 부모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나통을 잃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문제였다.
약을 먹고 통증이라도 경감되면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가짜 약들이 판을 치기 전에 독도를 파는 것이 좋기는 하지.>
나호가 전생의 일들이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대변혁이 일어나고 다시 오션 28로 인한 통증을 겪게 되자 가짜 약들이 시중에 나돌게 되었다.
그렇게 판매되는 약 중에는 가짜라는 것이 너무 명확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혹시나?'를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특히 아픈 부모나 자식을 둔 가족의 마음은 그런 유혹에 쉽게 흔들렸다.
사기꾼들은 그 틈을 쉽게 공략했고···.
이번에도 그렇게 마나를 낭비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었다.
미우라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난 후 사람들의 마음을 일시에 사로잡은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그 약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는 효과가 떨어지는 것을 팔았지만 그것만으로도 혁신적이었다.
실제로 통증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가짜 약으로 인한 피해가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사회적으로 엄청난 이득이기도 했다.
실제로 미우라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난 후 가짜 약이 발을 붙이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이후에도 간혹 미우라 길드에서 파는 것보다 나은 약효를 자랑한다는 가짜 약이 나오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아직은 가짜 약이 나올 시기도 아니었다.
"통증은 얼마나 없앨 수 있는 거냐?"
"현재는 30% 줄일 수 있어요."
"30%···?"
두 분이 말씀이 없으셨다.
<다른 것에서 30%라고 하면 대단하게 느껴지는데 병이잖아. 그것도 통증! 그래서 저런 반응이실 거야.>
병원에 갔는데 '이 약을 드시면 통증의 30%가 경감합니다.'라고 한다면 나라도 다른 병원을 갈 것 같았다.
하지만 오션 28이라고 명명된 이 병으로 인한 통증은 내가 가진 조제법이 아니면 어떤 방법으로도 통증이 경감되지 않는다.
그러니 단 10%만 경감된다고 해도 엄청난 것이었다.
"비싸게 팔 것은 아니지?"
"우리 국민에게는 비싸게 팔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외국에는 그럴 생각 없어요. 특히 일본에는 요."
"외국과 왕래가 가능하려면 더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니?"
"전생에는 그랬는데 제가 소유한 던전을 이용하면 당장이라고 가능하다고 하네요."
"당장이라도?"
"예. 화순 던전에 워프 게이트 생겼거든요."
워프 게이트라는 말에 두 분의 눈이 반짝거렸다.
"보지 못했는데?"
"보이지 않게 해뒀거든요."
당장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독도가 먼저였다.
"그럼 이제 바로 이동도 가능하다는 거지?"
"당장이라도 워프 게이트가 있는 던전으로는 이동이 가능하죠. 우선은 제가 소유하고 있는 던전으로 한정되지만요."
소유한 던전으로 이동한 후 다른 던전을 클리어하면 그 던전 안의 워프 게이트도 가동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소유한 던전의 워프 게이트만 이용할 생각이다.
괜스레 남 좋은 일까지 해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우리도 갈 수 있는 거지?"
두 분이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는데 강아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호기심을 보이신 것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것인데다 외국으로도 순식간에 이동한다고 하니 호기심이 동할 만했다.
"물론이죠. 독도 만들고 다녀올 생각이에요."
"어디를 가장 먼저 갈 생각이냐?"
소유한 던전이 백여 개라는 것을 아시니 하는 질문이었다.
"일본에 가야죠.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기도 하고요."
<일본에 있는 던전을 열 때는 아버지는 모시고 가지 않아야 해.>
나호가 재빨리 귓속말로 말했다.
'당연하지.'
아버지를 모시고 간 채 일본에 있는 던전들을 개방한다면 아버지께서는 상당히 혼란스러워할 것이 분명했다.
"네가 폐가 되지 않는다면 나도 함께 가마."
"나도···."
두 분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을 하셨지만 표정에는 호기심이 가득해서 소년처럼 보였다.
"이동을 하면 몬스터를 맞닥뜨릴 수 있어요. 그것도 던전의 가장 안쪽의 몬스터를요. 그러니 처음에는 제가 먼저 가서 클리어를 하는 것이 안전해요."
"그럼. 기다려야지. 그런데 너도 위험한 것은 아니지?"
"저는 걱정 없어요."
두 분을 안심시켜 드린 후에 공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로 독도를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마나를 부여하려고 했다.
그 순간 시스템의 음성이 들렸다.
[띠링! 독도에 부여하는 마나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자 찾아왔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배알이 꼴렸다.
시스템의 의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명은 무슨? 마나 긁으러 왔으면서.>
나호가 톡 쏘아붙였다.
다른 때라면 모르지만 이럴 때는 시스템은 아주 아량이 넓었다.
[어떤 의도인지가 중요하겠습니까? 결과물이 중요하지.]
<어떤 의도인지가 중요하지. 그것도 아주 많이. 네가 평상시에 말하는 것과 완전히 상반된다는 거 알고 있지?>
[가치라고 하는 것은 때와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법입니다.]
시스템과 조금 친숙해진 이후에 나호는 시스템과 이런 말싸움을 자주했다.
이것이 사실 꼭 나쁜 건 만은 아니었다.
저런 대화를 통해 의도치 않은 정보를 얻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명해줘."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시스템이 각 잡고 나오면 은근히 걱정되더라.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나 싶어서 말이야.>
사실이었다.
시스템이 분위기를 잡을 때면 늘 폭탄이 투하됐었다.
[이번에는 정말 정보만 드리는 겁니다.]
믿기지 않지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시스템의 말을 듣는 수밖에는 없었다.
[통증을 10%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1마나가 소요됩니다.]
"설마 1인분, 한 병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
[1인분, 한 병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럼 20%를 완화시키려면 2마나가 들어가는 거야? 30%면 3마나고?"
만약 그렇다면 엄청난 가격이었다.
다른 원가가 많이 들지 않는다고 하지만 유통까지 생각한다면 소비자는 10%짜리 한 병에 최소 4, 5마나를 주어야 할 것이었다.
너무 많은 마나가 들어가니 대량 생산도 어려울 수 있었다.
물론 팔리기 시작하면 나에게 마나가 들어오겠지만 말이다.
[10%는 1마나이지만 20%는 3마나입니다. 그리고 30%는 5마나가 소비될 것입니다.]
<헉! 이거 완전 도둑놈들인데? 우리가 완전 속은 거 같은데?>
나호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30%가 5마나라면 나중에 80%짜리는 도대체 얼마나 받아먹으려고?"
이렇게 많은 마나를 요구한다면 우리 국민에게조차 싸게 팔기 어려워질 것이 분명했다.
[합리적인 가격입니다.]
<합리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어. 너 이리 나와. 우리 합리적으로 한 번 맞짱 떠보자.>
나호가 씩씩거렸다.
비싸도 너무 비쌌다.
"전생에 미우라 놈도 이렇게 많은 마나가 들었어? 그건 아니었을 것 같은데?"
[전생의 일이긴 하지만 타인과의 거래를 발설할 수는 없습니다. 신의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강대한 님과의 거래도 이렇게 보호가 될 것입니다.]
<말은 잘해요. 아우 욕 나와! 곱게 살고 싶은데 도와주질 않네.>
"정말 이렇게 많은 마나가 든다는 거야? 정말로?"
월평을 떠나 있어야 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