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 월평을 떠나 있어야 한다는
사실 이상한 것이 있었다.
마나부여 스킬을 이미 내가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D급인 스킬이었다.
그러니 얼마의 마나가 들든 내가 하도록 내버려두면 그만이었다.
좌충우돌하면서 깨닫게 두는 것이 시스템의 방식이었다.
구매한 스킬의 효과조차 설명해주지 않아서 스킬의 효과를 알고 싶으면 또 다시 일정 마나를 지불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는 이런 비용은 지불할 필요가 없었다.
특별서비스를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나부여를 통해 30%까지 통증을 경감시킬 수 있다고 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시스템은 이런 상세 설명을 하고 있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말이다.
"나에게 원하는 일이 있는 거지?"
<집사!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호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큰아버지와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강대한 님을 속이기는 힘들군요. 강대한 님께 받고 싶은 도움이 있습니다.]
"던전의 입구를 확보 달라는 거야?"
이건 이미 협조 계약을 통해 시스템을 돕고 있었다.
[도와주신다고 약속을 하시면 한 병당 들어가는 마나를 대폭 줄여드리겠습니다.]
"대폭?"
[그렇습니다.]
<너희 입장에서는 대폭이고, 우리 입장에서는 찔끔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한 병당 1마나가 아니고 열 병당 1마가 들어가게 해드리겠습니다.]
"얼마나 엄청난 일을 부탁하려고 이렇게 어마어마한 혜택을 주는 거야? 이거 일시적인 거 아니지?"
[아닙니다. 강대한 님께서 독도를 만드시는 한 지속적으로 혜택을 드리겠습니다.]
뮤! 뮤! 뮤!
^집사! 신중해라. 혜택이 너무 좋다. 정말 좋은 것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그만한 대가를 요구한다. 그것도 아니면 사기이거나.^
언제 왔는지 도뮤가 어깨에 앉으며 말했다.
자신의 자리인 오른쪽 어깨였다.
두 분의 시선이 도뮤에게 향했지만 도뮤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도뮤 말이 맞아. 시스템이니 더 알아봐야해. 덥석 하겠다고 하면 절대로 안 돼.>
"그럼 20% 열 병에 2마나, 30%에는 3마나 이렇게 해줘. 나중에 70%에는 7마나로 하고 대신 80%는 10마나로 해. 최고급은 비싸게 팔 수 있으니까."
[저희에게 너무 손해가 큰 거래입니다.]
"너희에게 손해라고? 독도에 마나가 부여돼서 너희에게는 실질적으로 마나가 가지 않는 거 아니었어?"
[······.]
<뭐야? 왜 대답이 없어? 집사 이거 우리가 그동안 완전히 속은 것 같은데? 약에 부여하는 마나의 일부마저 시스템에게 가는 거였어?>
나호가 폴짝 뛰며 말했다.
사실 이것은 나도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전생에 마나가 부여된 약은 비싸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마나가 부여된 약은 약효가 탁월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거야?"
내가 들어도 깜짝 놀랄 만큼 차가운 목소리였다.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구의 마나는 저희가 관장합니다. 그러니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 것뿐입니다.]
시스템이 말이 진실이라고 해도 속이 상했다.
"그렇다는 말은 얼마든지 깎아줄 수도 있다는 말이잖아. 그리고 실질적으로 약에 들어가는 마나는 미량이라는 거고."
<한마디로 사과 주스가 아니고 사과 '맛' 주스라는 거지.>
나호가 한껏 비꼬아 말했다.
발끈할 법도 한 말이었지만 시스템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나와 관계되는 일에 있어서는 참을성이 참 좋은 시스템이었다.
[관장을 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해진 규칙이라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어디서 가르치려고 들어! 기분 나쁘게! 이제 너희 말은 걸러 들을 거야. 촘촘한 채가 아니라 듬성듬성한 채로.>
꼬물!
^시스템은 욕심쟁이! 그럼 못써!^
꼬물이가 짐짓 엄하게 글씨를 썼다.
[강대한 님께서 도움을 주신다고 하면 강대한 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겠습니다.]
꼬물이가 나서서 그런가?
갑자기 얌전하게 대답하는 시스템이었다.
시스템은 묘하게 소환식물들에게 약했다.
물론 착각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너무 얼토당토하지 않은 것을 부탁하면 들어줄 수 없어."
[강대한 님이시라면 가능한 일입니다. 대신 시간을 조금 많이 걸리는 일입니다.]
"시간? 얼마나? 설마 한동안 이곳을 떠나 있어야 한다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최소 보름에서 최대 한 달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집사! 시스템의 시간 계산 알지? 쟤들은 인간을 기계로 생각해. 쉬는 시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이건 이미 경험을 해봐서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시스템이 보름에서 한 달이라고 말하면 그 배는 잡아야 했다.
한 달!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엄청 중요한 시기였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과의 격차도 벌려야 하고 아직 모으지 못한 전생의 인연도 모아야 했다.
일본에 가서 일본의 던전을 개방하고 그 결과도 지켜봐야 했다.
그런데 시스템에게 도움을 준다고 하면 이 모든 일을 할 수 없었다.
"지금 한 달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것입니다.]
독도에 들어가는 마나를 십분의 일 이상 줄여주겠다고 했다.
10%만 생각했을 때 십분의 일이었다.
그 이상을 생각하면 내가 받는 혜택은 엄청났다.
하루 이틀 받는 혜택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데 왜 이리 찝찝한지 모르겠다.
"꼬물아! 도뮤야! 너희 생각은 어때? 아니 그것보다 일부 소환수들을 여기에 두고 가도 되는 거지?"
[상관없습니다. 어디서든 소환을 하시면 대기실로 복귀할 것입니다.]
소환수이니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지시한 일을 수행하면서 있을 수 있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대신 회복이 지금처럼 이루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대기실로 들어와서 휴식을 취할 수 없으니까요.]
휴식을 취하기 위해 대기실로 언제든 들어올 수 있지만 들어온다면 다시 월평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내가 먼 곳에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다면 일부 소환수들은 남겨두고 갈 수밖에 없었다.
"언제 해야 하는 일인데?"
[최대한 빨랐으면 좋겠습니다.]
<치! 자기들 마음대로야! 집사 다른 대가도 달라고 해. 그냥 해주면 안 돼!>
독도의 마나를 대폭 줄여주기로 했기 때문에 다른 조건은 받아들여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을 해보았다.
[충분한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더 이상은 형평성을 생각해서라도 드릴 수 없습니다.]
<형평성 같은 소리하고 있어! 형평성 생각해서 세상을 이 꼴로 만들었어? 세상이 뒤집히기는 했으니 형평성이 맞아졌다는 거야? 너희가 말하는 형평성은 하향평준화야?>
나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실망은 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꼬물!
^저 말은 진실이기는 해!^
뮤! 뮤! 뮤!
^때론 진실이 무서울 수도 있는 거야. 늘 조심해.^
꼬물이와 도뮤가 자신들의 의견을 말했다.
"바로 갈 수는 없어. 시간을 좀 줘. 독도도 완성을 해두어야 하고 이곳도 조금 더 정돈을 해야 해."
[24시간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그렇습니다.]
<독한 거! 시스템은 역시 독해! 그럼 앞으로 독도는 열 병에 1마나야!>
[10%가 그렇고, 20%는 2마나··· 80%는 10마나입니다.]
시스템이 확인을 하듯이 다시 계약 내용을 말했다.
"하나만 추가해줘. 내가 최선을 다했는데도 너희가 말한 기한을 넘긴다면 그에 대한 보상을 해줘!"
<옳거니! 너희가 말하는 기한은 너무 살인적이야. 이런 시기에 가족을 떠나는 것은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야. 지금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기연도 포기해야 하는 거고.>
[그 모든 것을 감안해서 대가를 드렸습니다만.]
이빨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만큼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는 시스템이었다.
꼬물!
^미워할 거야! 우리 집사 말 흘려들으면!^
꼬물이가 거대한 뿌리를 하나 꺼내들었다.
평상시에 주로 사용하는 일곱 개의 뿌리가 아닌 굵고 강해보이는 뿌리였다.
그 뿌리를 묵직하게 흔드는 것이 위협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띠링! 특별히 인심 써서 저희가 부탁한 일을 수행하다 얻게 되는 보상의 30%를 드리겠습니다.]
<뭔데 보상이 나온다는 거야? 던전을 클리어 해달라는 건가?>
꼬물!
^조금 더 쓰지?^
[50%! 절반 드리겠습니다. 이것이 최대치입니다. 이제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이상은 드릴 수 없습니다.]
꼬물!
^진작 그럴 것이지. 다음부터는 미리미리 잘 해!^
꼬물이가 굵은 뿌리를 대기실로 복귀시켰다.
그리고는 대기실 입구에 여리고 하얀 뿌리로 하트를 만들어서 열심히 흔들었다.
조금 전의 무시무시한 모습과는 너무도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뭐야?>
"나도 몰라!"
꼬물이가 무서워서 들어준 것은 아닐 것이었다.
원래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인 법이었다.
시스템은 던전 식물들을 아꼈고 그 중에서 특히 꼬물이를 많이 아끼는 것 같았다.
지독한 냄새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이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버섯만 토해내던 던전이 치유버섯을 길러내기 때문인 것 같았다.
물론 이 모든 것도 우리의 추측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꼬물이는 하트를 흔들며 스스로의 성과를 자축하고 있었다.
"잘했어! 꼬물아! 우리 꼬물이에게 잘 보여야겠네."
꼬물!
^이미 충분히 잘 보였어.^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이 쓴 글씨 주변에 하트를 수없이 그려 넣었다.
글씨가 하트의 숲에 파묻혀버렸다.
이렇게 말하면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꼬물이는 여러 개의 뿌리로 동시에 글씨를 쓰기 때문에 순식간에 해내곤 했다.
정말 신기한 녀석이었다.
뮤! 뮤! 뮤!
^내 친구! 자 이거 선물이야. 이건 특별히 좋은 황금이야. 봐. 색깔이 다르지?^
도뮤가 꼬물이에게 황금 구슬을 하나 건넸다.
물론 입에서 꺼낸 것이었다.
앞발 전체를 입안에 넣어서 꺼내주는 것인데 아직도 저 모습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입안에 손을 넣을 때면 입만 보였다.
그런데 도뮤는 이상하게 꼭 누군가가 볼 때 입안에 발을 집어넣었다.
스스로는 그 행동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도뮤가 토해내는 황금 구슬의 크기가 도깨비들 중에서 가장 크기는 했다.
그리고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그래서 시스템에게 팔 때에도 요즘에는 도뮤가 제련한 황금은 더 비싸게 팔았다.
꼬물!
^고마워. 자. 너도 이거 마셔! 꼬마가 만들었어. 아주 좋은 거래.^
뮤! 뮤! 뮤!
^이런 거 마시지 않아도 되는데. 흐흐흐! 잘 마실게.^
<무슨 약인데 도뮤 표정이 저렇게 변하는 거야? 저거 아무래도 수상한데? 언제부터 저 약 먹었지?>
"글쎄? 나는 두세 번 본 것 같아. 궁금하면 직접 물어봐."
<됐어. 말할 필요가 없는 거겠지. 소환수들도 자기들 나름의 일도 있을 수 있고.>
도뮤과 꼬물이는 속닥거리는 것이 한참 더 이야기를 할 것 같았다.
[띠링! 강대한 님! 그럼 계약이 성립한 것입니다.]
"아니지. 기간을 초과하면 50%의 전리품을 준다고만 했지. 기간 안에 끝나면 전리품은 전혀 얻지 못하는 거야? 나만 너희를 도울 수 있는데?"
[강대한 님!]
시스템이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도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족과 한 달 이상 떨어져 있어야 했다.
거기다 전리품이 있다면 보통의 것은 절대 아닐 것이 분명했다.
보통의 물건이라면 이런 대단한 조건을 내걸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저희가 보름에서 한 달 걸린다고 했으니 보름 안에 끝나면 한 달을 초과하는 것과 동일하게 전리품의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저희도 시간을 단축하면 이득이니까요.]
<저건 거의 불가능해. 소환수를 모두 동원해도 안 될 거야.>
나호의 말대로였다.
시스템이 시간을 계산할 때는 나의 모든 역량을 감안해서 계산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보름에서 20일 안에 끝나면 10%, 20일에서 25일은 20%, 25일에서 30일은 30%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최선을 다했을 때만 시간은 흘러갈 것입니다.]
<녜녜! 어련하시겠어요? 짠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독하기까지 해.>
나호의 비아냥거림을 들었을 텐데 시스템은 다시 한 번 계약 내용을 설명했다.
서로 동의를 하고 나자 상태창의 특이사항 창에 이 내용이 기록되었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정확하게 24시간 이후에 출발한다고 했다.
"이거 서둘러야겠구나."
시스템과의 대화를 흥미 있게 듣고 계시던 두 분이 함께 바빠지셨다.
"우선 독도부터 만들어 놓을게요."
병에 옮겨 담지 않은 독도가 커다란 둥근 스텐 통에 담겨있었다.
가정용 스텐 통이 아니라 공장용이기 때문에 엄청난 양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이게 몇 병이나 나와요? 만 병 정도 나올 것 같은데?"
"만 병 조금 더 나오는 거다. 여기다 바로 하면 되는 거냐?"
"예. 우선 세 통만 할 게요."
그렇게 말씀을 드리고 독도에 마나를 부여했다.
몸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마나가 충분히 있었기 때문인지 어떤 느낌도 들지 않아서 제대로 된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불안해하자 꼬마의 뿌리가 독도에 살짝 닿았다.
할머니들이 간장 맛을 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꼬물!
^정확하게 10%래요.^
꼬물이는 꼬마의 활약이 기꺼운지 하트를 흔들었다.
꼬물!
^이건 20%!^
꼬물!
^30%! 정확하대요.^
"고마워! 너희가 있어서 다행이야. 속이 다 시원하네."
소환 식물들이 아니었다면 답답했을 것이었다.
"10, 20, 30프로에요."
"알았다. 바로 표시를 해두어야지."
"중복해서 먹는다고 해서 효과가 상승하는 것은 아니지?"
아버지께서 물으셨다.
"10%를 먹고 난 후 20%를 마시면 효과가 상승하죠. 하지만 20%만 될 뿐이에요. 다시 30%를 마셔도 마찬가지죠."
"그럼 30%짜리를 먹고 10%, 20%짜리를 먹으면 아무 효과를 느끼지 못하겠구나?"
"그렇죠. 아버지부터 드셔보세요."
"내가 먼저 먹어도 될까?"
"뭘 그리 망설이고 그래? 아들이 만들었으면 냉큼 먹어야지."
큰아버지께서 등을 떠밀자 그제야 아버지께서 한 병 분량을 떠서 드셨다.
"어떠냐? 덜 아파?"
큰아버지께서 아버지께 물었다.
"확실히. 덜 아프네. 이거 신기하네. 보기에는 달라진 것 같지 않은데."
아버지께서 신기해하셨다.
"여기에서 봐서 똑같이 보이는 거예요. 이거 햇볕에 비추어보면 확연한 차이를 보일 거예요?"
"그러냐? 신기하구나. 그건 그렇고 이젠 뭘 해야 하는 거냐?"
일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