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 저놈 뭐하는 거야?
"아직 확실한 것은 어느 것도 없어. 섣불리 예단(豫斷)할 필요는 없어. 꼬물아. 거대 몬스터들은 어디로 갔대?"
꼬물!
^사라졌다고 하네요. 저 쪽으로!^
꼬물이가 가리킨 곳은 미우라의 장례식장이 있는 쪽이었다.
"저쪽으로 가고 난 후에는 다시 오지 않은 거야?"
꼬물!
^쟤도 그것이 이상하다고 했어요. 배가 고파서라도 올 것 같은데 오지 않았대요.^
"그래? 이상하네. 누군가 잡았나?"
<에이! 집사!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거대 몬스터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지들끼리 싸우다 죽었다면 모를까! 굶어죽었을 수는 있겠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몬스터가 던전에서 나와서 굶어주는 경우는 실제로 있었다.
극히 드문 경우이지만 선호하는 먹이가 확실한 몬스터는 자신이 원하는 먹이만 쫓다 굶어죽었다.
이해되지 않았지만 실제로 전생에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다.
물론 굶어죽을 때까지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학살에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학살 그 자체였다.
배고픔에서 오는 짜증과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에 푼 것이었다.
당시에는 그래도 다들 천운이라고 생각했다.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운 좋게 식성이 까다로운 놈이 나왔나?"
<모르지. 일본 놈들이 말했듯이 운이 좋았는지도. 집사 가볼 거야?>
"던전들도 개방할 겸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던전의 개방은 사실 어느 곳에서든 할 수 있었다.
내가 일본으로 올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직접 온 것은 이 시기의 일본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놈들이 주장했듯이 평온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전생에 일본 놈들은 유난히 강조를 했었다.
일본은 대변혁이 거의 빗겨간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말이다.
통증도 가장 늦게 시작되었고, 자연 치유도 가장 많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자연 치유된 것이 사실은 마나통을 잃어버린 것이라는 것이 알려지고 난 이후에도 이런 주장을 멈추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때에는 일본의 힘이 너무도 강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일본의 선봉에 서 있었던 사람이 미우라였다.
<드디어 미우라 놈을 보게 되겠네. 흐흐흐! 오줌싸개로 만들어 버릴 거야.>
나호도 미우라 놈을 빨리 죽일 생각은 버린 것 같았다.
이런 세상에서는 종종 죽음도 축복이 될 때가 있었다.
미우라 놈에게 그런 천운을 안겨줄 수는 없었다.
앞으로 미우라 놈은 평생 가슴 통증을 느끼며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방향이 정해졌으니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미우라의 장례식장이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도시는 난장판이었다.
부서진 건물도 많았고 그 사이를 오가는 몬스터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한국은 양반이구나. 전생의 한국보다 더 심한 것 같은데?>
늦은 시간이라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은 없었다.
몬스터가 돌아다니니 어디로든 숨어들어갔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미우라가 운영하던 파친코 가게가 있는 거리에 도착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게 무슨···."
정말 이런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파친코 가게는 사라졌다.
파친코 가게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건물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공동화 현상이 일어났나?"
<구멍이 뚫려버린 것 같다는 거지?>
"어. 저기 봐."
일대가 완전히 주저앉아서 아래로 깊이 처박혀 있었다.
<집사! 전생에 이런 일이 있었나?>
"이 시기에는 알 수 없지. 우리가 일본에 왔던 것은 대변혁 3년 후였으니까. 그때쯤에는 복구가 됐을 수도 있지. 그리고 일본 놈들은 자기들 이미지를 깎아 내릴 만한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아."
<혹여 알려져도 어떻게든 미화하려고 하더라. 지긋지긋할 정도로 집요하게 말이야.>
반경 백 미터 이상이 땅속으로 30에서 50미터 이상 가라앉아버린 것 같았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 같았다.
"거대 몬스터도 여기에 빠져서 죽었을 것 같은데?"
<이 일대의 사람들에게는 어찌 보면 행운이었겠네.>
가라앉은 건물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재앙과 다른 없는 일이었지만 그 이외의 사람에게는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었을 것 같았다.
<집사! 내려가 볼 거야?>
"뭐하게?"
<거대 몬스터라고 하니까 혹시 모르잖아.>
"이미 부패가 시작됐을 거야. 그럼 얻을 것도 없어."
<신선도가 중요하기는 하지. 가자.>
나호가 앞장섰다.
은신을 걸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는 없었다.
"모두 빠지지는 않았을 텐데?"
몇 마리나 나왔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모두 거대 공동(空洞)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거대 몬스터는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그 어느 때보다도 장례식장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귀신 나올 것 같네.>
꼬물!
^네가 귀신이잖아! 영체쟁이!^
실체를 가질 수 있게 됐는데도 영체로만 남아있는 나호를 놀리는 말이었다.
<어? 연못이 부글부글 끓는데?>
미우라의 장례식장에는 연못이 세 개나 있었다.
그 중에서 미우라가 빠졌던 연못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는데 이게 심상치 않아 보였다.
"지진이 나려고 하나?"
<지진? 땅이 꺼진 것도 지진의 전조 증상으로 생각하는 거야?>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대변혁 직후에 지진이 났었을까?>
"모르지.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원전 인근에서 지진이 나서 세계에 입힌 피해가 적지 않았다.
일본 원전 때문에 수산물을 기피하게 됐다는 사람들이 많아지던 참이었다.
대변혁까지 일어났으니 지진이 날 법도 했다.
대변혁 전까지 잠시 사용했던 SSS급 은신은 사라진지 오래였고, 그 이전부터 구매해서 키운 D급 은신을 걸고 있는 참이었다.
SSS급 은신을 사용하다 D급 은신을 사용하면 허접하기 그지없지만 지금으로는 이 정도도 대단한 것이었다.
말만 하지 않으면 충분히 은신으로의 가치가 있었다.
<내가 먼저 다녀올게.>
나호가 미우라 놈의 숙소로 들어갔다.
이제 10미터를 떨어질 수 있으니 미우라 놈 숙소를 구석구석 살필 수 있었다.
<집사! 이놈 없어. 여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디 갔을까?>
'나호야. 나와도 되겠다. 미우라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아.'
현재 나의 감각 능력치는 자그마치 29였다.
더구나 조용한 밤이어서 놈의 소리가 더 잘 들렸다.
<어디서 들렸어?>
'왜 내가 머물렀던 방에서 그놈 소리가 들렸을까?'
<정말? 이놈 미친 거 아니야? 당장 가보자.>
우리는 바로 내가 머물던 숙소가 있는 건물로 왔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숙소였다.
<어? 이놈 정말 여기에 있어.>
먼저 올라가본 나호가 말했다.
꼬물!
^으으으! 더러워! 집사 가지 마. 지지! 지지!^
꼬물이가 질색을 했고, 도뮤는 눈을 가렸다.
'왜 그래? 나호야?'
꼬물이와 도뮤는 질색을 하는데 이상하게 나호는 미우라가 내가 머물던 숙소에 있다는 말을 하고 난 후 조용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점프를 해서 베란다에 올라섰다.
이 베란다는 분위기를 내기 좋은 곳이었다.
잘 가꾸어진 연못과 정원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묘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왜 그런 분위기를 내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미친 놈!'
베란다에 사냥한 몬스터의 사체 일부가 놓여 있었다.
<집사! 왔어? 봤지? 이놈 제법 잘 성장한 것 같아.>
미우라 놈은 비세계에서부터 남달랐다.
전생에 왜 미우라가 세계 최강으로 성장했는지 알게 해주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해체한 것으로 보이는 몬스터의 사체는 한 종류가 아니었다.
던전쥐는 물론이고 늑대 가죽까지 있었다.
'혼자 잡았을까?'
<설마? 벌써 몬늑대를 혼자 잡았다면 놈은 천재야.>
'천재일 수도 있지.'
전생에 미우라는 우연히 마나통을 가지고 비세계에 소환된 것이 행운이 되어 세계 최강이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하나의 행운만으로 세계 최강이 될 수는 없었다.
분명 남다른 감각을 가졌을 것이 분명했다.
"흐흐흐! 흐흐!"
그때 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미우라 놈의 소리였다.
조용히 숙소로 들어가 보았다.
놈은 안방에서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 저건?'
미우라 놈은 작은 화면을 재생시키고 있었다.
<집사의 활동 모습만 잘라낸 거야. 이상하지 않아?>
장례식장에 근무했을 때 내 모습을 반복해서 보고 있는 미우라였다.
현재는 인터넷이나 TV는 나오지 않지만 충전만 할 수 있으면 기존에 찍어둔 영상은 볼 수 있었다.
저 영상은 대변혁이 오기 전에 편집을 했을 것이 분명했다.
'왜 저런 영상을 편집했을까?'
<모르지.>
미우라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화면속의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언제 씻었는지 몸에서 냄새까지 났다.
아마 대변혁이 일어나고 난 후 씻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마지막 소환이 끝나고 난 후 편집했나?'
<혹시 비세계에서의 집사를 기억했을까?>
'특정인이 기억나는 경우는 거의 없어.'
<그렇게 듣기는 했지만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잖아.>
'미우라가 비세계의 나를 기억한다면 전반기의 비세계를 기억해야 해. 후반기에는 거의 접점이 없었어. 시스템의 방해 같기도 했지만 말이야.'
첫 번째 소환과 두 번째 소환!
이 두 번의 소환을 기억한다면 비세계의 나를 떠올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생의 누구도 첫 번째 소환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만약 미우라가 첫 번째 소환까지 기억한다면 거의 불가능을 이룬 것이었다.
그렇다면 미우라를 살려둘 수 없었다.
<그럼 저놈 왜 저렇게 뚫어지게 영상을 보고 있는 거야?>
'잠시 지켜보면 알겠지.'
"흐흐흐! 흐흐!"
미우라 몸에는 제법 많은 금붙이가 걸려있었다.
마지막 만났을 때도 없던 것이었다.
대변혁과 동시에 몸에 지니고 있지 않던 금은 모두 사라졌으니 저것은 미우라가 대변혁 전에 몸에 지니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역시 감각이 좋았네.'
<집사가 금으로 받으니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나?>
놈이 보는 영상은 CCTV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개인 방송 영상과 뉴스 영상까지 있었다.
한 마디로 나에 관한 자료를 모았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놈이 가진 자료는 제법 많았다.
하나의 영상이 끝나면 놈은 다른 영상을 틀었다.
그런데 그냥 미친 듯이 보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 뭔가를 찾고 있었다
"흐흐흐! 흐흐!"
놈이 이런 소리를 내는 것은 화로 청소를 하는 나를 볼 때였다.
CCTV화질이 좋지 않아서 자세히 보이지 않는데 놈은 화면을 확대하기도 하고 다시 원상으로 돌리기도 하면서 꼼꼼히 확인했다.
"흐흐! 흐흐흐!"
'마나통을 눈치 챈 건가?'
<벌써? 말도 안 돼.>
'그럼 화로 청소를 저렇게 죽어라 볼 이유가 없잖아.'
<파친코 영상도 보고 있잖아.>
파친코의 CCTV는 최신 것이어서 그런지 영상의 화질이 아주 좋았다.
오픈 날 황금구슬을 연거푸 따는 것과 그 이후로도 내가 앉은 자리에서 구슬이 우르르 떨어지는 것을 유심히 보는 미우라였다.
이런 영상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집사! 저기는 해안가의 우리 사무실이잖아. 저런 영상은 어디에서 구한 거야? 도로의 CCTV영상을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거야?>
'놈이 하려고 하면 못할 것이 뭐가 있겠어? 여기 일본이야.'
<그렇지. 봉건주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나라지.>
직접 살아본 일본은 나호 말대로 정말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였다.
자기들은 무척이나 민주적인 나라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말이다.
놈이 보는 것은 우리 사무실 주변의 CCTV화면이었는데 내가 오가는 모습이 대부분이었고 야무구치가 오가는 것도 찍혀 있었다.
'저기 봐. 마나통이 들어오는 거야. 그리고 내가 들어가는 장면이 나와.'
영상 속에는 미우라도 있었다.
마나통과 황금을 가져다주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내가 사무실에서 나오는 모습도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무척이나 이상하게 보였다.
'가방이라도 하나 메고 다닐 걸 그랬나봐.'
컴퓨터 가방 하나만 메고 다녔는데 그 안에 마나통이나 황금이 들어갔다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저놈 뭐하는 거야? 왜 화면속의 집사를 더듬고 지랄이야?>
미우라의 마나통 비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