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243화 (243/350)

243. 밥값

던전을 나와서 바로 월평 황이 던전을 닫았다.

이제 이 던전은 내가 열지 않으면 열리지 않을 것이었다.

"정말 던전이 닫히는구나."

던전에 문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던전 덩굴이 그 역할을 했다.

던전을 닫는다고 하면 던전 덩굴이 던전의 입구를 완전히 막아버리는 것이었다.

열려있을 때와 닫혀있을 때의 모습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딱 보는 순간 던전이 닫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던전을 닫으면 덩굴들은 쉬는 거니?"

"아니에요. 아무도 접근하지 않으니까 움직이지 않는 것뿐이에요."

황이 던전의 던전 덩굴은 지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평범한 식물처럼 바람에 잎이나 덩굴손이 살짝살짝 흔들릴 뿐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접근하는 순간 움직였다.

그리고 접근할 수 없도록 쳐내버린다.

"만져볼 수 있는 거니?"

"어머니. 위험해요. 저런 때는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분위기만 봐도 '오지 마!'라고 말하는 것 같잖아요."

"만지면 공격하니?"

"공격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까칠한 아이들은 공격하죠."

"아! 그럼 우리 주민들에게도 말을 해두어야겠구나."

"그러시는 것이 좋죠."

거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보비가 괙괙거리며 다가왔다.

이 시간까지 자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보비 옆에는 뽀뽀도 있었다.

"왜 아직 안 잤어?"

괙! 괙! 괙!

^외출한다고 들었다.^

멍!

보비와 뽀뽀가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우리가 던전에서 나와서 이야기한 것을 보비가 들은 것 같았다.

"한두 달 정도 자리를 비울 것 같아."

괙! 괙!

^그럼 나는?^

소환수이니 당연히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마을을 지켜줬으면 좋겠어."

괙!

^주인이랑 함께 다니지 못하는 거야?^

소환수인 보비는 나와 함께 움직이고 싶은 것 같았다.

"새끼 거위들이 자라면 함께 다닐 수 있을 거야."

괙!

^보름이면 되겠구만. 그럼 다음부터는 함께 다닐 수 있겠네. 한참 아이들 자랄 때이니 내가 이해하겠다.^

"고마워."

괙!

^여기는 걱정하지 마라. 경비는 확실하게 할 테니.^

경비 거위들은 원래 경비를 잘 서는 몬스터다.

대개의 몬스터들이 그렇듯이 영역에 대한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멍!

"그래. 뽀뽀도 고맙고!"

멍!

뽀뽀가 거위들 사이에서는 무척이나 활기차 보였다.

버섯 치유수를 먹어서 그런지 노견(老犬)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말을 마친 보비가 뽀뽀와 함께 장벽을 따라 걸었다.

마을을 한 바퀴 돌 생각인 것 같았다.

<마을 경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새끼들도 보름이면 다 자랄 거고.>

"고마운 일이지. 가요."

보비와 헤어지고도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어머니께서 굳이 음식을 준비해주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큰아버지까지 음식 준비를 돕겠다고 하셔서 우리는 식당의 주방으로 이동했다.

많은 음식을 할 때는 집보다는 이곳이 나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겨우 새벽 세 시!

당연히 식당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황 관장님께서 식당에 계셨다.

"벌써 나오셨어요? 세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네 분이 모두 함께 어쩐 일이십니까?"

황 관장님께서 오히려 질문을 했다.

이 시간에 우리가 식당에 올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하신 것 같았다.

"음식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왔어요. 아람이는 혼자 둬도 괜찮습니까?"

어머니께서 조금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잘 자고 있습니다. 건강해지고는 자다 깨는 일도 없고, 일어나면 바로 이곳으로 올 겁니다. 하하!"

황 관장님께서 활짝 웃으며 말씀하셨다.

<볼 때마다 신기해. 전생에는 저렇게 웃는 거 보기 참 어려웠는데.>

전직 길드장이었던 황 관장님은 전생에는 웃는 모습을 보기 정말 어려웠던 분이었다.

늘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았지만 여유라고는 없는 삶을 살았다.

몬스터를 없애는 것이 생의 최고의 목표 같은 분이었는데 지금은 여유와 미소를 가지고 살고 있다.

저런 모습을 볼 때마다 회귀한 보람이 느껴졌다.

"그럼 다행이네요. 우리 대한이가 한두 달 자리를 비우게 돼서 음식을 좀 해주려고······."

어머니께서 짧게 내 외출을 이야기하자 황 관장님께서 함께 음식을 준비해주시겠다고 하셨다.

"대한아. 가서 너는 네 할 일 해. 우리가 음식 준비는 할 테니. 할 일이 많을 거 아니냐."

큰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할 일이 많기는 했다.

못 이기는 척 식당을 나와서 집으로 우선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서 바로 대기실의 아수라 던전에 입장했다.

내가 아수라 던전에 입장하자 나호가 호들갑을 떨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고, 학교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들이 지각한다고 하더니 옛말 그른 거 하나도 없어. 이상하게 대기실의 던전에 들어올 시간이 없는 것 같아.>

오랜만에 대기실의 던전에 입장했다는 것을 유난히 강조하는 말이었다.

"대변혁 초기라 바빠서 그렇지. 들어가자."

전생에 아수라 던전은 은근 골칫거리 던전이었다.

몬스터의 종류도 다양하고 수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몬스터의 종류가 다양하고 수가 많은 것은 여전했지만 우리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소환수들이 수시로 들어가서 정리하기 때문이었다.

대기실에 있는 던전은 내가 동행하지 않아도 소환수들이 입장이 가능했다.

"너희가 수고가 많았어."

음머어어!

아수라 던전을 정리하는 데는 반반이 가족이 가장 수고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칭찬을 하고는 바로 워프 게이트로 이동을 했다.

<다른 사람도 입장을 할 수 있으면 좋은데···.>

"그러게."

워프 게이트로 들어갔다.

[띠링! 어서 오십시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서울로 가려고 하는데."

[띠링! 서울 어느 던전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지난번 클리어 한 서울 던전으로 이동할게."

그곳으로 이동을 해야 시간을 가장 절약할 수 있었다.

[비용은 백 마나만 받겠습니다.]

"그래. 이동해줘."

[이 비용으로 이동을 하시겠다고요?]

너무 순순히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하자 시스템이 되물었다.

"그냥 이동할게. 대신 나중에 제대로 된 가격 책정되면 정산은 정확하게 해줘."

[띠링! 그러겠습니다. 그럼! 이동합니다.]

<아우! 목소리가 통통 튀다 못해 날아가겠네.>

시스템의 목소리가 유난히 밝았다.

상태창에서 백 마나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번쩍하며 시야가 바뀌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울 던전으로 이동되어 있었다.

서울 던전은 지난번에 클리어를 해두었기 때문에 이동에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

하지만 몬스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걸리적거리는 몬스터만을 정리하며 던전을 나왔다.

그리고 꾸루를 불렀다.

"안내 좀 해줘."

급하게 서울에 온 것은 경석 형 어머니를 화순으로 모시고 가기 위해서였다.

전령조가 지켜보고 있다고는 하지만 두 달 후까지 무사하실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새벽 세 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라 거리는 조용했다.

간간이 몬스터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제외하면 대변혁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무너진 건물들이 세상이 달라졌음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말이다.

꾸루의 안내를 받아 이동한 건물에 도착해서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쉽게 열지 않을 것 같아.>

현관문은 엉망이었다.

몬스터의 소행 같은데 이런 소리 때문에 쉽게 인기척을 내지 않는 것 같았다.

'역시 현명하시네.'

작은 노크 소리에 인기척을 냈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경석 형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안에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그때 나호가 문을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영체 상태이니 나호가 들어가지 못할 곳은 없었다.

<어? 집사! 문 부수고 그냥 들어와! 쓰러지셨어.>

집안으로 들어간 나호가 다급하게 말했다.

콰아앙!

문을 강하게 당겨서 열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실 특유의 냄새가 풍겨왔다.

하지만 집안은 전체적으로 매우 깔끔한 상태였다.

"뉘, 뉘시···."

큰소리에 정신이 드셨는지 경석 형의 어머니께서 작은 소리로 말씀하셨다.

"경석 형이 어머니 모시고 오라고 해서 왔습니다."

"우리···. 경석이가?"

"예. 지금 화순에 있습니다."

"화순에 갔다고 했제. 내가 함께 갔어야 했는데···. 다리가 이래서 폐가 될까봐. 우리, 우리 경석이는 어쩌요?"

"건강하게 잘 있습니다. 이것부터 드세요."

치유수를 입에 넣어드렸다.

경석 형의 어머니께서 힘겹게 치유수를 삼켰다.

"이거 뭔 약인데 이리···. 활력이 도는구만. 고맙소 우리 경석이랑 어떤 관곈지···."

"같은 마을에 있습니다. 월평에. 앉으실 수 있으시겠어요?"

"앉아야지. 괴물 소리에 놀라서 휠체어에서 넘어졌어. 팔이 부러졌는지 힘을 쓸 수가 없어서···."

넘어진 이후로는 일어나지 못하셨던 모양이었다.

팔이 부러진 것 같다는 말에 꼬마의 뿌리가 바로 반응 보였다.

하얀 뿌리가 허공에서 나타나서 접근하자 경석 형의 어머니께서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하지만 다리가 불편한 분이라 물러설 수 없었다.

"이, 이것이···."

"진찰을 하려는 겁니다. 그대로 계시면 돼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경석 형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가만히 계셨다.

꼬마의 뿌리가 경석 형 어머니 팔과 몸 여기저기를 살폈다.

꼬물! 꼬물! 꼬물!

^팔은 부러진 것은 아니고 근육이 놀랐던 건데 지금은 괜찮대요. 그런데 팔보다 폐가 좋지 않다고 하네요. 약을 지어주겠다고 했어요.^

꼬물이는 꼬마의 말을 번역할 때는 꼭 뿌리로 하트를 만들어서 흔들었다.

글 주변에 하트를 그려 넣는 것도 특징이었다.

"팔은 부러진 것은 아니라고 하네요."

"이리 아픈데?"

"근육이 놀라서 그렇답니다."

"다행이구만. 팔까지 부러지면 우리 경석이한테 짐이 되는 것이라···. 지금까지도 우리 경석이 고생만 시켰는데."

경석 형의 어머니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죽고 싶었구만. 내 새끼에게 더한 짐이 되기 싫어서···."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세상이 힘겨우면 자살자가 많아질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예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죽음이 문 앞에 도사리고 있는 세상이어서 그런지 누구든 더 살기 위해 아등바등했었다.

생존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자살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쨌든 대변혁은 단순하지 않았다.

절망스러운 세상이지만 분명 희망도 존재했다.

"경석 형에게 힘이 되어주셔야죠. 어머니 잘 하시는 일로 경석 형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요."

"내가 잘하는 것이 뭐가 있어? 다 늙어빠졌는데."

그렇게 말하는 경석 형 어머니의 나이는 아직 60도 되지 않았다.

다리가 불편해서 그렇지 충분히 젊은 나이였다.

"바느질 잘하시잖아요."

"그것도 발이 멀쩡했을 때 말이제. 다리가 다친 이후로는 틀을 예전처럼 잘 사용하질 못하니···."

"손틀하시잖아요. 그리고 이제 손바느질이 필요한 세상이 됐어요."

"물자가 넘쳐나는 세상에 무슨···."

TV와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정보를 얻을 곳이 없는 경석 형 어머니는 세상이 얼마나 변한지 모르고 계셨다.

"괴물이 나돌아 다니는 세상이 되었잖아요. 공장이 돌아가질 않아요. 그러니 손으로 할 수밖에요."

경석 형 어머니의 눈이 빛났다.

바느질을 기가 막히게 잘하시는 분이었다.

전생에 경석 형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때는 어지간한 물품은 다 만들어주셨다.

바느질로 소소하게 마나도 버셨던 분이었다.

<잘 하실 거야. 전생에는 너무 늦게 일에 뛰어드셨어. 지금부터 하시면 자리 잡기 좋지.>

경석 형 어머니는 단순히 바느질만 잘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에 맞는 옷이나 장비를 잘 만드셨다.

지금부터 시작하시면 분명 경석 형 도움 없이도 살아가실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 그럼 나는 좋지. 그런데 어떻게 화순까지···. 다리가 이래서···."

"탈 것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꼭 가지고 가야 하는 짐만 챙기세요. 경석 형 물건도요."

"이사 간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지?"

"그렇습니다. 화순에서 산다고 생각하세요."

"그럼 다 가지고 가고 싶은데···. 당장은 옷하고 이 틀은 꼭 가지고 가고 싶은데."

예전에 옷을 만드는 공장을 다니신 경험을 바탕으로 동네 분들 옷을 수선해주고 용돈을 벌고 계셨다.

발틀은 아니고 손틀이지만 가정용이 아니고 공장용 손틀이어서 크기가 제법 되었다.

"제가 챙길게요."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하자 경식 형 어머니의 표정이 환해졌다.

틀과 바느질 용품을 모두 챙겨 넣고 나머지 짐까지 챙기자 양이 제법 많았다.

경석 형 어머니께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리 신세를 져도 되는지 모르겠네."

"괜찮습니다. 가시죠."

경석 형 어머니를 업고 짐은 인벤토리에 모두 넣었다.

지하에서 나와 도로에 나와서는 바로 반반이 등에 올라탔다.

"이, 이게···."

"안심하셔도 됩니다. 이동하겠습니다."

<밥값 하는 거네. 전생에 따스한 밥 지어주신 값!>

아침이 밝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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