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 아침이 밝아오다.
경석 형 어머니께서는 멀어지는 집을 몇 번이고 돌아보셨다.
다시는 못 올 곳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반반이 등에 타자 무서워하셨지만 금세 적응을 해서 서울 도심을 부지런히 살피셨다.
"이게 무슨 난린지···. 경찰은 다 어디로 가고···."
"괴물이어서 경찰들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무너진 건물에 깔려서 나오지 못한 사람도 많을 것 같은데?"
"······."
대부분 즉사했고 깔려있었다고 해도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반반이를 타고 서울 던전으로 하고 있을 때였다.
다다다다! 다다!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아이를 품에 안은 여자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어두운 밤거리를 여자는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꾸루야!'
심상으로 꾸루에게 무슨 일인지 살펴보라고 했다.
꾸루가 직접 여자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경석 형 어머니는 여자를 아직 보지 못했다.
"지구가 망가졌제?"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세상이 많이 바뀌었죠. 자세한 것은 화순에 도착하면 경석 형이 말해줄 거예요."
여자와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다.
여자는 우리를 보고 이쪽으로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뭔가를 피해서 달리고 있었다.
꾸루는 여자를 지나쳐 뒤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이내 꾸루의 연락이 왔다.
꾸!
^칼을 든 남자가 여자를 뒤쫓고 있어요.^
'몇 명이야?'
^한 명인데 온 몸에 피칠갑을 했어요.^
'고마워.'
꾸루는 바로 돌아오지 않고 주변의 정보까지 나에게 보냈다.
다다다다! 다다!
"으어어어어!"
신음 같은 소리였다.
대여섯 살 정도 되는 아이를 안고 필사적으로 달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소리였다.
두려움과 공포에서 비롯된 소리이기도 하고, 그 공포를 몰아내기 위한 소리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서! 이년! 오늘이 네 제삿날이야!"
남자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가득했다.
"으아아악!"
남자의 소리가 들리자 여자가 더 필사적으로 달리며 몸을 숨길만한 곳을 찾았다.
그런데 이 시간에 몸을 숨길만한 곳이 있을 리 없었다.
더구나 뒤의 남자가 정확하게 여자를 보고 쫓아오고 있기 때문에 어딘가에 숨는 것도 불가능했다.
"저, 저기···."
이제야 경석 형의 어머니께서 여자를 발견하셨다.
하지만 뒤의 남자까지는 보지 못한 상태였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쉽게 도와주자는 말씀은 하지 못하셨다.
<경석 형 어머니는 경우가 있으신 분이었지. 여전하시네.>
'꼬물아. 저 여자 어때?'
도움을 주기 전에 꼬물이에게 물었다.
아이를 안고 있어서 목숨은 구해주어야겠지만 화순으로 데리고 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여서 바로 물어본 것이었다.
꼬물!
^좋아요. 괜찮은 여자에요.^
뮤!
^향기가 좋은 여자다. 각성도 했을 것 같다.^
도뮤가 각성까지 예측했다.
꼬물이에게 신호를 보냈다.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다리를 원망하며 속도를 높이는 여자 앞으로 뿌리가 접근했다.
하지만 여자는 의식하지 못했다.
"으아악! 아악! 놔, 놓으라고! 미친놈아! 엄마아아! 하나, 우리 하나···."
여자는 갑자기 무언가가 자신을 옭아매자 남자가 자신을 잡았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울부짖으며 몸부림을 하던 여자가 엄마를 찾더니 품에 안은 아이를 확인했다.
그 사이 꼬물이가 여자를 안아 올렸다.
순식간에 둥지처럼 만들어 올렸기 때문에 금세 정신을 차린 여자가 어리둥절해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높이 올라가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여자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다 자신을 쫓던 남자가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확인했다.
"야아아! 야이 써벌 년아! 너 이리 내려와! 내려 오라고오오오!"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폴짝폴짝 뛰어올랐다.
여자가 담긴 바구니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술이 취했구만. 혀가 완전히 풀렸어. 무슨 욕을 저리 험하게···."
경석 형 어머니께서 혀를 끌끌 차며 여자를 안쓰럽게 보셨다.
"야이이! 어떻게 올라간 거야! 어떻게 올라간 거냐고! 내 딸 데리고 어디가! 너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너 이리와아아!"
이런 세상에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 것은 죽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내 창문이 열리며 욕설이 들렸다.
"야이! 죽고 싶으며 혼자 죽어! 조용히 해!"
목소리는 낮추었지만 충분히 위협이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남자는 그 소리에 더 길길이 날뛰었다.
"너희 뭔 사이야! 네 놈이 저년 빼돌렸지? 그렇지! 다 알아봤다 이놈들!"
남자는 정상이 아니었다.
사냥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봐서 사냥의 흥분으로 평소의 포악한 성질이 폭발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조금 빨리 이동하겠습니다."
이런 것은 오래 보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여자와 아이가 담긴 바구니를 반반이의 등으로 옮기고는 속도를 높였다.
여자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을 하지 못했으면서도 반반이의 등에 바짝 엎드렸다.
그리고는 아이의 입을 막았다
혹시라도 남자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쯧쯧! 집사!>
나호가 가죽으로 가려주라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그 말이 꺼내기도 전에 금이가 모포로 여자와 아이를 가렸다.
경석 형 어머니까지 가죽 안으로 몸을 숨겼다.
남자가 열린 창문을 향해 몸을 돌린 상태였기 때문에 여자가 어디로 사라진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더구나 어두운 곳이어서 반반이를 보지도 못했다.
그러니 조용히 이곳을 지나가려고 하신 것이었다.
머리가 상당히 좋은 분이었다.
은신을 바로 걸었다.
이제 남자의 눈에는 반반이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어? 내 마누라! 내 마누라 어디로 갔어! 너희들이 빼돌렸지? 그렇지?"
조금 전 열린 창문 쪽으로 다가간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남자가 정상이 아닌 것을 알았는지 재빨리 창문이 닫혔다.
"야! 야!"
쾅! 쾅!
"부수기 전에 열어! 우리 마누라 내놓으라고!"
그 사이에 반반이가 남자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제야 반반이를 확인한 남자가 기겁을 했다.
어깨 높이만 5미터인 반반이었다.
음머어어어!
반반이가 낮지만 묵직한 살기를 담은 울음을 울었다.
그러자 남자가 벌벌 떨었다.
"억! 사, 살려줘어어! 아아악!"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각성한 사람이 확실하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서 있을 수 없지.'
살기를 줄이기는 했지만 일반인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자는 벌벌 떨고 있었지만 두 발로 서 있었다.
반반이가 남자를 지나쳤다.
그러자 털썩 주저앉는 남자였다.
그렇게 우리는 남자와 멀어졌다.
충분히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여자는 가죽 안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하나라고 하는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고개를 내밀던 아이가 내 얼굴을 보더니 가죽 안으로 다시 숨어버렸다.
꼬물!
^남자여서 그래. 저 아이는 남자를 무서워해. 아빠에게 많이 맞고 자랐어.^
꼬물이는 알수록 신기했다.
'그런 것까지 알 수 있는 거야?'
꼬물!
^방금 데려오기 위해 나와 꼬마의 뿌리에 탔잖아. 꼬마가 눈치 채지 못하게 진찰을 했어. 두 사람 몸에 멍이 장난이 아니야.^
드러난 곳은 그래도 멀쩡한 편이라고 했다.
온몸에 멀쩡한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학대의 흔적이 보인다고 했다.
'아니! 때릴 때가 어디 있다고 때려? 저 어린 아이를?'
아이는 아무리 많이 봐줘도 여섯 살이었다.
꼬마 말에 의하면 퍼렇다 못해 온몸이 까맣다고 했다.
벗겨놓으면 눈 뜨고 보지 못할 정도란다.
여자는 더 심하다고 했다.
여자는 피를 본 곳이 한두 곳이 아니라고 했다.
<진작 알았으면 죽였을 텐데.>
나호가 부르르 떨며 말했다.
아이를 학대했다고 하니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저런 것들은 일찍 죽어야 하는데···.'
<우리 집사가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많이 컸네.>
나호가 장난스럽게 말하며 여자와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이것부터 하나씩 드세요."
여자에게 치유수 두 병을 주었다.
"아이인데 한 병을 다 먹여도 되나요?"
"예. 한 병 다 먹이십시오. 그래야 뼈와 근육에 무리가 없죠."
여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면서도 행동은 재빨랐다.
아이에게 먹이면서 주위를 불안하게 살폈다.
"남자는 오지 못할 겁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꼬르륵! 꼬르륵!
아이 배에서 나는 소리였다.
안정을 찾아서 그런지 아니면 치료수를 먹여서 그런지 아이의 배가 음식을 원하고 있었다.
꼬르륵!
여자의 배에서도 소리가 났다.
바로 따뜻한 물을 한 잔씩 먹이고 난 후 호박죽을 건넸다.
경석 형 어머니께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정신없이 호박죽을 먹었다.
밥을 먹지 못한 지 좀 된 것 같았다.
자기 몫의 음식을 먹은 아이가 엄마 죽 그릇을 보았다.
여자가 죽 그릇을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는 그 죽까지 다 먹더니 하품을 했다.
배가 부르니 잠이 오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엄마 품에서 꼭 붙어서는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힐끔힐끔 눈치를 보는 것이 남자인 내가 무서운 것 같았다.
아빠처럼 자신을 때릴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아이에게 대기실에 있던 인형을 하나 꺼내 주었다.
잠시 눈치를 보던 아이가 인형을 받아들더니 품에 안았다.
<아수라, 아수리가 아이들 준다고 만들더니 잘 만든 것 같아.>
미리 구입해 둔 천과 목화를 이용해서 만든 인형이었다.
"고맙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갈 때가 있습니까?"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여자가 대답하기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것이었다.
의지할 곳이 있는 사람이 멀쩡한 곳이 없을 정도로 맞고 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우리와 함께 가겠습니까?"
"어디든 멀어질 수 있는 곳이라면 좋아요."
남편에게서 멀어질 수 있는 곳을 말하는 것 같았다.
여자의 의사를 확인했으니 지체할 것이 없었다.
던전에 아이와 여자가 입장하지 못하면 어쩌나 했는데 시스템이 의외의 말을 했다.
[띠링! 원래 세 사람은 던전에 입장할 수 없습니다.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모두 약을 먹었지만 정상이라고 볼 수 없었다.
특히 아이와 여자는 멀쩡한 곳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아이 엄마는 각성했지만 각성 예외자보다 못한 몸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이대로 걸어가?"
[마나를 지불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습니다.]
<헐! 마나 벌이에 혈안이 됐다고 밖에 말 못하겠다.>
[마나를 벌기 위해서가 아니고 구조를 위한 것입니다.]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라도 않지.>
[단 던전 공략을 하지 않고 바로 화순으로 이동한다는 전제가 붙습니다.]
"그건 당연한 거고. 그래서 얼마야?"
돈을 말하는 것 같자 경석 형 어머니와 아이 엄마가 긴장했다.
경석 형 어머니는 통장과 현금을 가지고 왔지만 아무 의미 없는 것이고, 아이 엄마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상태였다.
[띠링! 입장에 백 마나만 받겠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강대한 님이기 때문에 믿고 입장을 시키는 겁니다. 안전사고가 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알겠어. 삼백 마나 지불할게."
던전에 입장하는 비용으로 일인당 백 마나씩 삼백 마나를 지불하고. 다시 화순 던전으로 돌아오는데 일인당 백 마나를 지불했다.
<이 마나가 얼마나 비싼 것인지 알까?>
'지금은 모르겠지만 살아가면서 알 거야.'
<그래야 할 텐데.>
1인당 이백 마나나 든 구조 작업이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화순 던전을 통해 던전을 나온 후 마을 회관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그곳에 보비가 와 있었다.
괙!
^누구냐? 누구 닮았다.^
경비 거위들은 사람들의 얼굴을 잘 기억했다.
보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장경석 형 어머니 모시고 온 거야?"
괙! 괙!
^서울에 계신다는 그 어머니? 경석 총각이 그리 울어대더니···. 잘 됐네.^
보비는 놀랍도록 사람을 잘 기억했다.
"외출 전에 만나게 해주려고 다녀온 거야."
괙!
^그럼 내가 가서 데리고 올게.^
"어디인지 아는 거야?"
괙!
^우리는 정확하게 기억한다. 사람과 집을. 가서 데리고 오겠다.^
보비의 특성에 참견하기를 좋아한다고 하더니 그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어떻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금세 경석 형을 데리고 왔다.
쭈뼛거리며 회관으로 들어서던 경석 형은 자신의 엄마를 보더니 그 자리에 동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이내 엄마를 부르며 가서 안겼다.
"엄마아아! 엄마아아! 아아아! 어어엉! 어엉! 미안해. 미안해에엉! 어마아아!"
눈물이 터져버린 경석 형은 서러움의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꼬물!
^그간 많이 불안했네. 반쯤 포기하고 있기도 했고.^
꼭 모셔온다고 했지만 그 말을 백 프로 믿지는 못했던 것 같았다.
모자의 만남을 지켜보던 아이의 엄마도 눈물을 보였다.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