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250화 (250/350)

250. 계약 이행

나호가 급하게 뒤에서 공격한다고 알려왔다.

말하기 전부터 예상하고 있던 것이었다.

지금 이곳에는 한두 마리의 몬스터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수십? 수백? 마리의 괴수지네가 얽히고설켜다.

이것은 기회이기도 하고, 위기이기도 했다.

나호가 신호를 보내는 순간 꼬물이의 멀쩡한 뿌리 하나가 내려왔다.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내려온 뿌리가 나를 감싸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 몸을 띄웠다.

혼자 점프를 하는 것보다 훨씬 높게 몸을 날릴 수 있었고 조금 전 내가 있었던 곳에 처박히는 괴수지네를 볼 수 있었다.

<꼴좋네!>

사사사삭! 촤르르르! 사삿촤르르!

듣기 싫은 소리가 주위에 진동했다.

하지만 듣기 싫은 소리만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

툭!

토오옹!

두둑!

까아앙!

조금씩 소리는 다르지만 소환수들이 산성용액이 든 병을 괴수지네의 입에 던져 넣는 소리였다.

그 중 가장 많은 소리를 내는 것은 던전 도깨비였다.

던전 도깨비들은 어디서든 나타나고 어디서든 사라지고 있었다.

갖가지 색을 가진 던전 도깨비는 괴수 지네의 혼을 빼놓기도 쉬웠다.

잠시 정신이 팔리면 어김없이 병을 던져 넣었다.

펑! 사아아아아아!

새끼 몬진드기가 토해낸 산성액은 괴수지네의 속을 녹이기 충분한 것이었다.

병이 입속으로 들어간 괴수지네들이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서로의 몸이 부딪치는 소리만 내던 괴수지네들이 독특한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갸라라라라라! 캬라라라!

괴수지네들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내는 소리 같기도 하고, 전의를 불태우는 소리 같기도 했다.

처걱처걱처걱처걱! 처걱처걱처걱처걱처걱!

반복해서 입을 여닫으며 이런 소리를 내기도 했다.

엄청나게 큰 입이었다.

저 입으로 소환식물들의 뿌리를 끊어놓은 놈들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갈가리 찢어놓고 싶지만 검이나 창이 들어갈리 없었다.

크게 입을 벌린 틈을 타서 산성병을 던져주고는 뛰어올랐다.

꼬물이가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도움을 주었다.

뮤! 뮤! 뮤!

^친구의 원수! 먹어라! 이놈들! 곱게 죽지 못할 거다!^

조금은 유치한 말을 하고 있었지만 도뮤는 지금 진지했다.

그만큼 부지런히 움직이며 도깨비들을 지휘했다.

꼬물이는 주로 내 움직임을 돕고 있었지만 그것만 하지는 않았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곳에 있는 괴수 지네의 입안에 산성병을 던져 넣기도 했다.

다른 소환식물들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했다면 하루 종일 전투를 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소환수가 출동하자 전투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속이 진탕 녹아내리고도 살 수 있는 몬스터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한두 병으로 처리되지 않은 놈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놈들에게는 산성병을 더 던져주면 그만이었다.

<까불고 있어! 너희가 우리를 먹이로 인식하는 순간 너흰 끝난 것이었어!>

나호가 이런 말을 하며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시스템 잘 보고 있으라는 말이었다.

전령조의 넓은 날개가 전장을 오갔다.

사냥조도 날쌔게 움직이며 산성병을 입안에 던져 넣었다.

입을 벌리기만 하면 죽어나가자 입을 벌리지 않는 놈들도 있었지만 그런다고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런 놈에게는 눈에 산성병을 던져서 고통을 주었다.

눈까지 꼭 감은 놈들에게는 마디와 마디 사이에 산성액을 떨어뜨렸다.

고통에 겨워 입을 벌릴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었다.

갸라라라라라! 캬라라라!

갸라라라라라! 캬라라라!

<희한한 소리를 내면서 죽네. 왜 저런 소리가 나는 거지?>

전투를 계속하다 보니 저 소리가 죽음을 목전에 뒀을 때 내지르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로 산성액으로 속이 녹은 개체에게서 나는 소리였다.

나호 말이 몸속의 특정 부위가 파르르 떨리면서 나는 소리라고 했다.

나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저런 소리를 내는 놈의 몸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어 확인한 결과였다.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지는 알게 되었지만 왜 그곳이 떨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인간으로 보면 심장 같은 곳인지···.

나호가 다시 소리를 내는 거대 괴수지네의 몸으로 들어갔다.

전투가 막바지에 들어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에이! 모르겠다. 알 필요도 없는 것 같고.>

나호가 괴수지네에게서 나오는 순간 괴수지네의 몸이 축 늘어졌다.

타이밍이 기가 막혀서 마치 나호가 괴수지네를 처리한 것처럼 보였다.

꼬물!

^마지막은 내가!^

꼬물이가 마지막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는 놈의 입에 산성병을 두 개 던져 넣었다.

갸라라라라라! 캬라라라!

이미 몇 개의 산성병을 삼켰던 괴수지네의 입에 두 개의 병이 더 던져 넣자 더는 견디지 못하고 머리가 힘을 잃었다.

분명 죽은 것이었지만 몸통은 한 동안 촤르르르! 소리를 내었다.

살아있는 괴수 지네는 더 이상 없는데 괴수지네의 움직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정말 놀라운 생명력이었다.

이런 움직임을 한 방에 없앨 수 있는 마법이 있었다.

"도축!"

도축을 하는 순간 수백 마리의 괴수지네가 순식간에 도축이 되었다.

조금 전까지도 움직이던 몸통은 이제 의미가 없었다.

종류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전리품이 나타났다.

이와 동시에 상태창의 지도를 확인했다.

남은 몬스터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움직이는 몬스터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시스템이 말한 괴수 지네는 아니었다.

"다 끝난 것 같아."

<수고했어. 집사!>

"다 같이 한 거야. 너도 고생했고."

영체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더 애를 태웠을 나호였다.

눈앞에 어마어마한 전리품이 쌓였지만 그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환수들을 챙기는 것이 먼저였다.

"꼬물아. 너는 어때?"

꼬물!

^통증은 여전한데 저놈들 죽은 거 보니까 속은 후련해.^

꼬물이의 글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처음 상처를 입고 간신히 글을 쓰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글을 쓰는 뿌리 이외의 여리고 하얀 뿌리 여섯 개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것도 그만큼 상태가 좋아졌다는 증거였다.

"다른 아이들은?"

꼬물!

^좋아요. 빠르게 회복하고 있어요.^

다른 소환식물들도 뿌리를 흔들어 자신들의 건재를 알렸다.

하지만 여전히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붕대에 감긴 뿌리가 한둘이 아니었다.

뮤! 뮤! 뮤!

^친구! 봤어? 우리가 백 마리도 넘게 처리했다. 너희 복수를 해주고 왔어!^

꼬물!

뮤! 뮤! 뮤!

^우리 도깨비 화나면 무섭다. 황금도 녹이는 우리다!^

꼬물!

^고마워!^

뮤! 뮤! 뮤!

^고마울 거 없다. 당연한 거다. 넌 처음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그걸 잊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잊지 않을 거다.^

<도깨비 은근 의리 있네.>

뮤! 뮤! 뮤!

^우리는 의리와 신의를 소중하게 여긴다. 그게 우리의 생존 방식이다.^

던전 도깨비는 친구를 맺고 그 친구에게 의지하고 사니 신의가 가장 중요한 덕목일 것 같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도 멋진 모습이었다.

도깨비들이 소환식물들 주위에 있어서 그런지 갑자기 소환식물이 크리스마스트리가 된 것 같았다.

황금구슬과 갖가지 색의 솜뭉치로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 말이다.

"꾸루야 너희는?"

꾸! 꾸룰룰루!

^우리와 사냥조도 이상 없어. 다 무사해요.^

"다행이야. 반크와 몬야크들도 고생했어."

음머어어!

반크가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집사! 저기 봐. 전리품으로 산성액이 나왔어. 땅속에 깔렸던 새끼들까지 모조리 도축이 됐나봐.>

"당연히 도축이 됐겠지."

<산성액 다 썼는데 잘 됐다.>

"잘 되기는 했는데 달갑지가 않네."

전쟁은 승리로 끝났지만 여전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시스템에 대한 분노와 아직 괴수지네에 대한 화 때문이었다.

<더 이상 몬스터가 없는 것 같은데 왜 반응이 없지? 집사 괴수지네 또 있어?>

"지도에 나타난 것은 없어."

던전지도가 B급이 되면서 지하도 어지간한 깊이까지는 모두 보여주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하 백 미터 정도까지는 잘 보이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지하가 발달한 곳이 없었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은 지하세계가 백 미터 이상인 것 같았다.

지도에 나타나지 않은 세상이 있을 수도 있고 그 아래 몬스터가 살아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였다.

이것을 확인하는 것은 의외로 쉬웠다.

다른 던전이라면 이 방법이 통하지 않겠지만 이곳에서는 가능했다.

"처리해야 하는 몬스터가 더 남아있는 거야?"

시스템에게 묻는 것이었다.

이곳의 괴수지네를 처리해달라고 했으니 처리해야 하는 몬스터가 더 남아있다면 시스템이 말해줄 것이었다.

[띠링! 열세 마리의 몬스터가 더 남아있습니다.]

"지하에 있는 거지?"

[띠링! 그것까지는 저희도 파악할 수 없습니다.]

<무슨! 뻔히 알면서 말하지 않는 거잖아! 그리고 소환 식물들은 어떻게 할 거야? 애들 뿌리 좀 보라고!>

나호가 소리를 빽 질렀다.

이번에는 대답은 아니더라도 뭐라고 말은 할 줄 알았는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단단히 화가 났는지 꼬물이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 우선 부탁받은 일은 정리하고 이야기하자."

[그럼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헐! 집사! 들었어? 최선을 다해 달래. 자기들은 약품도 구비해두지 않으면서 말이야. 소환식물이 있으면 소환식물 전용약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그런 것을 준비해두지 않을 수 있어?>

"계약했으니 이번 일은 해주겠지만 이런 식이면 앞으로 같이 일 못하지."

<같은 생각이야. 이번 일 맡기 전에 집사가 이것저것 꼼꼼하게 따질 때 지나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지나치지 않았어. 더 따졌어야 했는데···.>

"우선 정리를 하고 나서 생각하자."

<그래야지.>

"여기 상하는 것도 있으니까 우선 전리품 보관은 너희가 해줘."

[띠링! 그럼 저희가 보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럴 때는 재깍재깍 대답도 잘하네.>

시스템은 이번에도 나호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전리품 전체가 사라졌다.

엄청나게 많았던 전리품이 사라지자 다시 푹 꺼진 땅이 나타났다.

"어디에서 괴수지네를 찾아야 하나?"

꼬물!

^올라올 거예요.^

"올라와?"

꼬물!

^무너졌으니 올라올 수밖에 없어요,^

"그럼 꼬물이 말 듣고 여기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네?"

꼬물!

^몬스터의 씨를 말리면 먹이를 찾아서 더 빨리 올라올 것 같은데요?^

"하하하! 그래. 우리 꼬물이 똑똑하네. 그럼 쉬지 말고 일해야겠다."

꼬물!

괴수 지네가 사는 구역은 완전히 가라앉았지만 가라앉은 곳도 있었다.

물론 상당히 떨어진 곳이었지만 말이다.

소환식물들이 다쳐서 그런지 빨리 이곳을 정리하고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빠르게 움직여서 보이는 모든 몬스터를 정리해버렸다.

소환수들까지 나서서 정리를 했기 때문에 네 시간 만에 이곳에 움직이는 생명체는 없었다.

이제 지하에서 올라오는 괴수지네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언제쯤 나올까? 혹시 배가 고플 때까지 기다려야하는 것은 아니겠지?>

"몬스터니까 분명 다른 몬스터가 사라진 것을 느꼈을 거야. 그럼 슬슬 올라올 거야."

우리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몬스터가 모두 사라지고 난 후 하루가 지난 후였지만 말이다.

사사사삭! 사사삭!

괴수지네가 땅을 헤집고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가 올라오는 순간 공격할 거야."

이전 사용하고 남은 산성용액은 총 58병!

되도록 이것으로 몬스터를 처리해야 했다.

사삭!

괴수지네가 흙을 뚫고 머리를 내밀었다.

이때가 괴수지네를 공격하기 가장 좋았다.

땅을 뚫고 나온 지네는 꼭 입을 벌리기 때문이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입을 벌리는 순간 산성용액을 세 병 던져 넣었다.

머리의 크기가 워낙 거대했기 때문이었다.

<들어갔다. 아무리 커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거야!>

나호가 환호성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사사삭! 사삭!

한 번 올라오기 시작한 괴수지네는 서로 경쟁하듯이 땅 위로 올라왔다.

우리는 고개를 내밀기를 기다렸다 입안에 산성 용액을 던져 넣기만 하면 되었다.

이렇게 쉽게 괴수지네를 사냥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쉽게 사냥했다.

열세 마리의 괴수지네를 잡는 데에는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너무 쉽게 끝난 느낌인데? 더 없지?>

"이곳에 우리 이외에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아. 물론 땅속 깊은 곳에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지하 백 미터까지는 지도에 나타나지만 그 이하는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스템이 말한 열세 마리는 모두 잡았으니 이제 계약사항은 이행한 것이었다.

[띠링!

다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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