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 시스템은 중개업자
[띠링! 이제 독도 판매대행계약을 체결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최고의 계약으로 모시겠습니다.]
시스템이 다시 계약을 재촉했다.
<마나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우리를 생각해주니까 맺어야지. 그렇지? 집사!>
"그렇지. 맺어야지. 먼저 작성해온 계약서를 보여줘. 읽어보고 이야기할게."
시스템은 상태창에 바로 계약서를 띄웠다.
그것을 꼼꼼하게 읽었다.
상태창과의 계약에서는 단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계약서부터 평상시와 달랐다.
느슨하다고 할까?
시스템이 만들어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느슨한 계약서였다.
"왜 이런 것을 들고 온 거야?"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고맙네. 이런 탄력적인 계약서 아주 좋네. 바로 계약해!"
가격이나 수량 등 독도에 관한 것은 어떤 것이든 내 의견에 따라 변동시킬 수 있는 계약서였다.
말 그대로 시스템은 판매대행만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금도 팔리는 족족 들어오는 방식이어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계약을 맺었다.
[띠링! 그럼 이미 만들어진 것은 바로 가지고 가도 되겠습니까?]
"천 개씩만 놔두고 가지고 가."
[알겠습니다. 그럼 가지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좋다. 마을로 트럭이 오가지도 않고 말이야. 만들어만 두면 가지고 가는 것도 알아서 하고···.>
나호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가자! 계약을 끝났으니 또 만들어야지."
<소금은 어떻게 할 거야?>
"소금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잖아. 기다려야지 뭐."
소금도 화순던전에서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고 최소 1, 2년은 지난 후여야 했다.
전생에 화순 던전에서는 독도에 필요한 소금도 얻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나왔던 것은 아니고 던전이 몇 번 환경이 바뀐 이후의 일이었다.
던전은 클리어를 거듭하면서 크고 작게 환경이 바뀌는데 화순 던전에서는 어느 날 소금으로 만들어진 벽이 등장했다.
암염이 나타난 것이었다.
한 번 나타난 암염은 이후에 던전의 환경이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던전칡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미우라는 이 재료를 가지고 독도와 같은 약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전생에는 미우라에 의해 대변혁 3년 후 첫 클리어를 했지만 대변혁의 날 클리어를 했으니 암염도 전생보다는 월등히 빨리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회사에 온 우리는 칡을 먼저 다듬었다.
세 분이 도와주셨는데도 워낙 칡이 많아서 시간이 제법 걸렸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제 마르기만 하면 되겠구나. 벌써 저녁때가 다 됐네. 밥 먹고 일본에 간다고 했지?"
"예."
<사실 가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데···.>
일본에 가게 되면 그들을 도와주게 될까 살짝 걱정스러운 것 같았다.
아무튼 우리는 저녁을 먹고 마을의 일을 처리하고 화순 던전으로 이동했다.
"정말 안 갈 거야?"
큰아버지께서 아버지께 묻는 것이었다.
"내 성격 알잖아. 지금은 안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다녀와요."
아버지께서는 일본에 가지 않기로 하셨다.
가더라도 나중에 가겠다고 하셨다.
아버지를 뒤로 하고 워프 게이트가 작동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우리는 일본으로 이동 되었다.
"어머니. 바로 나가시면 안 돼요. 이 던전은 말씀 드렸던 대로 몬숭이가 나타나요. 팔이 긴데다 힘도 세니 조심하셔야 해요. 더구나 아직 클리어 전이거든요."
워프 게이트 밖으로 먼저 나가시려고 한 어머니를 붙잡은 후 내가 먼저 내렸다.
아니나 다를까 워프 게이트 앞으로 몬숭이들이 모여있었다.
하지만 몬숭이들은 일시에 제압이 되었다.
소환 식물인 꼬물이가 뿌리로 묶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히야아아아! 히야아아아!
워프 게이트 앞에 있던 몬숭이들이 묶이는 것을 보고 멀리 떨어져 있던 몬숭이들이 휘파람 소리와 매우 흡사한 소리를 내며 날뛰었다.
흥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놈들은 흥분을 하면 성격이 난폭해져요. 손에 잡히는 것은 무조건 던지니 주의하셔야 해요."
"알겠다. 몬숭이가 나온다고 알려진 던전에 들어가려면 방패가 필요하겠구나."
"꼭 필요하죠. 저 녀석들 침도 잘 뱉어요. 문제는 눈에 맞으면 실명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고글을 건넸다.
몬스터가 아무리 지랄 맞아도 인간이 잘 준비를 하면 한낱 몬스터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차근히 잘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클리어를 하지 못하고 귀찮게 하는 녀석들만 정리를 했는데 오늘은 클리어를 할 생각이다.
꾸우! 꾸!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꾸루가 소리를 냈다.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와도 좋아."
꾸!
꾸루를 비롯한 전령조들이 대기실에서 쉼터로 나오더니 흩어졌다.
화순에 일부 남겨두고 왔는데도 장관이었다.
"전령조는 어디로 가는 거니?"
"여기가 집이거든요. 습지 쪽으로 갔을 거예요. 거기에서 나는 물고기가 정말 맛이 있죠."
"여기서 잡아온 거였구나. 정말 맛이 있던데···."
지금도 전령조들은 아침마다 이곳의 생선을 잘 물어왔다.
그것으로 구워 먹기도 하고 찌개를 해먹기도 하는데 맛이 일품이었다.
전령조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 우리는 바로 던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몬숭이가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
물론 큰아버지와 어머니는 힘겨워하셨지만 말이다.
던전 클리어까지 걸린 시간은 네 시간!
이 던전도 두 배의 시간 비율이 적용되는 곳이기 때문에 현실 시간으로 따지면 두 시간 만에 던전을 클리어 한 것이었다.
혼자 왔으면 훨씬 빨리 끝났을 일이었다.
던전을 클리어하고 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워프 게이트를 던전 입구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이게 옮겨진다는 것이 신기하구나."
"여기까지 관리 계약을 맺으려고요."
"그럼 괜히 일본 놈들 좋은 일만 하는 거 아니냐?"
"그냥 살게 하지는 않죠. 거주비를 받을 거예요."
"거주비를 받는다고? 어떻게?"
아직 마나 사용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감이 잡히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세하게 설명을 드렸다.
"그거 신기하구나. 처음에는 원망을 많이 했는데 참 고마운 존재야."
어머니께서 시스템을 거론하며 하신 말씀이셨다.
<전생에는 원망만 하셨는데.>
나호가 나만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전생에는 대변혁 이후 단 한 순간도 편한 날이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이곳의 관리 계약은 돈을 얼마나 달라고 할지 모르겠네.'
[띠링! 한국이 아닌 곳의 관리계약은 비용이 올라갑니다.]
"우리나라와 관리계약이 무슨 상관이야? 그거 핑계 같은데?"
<맞아. 이거 뭔가 냄새가 나!>
[띠링! 대한민국은 조금 특별한 나라입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세계 1위가 있는 나라이지 않습니까?]
"그것 때문은 아니잖아?"
[그렇습니다. 그런 이유는 부수적인 것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은 던전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편합니다. 저희 입장에서요.]
"그래? 왜 그럴까? 이해가 되지 않네."
전생에 일본인들은 자신들을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떠들어댔다.
대변혁의 재앙이 자신들은 비켜간 것은 물론이고 이후로도 모든 면에서 자신들을 배려하고 있다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 말은 우리나라에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지금 시스템이 한 말만 들어도 확실하지 않은가!
[띠링! 대한민국과 저희는 잘 맞습니다. 첫 통증도 가장 먼저 느꼈고요.]
"첫 통증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느낀 것은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야?"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의도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측은 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측대로였죠.]
"그래? 그럼 이곳은 관리계약을 맺으려면 얼마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띠링! 1킬로미터 당 매월 오백 마나입니다.]
<1킬로미터 당 오백이면 2킬로미터면 천이네. 집사 당장 2킬로미터를 할 필요는 없잖아. 그냥 1킬로미터만 해. 마나 아까워.>
"이곳도 현재 2킬로미터까지는 관리구역을 설정할 수 있는 거지?"
[그렇습니다. 되도록 2킬로미터 전부를 설정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저희가 관리하기 편합니다.]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들 거주비를 받는 것을 너희가 대행해주면 바로 2킬로미터로 계약할게."
[띠링! 적절한 이득을 보장한다면 거주비를 비롯한 제반 비용을 저희가 대신 받아드리겠습니다. 강대한 님께서 드러날 일은 없는 거죠.]
<역시 시스템은 영리해. 집사가 가장 원하는 것이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잖아.>
시스템을 통해서 마나를 벌고 있다는 것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원래 너희들이 파는 상품처럼 팔아줄 수 있는 거지?"
[그렇습니다. 전생에 인간 사이의 월세 계약과 비슷하게 맺을 것입니다. 물론 받은 마나 대부분은 강대한 님께 갈 것입니다.]
<괜찮네. 개인 공인 중개사를 고용하는 것보다 나은 것 같은데?>
나호가 대단히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스템이 이렇게만 해준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이것은 나에게만 좋은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던전 밖에는 안전한 주거지는 없었다.
시스템을 통해 안전한 주거지를 제공받는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도 드물었다.
결코 적지 않은 마나를 지불해야겠지만 전생에는 안전이 백 프로 보장되지 않은 집에도 마나를 지불했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내가 제공하는 것은 최고의 거주지라고 할 수 있었다.
"좋아. 너희가 알아서 해줘. 평상시 너희가 자주 말하던 보이지 않는 손! 기억하지?"
[그것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수요가 많으면 가격은 상승하기 마련입니다.]
"좋아. 2킬로미터에 천 마나로 계약해."
[저희가 적절히 홍보를 해도 되겠죠?]
"뭐? 홍보를 하겠다고?"
[상품은 홍보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가 엄청납니다. 특히 지금 일본의 상황은 대단히 열악합니다. 안전한 거처가 있다고 하면 천금을 주고라도 살려고 할 것입니다.]
"당장은 마나를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텐데?"
[그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적절한 현물을 받기도 할 겁니다. 물론 저희에게 가치 있는 것만요.]
<황금은 당연히 포함이 될 것이고 또 뭐가 있을 것 같아?>
나호가 궁금증을 드러냈다.
하지만 시스템은 당장 대답을 해주지는 않았다.
"식량도 있을 것이고 뭐든 받겠지. 시스템은 절대 손해를 보지는 않으니까."
<맞아. 미래를 사지 않으면 다행이지.>
나호의 말을 들으니 등골이 다 오싹해졌다.
안전한 거처를 제공하겠다며 미래를 사겠다고 하면 이런 상황에서 팔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 우리나라는 나름 안전하지만 다른 나라는 아니었다.
특히 일본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일본은 미래가 아니라 더한 것을 바쳐서라도 안전한 거처에 머물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일본은 상관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나친 월세는 받지 마."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격이 정해지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당장 홍보를 시작하겠습니다.]
"서울에 있는 내 소유의 던전도 홍보해줘."
[알겠습니다.]
시스템의 목소리가 유난히 밝았다.
지속적으로 마나를 벌어들일 수 있는 곳이 생기니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시스템은 저렇게 마나를 벌어서 어디에 쓴다니?"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실 우리와 상관이 없는 일일 수도 있었다.
"시스템 덕분에 일일이 계약을 맺어야 하는 수고를 덜었네요. 그거 은근히 스트레스인데."
월세를 두고 분란도 많았다.
대변혁 이후의 세상은 이전보다 훨씬 힘겨웠다.
때문에 월세를 두고 싸우다 별별일이 다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마나가 많은 사람만 안전한 거처에서 살게 해서는 안 돼."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걱정하지 마세요. 월평에서는 최소한의 마나만 받을 거예요. 그야말로 최소한요."
"우리마을에서도 마나를 받을 생각이니?"
큰아버지께서 깜짝 놀라서 물으셨다.
공짜로 살게 해줄 거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이었다.
"완전히 공짜로 사는 것은 당분간 만이에요. 물론 모든 사람에게 마나를 받을 생각은 없어요. 노약자에게는 받지 않죠. 오히려 제공을 할 생각도 있어요. 하지만 멀쩡한 사람은 아니죠."
"나중에 길드원에게도 받을 생각이냐?"
"예. 대신 월평에 사는 다른 사람보다 더 저렴하게 제공을 할 생각이에요."
"그래? 욕을 먹지 않을까?"
"절대 욕 먹지 않아요. 오히려 칭송을 받게 될 거예요.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한 이유는 저희가 나머지 비용을 대납하는 것으로 알려지게 될 테니까요."
"그렇게 할 수 있니?"
"시스템이 중개업자를 자처했으니 그렇게 말해달라고 해야죠. 공짜로 살게 하는 것은 절대로 안 돼요. 감사할 것 같지만 아니더라고요."
똑같은 일은 아니지만 전생에 처지가 딱하다고 데리고 살다 오히려 그 사람의 손에 의해 명을 달리한 사람을 여럿 보았다.
친절을 베풀면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오히려 친절을 베푼 사람의 손에 쥔 것까지 강탈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부터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했다.
"하긴 안전한 거처이고 다른 나라나 다른 곳에 비해 싸다고 하면 납득하겠지. 그런데 우리 마을에 안전하고 싼 거처가 있다고 하면 서로 오려고 할 텐데. 그건 어떻게 할 생각이니?"
"심사를 해야죠. 그리고 노약자 위주로 받을 거예요. 마을에 살아도 좋은 사람들 위주로요."
심사는 철저하게 이루어질 것이고, 그들은 최저 비용으로 안전한 곳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희망적이구나. 그럼 일본은 어떤지 나가볼까?"
접수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