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 막연한 불안감
'처음부터 저러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서울에서 김주은을 처음 봤을 때를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김주은은 당차고 멋졌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
모두가 도끼눈을 뜨고 있는데도 제대로 된 시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바른 방향으로 이끌 줄 아는 여자였다.
그런데 지금 김주은은 어딘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번에도 이런 느낌을 한 번 받은 적이 있었는데···.
'조급한가?'
꼬물!
^까탈 주은의 마음에는 불안이 많다. 버려질까 두려운지도 모르겠다. 1인분을 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도 보인다.^
꼬물이가 주은의 상태를 진단했다.
거의 정확한 것 같았다.
<전생에 저런 증상을 보인 사람이 참 많았는데···. 불안과 강박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잖아.>
'그랬지.'
월평이라는 안전한 곳에 살아서 너무 안일한 사고를 가지면 어쩌나 했는데 사람들은 전생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는 것 같았다.
전생에 비해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뿐인지도 모른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이런 상황이 처음이었다.
그러니 지금 상황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단지 지금 눈앞에 펼쳐진 상황만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몬스터와 던전!
언제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세상에서 각성을 하고, 상태창이 생기고···.
성장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생각이 팽배하다보니 행동에 괴리가 생기는 것이었다.
어떨 때는 강단 있어 보이고, 어떨 때는 과해 보이고···.
주은은 자신의 상태를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쩌면 알면서도 자신을 몰아가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대변혁 전과 같은 것을 바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중심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
<맞아. 꼭 필요해.>
그런 생각을 한 순간 만약고 어르신이 떠올랐다.
만약고 어르신 같은 분이 마을에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평택에서 만났던 김기현 이장님을 어서 마을로 모시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에도 전투는 계속 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황금을 씌운 무기의 위력을 느끼고 있었다.
<한 번 맛을 보면 놓을 수 없지. 그래서 주인이 최대한 늦게 선보이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치악산 던전은 좀비만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뼈로만 이루어진 몬스터가 나왔는데 전생에 우리는 그것을 '뼈다귀'라고 주로 불렀다.
덜그럭거리며 다니는 뼈다귀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뼈로 된 무기를 들고 다니기 때문에 정말 조심해야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모양을 쉽게 변형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눈앞의 뼈다귀가 키를 키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고! 지긋지긋한 놈들이 나왔네.>
"이미 말씀드렸듯이 주의하셔야 합니다. 방독면 벗지 마시고요. 뼈다귀가 날리는 뼛칼이나 이빨이 얼굴이나 목에 박히는 수가 있습니다."
뼈다귀와의 싸움이 짜증나는 이유가 저것이었다.
날카롭게 만든 뼛칼은 사실 양반이었다.
커다란 대퇴골을 무기처럼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 위력도 상당했다.
부수고 또 부수어도 또 일어나는 것도 짜증스러웠다.
"이것도 머리를 깨뜨려야 잡을 수 있다고 했지?"
"예. 그런데 불리하면 머리를 떼서 뒤로 빼기도 해요."
몸에서 완전히 떼어놓지는 않지만 제3, 제4의 팔이나 다리를 만들어 머리뼈를 멀찍이 하는 것이었다.
이러니 인간 입장에서 상대하기 무척 껄끄러운 존재였다.
"좀비에 비해 머리뼈가 단단한 것도 문제고 주변에 떨어져 있는 뼈만 보이면 합체를 하거나 교체를 하는 것도 문제이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소환 식물과 소환수들이 있어서 이런 뼈다귀들의 장점이 무력화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몬야크 위에 탄 우리를 보더니 두 마리의 뼈다귀가 하나로 합체를 시도했다.
머리 둘, 다리도 둘!
하지만 팔은 넷인 기형적인 모습이었다.
머리는 앞에 있지도 않았다.
머리가 깨지는 순간 죽는다는 것을 아는 녀석들은 두 개의 팔에 하나씩 머리를 들고는 뒤쪽으로 뺐다.
그리고 나머지 두 개의 팔에는 커다란 대퇴골과 거칠게 분지른 뼈칼이 들려 있었다.
그 상태에서 뼈다귀는 하필 나를 향해 돌진했다.
자신의 운명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말이다.
빠드득! 파아악!
와르르르!
자신 있게 달려들던 뼈다귀는 위에서부터 힘없이 쏟아져버렸다.
성냥개비를 쌓아올리다 넘어진 것처럼 맥없이 무너져 내렸는데 머리통이 깨졌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지켜보고만 있던 꼬물이가 나선 것이었다.
뒤로 빠진 머리통을 대기실에서 나온 뿌리가 잡고는 그대로 깨뜨려버렸다.
뿌리의 조임도 엄청나지만 몬늘보의 발톱으로 만든 검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조롱박 깨지듯 깨져버렸다.
"헉!"
소리를 지르지 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들 속으로 놀람을 삼키고 있는데 명성이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제법 소리였다고 컸다는 것을 느꼈는지 명성이가 재빨리 입을 막았다.
아직은 소년티를 벗지 못한 명성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성숙해 보이는 면이 있었다.
그래서 각성까지 하게 됐겠지만 말이다.
꼬물!
^까불고 있어. 어디서 징그럽게 기어오르고 ㅈㄹㅇㅇ!^
"뼈다귀는 죽고 나면 바로 도축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뼈다귀들이 뼈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은근히 중요하거든요. 도축!"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뼈다귀에서도 전리품이 나왔다.
아주 작은 황금조각이었다.
"어? 금이 나왔습니다. 너무너무 작은 크기이지만요."
김사랑이 눈을 빛냈다.
성격은 털털한 것 같은데 은근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그녀의 눈에 황금은 예사롭지 않게 보였을 것이다.
"거둬들인 황금은 공략 공헌도에 따라 클리어 후에 분배해드리겠습니다. 제가 직접 하는 것이 아니고 시스템이 하는 것이니 공정할 겁니다."
공략 후에 분쟁을 없애기 위해서는 위의 방법이 가장 좋았다.
괜히 개개인의 의견에 따라 분배를 하면 차후에 문제가 생길 뿐이었다.
"우리 마을도 공적자금을 떼야 하지 않을까요?"
김주은의 말이었다.
이렇게 꼭 필요한 말을 시기적절하게 하는 것은 탁월한데···.
"마을 운용자금이 한두 푼이 드는 것이 아닐 테니 모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황 관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저도요."
팀원들도 같은 생각임을 내비쳤다.
한두 번만 공략을 함께 하는 '번개팀' 같은 경우에는 팀 운영비를 떼지 않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운영비를 뗐다.
그래야 팀도 운영하고 길드도 유지될 수 있었다.
이 때 떼는 비율은 천차만별이었는데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50%이상인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단 한 푼도 운용비를 받지 않았다.
언제쯤 이런 말이 자발적으로 나오는지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어느 정도 떼면 불만이 없을 것 같습니까?"
"······."
지금까지는 한 푼도 떼지 않다가 이런 말을 하자 당황스러운지 아니면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인지 팀원들이 멍하니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다.
"적어도 20에서 30%는 떼어야 마을이 운영되지 않을까요? 지금은 신세를 지고 있지만 언제까지 월평이 부담하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도 김주은이었다.
이런 면은 정말 똑 부러지는 여자였다.
"30%? 마나를 30%를 뗀다고 하면 겉으로는 모르겠지만 속으로는 불만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마나와 전리품을 분리해서 마나는 10에서 20% 정도만 떼고 전리품은 50%정도 떼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이큐라는 별명이 더 익숙한 하휘규 씨의 말이었다.
"전리품은 대부분이 고기와 가죽이니 50%정도 마을을 위해 내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중 대부분은 어차피 우리가 먹을 테니까요. 하지만 조금 전처럼 특별한 것이 나오면 그때는 함께 공략했던 사람들에게 조금 더 챙겨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황 관장님 생각이었다.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한 모양인지 전생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비율은 각기 달랐지만 전생에도 저 세 개 항목을 고려했다.
물론 무엇이든 무조건 몇 %!
이런 식으로 떼는 길드나 공동체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분배를 할 때 이런 설정도 가능합니까?"
"팀 별로 기준을 설정하면 특별하지 않으면 그대로 분배가 됩니다. 고기나 가죽도 판매했을 때의 가격을 기준으로 분배되기 때문에 해보시면 납득이 되실 겁니다."
"시세 반영도 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전생에는 이런 것까지 아는데 시간이 정말 많이 걸렸는데···. 정보 하나 얻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정보가 많이 풀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전생 생각이 나는 모양이었다.
나호가 느끼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이렇게 적당히 정보를 푸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본전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직 우리 팀원들이 외부인을 직접 접촉할 일이 없지만 접촉하는 일이 잦아진다면 정보에 대한 적절한 통제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큰아버지 생각은 어떠세요?"
"나도 비슷해. 마나는 10에서 20% 정도는 마을 전체를 위해 모아두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야 치료수 등을 구매할 테니까. 언제까지 네게만 의지할 수는 없잖아."
"형! 지금 제공하시는 치료수도 구매하신 거죠? 제가 상점에서 봤는데 치료수 가격이 장난 아니더라고요. F급 하나 사봤는데 제공해주신 것보다 효과가 떨어졌어요."
호기심 많은 사춘기 소년답게 벌써 상점에서 물건을 구매해본 모양이었다.
"어른 말씀하시는데···."
"알겠어요. 주은 누나. 죄송합니다."
명성이가 재빨리 입을 막았다.
"고기류의 전리품은 50%정도는 마을을 위해 내놓고, 나머지 50%는 공헌도에 따라 마나나 황금으로 값을 매겨서 받아가든지 아니면 고기류 그대로 받아 가면 되겠지. 문제는 황금이나 특별한 전리품이 나오는 건데···. 이건 20에서 30%정도만 마을에 내놓고 나머지는 공략 참가자끼리 나눠가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이건 전체 합의가 필요한 일이니 회의를 통해서 구체적인 수치는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하자꾸나."
"그럼 전리품은 제가 가지고 있을게요. 제 인벤토리에 들어가지만 다른 물건과 섞이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스템이 바보는 아니니까요. 아! 그리고 아직 합의가 되지 않았으니 이번 공략까지는 마을 운용비는 떼지 않겠습니다."
"그런 거 따지지 않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저희가 미안합니다."
정수백 씨가 말했다.
"제 생각은 수백 씨와 달라요. 믿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것은 확실하게 말씀을 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이런 관계가 지속될 수 있어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얼렁뚱땅 넘어가 버릇하면 나중에는 오해가 생기더라고요."
"주은 씨 말이 맞지. 돈은 특히나 그래. 지독하리만큼 따지는 것이 두고두고 좋을 수도 있어."
큰아버지께서 김주은의 의견에 동조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을 한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뭔가 김주은 씨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도 그렇고 말이다.
이치에 한 치도 어긋난 이야기가 아닌데··· 오히려 마을에 보탬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표현 방식이 잘못 된 건가? 권위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은근 권위적이었나?'
뮤! 뮤! 뮤!
^나는 집사가 지금 느끼는 감정 안다. 도깨비 중에도 바른 말 잘하는 도깨비 있다. 바른 말만 잘하고 행동은 개망나니면 미워하기라도 할 텐데 행동까지 자신이 말하는 대로 하는 도깨비! 꼭 필요한 도깨비여서 중용하기는 하지만 속을 털어놓지는 않는다.^
언제 왔는지 도뮤가 말했다.
뮤! 뮤! 뮤!
^언제나 같은 잣대만 들이댈 것을 알거든. 일에는 꼭 필요한 품성이지만···. 일도 삶에서 나오는 거 아니겠나? 삶에는 정(情)도 있고 사랑, 슬픔, 분노, 즐거움 등이 녹아 있는 법이다. 그런데 한 가지 잣대만 들이대니 불편한 거다.^
도뮤가 내 마음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뮤! 뮤! 뮤!
^그리고 막연히 불안한 거다. 저런 잣대가 항상 올바를 수는 없으니까. 올곧은 잣대를 가지기에는 주은은 너무 젊고 어리고 경험도 부족하다.^
"······."
뮤! 뮤! 뮤!
^그리고 염려스러운 거다. 자신의 잣대와 조금만 다르면 바로 틀렸다고 몰아붙이니까. 잘못을 지적해도 인정하지 않고 비틀어진 잣대를 들어 올린 채 목청을 높일 것을 아니까.^
김주은을 보며 느꼈던 감정 중에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다.
조금은 바보스럽게 사는 정수백 씨에게서 느껴지는 안정감과 달리 말이다.
그리고 도뮤의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잊고 있었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