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 숨겨진 재능
월평을 떠나온 지 5일이 지났다.
치악산 던전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내가 가지고 있는 던전을 개방하고 클리어했다.
그런데 이렇게 던전을 다니다보니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뜻하지 않게 사람을 구하는 일이 종종 생긴 것이다.
이런 시기에 던전을 돌면서 사람을 구하는 일을 예상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소유하고 있는 던전은 대부분 장프나 단프가 있는 던전이 대부분이었다.
장프나 단프처럼 귀한 것을 품고 있는 던전은 주로 자연이 수려한 곳에 많이 있었다.
주변에 인가를 찾아볼 수 없는 곳도 많았다.
그래서 당연히 누군가를 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던전을 개방하고 클리어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일정도 이런 점을 고려했었다.
인적이 드물만한 곳을 먼저 간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종종 사람을 만나게 되더니 어제는 제법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대변혁의 전날, 그러니까 2029년 12월 31일 산이나 외진 바닷가에 있는 펜션이나 호텔 등에 의외로 많은 사람이 묵었던 것이다.
새해 첫 해돋이를 보기 위해 가족이나 연인, 각종 동호회로 여행을 온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고립이 된 사람 중 우연히 우리를 만난 사람들이 있었고 산 중에 고립된 사람들을 방치할 수 없어 구조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 나타났다.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이들과 우리 팀원들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많았다.
정보에서부터 시작해서 몸놀림 하나하나까지···.
특히 구조된 사람들의 태도가 비협조적이면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거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거 도와준다고 너무 그러는 거 아닙니다. 서로 돕고 사는 사회인데···."
우리는 열하나!
구조된 인원은 서른!
지금까지 구조를 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 중 하나!
구조된 인원이 많으면 은근히 지시를 잘 따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늘 구조한 인원은 우리의 세 배나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 삐딱선을 타려고 했다.
"······."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리 됐는지···. 인정이 없어요. 인정이···. 이거 조금 도와주는 것으로 무슨 목숨을 구해준 것처럼···."
"그러게요. 어이가 없는 사람들이에요."
"차라리 우리끼리 내려갈까요? 이제 저 사람들 없어도 될 것 같은데···."
"그 집채만 한 멧돼지만 아니면 무서울 것이 뭐 있습니까? 그 멧돼지 때문에 갇혀있었던 거지."
들으라는 듯이 떠들어대는 이들은 함박산 중턱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단프가 있는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왔다가 이들의 비명 소리를 듣고 구조해서 태백시를 향해서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들은 구조된 직후부터 이런저런 불평을 쏟아내고 있었다.
마치 싸움을 유도하는 듯이···.
'대한아! 저 사람들 이쯤에서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저 아이들이 마음에 걸리네요.'
보다 못한 큰아버지께서 이들과 헤어지자는 말씀을 하셨다.
어제도, 그제도 산에서 사람을 만나 산 아래의 도시로 데려다주었다.
당장 마을로 데리고 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그리 썩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들이어서 가장 가까운 도시에 데려다 준 것이었다.
이들도 함백산 중턱에서 만나 태백시를 향해 내려가고 있는데 뭐가 이리 불만이 많은지 모르겠다.
'두 아이가 걸리기는 하지만 저 사람들 행동하는 것이 어째 영 수상해. 고립되어 생활했다고 하는데 너무 멀쩡한 것도 그렇고···.'
큰아버지께서 걱정을 하셨다.
고립되어 생활했다고 하는 사람들치고는 전체적으로 너무 상태가 양호하기는 했다.
어제 다른 산에서 구조한 사람들만 해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우리에게 뭐든 하나라도 더 알아내기 위해 애를 썼는데 이 사람들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자신들을 통제한다고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우리가 도와줘서 건물 안에서 나올 수 있었는데 말이다.
'꼬물아! 도뮤야! 저 사람들 이상하지?'
꼬물!
^나쁜 사람들 같아요. 아이들만 빼고요.^
도뮤!
^악취가 진동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꼬물이와 도뮤도 이들이 이상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꾸!
꾸루가 갑자기 정보를 보내왔다.
함백산 던전에서 나오면서 정찰을 보내놨더니 뭔가를 본 모양이었다.
꾸루가 보낸 정보는 던전이었다.
함백산에 또 다른 던전이 있었던 것이다.
<집사! 전생에 함백산에 던전이 또 있었나?>
'글쎄? 전생에 일을 모두 기억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 순간 권능 기억이 발동했다.
[함백산에 있는 던전에 관한 정보가 있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열람하겠어. 이 시기에 있었던 던전에 대한 정보만 주면 돼.'
[같은 시기에 함백산에는 조금 전 강대한 님께서 클리어 한 던전만 있었습니다.]
'지금 꾸루가 보여주는 던전은 없었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같은 위치에 던전이 있었던 적은 있습니다.]
'그래? 같은 곳에 있었단 말이지? 언제 있었는데?'
[올 7월에 생겨서 연말까지 존재했었습니다.]
'5개월간 존재했다는 말이네? 그래서 기억에 없었나봐.'
권능 기억은 전생에 내가 보거나 들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 기억이 말해주는 정보도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정보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세세한 것까지 인간인 나는 기억할 수 없었다.
'왜 사라졌는지에 대한 것은 없어?'
[따로 정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12월 31일까지 존재했다 사라진 던전이라 언론이 한두 번 거론했던 적이 있을 뿐입니다. 그걸 강대한 님께서 보셔서 가지고 있는 기억입니다.]
'다른 정보는 없다는 말이네?'
[지극히 평범한 던전이었다는 정보는 있습니다. 같은 시기에 나타난 던전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사라진 던전이라 잠깐 주목을 받은 것이 다인 모양이었다.
'전생과 다른 시점에 던전이 열렸네.'
<집사! 5개월간 있었으면 단기 던전이라고 말해도 되겠다. 그치?>
'단기 던전이기는 하지. 그때 뭔가 조건이 달성돼서 던전이 사라졌을 수도 있고.'
<그렇긴 하네.>
꾸!
꾸루가 또 다른 정보를 전해주었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함박산에 있는 다른 던전에 관한 정보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드나들고 있네.'
<벌써 이럴 때는 아닌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함박산에 있는 다른 던전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고 던전 주변에 좌판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 시기에는 어디를 가도 저런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여기부터는 우리끼리 갈 수 있을 것 같소. 도와줘서 고마웠소."
구조한 서른 명의 대장격인 사람이 말했다.
귀찮다는 내색을 감추지 않은 채 하는 말이어서 기분이 상했지만 굳이 싸우고 싶지 않아 꾹 참았다.
어린 아이 두 명이 있어서 참은 것이지 없었다면 따끔하게 말을 했을 것이다.
"······."
"흠! 흠!"
우리 팀원 중 누구도 대꾸를 하지 않자 목을 가다듬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멀어지는 사람들이었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살짝 손을 흔드는 것이 다였다.
"무슨 저런 사람들이 다 있습니까? 참느라 혼났습니다."
"살다보면 별스러운 사람들도 있는 법이니까. 가자고."
우리는 다시 함박산 정상을 향해 돌아섰다.
그런데 그때 그들의 대화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여기서 기다리면 내려오겠죠?"
"내려오지 그럼. 오늘은 열 명이야. 입고 있는 것도 멀쩡하고 그동안 잘 먹고 잘 산 사람들이니 뺏을 것도 많을 거야."
우리가 구조했던 서른 명이 산적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왜 이렇게 내려오지 않죠?"
"모르지. 똥이라도 싸고 내려오는지···."
"똥이라고? 하하하! 하하!"
"목소리 낮춰. 내려오다 들으면 오늘 일당 사라지는 거야."
"이렇게 쉽게 돈을 벌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말했잖아. 애써서 목숨 걸고 던전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이렇게 쉬운 길이 있는데 굳이 뭐 하러···. 고맙게 생각하라고. 내가 이 일에 가담······."
대장인 남자는 열심히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런 일을 처음 생각해 낸 것이 대장인 것 같았다.
<집사! 들었어? 저놈들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은데? 선량한 사람들 등쳐먹고 사는 놈들인 것 같아.>
"그냥 두면 안 되겠다."
던전 주변에는 저런 놈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특히 높은 산에 있는 던전에 갈 때는 특히 조심해야 했다.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도 위험하지만 던전에서 나왔을 때 더 위험했다.
던전에서 얻은 것을 빼앗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 있는 거냐? 조금 전 그 사람들 때문에 그래?"
"산적들이네요. 저희가 정상을 향해 다시 올라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지만요."
"산적이요?"
팀원들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멀쩡한 세상에서야 산적이나 해적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지만 대변혁 이후에는 아니었다.
산이 조금만 험하면 어김없이 산적이 나타났다.
통신이 복구가 된 이후에도 산적은 여전히 기승을 부렸고 이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도 변하지 않았다.
언제든 손쉽게 성장하려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혹시 사람을 죽여도 마나가 들어옵니까?"
조심스럽게 묻는 사람은 구완이었다.
"아닙니다."
"다행입니다. 사람을 죽여서도 마나가 들어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물건을 뺏고 그 물건을 다른 사람들에게 팔아서 마나를 벌려고 하는 걸 겁니다."
<마나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알려지고 나면 가지고 있는 마나까지 다 빼앗잖아.>
'지금 팀원들에게 그 이야기까지는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서···.'
아직 마나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악용할 수도 있고 남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서 말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영리한 구완이 바로 그것을 이야기했다.
"물건을 팔고 마나를 받을 수 있다면 남의 마나를 빼앗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다행히 아직 저 산적들은 모르는 것 같지만요."
눈치를 채고 말하는 것까지 말해주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갈수록 무서운 세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정수백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 수백 씨도 독하게 생각해야 해요. 이제 아들도 있잖아요."
"그래야죠. 고마워요. 주은 씨."
네 살 난 아이를 아들 삼은 정수백이었다.
지금은 아이를 마을의 어린이집에 맡긴 상태였다.
그간 잘 적응해서 이렇게 며칠 떨어져있어도 문제가 없었다.
정수백이 아들 생각을 하는지 입 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아이 이름은 뭐로 했을까?>
'모르겠어.'
<궁금하다. 물어보면 안 되겠지?>
'아직 짓지 않았을 수도 있어. 자칫 실례가 될 수도 있으니까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서울에서 만나서 인연인 된 아이를 수백은 동생 삼으려 했지만 아이는 수백을 아빠라고 불렀다.
그래서 졸지에 형이 아닌 아빠가 되어버렸지만 수백은 그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문제는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아이의 이름은 없었다.
정수백은 '아들'이라고 부르고 아이는 수백을 '아빠'라고 불렀다.
그간 이름을 지었을 수도 있지만 아직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말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어서 묻지 않는 것이었다.
"저놈들 그냥 둘 겁니까? 저런 놈들은 그냥 두면 안 돼요. 사회악이에요."
김주은이 목소리를 높였다.
"처리했습니다. 잠시 후에 아이들만 데리고 오면 됩니다."
"어떻게? 아! 소환수를 이용하셨군요?"
"정확하게는 소환수가 몬스터를 이용했죠."
놈들을 처리하기 위해 우리의 손에 피를 묻힐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전령조와 사냥조에게 명령했다.
그랬더니 소환수들에게 쫓긴 몬스터들이 일시에 놈들을 덮쳤다.
하지만 죄가 없는 아이들까지 희생양이 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전령조들이 두 아이를 보호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내려가면 두 아이만 무사할 것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지만 사실 엄청난 것이었다.
직접 손을 쓰지 않고 적을 친 것이니 어떻게 보면 무서울 수도 있었다.
"앞으로 조심해야겠습니다. 하하하!"
하이큐가 시원하게 웃었지만 조금은 두려워할지도 모르겠다.
꾸!
꾸루가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말을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와야겠습니다."
"내가 다녀오마."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멀리 나가시지 않아도 돼요. 전령조들이 데리고 올 거니까요."
"아이들이 충격을 받았으면 어쩌니?"
"아이들은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을 거예요."
"······."
팀원들이 쉽게 믿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이었다.
전령조의 숨겨진 재능 중 하나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무슨 일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