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 무슨 일 있는 거야?
전령조들은 태생적으로 전투를 좋아하지 않았다.
전령을 전하지만 전투에는 어지간해서는 관여하고 하지 않았다.
이런 전령조의 특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령조의 품에 안기면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전령조의 품에 안겼으니 밖의 상황이 보일 리도 없었다.
전령조의 모습을 내가 허락한 사람만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몬스터는 전령조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러니 전령조의 품에 안기면 몬스터는 그 사람을 보지 못했다.
전령조가 품에 안고 전장에서 벗어나면 전장에서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때 전제가 필요했다.
전령조의 품에 완전히 안길 정도의 작은 덩치이든지 잔뜩 움츠려서 그 품속에 완전히 안기든지 해야 했던 것이다.
전령조보다 덩치가 크면 가려지지 않은 부분은 그대로 몬스터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이상하게 보여서 몬스터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도 있었다.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낫지."
세상이 변했으니 변한 세상의 법칙대로 살아가야 하지만 그것도 정도라는 것이 있었다.
산적들과 함께 있었던 아이들은 예닐곱 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함께 있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지 않았나 싶었다.
꾸!
우리가 잠시 이야기를 하는 사이 덩치가 좋은 전령조 두 마리가 앞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령조들의 품에는 아이들이 있었다.
"잠이 들었네. 가족이 있는지 물어봐야 하는데···."
꼬물!
^가족 없어요. 둘 다! 대변혁의 날 가족을 잃은 것 같아요.^
"가족이 없다고 하네요."
"그럼 마을에 데리고 가야지. 던전에 입장이 되겠지?"
"마르긴 했지만 건강에 문제는 있어 보이지 않아요."
"내가 업으마."
"한 명은 제가 업겠습니다."
큰아버지와 황 관장님께서 아이들을 업었다.
우리는 그대로 함박산 던전에 입장해서 워프 게이트로 이동했다.
"워프 게이트는 던전을 클리어하면 원래 이곳으로 이동되는 겁니까?"
구완 씨가 물었다.
워프 게이트가 이번에도 던전의 입구에서 왼쪽으로 2킬로미터 지점으로 옮겨졌기 때문이었다.
"이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던전을 내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릴 필요는 없었다.
자신이 소유한 땅에 생겼다는 이유로 자신의 던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시스템에게 던전의 소유권을 인정받은 경우는 없었다.
전생에 변한 세상을 20년 이상 살았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는 말은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런 사실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던전을 소유하고 워프 게이트까지 옮길 수 있다는 것이 알려져서 좋을 일은 없었다.
"입구에서 이 정도 거리가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옮겨지는 것인지···. 던전은 참 신비로운 곳 같습니다."
구완은 던전을 돌면서 계속해서 탐구적인 면을 많이 보였다.
구완은 전생에 전사로 살았지만 사실 연구자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이근택을 죽이기 위해 살지 않았다면 연구에 평생을 바쳤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아마 이번 생은 그렇게 살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던전에 데리고 온 것은 던전과 몬스터를 알아야 이에 맞는 개발과 연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구완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은 향후 그의 연구의 초석이 될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 잠시 마을에 다녀오겠습니다."
"제가 다녀와도 되는데···."
"아닙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워프 게이트가 경계입니다. 그 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클리어를 한 던전은 바로 관리 계약을 맺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있는 던전은 2킬로미터에 월 이백 마나에 시스템이 관리를 해주기로 했기 때문에 이 안에 있으면 세상 그 어느 곳보다도 안전했다.
잠이 든 두 아이를 안고 워프 게이트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그대로 화순 던전으로 이동했다.
<5일 만에 돌아왔네. 어서 나가보자.>
나호가 유난히 서두르고 있었다.
"왜 이리 서두르는 거야?"
<아이들에게 간다고 하니까 좋아서 그래. 귀엽잖아.>
나호는 아이들을 좋아했다.
실체를 가지는 시간이 늘어난다면 아이들과 뛰어놀았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하루에 10분밖에는 실체를 가질 수 없었다.
던전을 나와서 마을의 어린이집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사람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던전에 가서 마나를 벌어야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은근히 어르신들도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좋아하셨다.
혼자되신 어르신이 많기도 하고,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아이의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다다닥! 따다다닥! 따다닥!
어린이집에 들어서자 조금은 경망스러운 소리가 났다.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놀면 각성확률을 올려주는 장난감 소고였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장난감일 수도 있는 소고를 정신없이 돌리고 있는 아이는 정수백의 아들이었다.
"어? 형아아아! 우리 아빠는? 우리 아빠는 안 왔어?"
처음 봤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밝아진 아이가 물었다.
"지금 적을 무찌르고 있어. 그래서 함께 오지 못했어."
"히잉! 보고 싶었는데···. 우리 아빠는 언제 와요?"
"세 밤만 더 자면 올 거야."
"하나, 둘, 셋! 이렇게 셋 요?"
"맞아. 똑똑하네."
"그런데 이 애들은 누구에요? 새로운 친구에요?"
정수백의 아들은 똑똑했다.
서울의 난리통을 목격했고 이곳까지 오면서 변한 세상을 본 아이였다.
그래서 한동안은 말을 잃은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상황파악을 잘했다.
"맞아. 새로 온 친구야. 그런데 잠이 들었어."
"여자 아이 맞죠? 머리가 짧아서 남자 같아요."
정수백의 아들은 딸이라고 할 정도로 예쁘게 생긴 아이였다.
머리도 남자아이치고는 길었다.
만난 이후로 한 번도 머리를 자르지 않아서 지금은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여자처럼 보였다.
그런데 오늘 데리고 온 아이 중에 한 명은 여자 아이인데도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약간 남자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정확하게 여자아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제가 선생님···."
정수백의 아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방으로 달려갔다.
어르신을 모시러 가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내 선생님을 모시고 왔다.
<감나무 댁이라고 불리던 아주머니다.>
나호가 아주머니를 알아보며 말했다.
"강 팀장님 오셨···. 어? 아이들이네요?"
"예. 이 아이들은······."
감나무 댁 아주머니에게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정수백의 아들은 눈치가 빨랐다.
아주머니를 불러주고는 자리를 피해주었다.
"제가 잘 돌보겠습니다."
"예.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저어···."
어린이집을 돌아 나오려고 하는데 아주머니께서 조심스럽게 불러 세웠다.
"죄송하지만···."
아주머니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제가 돌아오는 길에 평택에 들려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장님이랑 마을 사람들 억지로라도 꼭 데리고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밖의 상황이···. 여기서 함께 살 수 있으면······."
감나무 댁 아주머니께서 유난히 눈치를 보며 말씀하셨다.
이런 세상에서 밖을 돌아다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기 때문에 이러시는 것이었다.
우리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지 않지만 정보는 계속해서 듣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사하십니다."
"정말입니까?"
"예. 정말입니다."
"아이고! 이렇게 좋을 수가! 진작 물어볼 것을···. 겁이 나서 묻지도 못했습니다."
아주머니의 눈이 붉어졌다.
"팀장님께서 지켜주신 거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다른 마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가족처럼 지내서···. 어찌나 걱정이 되던지···."
아주머니는 몇 번이고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 하셨다.
"이번에는 꼭 모시고 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뭐라도 해야 하는데···."
"아이들 잘 돌봐주시고 계시잖아요. 그거면 됐습니다."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어린이집을 나왔다.
엄밀히 말하면 어린이집이 아니고 종합복지관 비슷한 개념이었다.
혼자가 된 아이들과 어르신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져 사는 곳이었다.
물론 낮에는 마을의 아이들도 이곳에 맡겨지지만 말이다.
<기분이 좋네. 잠시 자리를 비워도 마을이 잘 돌아가고 있잖아. 아주 바람직해!>
나호가 그 말을 하고 앞장서고 있을 때 나호 앞으로 무언가가 내려앉았다.
<아이고 깜짝이야! 깜짝 놀랐잖아!>
괙!
^미안하다. 나 떼놓고 갈까봐 서두르다 보니···. 헤헤!^
나호에게 사과를 한 보비가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괙!
^나 또 따라가도 되지?^
"당연하지. 가자."
괙!
^마을도 이상 없다. 애들에게 확인하고 왔다.^
그렇게 말한 보비가 대기실로 쏙 들어가 버렸다.
보비는 이번 일정에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을에 돌아오자마자 대기실을 빠져나가더니 그새 마을의 상황을 살피고 온 모양이었다.
<애들이 하나같이 책임감이 넘쳐. 대장들이어서 그러나?>
소환수들이 모두 대장 출신이어서 책임감이 남다른지도 모른다.
대기실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화순 던전을 통해 함박산 던전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다. 다음 던전으로 가자꾸나."
<무슨 일 있었네. 있었어.>
말씀은 하지 않지만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말씀하시지 않는데 꼬치꼬치 묻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대로 다음 던전으로 이동했다.
워프 게이트가 있는 던전은 난이도가 있고 던전이 넓어서 클리어 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남은 던전은 일반던전이어서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정수백의 아들에게 약속했던 사흘 후에 마을에 돌아올 수 있었다.
<집사! 뿌듯하지?>
"그러네. 기분이 묘하네."
함께 나간 팀원들의 성장이나 벌어들인 마나도 기분이 좋은 것이었지만 50여 개의 던전에 삶의 터전이 생겼다는 것이 더 기분 좋았다.
그리고 이런 정보는 시스템에 의해 사람들에게 퍼지고 있을 것이었다.
<이것으로 집사가 꿈꾸던 대로 우리나라가 가장 안전한 나라가 됐어. 기분이 어때?>
"날아갈 듯이 기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담담하네."
정말 의외였다.
이런 순간을 정말 오랫동안 꿈꿔왔는데 너무 평범했다.
"큰일 했다. 자랑스럽구나."
"아버지."
언제 오셨는지 아버지께서 어깨를 두드려주셨다.
어머니께 대강 이야기를 전해 들으신 것 갔다.
"할아버지도 기뻐하실 거다. 널 유난히 예뻐하셨는데···. 이 집과 산을 지키라고 하셨던 것도 이런 미래를 예측하신 것인지···."
할아버지는 세상을 보는 눈이 남다르셨다.
점을 보거나 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남보다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계셨다.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예측하신 일이 틀린 적이 없었다.
물론 대변혁 같은 것을 예측하신 적은 없지만 말이다.
"마나를 조금 내고 산다고 해도 몬스터의 두려움보다는 나을 거야. 장벽 밑에 사람들을 쫓아내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제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구나."
장벽 밑에 사는 사람들을 처음부터 쫓아낼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온갖 냄새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그들이 부리는 패악도 문제였지만 말이다.
"일세를 받는다고 했지?"
"예. 홍보부터 계약, 수금부터 시스템이 알아서 하니 문제는 없어요."
"홍보는 언제부터 한다니? 아직 뭐가 온 것이 없던데?"
"당장 집이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홍보가 이루어질 거예요."
"그래서 그랬구나. 들은 것과 달리 아무런 홍보가 없어서 의아했지. 네 생각인 거지?"
"예. 제가 시스템에게 부탁했어요."
"잘했다. 없는 사람들도 안전한 거처 정도는 있어야지."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꾸루가 정보를 전달했다.
꾸!
^평택 김기현 이장님 댁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
오는 길에 평택에 들렀지만 이장님을 모시고 올 수 없었다.
"왜? 무슨 일 있는 거야?"
범죄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