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 범죄자들
꾸루의 정보가 넘어왔다.
몬스터가 몰려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집을 잃은 사람들이 마을을 노리고 몰려온 것 같았다.
"아버지 다녀와야 할 것 같네요."
"조심하고···."
아버지의 얼굴의 근심이 가득했다.
세계 최강일 것이 분명한 아들인데도 걱정이 되시는 모양이었다.
화순 던전을 통해서 이장님 마을과 가장 가까운 던전으로 이동했다.
그 던전을 나온 후에는 반반이를 타고 이동하니 화순에서 출발한지 1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니! 무조건 비워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소! 빈집들이 있으니 거기에서 살라고 배려를 해줬으면 충분한 것 같은데···."
"지금 이 숫자를 보고도 그런 말을 하는 거요? 다 허물어져 가는 집에 살라는 거냐고!"
누군가 반반이를 봤다면 말다툼을 멈추었겠지만 누구도 반반이를 의식하지 못했다.
워낙 조용히 접근했기 때문이었다.
"오래 비어져 있던 집이 아니오. 딱 두 달 남짓 비어져 있었을 뿐이지. 먼지가 쌓여서 그렇지 청소하면 여기보다 나을 것이오. 그러니 저쪽으로 가서 살든지 아니면 마을에서 나가시오!"
이장님께서 30대 후반의 남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놔아! 늙은이가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저기 지하실이 있는 곳을 우리가 써야겠다고! 이 늙은 양반아! 이렇게 꼭 집어서 말해야 알아듣는 거야? 그러니 집 비워! 아니 그냥 이리 나와!"
30대 후반의 남자가 이장님을 어깨를 낚아채려고 했다.
하지만 남자의 손은 이장님의 어깨에 닿을 수 없었다.
꼬물이가 남자의 손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어? 이, 이게 뭐야! 으아아악! 아아악!"
꼬물이는 남자의 손목을 잡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슬쩍 움직였다.
아마 남자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가 손목을 잡고는 움직였으니 소름이 돋았을 것이다.
하지만 꼬물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남자의 손목을 점차 강하게 움켜쥔 것이었다.
"놔! 놓으라고! 으어억!"
남자가 자신의 손목을 잡은 괴생명체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 반반이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반반이의 거대한 덩치에 놀라 그 위에 타고 있는 나는 보지도 못했다.
<쫄보네. 쫄보! 이런 놈들이 더 약한 사람은 괴롭히지.>
나호가 혀를 끌끌 차며 남자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물론 영체 상태인 나호였기 때문에 남자는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했지만 나호의 몸은 언제든 실체를 가질 수 있었다.
"괴물이다!"
"사람이 타고 있어!"
"어어어! 으아아!"
"어, 어떻게에에···."
마을을 빼앗기 위해 온 사람들은 스물네댓 명이었다.
모두 무기를 들고 있었는데 무기는 농기구부터 각종 공사용 공구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대장이 순식간에 제압당하자 당황했지만 이내 들고 있던 무기를 반반이를 향해 겨냥했다.
뒤로 한두 발짝씩 물러서기는 했지만 전투를 많이 치러봤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세를 키우고 마을을 빼앗기 위해 올 정도면 보통은 아니라는 거지.>
꼬물!
^혼나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뮤! 뮤!
^냄새가 난다. 악취다!^
꼬물이와 도뮤가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 중 살릴 만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뭐, 뭐야! 여기는 우리가 먼저 찍었어!"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하더니 이들이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우리도 이 마을을 빼앗기 위해 온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얌전하게 물러난다고 하면 한 번은 용서해주지."
꼬물!
^저 사람들 나쁜 사람이에요. 이곳에 오기 전에도 나쁜 짓 많이 했어요.^
꼬물이가 제법 강하게 항의했다.
뮤! 뮤! 뮤!
^친구! 걱정하지 마라! 집사 똑똑하다. 저놈들 그냥 물러날 놈들 아니니까 저리 말하는 거다.^
꼬물!
^그런 거얌! 괜히 걱정했네.^
유난히 귀엽게 글을 쓰는꼬물이었다.
"용서? 같잖은 소리 하지 마! 니가 뭔데 용서를 운운하는 거야! 여기는 우리가 먼저 점찍었으니 썩 물러나!"
대변혁이 일어나고 이제 세 달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활동을 한 사람은 제법 전투 경험도 있고 산전수전 다 겪었을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이놈들처럼 나쁜 짓까지 일삼는 놈들은 인간과의 전투에도 능하다고 봐야했다.
마을을 침입한 놈도 보통은 아닌 놈이었다.
꼬물이에게 오른 손목을 잡혀있는데 왼손을 높이 쳐들었다.
그 손에는 정글도가 들려있었다.
정글도로 꼬물이의 뿌리를 자를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런 공격이 가능할 리 없었다.
꼬물이도 허용하지 않겠지만 다른 소환수들이 지켜보고 있을 리 없었다.
뮤!
으드득!
"아아악! 으아아악!"
쨍그랑!
정글도를 높이 쳐들던 놈은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
하지만 놈은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꼬물이가 놈의 손목을 단단히 틀어쥐었기 때문이었다.
뮤! 뮤! 뮤!
^어디서! 내 친구를! 퉤!^
던전 도깨비는 공간을 이동할 수 있었다.
단 50센티미터이지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정글도를 높이 쳐드는 것을 본 도뮤가 대기실에서 이동하더니 놈의 왼 손목을 물어버린 것이었다.
정글도가 바닥에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엄청난 피가 쏟아졌다.
도뮤가 문 놈의 왼 손목은 절반이 사라진 상태였다.
던전 도깨비의 치악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강철도 절단하는 치악력을 가진 도깨비에게 손목은 두부처럼 부드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으어어! 고, 공격해! 다 죽이라고! 뭐하고 있는 거야!"
피가 철철 나고 손목이 잡힌 상태에서도 수하들에게 공격을 지시하는 놈은 그 상태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놈의 지시를 받은 수하들이 반반이를 공격하려고 했다.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이장님!"
"······."
김기현 이장님을 불렀다.
이장님께서 바로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스걱!
"으아아! 으아! 대, 대자아앙!"
"사람을 죽였어! 사람을 죽였다고!"
"이, 이 살인마 놈!"
"죽어어!"
대장이 쓰러진 순간 몇몇은 뒤로 빠지려고 했지만 대부분은 그대로 눈이 돌아간 듯한 반응을 보였다.
꽤 오랫동안 함께 한 것 같았다.
<저런 단결력으로 선량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아. 쯧쯧!>
각종 무기를 들고 공격을 하려던 사람들은 허망할 정도로 손쉽게 제압당했다.
꼬물이의 뿌리역할도 컸지만 이번에는 던전 도깨비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도뮤를 비롯한 던전 도깨비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그들의 친구인 꼬물이를 공격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달아나려고 했든 공격하려고 했든 모두 잡혀서 무릎을 꿇어야했다.
그리고 이들이 꿇은 무릎 바로 앞에 대장이 쓰러져 있었다.
물론 대장은 이미 생을 달리한 뒤였다.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다시는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
꼬물!
^거짓말! 재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면서!^
전생에도 이런 놈들을 숱하게 봤었다.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등골을 뽑아 먹는 놈들!
이런 놈들은 용서를 해준다고 해서 절대 바뀌지 않았다.
직접 이들을 처리하는 것도 싫었다.
그렇다고 이런 놈들을 풀어줄 수도 없었다.
"강 팀장! 고마우이. 자네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세상이 어찌 이리 돌아가는지···."
"앞으로는 이런 놈들이 더 많을 겁니다. 저희와 내려가시죠."
"기다리는 자식들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이고. 이장님! 이제는 그냥 월평으로 가렵니다. 살아있어야 자식들도 만나죠.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이리 기다린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70이 훌쩍 넘어 보이는 어르신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그냥 강 팀장 따라가고 싶어. 인자 여기가 무서워."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어르신도 가세를 했다.
"진작 이랬어야 하는데 강 팀장만 수고롭게 해서 미안하구만."
"그러실 거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결정을 해주셔서 저는 좋습니다."
"우리를 받아줘서 고마워. 그런데 저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우리는 짐 챙기겠네."
이장님께서 마을 어르신들과 자리를 피해주셨다.
월평으로 가기로 하셨으니 챙겨야 할 것도 많으실 것이었다.
<집사! 저 놈들 어떻게 할 거야? 한 번 저렇게 쉽게 살아가려고 하는 놈들은 바뀌지 않던데.>
대변혁 전에도 범죄인의 교화가 어려웠지만 대변혁 이후에는 더 어려웠다.
범죄를 저지르기도 쉽고 은폐하기도 쉬운 세상이었다.
거기다 범죄를 정당화하기도 좋은 세상이 대변혁 이후의 세상이었다.
그래서 점점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좋아지지는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혼을 내줘야지."
<어떻게? 대장처럼 죽일 거야? 그것보다 집사 괜찮아? 사람을 죽였는데?>
"사람이었어? 인간의 탈을 쓴 몬스터가 아니고?"
<하긴! 몬스터보다 못한 놈이긴 하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무릎이 꿇린 사람들이 목숨을 구걸했다.
대장을 단칼에 날려버린 것을 봤기 때문에 자신들도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따아악!
"으악!"
꼬물이의 뿌리가 한 남자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퍼어억!
"허어억!"
그리고 이내 한 여자의 등을 가격했다.
두 사람 모두 허튼짓을 하려던 사람들이었다.
"두 번의 자비는 없습니다. 이 이상 신경을 긁지 마십시오."
꼬물이에게 가격을 당한 두 사람이 바짝 엎드렸다.
하지만 눈빛은 결코 곱지 않았다.
거칠게 살아온 만큼 성질들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꼬물!
^묶을까? 잠시 함께 이동해야 할 텐데 묶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꼬물이는 내가 이들을 여기에서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눈치 챈 것 같았다.
"묶어주면 고맙지."
꼬물!
^금방 묶어줄게.^
대기실 바닥에 그렇게 적은 꼬물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오십여 개의 뿌리가 내려오더니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들에게 접근했다.
"어어! 저게 뭐야!"
"대장을 잡았던 괴물이다!"
"뱀? 뱀인가?"
언 듯 보면 소환 식물들은 뱀처럼 보이기도 했다.
살아 움직이는 밧줄처럼 보이지만 뱀에 훨씬 가깝기는 했다.
뱀을 싫어하는지 몇 사람이 제법 큰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소환 식물의 접근을 피할 수 없었다.
<빠르네. 무서울 정도로 빨라!>
소환 식물들의 뿌리가 내려간 순간 이들을 묶는 것은 순간이었다.
대기실에는 농사 과정에서 얻은 식물로 만든 밧줄들이 제법 많았다.
이런 밧줄은 시중에서 파는 것 못지않게 강했다.
소환식물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밧줄 중 제법 강한 것으로 이들을 묶어버렸다.
각각의 사람을 묶고는 줄줄이 굴비 엮듯이 묶기까지 해서 이들을 데리고 이동하기도 좋을 것 같았다.
"잘했어. 딱 내가 원하는 대로야."
"우리를 어쩔 셈이냐! 차라리 여기서 죽여라!"
제법 대차게 나오는 사람은 조금 전 꼬물이에게 등을 맞았던 여자였다.
꼬물!
^이 여자 정말 나쁜 여자다! 이 여자가 이 무리의 부대장이다.^
꼬물이가 다시 여자의 등을 뿌리로 내리쳤다.
"으악! 왜! 왜 때리는 거야?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시기에 같이 살자고 한 것이 나빠? 나쁘냐고? 안전하게 살겠다는데 뭐가 나쁘냐고!"
여자가 목소리를 높았다.
다시 한 번 꼬물이의 뿌리가 여자의 등짝을 강타했다.
그런데도 여자는 기세를 꺾지 않았다.
"죽여라아아! 나쁜 놈들!"
뭐가 저리도 당당한지 알 수가 없었다.
"꼬물아 입도 막아버려!"
용서해줄 마음도 없었지만 그런 마음조차 들지 않게 하는 여자였다.
"하지 마! 하지 마으라···."
여자가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였다.
꼬물이가 여자의 입을 막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조용하니 좋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생각이 있어. 기다려봐."
<알겠어. 얌전히 기다려야지.>
나호가 시무룩하니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놈들을 어떻게 할지 말을 해줘도 좋지만 직접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서 말을 해주지 않았다.
그 사이 황이가 금이가 뿌리를 이용해서 땅을 파더니 대장 놈을 묻어주었다.
몬스터의 밥으로 던져줘도 시원찮을 놈이지만 어르신들을 생각해서 참는 것이었다.
"다 챙겼어. 인자 가도 되네."
"종종 마을에 들려서 확인하겠습니다."
"그래주면 고맙지. 진작 따라 갔어야 했는데···."
마을 분들이 챙겨온 짐은 인벤토리에 모두 보관을 하고 인근의 던전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저놈들도 함께 가는 건가?"
"함께 가기는 하지만 따로 처리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범죄자들 때문에 마나가 나가야 하다니···.>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는데 한 사람 당 백 마나였다.
이 마나가 나가는 것이 아까운지 나호가 질색을 했다.
'저놈들 마나까지 내가 낼 생각은 없는데? 왜 내가 내?'
<집사가 내지 않는다고? 그럼 어떻게 해?>
'시스템이 저놈들에게 받으면 되지. 내가 왜 내?'
<그래?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집사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런데 저놈들 데리고 화순으로 가는 거야? 저런 놈들을 데리고?>
'우선 화순으로 가기는 할 거야 하지만······.'
던전을 감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