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 막내 탈출
[띠링!]
띠링하는 소리가 이렇게 반가웠던 적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도뮤의 수다가 멈췄기 때문이었다.
도뮤의 폭풍수다를 통역하던 꼬물이도 뿌리 끝을 옆에 놓인 그릇에 담갔다.
소환식물 전용 치료수가 담긴 그릇이었다.
뮤!
^미안하다. 말이 많았다^
도뮤가 앞발로 제 눈을 가렸다.
순간 다람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띠링! 거대 몬날 문어의 새끼가 소환수가 되길 원합니다. 계약을 맺으시겠습니까?]
저렇게 작은데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것 같았다.
"당연하지."
[이름을 지어주지 않아도 되지만 이름을 지어주면 더 좋아할 것입니다.]
시스템의 음성도 유난히 소곤거렸다.
작은 새끼 문어를 배려하는 것 같았다.
"이름 지어줘야지. 어떤 이름이 좋을 것 같아?"
음머어어!
^거대 몬날 문어의 새끼니까 나는 꼭 '거(巨)'자는 들어갔으면 좋겠다. 크게 자라라는 의미도 담아서.^
반반이의 의견이었다.
쫑!
^내 생각에는 지금의 귀여움을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미니'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좋겠어. '미니문'도 좋을 것 같아. 작은 문어 미니문!^
<작은 문어라는 의미면 '소문'이 더 낫겠네.>
쫑!
^소문은 소문이라는 말과 같잖아. 그래서 그건 탈락이야. 미니문이 귀엽지 않아?^
뮤! 뮤! 뮤!
^내 생각에는 다슬기 안에서 나왔으니 '다문'도 좋을 것 같다.^
<그건 안 돼! 나중에 커서 다 물고 다니면 어떻게 해?>
꾸!
^치료수가 담긴 웅덩이에서 자랐으니 '치문'도 좋을 것 같다.^
소환수들이 다들 '문'자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런데 꼬물이는 모두의 의견을 통역하기만 할 뿐 자신의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꼬물이 너는 어떤 이름이 좋을 것 같아?"
꼬물!
^쟤는 '똑쟁이'에요. 똑똑해요. 그러니 저는 '똑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구물구물!
다른 이름에는 반응이 없던 새끼 문어가 똑이라는 이름에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런 반응을 소환수 중에서 가장 먼저 눈치 챈 것은 도뮤였다.
뮤! 뮤! 뮤!
^역시 내 친구 꼬물이의 작명 실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똑이! 그 얼마나 위대한 이름인가! 새끼 문어의 흥미까지 이끌어 냈다. 나도 똑이라는 이름에 한 표를 던지겠다!^
도뮤가 카드를 던지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말을 하는 폼이 연설을 하는 연사를 연상케 했다.
"똑이? 나도 좋을 것 같아. 새끼 문어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고. 너도 마음에 들지?"
[띠링! 거대 몬날 문어의 새끼 '똑이'가 강대한 님의 소환수가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똑이는 대기실을 자유롭게······.]
시스템이 소환수가 가질 수 있는 특권에 대해 설명을 했다.
다른 때보다 상세하게 설명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아직 어린 문어라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시스템의 설명이 한참 이어지고 있을 때 꼬물이가 대기실 바닥에 글씨를 썼다.
꼬물!
^보비가 막내 탈출했다고 좋아할 것 같아요.^
뮤! 뮤! 뮤!
^보비의 막내 탈출은 허락할 수 없어. 보비의 막내 생활은 너무 짧았다. 주로 월평에 있어서 막내 노릇을 하지도 않았다.^
도뮤가 이 부분에 있어서 약간 불만이 있는 것 같았다.
소환수들끼리 티격태격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똑이가 너무 어려서 막내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해. 그러니 보비가 한동안 막내 노릇은 해야 할 거야.>
막내라고 해서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데 왜 저리 막내타령을 하는지 모르겠다.
[띠링! 소환수 '똑이'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시려면 상태창의 소환수 창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시스템이 물통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새로운 소환수가 생겼으니 더더욱 물통을 구매하는 것이 좋지 않냐는 말까지 했다.
똑이가 치료수를 많이 먹을 것 같지는 않지만 치료수 물통을 하나 더 구매했다.
20만 마나를 지불하고 산 것이었다.
이 물통은 기존의 물통과 달리 보관만 하는 것이었다.
<저 물통도 한 단계 상승시켜주면 좋은데···.>
"바로 옆에 그런 물통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그렇기는 하지만 새로운 물통도 한 단계 상승시킨다면 S급은 물론이고 SS급까지 만들 수도 있잖아.>
"S급만 해도 엄청난 거야. 그런데 똑이 이 녀석은 계속 이곳에 있을 건가? 잠이 오는 모양인데?"
소환수가 되면 상태나 감정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지금 똑이는 긴장이 풀린 상태였다.
알에 있을 때부터 긴장을 했던 것 같았다.
그러다 소환수 계약을 맺자 안심이 되면서 긴장을 푼 것 같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졸음이 몰려오는 모양이었다.
작은 머리가 꾸벅거리는 것이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었다.
머리를 잘 가누지 못하는 것도 같고···.
<너무 작아서 대기실에 있으라고 말하기가 영···.>
꼬물!
^제가 데리고 있을게요.^
꼬물이가 냉큼 새로운 그릇을 하나 꺼내더니 거기다 S급 치료수를 받았다.
그리고는 그 그릇을 제 여린 뿌리 앞에 두었다.
그 그릇 안에 똑이를 넣으면 된다는 말 같았다.
"저기에 있을래? S급이라 네게 도움이 될 텐데."
너무 어린 탓인지 똑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떤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똑이의 말은 꼬물이가 통역을 할 수도 없었다.
말을 아직 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구물구물!
똑이는 코끝에서 구물구물 움직일 뿐이었다.
"우선은 저대로 둬야겠다.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으니···."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새롭게 구입한 치료수 물통에 치료수를 채우는 일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1㎥여서 금방 채울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1,000㎥였다.
그러니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더구나 기존의 물통에 담아서 한 단계 상승을 시킨 후에 다시 옮겨 담아야 해서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 중 일부는 시스템에게 넘겨야하고 말이다.
<이 치료수만 있어도 다른 약은 필요 없겠다.>
"벌써 S급 치료수를 풀 수는 없어. 아무리 많이 있다고 해도 말이야."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도 벌써 S급 치료수를 풀 생각은 없었다.
팀별로 비상용으로 몇 병씩 지급할 생각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만약을 위한 대비 차원에서 주는 것이었다.
<당연하지. 벌써 S급 맛을 봐 버리면 연구도 소홀할 거야. 전생에 나왔던 다양한 약들을 위해서도 치료수는 아낄 필요가 있지.>
소환수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치료수를 물통에 담았다.
꼬물이 옆에 있는 물통이었다.
이 물통에는 현재 몇 칸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소환식물 치료제가 담겨있었다.
소환식물 전용 치료제가 담기지 않은 칸 중 하나가 비어 있어서 그 칸을 통해 S급 치료수를 만들고 있었다.
물통에 물을 담았다가 빼내기만 하면 치료수의 등급이 한 단계 상승했다.
이것은 엄청난 것이었다.
치료수의 경우 A급과 S급의 가격 차이는 엄청났다.
효과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A급만 되어도 목숨을 건질 수 있어서 예비 목숨이라는 말이 있는데 S급은 오죽하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치료수를 담고 있는데 똑이가 구물거리며 코에서 내려갔다.
말랑말랑 젤리보다 더 말랑거리면서도 부드럽고 가벼운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액체 괴물 같기도 하고 그것보다 감촉이 더 깔끔한 것 같기도 했다.
쫑!
^떨어지면 어떻게 해···?^
똑이가 움직이면서 다리를 몇 개 내 얼굴에서 떼어놓자 쪼롱이가 하는 말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집어서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옮겨주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너무 작아서 집는 순간 몸이 터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살짝 만지는 것도 조심스러운 똑이였다.
<어? 이 녀석 무척이나 느린 것 같은데 또 저런 때는 제법 빠르네.>
"빠른 것이 아니고 똑똑한 것 같은데···."
똑이는 이름답게 정말 똑똑했다.
제 몸짓이 느리다는 것을 알았는지 다리 두세 개를 가고 싶은 방향으로 최대한 뻗었다.
그리고는 몸통을 다리가 있는 곳으로 옮겨갔다.
이런 식으로 움직이자 정말 제법 빨리 이동을 했다.
순간 간지러워서 긁기라도 하면 똑이는 그대로 터져버릴 것 같아서 조금 간지럽지만 꾹 참고 있었다.
꼬물!
^어디를 저렇게 부지런히 가나? 여기 와서 쉬지. 피곤하고 졸려 보이는데.^
똑이는 소환 계약을 맺은 직후부터 졸음이 온 상태였다.
그런데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이 점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수수보다 작은 똑이는 생각보다 자주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똑이가 열심히 움직이는 사이 우리는 하던 일을 계속 했다.
일에 집중을 하니 똑이가 얼굴에 붙어있는 것도 잊어버렸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 때 목이 가려워 나도 모르게 긁으려고 했다.
그러다 똑이가 생각나서 살며시 만져보았다.
검지만 살짝 가져다 댄 것이었다.
말캉이나 물컹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워낙 작아서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단지 목에 작은 이물질이 묻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뿐이었다.
<저기에 자리를 잡은 건가? 신기하네.>
똑이가 자리를 잡은 곳은 목의 왼쪽 경동맥 위였다.
우리가 목에서 심장 박동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꼬물!
^두근두근! 쐐액! 쐑! 심장 소리와 피가 지나가는 소리가 똑이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 같대요.^
꼬마가 그렇게 말을 한 모양이었다.
<아직 어려서 안정감을 찾고 싶은지도 몰라. 의도치 않게 일찍 부화한지도 모르고···.>
"안정감은 그럴 듯 한데···. 일찍 부화했을까? 알을 찢고 나올 때 아주 야무졌어. 딱 그때가 부화할 때였을 거야."
<그럼 다행이지. 그런데 이물감은 들지 않아?>
"지금은 괜찮아. 보기에는 어때?"
<밤이어서 더 그렇겠지만 거의 보이지 않아. 몸이 투명하잖아. 그리고 지금은 집사의 피부색과 같아졌어. 정말 눈이 좋은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를 것 같아. 보인다고 해도 문신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 흉터로 보일 수도 있고.>
"거기가 좋은 거야?"
구물구물!
똑이는 자리 잡은 곳이 좋은지 재빨리 다리를 움직여서 의사 표현을 했다.
목에 붙어 있어서 보이지는 않지만 다리의 움직임과 느낌으로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목에 자리를 잡은 똑이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잠이 들었지만 목에서 떨어지지는 않았다.
젤리가 바닥에 들러붙은 것처럼 아주 제대로 붙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물감이 거의 들지 않았다.
꼬물!
^시원하죠?^
"어떻게 알았어?"
꼬물!
^시원하게 느껴져서요.^
"시원해. 활력이 돋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신기하다. 나도 느껴보고 싶다.>
나호가 똑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면서 다시 교육열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똑이는 똑똑해 보이니까 글씨를 가르쳐 봐야겠어. 다른 소환수들이 방해하기 전에 바로 시작해야지. 흐흐흐! 꼬물아! 똑이가 한글 배우면 좋겠지? 그럼 너도 덜 수고롭고 말이야.>
꼬물!
^좋지요. 그것도 아주 많이. 하지만 지금도 나쁘지는 않아요. 통역하는 거 은근히 재미있거든요.^
뮤! 뮤! 뮤!
^우리 친구! 똑똑하고 착하다. 자. 선물이다.^
도뮤가 꼬물이에게 황금을 선물했다.
심심하면 하나씩 선물하는 것으로 도뮤가 직접 제련한 황금이었다.
꼬물이는 도뮤가 건네는 황금을 받아서 꼬마에게 주었다.
그러자 도뮤가 꼬물이 몫으로 하나 더 주었다.
"보기 좋네."
치료수를 물통에 담는 일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시스템의 도움 때문이었다.
치료수를 물통에 담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자 시스템이 기존 물통에 달려 있던 호스를 바꿔주었다.
호스를 바꾸어주자 치료수를 빨아들이는 힘이 월등히 좋아져서 일을 빨리 끝날 수 있었다.
<몇 시간 잘 수 있겠다. 똑이가 붙은 위치가 정말 절묘하다. 집사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거의 주지 않을 것 같아.>
"똑이잖아. 똑쟁이."
<이 녀석 꿈꾸는 것 같아. 몸의 색깔이 바뀌고 있어.>
나호가 똑이 몸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다.
내가 직접 보지 못하니 이렇게 말을 해주는 것이었다.
"이제 막 태어났는데 어떤 꿈을 꾸는 걸까?"
<그러게. 그거 궁금하다.>
꼬물!
^알 속에서도 꿈을 꾸지 않을까요?^
거의 다 자란 문어는 정말 알 속에서도 꿈을 꿀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날 밤은 잠자리에 눕기는 했지만 잠을 이룰 수는 없었다.
모두의 관심이 똑이에게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 우리는 다시 던전의 입구를 향해 걸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걸어서 두 번째 구간의 입구에 다다랐을 때였다.
똑이의 움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