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 소리 장인
똑이의 작은 다리가 들리고 브으으 라는 소리가 울린 순간 주변에 있던 새끼문어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건 뭐야? 이거 의왼데?>
누구도 새끼 문어들이 이렇게 움직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새끼 문어들은 지금 완전히 어둠에 동화되어 있었다.
그 상태에서 남자가 있는 곳으로 접근을 했다.
남자는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득의에 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호주머니에 든 새끼문어의 말랑거림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새끼 문어들이 남자의 위에 도착한 순간 남자의 즐거움은 끝이 났다.
"으아아악! 으아아악! 아악! 사, 살려줘어어! 아악!"
"무, 무슨 일이야!"
"클리어 됐다고 하지 않았나?"
"뭐야?"
가장 먼저 소리를 지른 사람은 당연히 새끼 문어를 납치한 남자였다.
남자는 고통에 찬 비명을 토해내며 벌떡 일어나서 문어들을 떼어내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철썩 달라붙은 문어를 떼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옆에 자고 있던 사람들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남자를 보고는 멀찍이 떨어지는 사람들이었다.
누구도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이들은 원래 이런 사이였던 것이다.
혹시라도 자신들에게도 붙을까 전전긍긍할 뿐이던 사람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드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러다 죽는 거 아니야?"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아니 그것보다 저렇게 작은 녀석들이···. 이거 얕봤다가는 큰일 나겠어."
"으어어억! 아아아악!"
남자가 자신의 얼굴에 달라붙은 배구공만한 새끼 문어를 떼 내려고 애를 쓰며 비명을 질렀다.
남자의 목으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남자의 피는 볼 수 없게 되었다.
남자의 목에도 문어들이 달라붙었기 때문이었다.
목뿐만이 아니었다.
손에도 문어들이 찰싹 달라붙은 것은 물론이고 옷 속으로도 들어가고 있었다.
작은 문어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달라붙은 문어들은 남자를 물어뜯는 것 같았다.
남자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드러누웠다.
등에 붙은 문어들이라도 죽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꼬물이의 뿌리가 가만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자의 등이 바닥에 닿지 못하도록 잡고 있었고 그 사이 등에 있던 새끼 문어들은 빠져나올 수 있었다.
등에서 빠져나온 새끼 문어들은 배와 가슴으로 이동해 닥치는 대로 물어뜯었다.
얼굴부터 흘러내린 피가 옷을 적시고 있었다.
저대로 두면 남자는 과다출혈로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어어어! 어억!"
소리를 지르던 남자가 축 늘어져버렸다.
브으으!
작은 눈으로도 남자가 늘어진 것이 보인 걸까?
똑이가 작은 소리를 냈다.
그러자 미친 듯이 공격하던 새끼 문어들이 남자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남자에게서 떨어진 문어들은 호주머니에 잡혀 있는 문어를 데리고 내 주변으로 돌아왔다.
문어들이 빠져나온 후 남자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제법 봐줄만 하던 얼굴은 이제 과거의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어이! 이씨! 이씨!"
동료들이 남자를 툭툭 치면서 깨워보려고 했지만 남자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브으!
꼬물!
^자! 여기 치료수! 녀석 기특하네. 이런 것도 요구할 줄 알고.^
꼬물이가 치료수가 가득 든 그릇을 서너 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똑이가 꼬물이에게 부탁한 모양이었다.
치료수가 담긴 그릇이 놓이자 똑이가 다리로 치료수가 담긴 그릇을 가리켰다.
그러자 새끼문어들이 그릇에 한 번씩 들어갔다 나왔다.
조금 전 남자의 손에 의해 상처를 입은 문어들을 치료하게끔 신경을 쓴 것이었다.
"기특하네. 우리 똑이!"
구물구물! 브으!
칭찬을 하자 그것이 좋은지 다리를 움직여보이고는 독특한 소리를 냈다.
성체가 되면 프아아아! 하면서 온갖 것을 토해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토해낼 것도 없을뿐더러 토해낸다고 해도 치료수밖에는 나올 것이 없었다.
새끼 문어들이 모두 치료를 하고 나자 다시 똑이가 브으하는 소리를 냈다.
꼬물!
^똑이가 이 물로 저 남자 치료해 달라고 했어요.^
"치료해달라고 했다고?"
브으!
"왜?"
꼬물!
^저 남자는 새끼 문어를 해칠 마음은 없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애완용으로 키우려고 했거든요. 소환수를 삼고 싶었는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남자는 소환수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거기다 소환수가 있으면 전투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봤으니 욕심이 날만도 했다.
꼬물!
^새끼들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어요. 아마 그것을 똑이도 느낀 것 같아요.^
"너희를 해치려는 마음이 없어서 봐주는 거야?"
브으!
"좋아."
S급 치료수이기는 하지만 새끼문어들이 몸을 씻고 간 물이었다.
아무리 S급이라고 해도 버려야했는데 이렇게 재활용을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저 남자에게는 엄청난 행운이네. S급 치료수로 치료를 받는 최초의 사람일 거야. 이놈 야무지게 써먹어야겠다. 치료수 값은 받아내야지.>
나호가 재잘거리는 사이 꼬물이가 치료수가 담긴 물을 들고 남자에게로 이동했다.
뿌리가 그릇을 들고 이동하는 것인데도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에게 한정된 이야기였다.
범죄자들은 또 무슨 일이라도 날까 두려운 것인지 뒤로 훅 물러났다.
<바보들! 한 방울이라도 묻히기 위해 애를 써야할 판에···. 쯧쯧!>
치료수가 담긴 그릇을 옮긴 꼬물이가 남자의 몸에 치료수를 뿌렸다.
얼굴과 목을 가장 많이 뿌리고 이어 배와 등, 손에도 뿌려주었다.
뿌리로 몸을 살짝살짝 들어가며 뿌려주었으니 빠진 곳 없이 치료가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으으으!"
S급 치료수의 위력은 엄청났다.
미모를 잃을 것 같던 남자의 얼굴은 이내 다시 제 모습을 갖추었다.
그런데 상처를 입기 전보다 더 잘생겨진 것 같았다.
거기다 혈색까지 더 좋아보였다.
남자도 잠시 어리둥절해 있더니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는 자신의 손과 얼굴, 목을 만져보았다.
그러더니 배까지 까뒤집고는 이상이 없는지 살폈다.
"어···."
바보 같은 표정을 짓던 남자는 꼬물이가 들고 있는 그릇을 보고는 이해를 한 것 같았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저를 살려주셨군요."
남자는 소환식물을 내가 부린다는 것과 치료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투 도중 상처 입은 소환수들을 치료수를 이용해 치료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아까운 것을···."
남자가 바닥으로 흘러내린 치료수를 손으로 모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바닥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치료수를 모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이곳의 토양에는 산호초가 많이 섞여 있었다.
그러다 보니 물은 금세 바닥으로 스며들어 흔적을 아예 지워버린 후였다.
그런데도 남자는 땅을 파헤쳤다.
그리고는 치료수를 가득 머금은 흙을 자신의 몸 이곳저곳에 펴 발랐다.
남들이 보기에는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S급 치료수의 위력을 느낀 남자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남자의 몰골은 이내 전투위장을 한 사람처럼 보였다.
더 이상 바를 것이 없어지고 나자 주위의 시선이 느껴지는지 엉거주춤 몸을 세운 남자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포르르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저질렀습니다."
쿵!
그냥 사과만 해도 될 것을 남자가 자신의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그런데 이 남자가 하는 짓이 참으로 영악했다.
바닥에 찧은 머리를 들면서 이마를 쓱 쓰다듬었다.
치료수가 묻은 흙이 가득한 손이었다.
남자는 절대로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뮤! 뮤!
^웃긴 놈이다! 저런 놈을 다루는 것은 단순하다. 원하는 것을 쥐어주면 죽는 시늉도 할 거다.^
같은 생각이었다.
전생에 이런 놈들은 숱하게 봤었다.
"그런 행동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본 놈들 같잖아요. 제가 일본을 좋아하지 않아서···."
"아! 그렇습니까? 그럼 하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조금 전과 같은 행동을 하지 않겠습니다."
"뭘 잘못한지는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소환수를 건드렸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벌을 받았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자비가 아니었으면 죽었을 겁니다."
<저런 놈들은 참 말도 잘해. 저런 언변을 배우는 곳이 따로 있나?>
별 것 아닌 말이었는데 유난히 매끄럽게 들리도록 말하는 재주가 있었다.
"건드리지 마세요. 그리고 용서는 이번 한 번뿐입니다."
"알겠습니다."
"내일도 많이 이동해야 하니 가서 주무세요."
"저어···. 말씀을 편하게···. 저희가 불편합니다."
"그러던지···. 어서 가서 자."
연장자여서 말을 높여주었는데 싫다고 하면 굳이 높여줄 필요가 없었다.
"예. 그럼 가보겠습니다."
남자가 도망가듯 자리로 돌아가더니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누구도 쉽게 잠이 들지 못하는 밤이었다.
유난히 벌레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코 고는 소리와 이 가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전생에는 저런 소리를 차단하는 이어폰이 있었던 것 같은데···."
[띠링! '편안함 밤을 그대에게'를 찾으시는 겁니까?]
물건에 대한 것을 말했더니 바로 반응을 보이는 시스템이었다.
"물건의 이름은 도대체 누가 짓는 거야?"
[이름만 전문으로 짓는 장인이 계십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장인이시라고?"
[그렇습니다. 지난 ···년간 이름만 짓고 계십니다.]
시스템이 몇 년이라고 분명 말을 했는데 그 부분이 묵음처리가 되었다.
알려줄 수 없는 정보인 것 같았다.
"어떤 제품인데?"
[찾으셨던 것처럼 듣고 싶지 않은 소리는 듣지 않게 해주는 제품입니다. 엄마의 잔소리만 거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집사에게는 아버지의 잔소리를 잡아주는 것이 필요해.>
나호가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의 잔소리를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사실 회귀 이후에는 아버지의 말씀을 잔소리로 생각한 적이 많지 않았다.
전생에 재앙 시대를 20년 이상 살아보니 어르신들의 말씀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은 지나친 것 같은 말씀도 재앙시대에서는 부족했다.
지겹도록 들었던 말씀 덕분에 목숨을 구한 적도 적지 않았다.
"얼마야?"
시스템의 설명 정도면 충분했다.
전생에 비슷한 제품을 봤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과 던전에서 며칠씩 있게 되면 의외로 이런 제품이 필요했다.
피곤해서 다 같이 잠이 들어버리면 괜찮은데 타이밍을 놓치면 잠이 들기 어려웠다.
다른 소리는 몰라도 코 고는 소리와 이 가는 소리 정도는 걸러주는 제품을 구비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이 제품을 처음으로 구매하시는 고객에게는 50% 할인 가격으로 제품을 제공하겠다고 장인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1만 마나만 주시면 됩니다.]
<먹는 것도 아니고, 스킬도 아닌데 1만 마나라고? 그것도 50% 할인된 가격이?>
나호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졌다.
[이건 결코 비싸지 않은 제품입니다. 소리 장인이 직접 만드신 첫 번째 작품으로 원하는 소리는 명확하게 잘 들리게도 해주는 제품입니다.]
"소리를 제거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원하는 소리는 들리게 해준다고?"
[그렇습니다. 강대한 님께서 이 제품을 구매하신다면 관리구역의 길이만큼 소리를 확장해주시겠답니다.]
"잠깐? 그러니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범위가 관리구역의 길이와 연동된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현재는 2킬로미터 이내의 소리 중 강대한 님께서 듣고 싶은 소리를 명확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지정은 어떻게 하는데? 2킬로미터 안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을 때는 어떻게 지정해?"
[그건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어떤 형태를 원하시는지 골라주십시오.]
시스템은 고르기 쉽도록 상태창에 물건을 띄워주었다.
<시스템 바보 아니야? 문신형이 가장 좋지. 더구나 귀 뒤에 보이지 않게 하는 거잖아.>
"나도 문신형이 가장 좋았어. 그런데 문신형은 문신이 손상되면 아이템도 망가진다는 문제가 있어."
<그래도 문신형을 할 거잖아.>
"당연하지. 편의성은 문신형을 따라올 수 없으니까. 아픈 것도 아니고···."
물건을 고르자 혹시 취소라도 할까 걱정이 됐는지 날쌔게 마나를 가지고 가더니 귀 뒤에 문신을 새겨버리는 시스템이었다.
이럴 때는 정말 빠르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하잖아!>
[띠링!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다음에는 이와 같은 제품은 다시는 만들어지지 않을 겁니다.]
"유일제품이라는 거네?"
얼마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