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 보석 같은 존재
싱크홀 안에 있는 좀비를 모두 처리하고 던전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딱!
평상시와 똑같이 꼬물이가 던전 덩굴을 쳐냈다.
좀비를 토해내던 던전의 던전 덩굴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 꼬물이가 던전 덩굴을 쳐냈을 때는 반항하기도 했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꼬물이에게 반항하는 던전 덩굴은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생각지 못한 것을 보게 되었다.
<집사! 봤어?>
"봤어! 이거 심각하네. 이 던전이 1회성 던전이 아니라면 일본은 정말 지옥문이 열렸다고 봐야겠네."
좀비가 모두 사라져서 싱크홀 안은 조용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을씨년스러웠다.
조금 전 봤던 것을 살짝 피하며 창을 바닥에 강하게 찔러 넣었다.
그러자 코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좀비 다섯 마리가 튀어나왔다.
이들의 행태를 할지 못했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이들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
퍽! 퍼억! 퍼! 퍼억! 퍽!
바닥에서 '지화(地花)'를 확인한 순간 쇠도리깨를 준비했었다.
그리고 좀비들이 지화에서 튀어나왔을 때 쇠도리깨를 휘둘러서 좀비의 머리통을 깨부수었다.
<다행히 좀비의 등급은 높지 않은 것 같은데? 이거 좋아해야 하는 거야? 아쉬워해야하는 거야?>
우리나라였다면 당연히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일본이었다.
일본에 높은 등급의 몬스터가 나오는 것은 우리와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좀비 다섯 마리가 튀어나왔던 곳이 언제 그랬냐는 듯 평평해졌다.
우리가 저것을 지화라고 부른 이유였다.
지화는 말 그대로 땅에 피는 꽃을 의미한다.
좀비 중에 가장 대처하기 힘든 종류 중의 하나가 지화인데 이놈들은 땅에서 갑자기 튀어나와서 사람을 공격한다.
그런데 항상 다섯 마리가 함께 다녔다.
땅속에 다섯 마리가 함께 웅크리고 있다가 먹잇감이 다가오면 튀어 올라서 사냥을 하는데 좀비가 나오기 직전에 땅 바닥에 다섯 개의 꽃잎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여서 지화라고 불렀다.
지화는 그냥 보면 상당히 아름다워 보이고 감성을 자극시킨다.
다섯 개의 꽃잎이 반달 모양으로 볼록하게 솟아있기 때문이었다.
이 다섯 개의 반달 모양이 좀비의 머리통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스에 가까웠다.
좀비는 원칙적으로 사체였다.
죽은 것은 필연적으로 썩을 수밖에 없었다.
썩은 것이 땅속에 있으면 가스가 차면서 땅이 볼록하게 솟는 것이었다.
지화라고 불린 좀비 종의 경우에는 항상 다섯이 함께 다니고 다섯 꽃잎 모양으로 땅이 함께 솟아올랐다.
땅에 들어앉은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에는 땅이 솟아오르지 않는다.
이때에는 사람이 지나가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해. 지나가고 난 직후에 땅이 봉긋이 솟아오르며 좀비가 튀어나올 수도 있거든.>
나호가 소환수들에게 '지화 좀비'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 사이 던전에 입장했다.
던전 안에 들어간 순간 살짝 어이가 없었다.
아마 이 던전은 아주 오랫동안 방치된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는 바닥이 이럴 수는 없었다.
<이게 다 몇 마리야? 아니 그것보다 지화 좀비는 최소가 E등급이지?>
"뭔가가 바뀐 것이 없다면 최소가 E등급일 거야.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어."
"이 던전에 있어."
<더 상세하게는 안 나오는 거야?>
"생명 반응이 있는 것을 보니까 살아있는 것은 확실해. 그런데 상세 장소는 알 수 없어."
<에이 이게 뭐야? 은근히 기대했는데 실망이다.>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것 같기도 해. 현실에서 보면 던전은 그리 넓지 않은 장소야. 한 마디로 아주 좁은 곳을 특정을 해준 거지. 던전이 넓은 것까지 시스템이 어떻게 책임을 지겠어. 안 그래?"
<하긴. 확실하게 던전에 있다고 말해준 것만도 고맙게 생각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천기재가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아."
<찾기 지도에 나오지 않는데 무슨 수로 찾아?>
"던전지도가 있잖아. 던전 지도를 확인하면 되지."
<아! 그럼 어서 확인해봐.>
던전지도창으로 넘어가서 지금 있는 던전의 지도를 확인했다.
<아우! 아주 새빨갛다. 푸른 점이 있기는 하는 거야?>
나호가 깜짝 놀랄 정도로 던전지도는 온통 붉은색이었다.
그만큼 이 던전에 몬스터가 많다는 것이었다.
"어? 정말 녹색이나 푸른색 점이 보이지 않네. 아직 불분명해서 그런가?"
던전 지도에 붉은색으로 나타나는 것은 몬스터뿐만이 아니었다.
적대적인 인물도 붉은색으로 나타나고 반대의 경우에는 푸른색이나 녹색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천기재의 경우는 아직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는 것 같았다.
붉은 점이 너무 많아서 다른 색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공략을 해보면 알겠지. 후다닥 처리하자!"
꼬물!
꼬물이가 가장 활기차게 대답했다.
다른 소환수들은 좀비류의 몬스터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꼬물이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좀비류의 몬스터를 더 선호하기도 했다.
지금처럼 몽둥이로 머리통만 깨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퍼억! 퍽! 퍽! 퍽!
"확실히 편하네. 좀비를 죽이기에는 쇠도리깨가 역시 최고야."
쇠도리깨의 살상력을 본 나호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무기를 만든 것은 나호 덕분이었다.
머리통을 깨기에는 이것보다 좋은 무기는 없다며 추천을 해주었던 것이다.
이번에 실전에서 처음 사용해보는데 정말 좀비를 처리하는 데는 이것보다 좋은 무기는 드물 것 같았다.
<하하하! 내가 말했잖아. 쇠도리깨가 역사가 깊은 무기야. 우리 백성들이 많이 사용했어. 창이나 검은 익히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쇠도리깨는 아니거든. 길어서 적의 접근을 막을 수도 있고. 그때도 머리를 노렸지.>
나호가 옛날이야기를 자주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해줄 때면 의외로 재미있는 것이 많았다.
쇠도리깨 이야기도 그랬다.
직접 쇠도리깨를 휘두르며 나호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냥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
나호가 말하는 백성들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쇠도리깨가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 우리는 수박밭에 난입한 코끼리 떼 같았다.
그만큼 쉽게 좀비를 처리하고 있었다.
"이 던전이 오래 되어서 오히려 처리가 수월하네."
<그러게. 지화 좀비가 매복의 장점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잖아. 불쌍하게도.>
지화 좀비는 땅속에 숨어 있다가 튀어나오며 공격하는 녀석들인데 개체수가 너무 늘어나면서 이런 장점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수수수! 수수수!
갑자기 머리 위에서 이런 소리가 났다.
이 소리는 검수가 내는 소리였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마나가 들어오자 즐거운 모양이었다.
급격한 움직임에도 머리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잘 붙어있었다.
"마나 들어오는 것을 보니 지금까지는 다 E급이네."
<천기재 씨는 이 던전에 언제 들어왔을까? 아니 그것보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있지? 좀비들이 득실거리는데?>
"알 수 없지."
지난번에 왔을 때는 분명 지화좀비가 나오는 이 던전은 싱크홀 속에 없었다.
그렇다는 말은 내가 다녀간 후에 생겼다는 것인데 그럼 최대 두 달 전에 이 던전이 형성됐다는 말이었다.
생긴 이후로 단 한 번도 클리어가 된 것 같지 않고 말이다.
우리의 전투는 순조롭고 빨랐다.
몬야크들까지 전투에 참여하고 있어서 더 그랬다.
이런 적을 상대로는 몬야크는 천하무적이었다.
아마 몬야크들에게만 맡겨두어도 클리어는 무리가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소환식물과 사냥조까지 있었다.
던전 도깨비나 전령조는 나설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좀비를 정리해나가던 어느 순간 좀비의 방어력이 상승했다.
여전히 쇠도리깨 한 방에 머리가 박살이 나기는 했지만 팔로 느껴지는 반동이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이것 때문에 힘들어하지는 않았다.
단지 좀비를 처리할 때 나는 소리가 달라졌을 뿐이었다.
카아앙! 캉! 캉! 카앙!
그렇게 좀비를 처리해 나갈 때였다.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가슴에 얌전히 붙어 있던 새끼 문어들이 갑자기 날아오른 것이었다.
<이 녀석들 왜 이래?>
브으으!
나호가 새끼 문어들을 막으려고 하자 똑이가 그러지 말라는 몸짓을 취했다.
작은 다리를 들어오려 나호를 저지하는 몸짓이 군왕의 그것처럼 당당하기만 했다.
똑이는 지금 내 머리에 앉은 검수의 머리 위에 앉아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는 둥 떠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던전 도깨비 검수는 내가 허락하지 않은 사람은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똑이의 명령을 받고 날아오른 새끼문어들이 향한 곳은 소환식물들의 뿌리였다.
소환 식물들의 뿌리는 지금 쇠몽둥이를 들고 좀비의 머리통을 깨부수고 있었다.
평범하게 생긴 몽둥이도 있고 쇠침이 박힌 몽둥이도 있었다.
제법 묵직하기까지 한 쇠몽둥이를 휘두르다 보니 뿌리가 조금 벗겨진 곳이 있었다.
새끼문어들은 정확하게 그곳으로 날아가더니 프으으하고 입안의 것을 토해냈다.
먹은 것이 치료수 밖에 없는 새끼들이었다.
입에서 나온 것은 당연히 S급 치료수였고 치료수를 맞은 뿌리는 즉각적으로 치료가 되었다.
새끼 문어들은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치료수를 뿜어주었다.
꼬물!
^꼬마가 원하던 그림이 완성됐어요.^
꼬물이가 작고 여린 뿌리로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간호사냐? 정말 신기한 일이네. 지금은 치료수지만 나중에는 마나회복약 같은 것도 뿌려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집사! 상상해봐. 지친 병사의 입에 새끼 문어가 치료수를 부어주는 거야. 그럼······.>
나호가 말하는 대로 되도 상당히 좋을 것 같았다.
사람들의 거부감을 없앨 수만 있다면 말이다.
<집사! 거부감 생각했지? 평상시에는 더럽고 역겨운데 아파봐. 그럼 더럽고 역겹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거야. 오히려 고맙게 느낄 거야. 새끼 문어들이 보석 같은 존재로 느껴질걸!>
나호가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과 같은 전장에서도 치료수만 뿌려줘도 좋은데 전장이 더 정신이 없다면 보석 같은 존재가 아니라 여벌의 생명을 제공하는 존재로 여겨질 것이었다.
똑이와 꼬마가 새끼 문어들을 데리고 가자고 강력하게 원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브으으!
^잘했어! 이제 와서 쉬어!^
머리 위의 똑이가 새끼 문어들을 불러들였다.
새끼 문어들은 미끄러지듯 날아와서는 가슴에 앉았다.
물론 한 마리로 뭉친 채였다.
"이 녀석들은 소환수가 아니어서 나와 동행하지 않아도 던전에 들어갈 수 있거든."
<지금 주인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아!>
"팀을 강력하게 할 수 있다면 좋지."
<그럼 새끼 문어들 더 데리고 올 거야?>
"똑이의 의견도 물어야겠지."
<똑이는 무조건 좋다고 할 것 같은데?>
브으으!
^좋은데···. 지금은 열 마리가 한계에요. 열 마리가 넘어가면 제 통제를 벗어나게 돼요.^
"그래서 열 마리를 그렇게 강조한 거였어?"
브으!
<던전에서는 새끼들 다 부렸던 것 같은데?>
브으!
^거기는 우리 집이니까요.^
<똥개도 제 집에서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뭐 그런 건가? 어이쿠!>
똑이를 똥개에 비유하는 순간 꼬물이의 뿌리 하나가 나호를 향해 떨어졌다.
<말이 그렇다는 거야. 말이!>
"그럼 나중에 갈 때 두 마리 더 데리고 오자."
브으으으! 브으!
^좋아요. 아주 좋아요,^
"대신 두 마리는 항상 같이 다니지 못할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지?"
브으!
^괜찮아요. 열 마리는 제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나는 대왕이니까요!^
<집사! 대왕이래! 대왕문어라는 말인가? 으하하하! 프하하하!>
나호가 발라당 뒤집어져서는 발까지 동동 구르며 웃었다.
꼬물이의 뿌리가 나호의 영체를 가르고 지나갔지만 웃느라 피하지도 않았다.
영체가 나호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는 것인데도 섬뜩한 광경이었다.
새끼 문어들의 뜻하지 않는 재주에 던전 공략은 한결 탄력을 받았다.
소환식물들과 사냥조들이 몸을 사리지 않아도 되니 공략 속도도 빨라져서 어느새 던전의 끝이 멀지 않은 곳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천기재는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삼열 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