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 아바타
작지만 쉽지 않은 던전!
이미 경험 것과 비슷한 던전!
어떤 던전을 먼저 가는 것이 좋을까?
지금까지 우리는 넓은 던전에 오히려 익숙했다.
사실 던전은 넓은 곳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도깨비 마을에 처음 입장할 때 좁은 통로를 기어서 들어갔던 것처럼 그렇게 작은 던전도 있었다.
사람의 입장이 불가능할 만큼 좁은 던전도 존재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렇게 작은 던전은 직접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정말 좁아서 움직이는 것이 불편했던 던전은 몇 번 경험했던 적이 있었다.
늘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움직이는 것에 불편함을 느낄 정도의 던전은 공략하기 까다로웠다.
좁은 던전에는 아주 작은 크기의 몬스터가 나타날 수도 있고 움직임의 제약이 많기 때문이었다.
"나는 오른쪽 던전을 먼저 공략하면 좋겠는데···?"
<집사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른쪽 던전을 먼저 공략해야지.>
"내가 오른쪽이라고 해서 무조건 따르는 거야?"
<당연하지. 나는 집사의 충직한 소환수니까. 헤헤! 꼭 소환수라서 그런 것은 아니고 가운데 던전이 좁다고 했잖아. 전생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좁은 던전은 대개 피곤했어.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집사도 기억하지?>
"그 생각이 나서 오른쪽 던전부터 공략하려는 거야."
<그러니까. 그냥 오른쪽 던전부터 가자. 공략하기 쉬운 곳부터 처리해버려야지.>
"좋아! 가자!"
마음이 통하는 존재가 옆에 있다는 것은 참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 같았다.
나호가 옆으로 왔다.
던전에 입장할 때는 먼저 입장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 여기는 지화 좀비가 보이지 않네?>
던전에 입장한 나호가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세 개의 던전이 합쳐진 것이라고 했잖아. 같은 던전일 리는 없지. 던전 지도부터 확인해볼게."
천기재가 이곳에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뭐야? 여기도 온통 붉은색이네 아무것도 없는데?>
이 던전도 온통 붉은색이었다.
지도에 다른 색을 나타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런데 눈앞에는 어떤 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 던전이 왼편의 던전과 비슷하다고 했으니 땅속에서 몬스터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꼬물!
^땅속에 몬스터가 있을 거라고 말은 하지 않았는데 눈치가 땅속에 있는 것 같았어요. 제가 살펴볼까요?^
나호나 꼬물이는 원하기만 하면 땅속도 문제없이 살펴볼 수 있었다.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나호가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몸이 없는 내가 들어가야지. 에효오! 예전에는 땅에 머리 박지 말라고 하더니···. 이제는 박으라고···. 박기는······.>
나호가 구시렁거리며 땅속으로 머리를 넣더니 그 상태로 20미터 전방으로 전진했다.
영체 상태이지만 참으로 기괴해 보였다.
땅속으로 머리만 넣었던 나호가 정확하게 20미터 앞에서 사라졌다.
땅속으로 몸 전체를 넣은 것이었다.
<잠깐만 둘러보고 올게.>
그 말을 남기 채 나호가 사라졌을 때였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꼭 땅속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래서 번쩍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높고 유난히 푸르렀다.
이렇게 하늘이 푸를 수도 있나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번쩍!
그리고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꾸루와 쪼롱이의 높고 날카로운 소리!
몬스터는 땅속이 아니라 하늘 위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하늘빛과 비슷하든지 투명한 것 같았다.
꾸!
^몬스터! 몬스터!^
꾸루가 이런 소리와 함께 보내온 정보는 놀라운 것이었다.
"해파리인가? 슬라임 종류 같기도 하고···."
꾸루가 보내온 정보 속에 담긴 몬스터는 상당히 제대로 찍혀 있었다.
하지만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꼬물!
^액체 괴물 같아요. 그런데 저 녀석들 적의를 품고 있는 거죠?^
"그렇지. 그렇지 않다면 던전 지도가 이렇게 붉지는 않겠지."
꼬물!
^그런데 왜 우리 쪽으로는 다가오지 않는 거예요? 몬스터라면 막 공격해야 할 것 같은데? 우리가 정체를 파악하기 전에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잖아요.^
"알 수 없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안전지대인지도 모르고···."
사실 안전지대라는 말은 말이 되지 않았다.
던전지도에 붉은 점은 우리가 서 있는 곳에도 가득하기 때문이었다.
"나호야! 너 뭐하는 거야? 몬스터는 위에 있는 것 같은데?"
<여기 재미있는 것이 있어서 그래.>
"재미있는 거? 뭐가 있는데 그러는 거야?"
<나 이런 거 처음 봐.>
전생에 대변혁 이후 정확하게 23년을 산 나호였다.
내 죽음과 함께 나에게 묶여 회귀를 한 나호이니 정확한 햇수였다.
대변혁 이후 23년을 산 나호에게 새로울 것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땅속에서 나오지 않을 정도로 흥미를 끄는 것이 있단다.
거기다 처음 보는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몬스터는 하늘에 있어."
<그래? 우리가 아는 몬스터야?>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아. 슬라임과 비슷해. 액체 괴물처럼 생겼어."
<그래? 그럼 이거 조금만 더 보고 올게. 아니 도뮤 좀 보내줘. 나는 실체를 10분밖에 갖지 못해서 이걸 살피는데 한계가 있는 것 같아.>
도대체 뭐가 있는데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더 이상한 것은 우리를 봤을 것이 분명한 몬스터가 공격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쨌든 나호가 부탁한 일이니 도뮤를 소환했다.
뮤! 뮤! 뮤!
^꼬물이에게 들었다.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고!^
"이 아래에 나호가 있어. 나호에게 가면 자세한 것은 알게 될 거야."
바닥을 가리켰다.
잠시 바닥을 쳐다보던 도뮤가 바닥으로 폴짝 뛰어내리더니 땅속으로 파고들어갔다.
황금을 채굴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도뮤는 땅을 정말 잘 팠다.
바닥에 몸이 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금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도뮤까지 땅속으로 사라진 후 우리는 하늘을 주시했다.
너무 높이 있어서 전령조의 도움이 아니면 몬스터가 있는지도 모를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을 수는 없었다.
도뮤가 땅속으로 들어간 지 3분정도 됐을 때 도뮤가 부르는지 다른 도깨비들이 땅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깨비들이 땅속으로 열 마리 정도 들어갔을 때 나호가 나왔다.
"뭐가 있는데 그러는 거야?"
<집사! 정확한 것은 아니야. 이거 잘못 건드리면 머리가 아플 것 같아서 건드리지 않고 조사만 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나호가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기만 할 뿐 정말 꼭 해야 하는 말은 하지 않고 있었다.
"뭔데 그렇게 망설이는 거야? 그냥 말을 해봐. 답답하잖아."
<아니 내가 생각해도 너무 어이가 없는 말이어서 집사가 미쳤다고 할까봐 걱정이 돼서 그래.>
"그냥 말을 해. 그래야 알지."
<여기 땅속에 들어가니까 아주 작은 굴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어. 그런데 지난번 봤던 몬지네 굴처럼 땅속 깊은 곳까지 연결된 것은 아니야. 여기서 정확하게······.>
땅속으로 10미터 정도 내려가면 작은 생쥐 한 마리가 겨우 지나갈만한 굴이 거미줄처럼 연결이 되어있단다.
굴은 평면적이라고 했다.
10미터이하로는 더 이상 내려가지 않고 딱 10미터가 기준인 것처럼 뻗어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작은 굴의 끝마다 작은 슬라임이 한 마리씩 있어. 크기는 하나같이 아이 손바닥만 했어. 그런데···.>
"그런데?"
<그게 아무래도 저것들의 본체 같아.>
나호가 하늘을 가리켰다.
나호가 하는 말이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저런 몬스터도 실재했다.
"핵이 있었어?"
<맞아. 핵이 있었어. 마정석! 몸이 투명해서 확연히 보이더라고.>
"숫자는?"
<내가 확인한 곳에서는 다섯 마리! 도뮤가 앞쪽으로 갔으니 더 있겠지.>
"그런데 왜 움직이지 않는 거야?"
<그건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본체들이 자는 것 같았어.>
"잔다고?"
<본체들이 깨어나야 저 위에 있는 애들도 움직일 것 같은데 본체들은 진동으로 깨어나는 것 같아.>
"혼자 들어와서 깨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말이네."
<그렇지. 집사의 민첩이 높아서 거의 소리 없이 움직여서 더 그런지도 몰라.>
생각해보니 이 던전에 들어오고 난 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 마리가 깨어나면 다 깨어날 거야. 한꺼번에 잡아야겠네."
<내 생각도 그래. 도뮤 생각도 그렇고. 지금 도뮤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
10미터 지하에 있는 굴에 본체가 숨어있다는 말은 본체는 그리 강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본체가 죽으면 아바타인 녀석들도 죽을 가망성이 높았다.
나호와 잠시 이야기를 나고 있는 사이 도뮤가 올라왔다.
뮤! 뮤! 뮤!
^여기 아래 액체 젤리 많다. 우리 도깨비 다 동원해도 부족할 것 같다.^
현재 도깨미 마을에서 대기실로 넘어온 도깨비 수는 총 이백 마리!
검수까지 포함한 숫자였다.
뮤! 뮤! 뮤!
^여기 아래 굴은 소환식물 들어올 수 없다. 그리고 우리만큼 작은 덩치여야 한다.^
던전 도깨비만큼 작은 것으로는 새끼 문어 여덟 마리가 있지만 이 녀석들은 공격력은 제로에 가까웠다.
"어쩔 수 없어. 한꺼번에 이백 마리도 엄청난 거야. 그러니 너무 욕심내지 말자."
뮤! 뮤! 뮤!
^알겠다. 그럼 우리 도깨비들의 공간 이동을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보겠다. 한 마리가 최대한 두세 마리의 액체 젤리만 처리하면 될 거 아닌가!^
"너무 무리할 필요 없어. 도깨비들 다치는 것은 절대로 안 돼!"
신비의 종족인 도깨비들을 슬라임 같은 녀석을 처리하기 위해 잃을 수는 없었다.
뮤! 뮤! 뮤!
^알겠다. 집사의 마음 우리 도깨비들에게 전달되었다. 집사의 말만 들어도 우리 도깨비들 힘이 난다. 정말이다!^
그 순간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띠링! 신비의 종족 던전 도깨비가 강해집니다. 던전 도깨비의 공간이동 능력이 늘어납니다.]
[공간이동 가능 거리가 1미터로 조정되었습니다. 물체는 10센티미터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뮤! 뮤! 뮤! 뮤! 뮤! 뮤!
^집사! 아니 친구! 이거 집사 덕분이다. 너무 고맙다. 우리 도깨비들 집사 덕분에 강해졌다. 모든 능력이 무려 두 배로 늘어났다. 이거 경사다! 당장 잔치라도 벌리고 싶지만 작전부터 수행하겠다.^
도뮤가 방방 뛰면서 즐거워했다.
물론 공중에서 뛰는 것이라 높이가 장난이 아니었다.
높이 솟아오르는 것으로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했다.
<녀석! 정말 좋은가 보다. 집사에게 친구라고 했다 집사라고 했다 정신이 없네.>
뮤! 뮤! 뮤!
^그럼 들어가 보겠다. 이 던전은 우리 도깨비들이 확실히 처리해주겠다. 그럼!^
도뮤가 앞발을 흔들어보이고는 땅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도뮤가 땅속으로 들어간 후 대기실에 있던 도깨비들이 한 마리씩 차근차근 땅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검수까지 들어갈 차례가 왔다.
브으으!
^검수! 잘 다녀와! 죽지 마라!^
똑이가 검수를 보내며 하는 말이었다.
까만 도깨비 검수는 둥실둥실 몸을 흔드는 것으로 알겠다는 내색을 하고는 그대로 땅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조금은 냉정해 보였지만 질척거리지 않아서 오히려 좋은 것 같았다.
그런데 검수가 땅속으로 들어간 후 꼬물이가 바닥에 무언가를 잔뜩 쓰기 시작했다.
온통 숫자였다.
"그게 뭐야?"
꼬물!
^이거 검수가 이 던전의 공략 성공률을 계산한 거예요.^
"뭘 했다고? 공략 성공률?"
꼬물!
^던전의 면적을 바탕으로 액체 젤리의 수를 예상한 다음······.^
이다음 이어지는 설명은 상당히 전문적인 것이었다.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지는 내용이었다.
<꼬물아! 잠깐! 거기까지만 하자!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한다고 해도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잖아. 그래서 성공률이 어떻게 되는데?>
듣다못한 나호가 꼬물이의 설명을 중지시켰다.
꼬물!
^도깨비의 능력이 늘어나기 전에는 59%였어요. 하지만 도깨비의 능력이 늘어나고 난 이후에는 87%래요.^
"나쁘지 않네. 그런데 너는 검수가 한 말을 다 이해한 거야?"
꼬물!
^다 이해할 수 없어요. 너무 복잡하고 변수가 많아요. 그냥 잘 기억하는 거예요.^
그 많은 수식을 암기한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세상에는 이해되지 않은 일이 너무 많아. 이해할 수 없는 수식을 어떻게 다 암기하는 거지? 저게 더 어려운 거 아니야? 검수는 수에 천재라면 꼬물이는 암기에 천재인 것이 분명해.>
나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기실 입구의 바닥에는 알 수 없는 수의 향연이 펼쳐져 있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없었다.
도뮤가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소환수들을 모두 대기실로 대피시킨 것이 전부였다.
액체 젤리처럼 생긴 녀석들이 하늘에서 떨어질 때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검수까지 땅속으로 들어가고 딱 10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뮤! 뮤! 뮤!
하늘이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