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 하늘이 무너졌다.
뮤! 뮤! 뮤!
^제로에 작전을 개시하겠다.^
도뮤의 말과 함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5!
4!
3!
2!
1!
제로!
도뮤가 제로라는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비유적인 표현으로 하늘이 무너졌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작은 굴에 있는 아이 손바닥만 한 액체 젤리 몸속에 있는 핵을 제거하면 하늘에 떠있는 슬라임과 비슷한 녀석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대비를 야무지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대비를 무색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게 도대체···."
<집사! 빨리 컨테이너 하나 꺼내! 빨리! 이러다 소환식물들 뿌리 다 부러지겠어.>
"꺼낼 수 없어! 공간이 안 돼!"
워낙 높이 있는 몬스터들이어서 떨어질 때 가해지는 충격이 엄청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대비를 했는데 그것은 바로 던전 입구와 맞닿은 곳에 방패를 세우는 것이었다.
삼중으로 단단히 방패를 세우고 그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컨테이너를 하나 꺼낼까 생각했지만 컨테이너의 크기가 때문에 혹여 본체를 깨울까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최대한 설치하는데 바닥에 충격을 주지 않는 것을 생각하다보니 방패를 떠올린 것이었다.
그런데 도뮤가 제로라는 말을 하는 순간 방패로 엄청난 무게의 젤리 덩어리 같은 것이 떨어져내렸다.
문제는 이것이 각각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꾸루와 전령조들이 살폈을 때는 분명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본체가 공격을 받으며 떨어져 내린 것은 하나로 뭉쳐있었다.
두께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 것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우지끈!
철푸더어어어억!
작은 돌멩이 하나만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엄청난 충격을 가한다.
그런데 엄청난 무게의 젤리가 수백 미터 상공에서 떨어졌다.
얇아 보이고 각각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서 만만하게 보았던 것이 패착이었다.
소환식물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아마 나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소환식물들이 방패가 부서진 순간 뿌리로 이것들의 무게를 버텨냈다.
던전 넝쿨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던전 덩굴이 아니었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소환 식물들도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땅을 파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나는 도뮤처럼 빨리 땅을 파고 들어갈 수 없었다.
소환식물들이 땅을 파는 것을 도와주면 손쉽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소환식물들은 전부 방패가 더 이상 부서지지 않도록 버티는데 동원되어 있었다.
꼬물이의 여린 뿌리까지 힘을 보태고 있어서 나에게 서두르라는 말 한 마디를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 순간 꾸루가 대기실에서 나왔다.
나보다 덩치가 큰 꾸루였다.
내가 위급하다고 생각하니 본능적으로 한 일이었다.
반반이도 대기실을 박차고 나오려고 했지만 내가 있는 공간이 협소해서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쪼롱이는 어느새 왼쪽 어깨에 앉아 있었는데 숨을 죽인 채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꾸루야! 너 힘들어! 들어가!"
<집사!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야! 서둘러!>
소환식물들의 뿌리를 꾸루가 버티고 있는 상황이어서 자칫 꾸루까지 다칠 수 있었다.
소환수들을 미리 대기실로 불러들인 것이 정말 다행인 순간이었다.
땅을 팔 수도 없고 내가 어딘가로 갈 수도 없었다.
이곳이 내 소유의 던전이라면 지금 내가 있는 곳으로 워프 게이트를 이동시키고 그 안으로 들어가서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해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내 소유의 던전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이동시켜서 목숨을 건질 수 없다는 말이었다.
자칫 정말 이 던전에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것이 뭐지···?"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했다.
당황하고 우왕좌왕하면 될 일도 되지 않았다.
인벤토리 중에 중요한 물건만 넣어둔 칸을 살폈다.
마정석과 몬홀, 몬나통이 보이고 산성 용액과 바위골렘의 심장 하나도 보였다.
무척이나 귀한 것들이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인벤토리가 아니면 상태창을 살펴야했다.
상태창의 상단은 살필 필요가 없었다.
평상시에는 능력이나 스킬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이템이 필요했다.
아이템이지만 인벤토리에 보관하고 있지 않은 아이템!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재빨리 상태창의 하단을 확인했다.
상태창 하단에 [특이사항]을 클릭했다.
특이사항에는 '빛나정'이라든지, 협조계약 같은 것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특이사항의 가장 하단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있었다.
안전 텐트!
어떤 충격에도 견디는 텐트였다.
공짜로 세 번 빌려 쓸 수 있는 물건이었다.
연속해서 이용할 수는 없는 물건으로 한 번에 5분의 시간만 사용할 수 있지만 이 정도 시간이면 목숨을 건질 수도 있었다.
안전 텐트를 확인한 순간 바로 시스템에게 말을 했다.
"안전 텐트를 빌려 쓰겠어. 지금 당장!"
[띠링! 안전 텐트를 빌려 쓰시겠습니까? 강대한 님께서는···.]
다른 때 같으면 친절하다고 생각했을 반응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재빨리 시스템의 설명을 중단시키고 바로 안전텐트를 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시스템은 전혀 바쁘지 않았다.
[강대한 님께서는 세 번 안전 텐트를···.]
<스벌! 이거 또 다른 놈 와있는 거 아니야? 소환식물들이 다치기 일보직전이고 협조 계약을 맺은 특별고객이 죽을 위기에 놓여 있는데 절차 따지고 자빠졌네.>
나호가 열이 받아서 방방 뛰었다.
하지만 우리가 열을 낸다고 해서 시스템이 우리의 말을 무조건 들어주는 존재는 아니었다.
[세 번 안전 텐트를 사용하실 수 있는데 지금 사용하시면 앞으로 두 번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우지끈!
<산수 정도는 우리도 할 수 있으니까 빨리 텐트나 달라고! 애들 다치는 거 안보여!>
나호가 버럭 고함을 지르면서 실체를 드러냈다.
그리고는 제 몸을 거대화 시킨 후에 방패를 받치기 시작했다.
사실 방패가 아니라 소환식물의 뿌리를 받치는 것이었다.
조금만 넓은 곳이었으면 진작 나호가 실체를 가진 후 도왔을 것이다.
하지만 방패 안은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공간이었다.
지금 그 좁은 공간에 꾸루도 모자라 나호까지 실체를 가진 채 방패를 지탱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도 무게를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 버틴 것도 용했다.
그런데 시스템은 단 하나의 절차도 빼놓지 않겠다는 듯 하나하나 절차를 거치고 있었다.
일본으로 넘어올 때만 해도 평상시의 시스템이었는데 지금은 우리가 아는 시스템이 아닌 것 같았다.
하필 이런 순간에 말이다.
<집사!>
나호가 심상으로 나를 불렀다.
나호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알고 있어. 우리가 알던 시스템이 아닌 것 같아. 하지만 정해진 절차를 거치고 나면 빌려주지 않을 수 없을 거야. 잠시만 버티자!'
나호만 들을 수 있도록 말을 했지만 시스템이 맘을 먹는다면 듣지 못할 말은 아니었다.
"두 번 남는다는 거 알고 있어. 빌려줘."
[5분간 유지되는 텐트입니다. 5분이 지나면 자동으로 사라지며···.]
이미 알고 있는 설명을 이어가는 시스템이었다.
이것은 누가 보나 시간끌기였다.
'내가 죽기를 바라나? 밸런스를 파괴하는 사람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겠지?'
전생과 비교하면 나는 밸런스를 붕괴시키는 존재였다.
그것도 심각하게!
때로는 시스템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로 느껴질 수도 있었다.
회귀를 감지하고 있었다고 해도 이 정도의 성과를 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나조차도 이 정도로 강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 사이 시스템의 설명이 끝이 났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끌 명분은 없었다.
아무리 미운 존재라고 해도 정해진 것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띠링! 안전텐트가 제공됩니다!]
유난히 높고 날카로운 소리였다.
그 소리와 함께 안전 텐트가 제공되었다.
이 안전 텐트가 좋은 점은 크기의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또한 대여와 함께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가능했다.
즉 지금 상황에서는 최적의 선택이었다는 것이었다.
안전 텐트가 방패 안에 펼쳐졌다.
물론 나는 펼쳐진 텐트 안에 들어와 있었다.
내가 들어와 있다는 말은 내 소환수들도 들어와 있다는 말이었다.
프으으으! 프으으!
하늘이 무너지는 순간부터 새끼문어들이 없었다면 아마 소환 식물의 뿌리가 상당수 부러졌을 것이다.
그런데 새끼문어들 덕분에 뿌리가 멀쩡할 수 있었다.
새끼 문어들은 똑이의 명령을 듣고는 부러지려고 하는 뿌리에 치료수를 뿌려주었다.
입에서 토해내는 것이었지만 더럽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생명수가 뿌려지는 것만 같고 은총이 내려지는 것 같았다.
새끼 문어들은 더 이상 토해낼 치료수가 없으면 대기실의 치료수를 마시고는 다시 뿌렸다.
여덟 마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인 덕분에 겨우 소환수들의 뿌리를 지켜낼 수 있었다.
<아우! 집사! 나 잠깐 대기실에 다녀올게.>
안전이 확보되자 나호가 절뚝이며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니 화가 치밀어올랐다.
나호 뿐만이 아니었다.
꾸루도 한 쪽 어깨를 늘어뜨리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꾸루는 대기실로 들어간다는 말을 할 정신도 없는 것 같았다.
둘이 대기실로 들어가자 꼬마가 둘에게 S급 치료수를 뿌려주었다.
조금 전 새끼 문어들이 나호와 꾸루에게도 치료수를 뿌려주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둘보다 소환식물들이 더 급했기 때문이었다.
소환식물들이 방패를 1차적으로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소환식물들이 느끼는 하중이 훨씬 컸다.
꼬물!
^치료받아야 하잖아요?^
<아! 집사도 치료받아야지?>
"너희부터 받고 나서 받아도 돼. 내 잘못으로 너희가 다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내가 먼저 치료받을 수는 없어."
<뭘 또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그래? 공략을 하다보면 별 일이 다 생기는 법이야. 그리고 누가 하늘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해? 안 그래? 족치려면 시스템을 족쳐야지.>
안전 텐트를 말했을 때 시스템이 안전 텐트를 빨리 빌려주기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다.
정말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시스템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호적인 시스템에게 24시간 우리만 보고 있으라고 할 수도 없고 말이다.
브으으으!
^앞으로는 네 마리는 소환식물 전용 치료수! 네 마리는 S급 치료수를 먹여야겠어요.^
"똑이 네가 고생 많았어. 판단도 빨랐고. 네 덕분에 소환식물들이 멀쩡할 수 있었어."
브으으!
^완전한 것은 아니잖아요. 더 분발해야 해요.^
똑이는 은근히 완벽주의에다 엄격한 리더였다.
똑이의 말에 가슴에 붙어 있던 새끼 문어들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브으으!
^하지만 아주 잘했어. 만족해. 너희가 자랑스러워!^
어린데 제 수하들들 부릴 줄도 아는 똑이였다.
태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녀석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모습들이었다.
S급 치료수로 치료를 마친 나호가 대기실을 질주하더니 이내 돌아와서는 대기실을 나왔다.
물론 영체상태로 돌아온 것이었다.
"몸 좀 더 풀지 그래?"
<시스템이 저런데 어떻게 시간을 낭비해. 잠깐이라도 남겨둬야지. 아무래도 조금 불안해.>
꾸루도 몸을 회복하고는 대기실에서 날아올랐다.
하지만 멀리 날아가지 않고 금세 대기실 입구로 돌아왔다.
우직끈!
방패는 이제 완전히 부서진 상태였다.
하지만 텐트 안으로는 어떤 물리적인 충격이나 압박도 느껴지지 않았다.
성능 하나는 정말 완벽한 물건이었다.
살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사고 싶지만 시스템이 팔지도 않을뿐더러 지금은 감당할 마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할까? 5분이라고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불안하지 않는다면 말이 되지 않았다.
5분 안에 해결되지 않으면 액체젤리 같은 것에 깔려죽을 판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텐트가 사라진다고 해도 최대한 버틸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지."
<이 상황에서는 텐트를 키울 수 없지?>
"없어. 크기를 조절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원수에 비례하는 거야. 혼자 있으니 아무리 노력해도 이 이상 커지지는 않아."
<그럼 5분 안에 이 안을 안전구역 이상으로 만들어야겠네?>
"만약을 대비해서 만들어야겠지."
평상시 우리가 상대했던 시스템이라면 대출을 해주면서라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물품을 팔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를 상대하고 있는 시스템에게는 그런 것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때 도뮤에게서 연락이 왔다.
뮤! 뮤! 뮤!
도깨비 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