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 저놈 몸이 왜 저래?
시스템이 간혹 대기업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는 했지만 특정인을 밀어주거나 후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두 번 나를 경계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워낙 내가 차고 나가고 있기 때문에 밸런스 유지 차원에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스템에게서 미우라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이건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띠링! 저희는 특정인을 구하라는 미션을 만들지 않습니다. 단지 구조가 필요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미션이 생긴 것뿐입니다.]
"그럼 미우라만 빼놓고 구조를 해도 되겠네?"
[······.]
시스템은 대답이 없었다.
"도뮤! 동굴에 사람들이 있다고 했지?"
뮤! 뮤! 뮤!
^있다! 사람! 그것도 열세 명! 그런데 굴 무너져서 그 사람들 나올 수 없다. 오래 굶어서 동굴을 팔 힘도 없다. 죽지 않은 것이 용하다.^
스스로 나올 수 있는 것이었으면 시스템이 나에게 미션을 들먹일 이유가 없었다.
<동굴에 오래 갇혀 있었으면 방향 감각도 엉망일 거야. 출구를 향해서 정확하게 굴을 파헤쳐서 나오기 어렵지.>
"한국 사람은 혹시 없었어?"
뮤! 뮤! 뮤!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얼굴만으로 국적을 알기 어렵다. 더구나 얼굴들이 엉망이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냐는 거야.>
뮤! 뮤! 뮤!
^말을 할 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대로 두면 하루 이틀이 고비일 거다.^
"우리가 절묘한 시기에 던전에 들어왔네. 이대로 뒀으며 죽었을 텐데 말이야."
[띠링! 아마 협조 계약에 따라 도움을 요청했을 겁···.]
"뭐라고?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라고?"
[왜 그러십니까? 협조 계약에 따라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저희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기만 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이 언제부터 던전에서 목숨이 경각에 놓인 사람을 구하려고 했는데?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지만 관심도 없잖아. 안 그래?"
[······.]
<자기들 불리하면 입을 닫지. 나쁜 것들.>
"왜 그렇게 미우라를 구하려고 하는데?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무슨 주인공 같은 그런 거야?"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뭔가 특별한 것이 없다면 이렇게 미우라만 구하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띠링! 주인공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삶의 주인공 아니겠습니까?]
<말은 번지르하지. 하지만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런 것도 아니라면 혹시 담당자에 따라서 특별히 관리하는 헌터가 있는 거야?"
[그런 거 없습니다. 저희는 공평합니다.]
<공평은 개뿔! 이거 전생에 미우라가 그렇게 강했던 것도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서 일까?>
"모르겠어. 말해줄 것 같지도 않고."
[띠링! 동굴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조해주시겠습니까? 그럼 특별한 보상을 지급해드리겠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은 구조하고 미우라는 죽여도 되지?"
[띠링! 강대한 님께서 미우라의 마나통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와?"
[남의 마나통을 소유한다는 의미를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게 또 무슨 말이야?"
시스템이 말하는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회귀를 하고 마나통을 가지는 것을 목표로 살아왔다.
전생에 미우라에게 마나통을 빼앗기고 고통에 시달리며 사시는 부모님을 평생 보며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시스템이 뜬금없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띠링! 남의 마나통을 소유한다는 것은 강대한 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단순하지 않다니? 무슨 말이야?"
[보유하고 있는 마나통의 원소유자를 살해하시면 페널티를 받게 됩니다. 특히 던전이 개방된 지 3개월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페널티는 더 강할 겁니다.]
"페널티라니? 그런 건 전혀 들은 적이 없는데?"
전생의 미우라가 생각났다.
전생의 미우라는 우리 국민을 제 손으로 직접 죽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죽을 만큼 힘들게는 했지만 직접 죽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재앙의 시대!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만도 못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놈은 꽤 한국인을 애지중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것이 다 가면일 뿐이었지만 어쨌든 놈의 그런 행보 때문에 사람들은 미우라를 좋은 사람으로 생각했다.
의심스러운 일이 적지 않았지만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것만으로도 의심을 덜어내곤 했었다.
그 모든 일이 마나통에서 마나가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이유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금 마나통의 원소유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죽이거나 죽음으로 몰아가면 더 이상 마나통을 구매할 수 없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뭐? 허허! 정말 어이가 없네. 정말 너희 마음대로구나!"
인간은 그저 시스템이 짠 판 위의 인형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뭐하자는 것인지···.
<집사! 미우라 놈이 그래서 그렇게 조심했나? 미우라 놈이 직접 뭔가를 한 것은 대변혁 이후 15년도 더 지나서 인 것 같은데?>
나호가 여기서 뭔가라고 말하는 것은 '살인'이었다.
사실 대변혁 초기가 누군가를 죽이거나 정리하는 것이 쉬웠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대변혁 이후 3년이 지나도록 제자리를 잡지 못했었다.
미우라가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을 정리하려고 했으면 오히려 막 우리나라에 왔을 때가 좋았다.
그런데 미우라는 그러지 않았다.
그것이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거나 나름의 철학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죽을 만큼 괴롭힐 수는 있지만 죽일 수는 없다는 거야?"
[없다는 것이 아니고 페널티를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를 생각하시라는 겁니다.]
<말은 정말 그럴듯하게 하네.>
"그런 페널티가 있다는 것이 사실이야?"
[사실입니다.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지만 저희는 거짓을 말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럼 왜 미우라를 꼭 집어서 구하라고 한 건데? 그건 말해줄 수 있지?"
[그건 저희도 알 수 없습니다. 미션명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미우라 포함 13인 구출!' 미우라를 특별하게 생각하는지 아니면 미션이 발동하면서 무작위로 선정된 이름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평상시의 시스템이었다면 이 말을 믿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분명 미우라와 시스템 간에는 뭔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리 물어도 말해줄 것 같지도 않았다.
"평상시에 나를 담당했던 담당자는 어디 간 건데?"
[······.]
이 물음에는 시스템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시스템은 하나로 보이는데 집착하더라.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걸까?>
"너희가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호의 말대로 하나가 아닌 것은 확실히 알겠어. 그런데 말이야. 왜 그렇게 하나로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거야?"
대답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물은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너무 궁금했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선선히 대답하는 시스템이었다.
[띠링! 이용자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매뉴얼대로 모든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하나인지 둘인지 아니면 그 이상인지는 중요한 사실이 아닙니다.]
시스템이 막 이 말을 했을 때였다.
생각지 않은 메시지가 들려왔다.
[띠링! 강대한 님께서는 놀라운 지적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지력'능력치가 개방됩니다.]
[강대한 님의 초기 지력은 10입니다. 원칙적으로는 10에 대한 마나를 지불하셔야 하지만 보상으로 개방된 능력치이기 때문에 마나의 투자 없이 지력 능력치 10이 지급되었습니다.]
시스템의 메시지와 함께 상태창의 능력치창에 지력 10이 나타났다.
초기에 개방한 능력치 이외에는 어떤 능력치도 개방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지력을 갖게 되었다
[띠링! 축하합니다. 추가 미션을 수락하시겠습니까? 아! 방금 능력치 개방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부담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개뿔! 싫다고 해도 계속 강요하고 있으면서···.>
어차피 천기재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그곳에 가야하긴 했다.
수락한다고 말하려는 순간 꼬물이가 꼬물거리며 바닥에 글을 썼다.
꼬물!
^수락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전생에 미우라가 얻었던 보상을 얻게 될지도 모를 일이잖아요.^
꼬물이가 어지간해서는 보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지금 꼬물이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분명 특별한 것이 숨겨져 있는 것이었다.
꼬물이가 쓴 글씨를 본 순간 나호의 눈빛도 빛나고 있었다.
<미우라가 가질 것을 차지할 수 있다면 가야지. 열 번이라도. 집사! 그냥 가자! 어차피 천기재도 찾아야 하잖아.>
"그래. 수락하겠어."
[띠링! 추가 미션이 주어졌습니다. 미우라를 포함한 13인을 구출해서 던전을 퇴장하시면 소정의 보상이 지급될 것입니다.]
보상에 관한 말이 계속 바뀌고 있었다.
처음에는 '소정의 보상' 그 다음에는 '특별한 보상'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다시 '소정의 보상'이라고 했다.
내가 미션을 받아들일 것 같지 않으면 보상의 등급이 올라가는 것 같았다.
"보상에 대해서 확실하게 해! 소정의 보상이야? 특별한 보상이야?"
[이미 정해진 보상입니다. 표현의 차이였을 뿐입니다.]
<집사! 오늘 시스템 정말 짜증난다. 그치?>
"그러네."
이 시스템과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추가 미션을 달성할 때쯤 원래의 시스템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동굴이 있다는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천기재만을 생각한다면 반반이를 타고 달려갔겠지만 미우라를 생각하니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던전을 구경하며 느긋하게 걸었다.
어차피 시간제한이 있는 던전도 아니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걸었을까?
다시 꼬물이가 바닥에 글씨를 썼다.
꼬물!
^빨리 가는 것이 좋을 거 같아요.^
<왜? 뭐가 있어?>
꼬물!
^정확하지 않아요. 그런데 빨리 가야하는 것은 확실해요.^
꼬물이는 이런 것에 있어서 확실했다.
던전 덩굴이어서 그런지 던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예민했다.
꼬물이의 글을 보는 순간 반반이를 대기실에서 불러냈다.
그리고 반반이를 타고 동굴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동굴은 의외로 멀리 있었다.
반반이가 전력질주를 했는데도 두 시간이나 걸렸다.
뮤! 뮤! 뮤!
^여기다! 여기! 여기를 파면 안에 동굴 있다!^
동굴이 있다고는 믿기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도뮤가 동굴이 있다고 했다.
직접 보고 온 도깨비 말이니 땅을 파야 했다.
하지만 내가 삽을 들기 전에 소환식물들과 도깨비들이 무너질 흙을 치우고 돌을 들어냈다.
그렇게 들어낸 흙과 돌은 모두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3미터 정도 파고 들어갔을 때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도뮤와 소환식물들이 대기실로 들어갔다.
<녀석들 눈치 빠르네. 집사가 소환식물 보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을 어떻게 알고.>
언젠가는 저들도 알게 될 것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알게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소환식물의 뿌리가 완전히 대기실로 들어가고 난 후 삽을 들었다.
뮤! 뮤! 뮤!
^10센티미터만 더 파면된다. 우리는 한 번 들어가 본 동굴은 잊지 않는다. 저 동굴은 느낌이 묘하다. 저 놈들 구하고 시간 있으면 둘러봐도 좋다.^
도뮤가 눈을 빛내고 있었다.
도뮤의 반응으로 보아 광물이 있을 것도 같았다.
퍽! 퍽!
10센티미터나 더 파면된다고 해서 삽을 찍었다.
그러자 구멍이 뚫리며 와르르 흙이 흘러내렸다.
그러면서 안쪽의 동굴이 드러났다.
"콜록! 콜록!"
"무, 물!"
"엄마아!"
"으으으···."
신음이라도 흘리는 사람은 상태가 양호한 것이었다.
축 늘어져서 정신을 잃은 것 같은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먼저 느껴졌던 것은 이번에도 냄새였다.
이곳에 언제부터 있었는지 온갖 오물 냄새가 났던 것이었다.
사람이 동굴에 갇히면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냄새가 너무 심해서 잠깐 물러나 있었다.
도저히 바로 들어가서 천기재가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집사! 천기재가 여기 있는 것 같아.>
나호가 가리키는 곳에는 몇 가지 도구가 놓여있었다.
동굴에 갇히고 난 후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탈출하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그런 것 같네.'
심상으로 대답하자 나호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세 걸음도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나왔다.
<우엑! 우엑! 무슨 냄새가 이렇게 심한 거야? 정말 미치겠다. 집사! 그런데 그거 알아?>
'뭘?'
이런 상황에서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는 것 같아서 조금은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일제 강점기 때 말이야.>
'그때 왜?'
<그때 일본 놈들이 우리나라 재래식 화장실, 변소를 보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
'왜? 미개하다고 했어?'
<아니.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데 조선인은 똥 냄새가 지독하다고 했어. 지들 똥은 향기롭나? 안 그래? 오히려 지들한테 수탈당하고 순 풀만 먹고 살아서 지들 똥보다 냄새도 덜 났는데 말이야. 이 냄새를 맡으니 그때 생각이 나네.>
나호가 앞발을 붕붕 휘두르며 말했다.
일본 놈들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호가 이야기하는 사이 동굴 안으로 신선한 공기가 들어갔다.
안에서 밀려나오는 냄새를 고스란히 맡아야 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냄새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바람과 햇살이 들어가자 한두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저놈 미우라다! 집사! 미우라야! 그런데 저놈 몸이 왜 저래?>
희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