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 즐던
<집사! 저놈 눈 정말 뽑아버릴까? 때려죽이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데···. 화악!>
나호가 앞발을 휘둘렀다
물론 영체 상태였다.
그런데도 놈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이상하게 놈은 나호가 영체상태로 뭔가를 했을 때 잘 느꼈다.
뮤! 뮤! 뮤!
^이상하다. 왜 나를 느끼는 거지? 나 도깨비인데···.^
도뮤가 고개를 갸웃했다.
도뮤가 발목을 잡았다고 해도 놈은 느끼지 못했어야 했다
단순히 뭔가에 걸려 넘어졌다고 느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놈은 몬스터가 자신의 다리를 잡은 것 같다고 정확하게 말했다.
절대로 보이거나 느껴져서는 안 되는 것을 미우라는 느끼는 것이었다.
어쨌든 미우라의 눈이 잠시 나에게 향하더니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이쿠! 제가 넘어졌습니다. 누구 말이든 새겨들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뒤로 얌전히 가겠습니다. 던전이 클리어 되지 않았다고 하니···."
"미우라 오빠! 내가 부축해줄게. 나를 잡아."
미우라가 여자의 팔을 잡고 일어났다.
그러더니 옆으로 살짝 비켜섰다.
몬야크들이 나가기 쉽도록 비켜주는 것이었는데 어중간하게 물러나서 몬야크들이 지나가기 불편하게 만들었다.
<저놈! 더러운 짓 나왔네. 저놈 저래놓고 몬야크들이 건들기라도 하면 난리부르스를 칠거야.>
음머어어!
그때 가장 앞에 있던 반반이가 소리를 질렀다.
위협을 담은 음성이었기 때문에 미우라가 움찔거렸다.
하지만 버티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는 미우라였다.
하지만 반반이의 기세를 버티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까불고 있어! 죽이지 않은 것도 감사하게 생각할 것이지!>
반반이를 선두로 순차적으로 던전을 퇴장했다.
사실 던전을 가장 먼저 퇴장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었다.
놈이 묘한 신경전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자연스럽게 퇴장을 하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세 던전이 클리어 돼야 던전의 클리어로 인정한다고 했는데···.'
<집사! 아까 그놈 눈빛이 마음에 걸리는 거지?>
'걸리네. 그것도 많이. 놈은 왠지 클리어가 된 것 같은 태도를 취하던데···. 그것도 마음에 걸리고···.'
"나왔다! 우린 산 거야."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이 은혜는······."
미우라의 동료들이 앞다퉈 감사인사를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제게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시스템에게 미션을 받았을 뿐입니다."
차갑게 말을 했더니 미우라의 동료들이 조금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들의 표정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식사라도 대접을 하고 싶습니다."
미우라가 제법 정중하게 말했다.
<밥은 무슨? 산해진미까지는 아니라도 우리에게 먹을 것이 얼마나 많은데···. 됐거든! 너나 많이 먹어!>
나호가 다시 미우라 놈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그래놓고는 제 앞발을 가만히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정말 이상한 일이야. 이상하게 이놈을 치면 감각이 제법 사실적으로 느껴진다니까. 다른 것을 칠 때는 이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은데···. 왜 그럴까?>
나호가 미우라의 뒤통수를 다시 때렸다.
여전히 같은 느낌인지 머리를 갸웃했다.
뮤! 뮤! 뮤!
^때리는 맛이 유난히 좋은 것들이 있기는 해! 너도 모르게 본심이 담겨서 그럴 수도 있고.^
도뮤가 제법 그럴듯한 말을 하더니 미우라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다시 다리를 툭 찼다.
"윽!"
제법 세게 찼기 때문에 놈이 소리를 지르며 나를 쳐다보았다.
<집사가 부리는 존재 중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
'그렇지 않다면 저런 반응을 보이지 않겠지. 이건 감각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건데···.'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주변을 둘러보지 나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
몬야크를 부리는 것을 보았다고 다 저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빠! 왜 그래? 여기는 몬스터 없는 것 같은데? 또 뭔가 오빠를 건드렸어? 아니 왜 오빠에게 이런 일이 자주 생기는 거야? 혹시 오빠가 말하던 그런 건가?"
"나오에! 팀원들 챙겨야지."
"아! 내 정신 좀 봐. 그런데 오빠 혼자 괜찮겠어? 그래도 내가 이 중에서 근력이 가장 좋으니까 오빠를···."
"나오에!"
"알았어."
<이름이 나오에야? 입이 가벼울 것도 같네.>
'꾸루야! 이 팀에 전령조 좀 붙여놔.'
꾸!
"죄송합니다. 양해해주십시오. 그런데 식사라도 한 번 같이 하면 좋겠는데요?"
미우라가 다시 양의 탈을 썼다.
"괜찮습니다. 저는 다시 던전에 들어갈 겁니다."
"다시 들어간다고요?"
"클리어하지 않았으니 들어가야죠."
그 순간 미우라의 입술에 비릿한 미소가 어렸다.
"아! 클리어! 그거 할수록 좋은 것이기는 하죠. 저희를 구하는 것이 미션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에 대한 보상은 받으셨습니까? 아! 이런 것을 물으면 실례가 되나요?"
"아직 들어오지 않았네요. 여러분이 저 위로 올라가야 들어오려는지···."
싱크홀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빨리 꺼지라는 축객령이었다.
"하하하! 재미있는 분이시네. 보상이 뭔지 궁금하지만 가봐야겠네요. 그럼 즐던하십시오."
<즐던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집사! 그런데 천기재 잡지 않아?>
'이놈들 있는 데서는 싫어. 나와 함께 갔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도 않고. 꾸루야!'
꾸!
^천기재 씨께 전령조 한 마리 따로 붙일게요.^
'그래. 두 마리 붙여둬. 중요한 사람이니까.'
꾸!
던전 내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사람이었다.
전생에는 어느 순간 사라져서 다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더 많은 발명품을 만들었을 것이었다.
미우라와 그 일행이 싱크홀을 벗어나기 위해 멀어지기 시작했다.
따로 와서 인사를 하고 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미우라의 뒤를 따르며 고개만 숙여보였다.
<목숨을 구해줬는데 고개만 까딱이고! 누가 일본사람들을 예의를 아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거야?>
"예의는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은혜는 확실히 모르는 것 같네."
뮤! 뮤! 뮤!
^미션이라고 해서 부담을 느끼는 않는 것 같다. 나쁜 놈들이다. 한두 사람은 미안해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꼬물!
^왼쪽 세 번째 남자와 그 옆의 여자는 눈곱만큼 미안해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조리 미우라에게만 고마움을 느끼고 있어요. 이상할 정도로 미우라에 대한 애정이 강해요.^
꼬물이가 바닥에 물음표를 수없이 그리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모양이었다.
<천기재는 와서 인사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저리 팔짱을 끼고 있는데 어떻게 와? 천기재를 꼭 잡고 싶은 모양이야."
어떻게 천기재가 저들과 이 던전에 함께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각기 따로 들어왔다가 만난 것인지···.
아니면 천기재를 영입하기 위해 따라 들어온 것인지···.
중요한 것은 저들이 천기재를 찍었다는 것이었다.
"미우라는 자신이 노린 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아."
<알고 있어. 저놈 이상한 것에 열심이잖아.>
언제부터 미우라가 천기재를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앞으로도 상당한 공을 들일 것이 분명했다.
"우린 들어가자."
이제 가운데 던전에 입장해야 했다.
그래서 가운데 던전에 입장하기 위해 다가서는 순간이었다.
[띠링! 축하합니다. 미우라를 포함한 13인을 구출하라는 미션을 달성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까궁1' 던전에 입장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왼쪽의 던전은 까꿍 던전이었고, 오른쪽은 까꿍2 던전이라고 했다.
가운데 있는 던전의 이름은 까꿍1 던전인 것 같았다.
그런데···.
"보상이 뭐라고? 던전에 입장할 기회를 준다고?"
어이가 없어서 말이 다 나오지 않으려고 했다.
아무래도 아직 나를 담당하던 시스템이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사실 까꿍1 던전은 아무나 입장할 수 없는 던전입니다. 특별한 조건을 달성해야만 입장할 수 있는 던전입니다.]
꼬물이를 돌아보았다.
꼬물이가 두 개의 여린 뿌리를 양쪽으로 펼쳐보았다.
잘 모르겠다는 몸짓이었다.
꼬물!
^그런 정보는 없었어요. 그렇다고 시스템이 보는데 족칠 수는 없고.^
꼬물이가 대기실에서 뿌리를 붕붕 휘둘렀다.
[띠링! 저희는 거짓을 말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겠지. 거짓은 말하지 않지. 하지만 거짓보다 더 교묘한 말로 사람을 착각에 빠지게 하지."
[강대한 님께서는 지금 일부를 전체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계십니다.]
<오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진실이지. 너희 화려한 말로 팔아치운 것들을 생각해봐. 그런 말 할 수 있어?>
[강대한 님께···.]
<내가 우리 집사만 말하는 거 아니잖아. 지금도 너희에게 속아서 마나를 낭비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걸! 아니야?>
[낭비를 유도하지는 않습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개뿔! 말도 되지 않은 소리를 잘도 하네.>
"정말 보상이 이거 하나야? 던전 입장!"
[띠링! 그렇습니다. 하지만 후회는 절대 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 시스템과는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대로 던전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시스템이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말을 했다.
[띠링! 그럼 강대한 님! '즐던'하시기 바랍니다.]
<집사! 이거 뭐야?>
"잠깐만!"
이건 뭔가 많이 싸했다.
"방금 뭐라고 했어?"
<이거 또 대답하지 않네. 집사 이 던전 왠지 꺼림칙한데? 들어가지 말까?>
"아니 들어갈 거야."
<왜? 굳이···. 이 던전에 목 맬 필요 없잖아.>
"싸하긴 한데 왠지 저런 말로 스스로 발길을 돌리게 하려는 것 같기도 하거든."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저것들 영악한 것들이잖아.>
"이 던전을 미우라가 클리어 하기를 바랐을 수도 있을 것 같거든."
<그런가?>
"아무튼 들어가자."
가운데로 들어갔다.
던전의 입구에 함정이 있을 수도 있어서 잔뜩 경계를 하고 들어갔는데 던전 입구는 안전했다.
사실 이 던전은 던전의 입구랄 것이 따로 없었다.
매우 좁은 던전이었기 때문이었다.
뮤! 뮤! 뮤!
^뭐가 이리 좁아? 우리 마을보다 좁은 던전은 처음이다. 이런 곳에 뭐가 있기는 한가?^
도뮤가 대기실을 벗어나서 나가려고 했다.
"나오지마."
뮤! 뮤! 뮤!
^왜? 여기 몬스터도 보이지 않는데? 몬스터 있어도 우리 보지 못한다.^
도깨비를 볼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그런데 왠지 여기에서는 뭐든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너도 대기실로 들어가."
<나도?>
"빨리!"
묘한 감각 때문에 나호를 대기실로 들여보내려고 했는데 늦어버렸다.
차라라락! 차락! 스르렁!
쇠사슬이 내려오는 소리가 나더니 그대로 몸이 묶여버렸다.
뭔가 해볼 틈 같은 것은 주어지지 않았다.
천장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나온 쇠사슬이 꼼짝 할 수 없이 묶었는데 나만 묶은 것이 아니고 나호까지 묶어버렸다.
영체 상태의 나호를 어떻게 묶은 것인지 이해되지 않지만 나호도 단단히 묶여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흐흐흐! 흐흐흐! 흐흐흐!
나호와 내가 묶이고 나자 작은 공간에 이런 소리가 울렸다.
분명 몬스터의 소리였다.
그런데 인간의 웃음소리와 아주 흡사했다.
전생에 본 몬스터 중에 이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몬스터를 생각했다.
<집사! 귀신이 있나? 그것도 아니면 리치? 뭐지? 그것보다 어떻게 나를···. 집사 그런데 이거 정말 묘하다.>
몸이 단단히 묶였는데 나호는 은근히 좋아하고 있었다.
꼬물!
^나호 취향 이상한 거 아니야? 묶이는 거 좋아하는 거야? 때려줄까?^
장난칠 상황이 아닌데 꼬물이가 농담까지 했다.
그 사이 던전을 둘러보았다.
던전은 원룸 하나 정도 크기였다.
그리고 쇠사슬은 수십 개가 나온 상태였다.
단단하게 묶고 있지만 풀려고 하면 풀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른 각성자라면 모를까 나에게 이런 것이 통할 리 없었다.
<집사도 걱정하지 않지?>
"걱정할 것이 뭐가 있어? 산성 용액으로 쇠사슬을 녹여버려도 되고."
흐극!
이 말을 했을 때 마치 깜짝 놀란 아이가 숨을 들이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용광로에 녹여버려도 되고."
흑!
"잘게 잘라서 다시는 이런 형태로 돌아갈 수 없게 할 수도 있어."
헉!
분명 주변에 우리의 말을 알아듣는 존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쇠사슬이 망가지는 것이 싫은 것 같았다.
"그것도 아니면 도뮤에게 먹어버리라고 해도 되잖아."
<그거 좋겠다. 도뮤가 먹어버리면 간단하지.>
나호가 재빨리 맞장구를 쳤다.
"도뮤는 쇠라고 하면 환장을 하잖아. 아주 좋아할 거야."
흐어어어엉!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