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 흔적
갑자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사람이 우는 소리는 아니었다.
매우 흡사했지만 말이다.
"도뮤 불러서 쇠사슬을 모조리 먹으라고 할까? 지금 당장!"
살짝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그 순간 쇠사슬이 느슨해졌다.
<집사! 이 쇠사슬! 내 말도 듣는 것 같고 왠지 이지(理智)도 있는 거 같아. 혹시 진정한 보상은 쇠사슬일까?>
나호가 나만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심상으로 대답하고는 쇠사슬을 풀어냈다.
쇠사슬을 풀어내자 쇠사슬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마치 달아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쇠사슬 하나를 잡아 당겼다.
흑!
이런 소리와 함께 마주 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아직 근력 능력치는 없지만 힘이라면 자신 있었다.
힘껏 쇠사슬 잡아당겼다.
당연히 당겨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단단히 버티고 있었다.
"꼬물아! 도와줘."
꼬물!
나에게는 꼬물이뿐만 아니라 반반이도 있었다.
하지만 꼬물이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꼬물이가 쇠사슬을 함께 당겼다.
그러자 쇠사슬의 일부가 당겨졌다.
하지만 조금 지나자 다시 더 이상은 당겨지지 않았다.
꼬물!
^힘이 장사에요. 이렇게 힘이 센 생명체가 있다니 놀라워요.^
꼬물이가 놀라워하며 다른 소환식물들을 데리고 나왔다.
가장 먼저 힘을 보탠 것은 꼬마, 다음은 아수라와 아수리였다.
그리고 황이과 금이까지 더해지자 쇠사슬은 더 이상을 힘을 쓰지 못했다.
당기면 당기는 대로 줄줄 당겨졌다.
여러 가닥으로 보였던 쇠사슬은 사실은 한 가닥이었다.
계속 당기자 던전에 나와 있던 쇠사슬이 벽으로 들어가더니 결국 우리 쪽으로 다 끌려왔다.
그렇게 당겨진 쇠사슬의 길이는 아무리 적어도 500미터는 될 것 같았다.
흑! 흑! 흐어어엉!
쇠사슬이 이런 소리를 낸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쇠사슬이 이런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꼬물!
^검수가 정확하게 512.34미터래요.^
계산하는 것을 좋아하는 검수가 쇠사슬의 길이까지 파악한 모양이었다.
흐어어엉! 흑! 흑!
"너! 뭐야?"
흐어어엉! 흐엉! 흐엉!
"꼬물아! 얘 뭐라고 하는 거야?"
꼬물!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기다리는 존재가 있대요. 그래서 우리를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아서 슬프대요.^
"잡혀서 슬픈 것이 아니고 우리를 따라가지 못하게 될까봐 슬프다고?"
꼬물
^그렇다고 하네요. 딱 자기 취향이래요. 적당히 협박하는 것도 그렇고 놀라운 힘도 그렇고.^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야. 집사는 좋겠다. 쟤랑 친하게 지내 봐.>
나호가 고개를 벽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러면서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 던전의 클리어는 분명 쇠사슬과 관계가 있을 것 같았다.
"누구를 기다리는 거야? 네가 기다리는 존재는 오지 않아. 이 던전은 내가 클리어 해버릴 생각이거든."
히극!
이 던전이 1회성 던전인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그런데 쇠사슬의 반응을 보니 1회성 던전이 확실한 것 같았다.
"던전이 클리어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안에 있는 것은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다 사라져."
흐극! 히극! 히극!
"특별히 너를 데리고 갈 수도 있는데."
촤라라락! 촤라락!
그 말을 한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바닥에 놓인 쇠사슬이 정돈되었다.
마치 제대로 각이 잡힌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애를 쓰는 신병을 보는 것 같았다.
정돈이 되기는 했지만 어설펐던 것이다.
뮤! 뮤! 뮤!
^아직 아이야. 분명해. 길다고 어른은 아니지.^
꼬물!
^겁이 많은 아이에요. 하지만 힘이 장사에요. 우리 여섯의 힘과 맞먹어요. 놀라워요.^
힘이 세기는 했다.
하지만 쇠사슬의 정체가 파악되지 않았다.
감정을 했지만 감정이 되지 않았다.
"우리와 함께 나갈래?"
흐어어어엉! 흐어어엉! 흐어어엉!
<왜 또 우는 거야? 혹시 우는 것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아니지? 우는 소리는 달갑지 않은데···.>
꼬물!
^지금 우는 것은 함께 가게 돼서 좋아서 우는 거예요. 그런데 살짝 두려워도 하네요.^
"뭐가 두려운 거야? 네가 기다린 존재를 만나지 못해서?"
흐흐!
꼬물!
^그렇다고 하네요. 기다리던 존재를 따라가게 되어 있었대요. 그 존재에게 힘이 되어 줘야 한다는데···.^
쇠사슬이 기다리는 존재는 분명 미우라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쇠사슬을 본 것도 같았다.
'나호야. 이 쇠사슬 본 것 같지 않아?'
나호에게 심상으로 물었다.
<보다니? 어디서? 처음 본 것 같은데?>
'잘 생각해봐. 이거 미우라의 지하 감옥에서 본 것 같아. 나를 묶었던 쇠사슬! 기억나지 않아?'
<헉! 그러고 보니···. 절대로 풀리지 않던···.>
나호가 깜짝 놀라 순간 폴짝 뛰어올랐다.
그러더니 쇠사슬을 경계했다.
<나를 보는 것부터 이상했어. 나를 볼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말이야. 한낱 쇠사슬에 지나지 않는 것이 말이야.>
나호가 나만 알아들을 수 있게 말했지만 특유의 기세까지는 감추지 못했다.
촤라라락! 촤르륵!
쇠사슬이 움직이며 바르르 떨었다.
<맞는 것 같아. 지금과는 많이 다르지만···.>
전생에 미우라의 지하 감옥에 갇혔을 때 쇠사슬에 발목이 묶였다.
때때로 손이나 목도 묶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쇠사슬은 어떻게 해도 끊어지지 않았다.
헌터로 23년을 살았는데도 끊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엄청 등급이 높은 던전에서 구한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절대로 일반적이 쇠사슬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보게 되었다.
<집사! 이걸 좋아해야해? 싫어해야해?>
'좋은 일이지. 놈의 힘 하나를 빼앗은 거잖아. 우리가 가지고 가지 않았으면 시스템은 어떻게든 미우라에게 저걸 줬을 거야.'
시스템이 왜 그리 미우라를 챙기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그냥 두고 봐야 하는 거야? 시스템이 특정인만 우대하다 못해서 밀어주고 있는데?>
'당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이렇게 놈을 방해하는 수밖에는···.'
<그럼 한동안 일본에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놈을 방해하는 것은 멀리서도 가능했다.
시도 때도 없이 마나통만 굴려도 놈은 정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할 것이었다.
흐어어엉! 흐어어엉! 흐어어엉!
쇠사슬이 갑자기 서럽게 울었다.
"왜 우는 거야? 이제 함께 갈 거야. 울지 마."
흐흐흐!
꼬물!
^데리고 간다고 하고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서 서러워서 울었대요.^
어째 머리가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바로바로 해. 네 말을 통역해 줄 꼬물이도 있으니까."
흐흐!
"그나저나 너는 누구니? 어떤 존재야?"
흐흐! 흐흐! 흐흐!
꼬물!
^자기도 모르겠대요. 갑자기 이 던전에 저런 모습으로 오게 되었대요.^
"원래는 그 모습이 아니었던 거야?"
흐흐흐!
꼬물!
^원래는 집채만 한 쇠공이었다고 하네요.^
<집채만 한 쇠공! 그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 그것이 더 좋을 것도 같아.>
흐어어어엉! 흐어어엉! 흐어어엉!
쇠사슬이 또 울었다.
아무래도 나호의 말을 듣고 우는 것 같았다.
"네 모습 그대로도 좋아. 쇠사슬이니 휴대도 편하고 좋잖아."
<저게 휴대가 편하다고? 저거 인벤토리에 넣어야 하는 거 아니야? 500미터나 되는데 들고 다닐 수도 없잖아. 미우라도 지하 감옥에서 쓴 걸 보면 분명 휴대가 불편했기 때문일 거야.>
흐흐? 히?
미우라라는 이름에 반응을 보이는 쇠사슬이었다.
꼬물!
^어디선가 들은 이름이래요. 그리고 인벤토리에는 절대로 넣지 말래요. 인벤토리에 넣으면 죽는대요.^
"그래? 그럼 대기실에 넣을 수 있나?"
꼬물!
^대기실에도 넣을 수 없어요. 자아가 있잖아요. 그러니 우리 물건이라고 하고 넣을 수도 없고. 소환수는 아니니 들어갈 수 없고···.^
<집사! 그럼 어떻게 해? 500미터나 되는 쇠사슬을 들고 다녀야 하는 거야?>
방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쇠사슬이었다.
아주 얇은 굵기도 아니어서 들고 다닐 수는 없었다.
흐어어어엉! 흐어어엉! 흐어어엉! 흐어엉!
꼬물!
^자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미리 판단하는 것이 너무 서운하대요. 한번 들어보기라도 하라네요.^
정말 재미있는 녀석을 만난 것 같았다.
"이 녀석 이름은 '흐엉'이야. 그 이름이 딱 일 것 같아."
흐어어엉! 흐어엉! 흐엉!
쇠사슬의 끝이 흔들리며 통곡을 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대?"
꼬물!
^너무 마음에 들어서 우는 거래요. 감격에 겨운 눈물이라고 하네요.^
<별명은 정해졌네. '쇠곡성'을 줄여서 '쇠곡'이라고 해야겠어.>
뮤! 뮤! 뮤!
^쇠곡성은 뭐냐? 처음 듣는 말이다.^
<별거 아니야. 귀신울음소리는 귀곡성! 쇠사슬 울음소리는 쇠곡성! 불여서 쇠곡! 좋잖아.>
흐어어엉! 흐어엉! 흐어어어어엉!
꼬물!
^너무 좋대요. 별명까지 생겨서 이제 기다리던 존재는 기억도 나지 않을 것 같대요. 이 녀석 관심 받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아요.^
꼬물이의 말대로 작은 관심도 크게 반응하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녀석 말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걱정부터 했던 것이 미안해서 쇠사슬을 들어보려고 했다.
500미터가 넘는 쇠사슬이라 한아름에 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들어보려고 애를 쓰는 순간이었다.
번쩍!
쇠사슬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푸른빛이 내 양손을 단단히 옭아맸다.
그 순간이었다.
"윽!"
<집사! 괜찮아? 집사!>
"으으윽! 윽!"
푸른빛의 힘은 엄청났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잡힌 양손을 빼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거 시스템의 농간에 걸려든 것은 아니겠지? 집사! 집사! 괜찮아?>
"으으윽!"
꼬물!
^이거 나쁜 거 아닌 것 같아. 확실해.^
뮤! 뮤! 뮤!
^내 생각도 그렇다. 이거 분명 좋은 거다. 지금은 아프겠지만 말이야. 잠시만 기다리면 분명 흐엉이 집사의 새로운 힘이 될 거다.^
<힘은 지금도 충분해. 힘을 핑계로 집사를 괴롭히는 것은 참을 수 없는데···.>
양손목이 잡힌 순간 쇠사슬의 양끝이 양손바닥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생살을 뚫고 쇠사슬이 파고드는 것은 아무리 각성자라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입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으으으!"
<집사! 집사!>
흐어어엉! 흐어어엉! 흐어어어엉!
쇠사슬도 내 피부 속으로 들어오며 고통스러운지 눈물을 터트렸다.
그런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피부로 쇠사슬이 들어오면 갈 데라고는 손등이나 손목이었다.
하지만 쇠사슬은 피부를 뚫고 들어오면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정확하게는 녹아든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녹지 않고 계속 존재감을 자랑했다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을 것이다.
"으으으! 으으!"
흐어어어엉! 흐어어엉! 흐어엉!
흐엉의 우는 소리와 내 신음소리는 500미터 쇠사슬이 모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렇게 500미터 쇠사슬이 다 들어가고 50센티미터 정도 남았다.
쇠사슬의 양쪽 끝이 손바닥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50센티미터가 남았을 때는 양손바닥 쇠사슬이 이어져있었다.
<집사! 이제 이걸 어떻게 해? 이거 끊어지는 것도 아니잖아. 집사 손이 자유롭지 않게 되는 거야?>
나호가 걱정스런 시선으로 쇠사슬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느낀 순간 남은 쇠사슬에 어린 푸른빛이 한결 강해지더니 사라져버렸다.
푸른빛만 사라진 것이 아니고 쇠사슬도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있었다.
"이거 묘하네."
<집사! 괜찮아? 괜찮은 거야?>
미우라를 유독 챙기는 여자가 꼴불견이라고 하더니 나호는 그 여자보다 심한 것 같았다.
"괜찮아. 아니 좋아. 이것 봐."
손바닥을 마주 보며 양쪽으로 쫙 벌렸다.
그러자 쇠사슬이 생겨났다.
<와우! 그런데 이렇게 되면 불편하잖아.>
"이렇게도 되는 것 같아."
말을 하면서 사라지게 한다고 생각하자 쇠사슬이 사라져버렸다.
"이렇게도 할 수 있어."
손바닥을 앞으로 하면서 쏘아 보낸다고 생각하자 분명 이어져 있던 쇠사슬이 끊어지며 앞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다른 손의 쇠사슬과 잇고 싶다고 생각하자 다시 이어졌다.
한 마다로 쇠사슬을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그런데 흐엉의 자아도 그대로 느껴졌다.
<손바닥에는 아무 흔적도 없는데 정말 신기하다. 전생에 미우라도 이런 것이 있었을까? 그래서 그렇게 강했을까?>
다 빼앗을 수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