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 동정심
가장 놀라운 변화를 보인 것은 미우라 옆에 껌 딱지처럼 달라붙어 있는 여자였다.
미우라 옆에 붙어서 걱정스럽게 보던 여자가 뒤로 물러났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하더니 머리를 쓸어 올렸다.
<정색을 하네. 정색을 해!>
여자뿐만이 아니었다.
미우라를 제외한 52명 전원이 눈빛이 달라졌다.
순종적인 눈빛이 사라지고 매의 눈과 같은 눈이 자리 잡은 것이었다.
"강탈을 사용했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었다."
<맞아. 보통은 넘는 사람들이었을 거야. 아무리 세상이 이렇게 변했다고 해도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기는 쉽지 않아. 더구나 이제 겨우 삼 개월이잖아.>
아직은 대변혁 전의 도덕이나 윤리가 남아있는 시기였다.
그런데 이들은 누군가의 스킬과 능력치를 빼앗았다.
한 번 맛을 들이면 결코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한계를 벗어날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아직은 한계를 경험할 때는 아니지만···.
"내 스킬이···."
"내 특성과 능력치···."
"내 마나···. 어떻게 얻은 건데···. 다 사라졌어. 다 사라졌다고!"
꼬물!
^저 사람은 아주 가까운 사람의 마나를 빼앗은 것 같아요.^
<무서운 세상이지. 가까운 사람이었으니 더 빼앗기 쉬웠겠지.>
강탈권의 사용설명에 의하면 강탈을 하려면 상대방이 무엇을 가졌는지 정확하게 알아야했다.
막연히 사용을 하려고 하면 강탈권만 사라질 수 있었다.
미우라의 패밀리라 자처했던 놈들이 미우라를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마치 미우라가 자신들의 것을 빼앗아간 것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뮤! 뮤! 뮤!
^줬다 빼앗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어리석은 사람들···.^
"불안하다고 했는데···. 집채만 한 몬스터를 부리는 놈이니 포기하자고 했는데···."
"저 여자 때문이야. 저 여자가 소환수를 갖겠다고!"
"나 때문이라니? 미우라 때문이지. 미우라가 저놈 꼭 짓밟고 싶다고 했잖아! 아니야?"
"맞아! 리더가 개떡 같은 판단을 해서 이렇게 된 거야! 그 좋은 것을 다 잃어버렸다고!"
"미우라가 책임져야해."
저들 입장에서는 일을 이렇게 만든 것은 엄밀히 말하면 나였다.
그런데 저들은 내가 아닌 미우라를 원망하고 있었다.
"어린놈을 섬겨줬는데 돌아온 것은 허탈감뿐이야."
"그런 충만감은 다시는 느끼지 못하겠지?"
"으으윽! 으으으!"
미우라가 신음을 흘렸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이들의 소리가 들렸던 모양이었다.
강탈했던 스킬들이 사라지기 전만 해도 미우라가 신음을 흘리면 안타까워하던 놈들이 지금은 신음소리마저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꼬물!
^의리라고는 1도 없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생각지도 않은 시스템 메시지가 들렸다.
[띠링! 미우라 에이지의 강탈 권능이 사라졌기 때문에 강탈권의 소유권이 강대한 님께 넘어옵니다.]
[띠링! 강탈권을 가지고 계시지만 강탈 권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강탈한 것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대신 모든 조건은 사라지며 사용 제한시간은 24시간으로 통일됩니다.]
이런 메시지와 함께 강탈권을 확인하니 강탈권 뒷면의 조건이 모두 사라져있었다.
"잘 됐네."
강탈권을 사용하기 위한 조건들이 사라졌으니 이제 사용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이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미우라 에이지는 마나통이 나에게 있기 때문에 직업부터 시작해서 권능, 스킬, 능력치, 마나까지 모조리 빼앗아버렸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사라졌지만 전혀 아쉽지 않았다.
"으아아아! 으아아아!"
놈이 괴로움에 찬 비명을 터뜨렸다.
마나홀 10, 마나통 8인 놈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적어도 마나가 8이상은 있어야 했다.
혹여 8은 없다고 하더라도 절반인 4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지금 미우라의 마나는 0이었다.
마나가 0이라고 해서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나통이 마나를 갈구하며 엄청난 고통을 선사하는 것이다.
전생에 사람들은 이 고통을 죽음에 빗댔다.
죽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고통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마나를 갈구하기 때문에 그런 몸을 가지고 움직여야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서글픈 삶이었다.
지금 미우라가 그런 처지가 된 것이었다.
<그러게 마음보를 곱게 썼어야지. 구해주면 고맙다고 생각하고 조용히 살 것이지···. 집사의 것을 빼앗으려고 와! 미친 거지. 반반이를 보고도 그런 생각을 했으니···. 죽이지 않은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해!>
나호가 놈의 뒤통수를 때리며 말했다.
그런데 나호가 놈의 뒤통수를 때린 순간 놈이 앞으로 넘어졌다.
나호의 앞발을 제대로 느꼈다는 것이었다.
<이놈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감각 능력치가 완전히 사라졌는데 어떻게 나를 느끼지? 이건 타고 났다고 봐야겠지?>
"그런 것 같아. 나는 저놈들 거 빼앗아야겠다."
여기 있는 놈들은 하나같이 각성자였다.
강탈했던 것들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다른 각성자보다는 월등한 놈들이었다.
노예로 부리기위해서는 강한 놈은 필요 없었다.
"상태창 읊어봐."
가장 가까이 있던 남자에게 물었다.
"예? 상태창은 왜···."
"왜긴? 미우라 못봤어? 강탈하려는 거잖아. 빼앗아서 다 없앨 거니까 말해!"
"살려주십시오."
남자가 미우라를 슬쩍 보더니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미우라가 죽을 듯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셋 안에 말하지 않으면 죽고 싶다는 것으로 알게. 하나···."
"살려주십시오. 선생님! 대장님! 아니 대표님!"
남자는 지금 제 정신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빼앗기지 않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둘! 목숨이 아니라 상태창을 선택한다는 거야?"
"그, 그것이 아니고···."
"셋!"
"으아아악! 으악! 으악! 내 손! 내 소오오온! 말, 말하겠습니다. 직업은 없고, 스킬은······."
남자가 고통에 찬 비명을 터트리더니 상태창을 읽기 시작했다.
셋을 외친 순간 남자의 손이 바닥에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잘들 봤지? 숨기는 놈들은 목숨을 잃게 될 거야!"
"미우라는 죽이지 않으면서 왜 저희는···?"
"그건 너희가 알 필요 없잖아. 안 그래?"
"그, 그렇습니다. 저부터 말하겠습니다."
"아니 저부터!"
남자의 손을 자른 것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51명의 사람들이 서로 상태창을 먼저 말하겠다고 몸 싸움까지 벌였던 것이다.
"싸울 필요 없어. 동시에 말해."
"동시에 말하면 어떻게 알아듣습···. 읽겠습니다. 제 상태창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하려던 여자가 재빨리 자신의 상태창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 여자뿐만이 아니었다.
늦게 말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상태창을 읽는 사람들이었다.
생에 대한 갈구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例)였다.
51인이 함께 상태창을 읽었지만 이것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에게는 권능 기억과 전령조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권능 기억만으로도 충분한데 주위에 가득한 전령조들이 각각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정확하게 만화경을 통해 띄운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이들의 상태창을 비교분석 할 수 있었다.
남아있는 강탈권으로 이들이 가진 것을 모두 빼앗을 수는 없었다.
비교 분석된 자료를 바탕으로 꼭 없애버려야 하는 것부터 없애기 시작했다.
<어떻게 살면 저런 것을 스킬로 얻는 거야? 저런 스킬은 살아온 발자취를 반영하는 거 아니야?>
나호가 기분 나쁘게 쳐다보고 있는 남자는 '관음(E)'이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저런 스킬은 도대체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특성과 권능, 스킬이 사라져가자 놈들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부터 없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너무 공허해."
"허어엉! 어어엉! 어엉! 엄마에게 빼앗은 스킬이었어. 아니 엄마가 준 스킬이었어."
꼬물!
^삐이이! 거짓! 강탈한 거예요. 스킬을 준다는 것을 누가 생각하겠어요. 빼앗은 거지.^
미우라를 제외한 놈들은 스킬과 특성들을 주로 없앴다.
남은 강탈권이 많지 않아서 마나까지 모조리 빼앗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상점까지 모조리 빼앗았으니 이곳에서 사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이었다.
"다 됐으니 어서 자! 내일 또 걸어야하니···."
"어어엉! 어어엉!"
"사, 살려주세요. 제발···."
"뭐든 다 하겠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스킬이나 권능, 특성까지도 빼앗아서 없앨 수 있었지만 발현율은 건드릴 수 없었다.
강탈권 중에 발현율과 관계된 것이 없었던 것이다.
즉 이놈들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은 것 같지만 각성은 빼앗을 수 없었다.
이들은 여전히 각성자였다.
조금씩이라도 마나를 모으면 언젠가 상점을 오픈하고 필요한 것을 구매할 놈들이었다.
"죽일 생각 없어. 대신 여기서 살아. 농사지으면서. 농토가 비옥한 편이고 선배들 또한 있으니 금세 정착할 수 있을 거야."
"선배가 있습니까?"
"있지. 아마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누군가 살고 있다고 하자 안도하는 것이 여실히 얼굴에 드러났다.
이렇게 괴롭힘을 당한 후에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살려줄 겁니까? 그래요? 그럼 오빠라고 불러도 되···. 으아악!"
미우라에게 딱 달라붙어서 알랑방귀를 뀌던 여자가 바짝 다가서며 말했다.
나보다 나이도 많아 보이는데 오빠란다.
생각 같아서는 한 대 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대신 꼬물이와 도뮤는 참지 않았다.
여자가 오빠라는 괴상한 소리를 한 순간 도뮤는 여자의 정강이를 힘껏 찼고, 도뮤가 찬 직후 꼬물이는 여자의 발목을 힘껏 당겼다.
여자가 꽈당 넘어졌다.
"아! 아파! 오빠 나 좀 잡아줄 수 있어? 으아악! 으아아악!"
여자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꼬물!
^어디서! 꼬리를 치려고.^
꼬물이와 도뮤가 다시 응징을 한 것이었다.
"까불지들 말고 자! 죽고 싶지 않으면···."
이제 이들 중 누구도 스킬이나 권능, 특성 등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백지 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이미 개방해둔 능력치는 0이지만 그대로 열려 있었다.
이곳에서는 마나를 벌기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자겠습니다. 자야죠."
놈들이 재빨리 자리에 누웠다.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았다.
자리에 누웠어도 쉽게 잠이 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놈들은 의외로 쉽게 잠이 들었다.
<이해가 안 되네. 나 같으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데···.>
"낯선 곳에서 열 시간 이상을 걸었잖아. 그러니 피곤하기도 하겠지. 탈력감도 심할 거고."
<그런가?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이해할 수 없어.>
그렇게 밤이 지나갔다.
미우라는 밤새 고통에 신음을 흘려야 했다.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것인지 시스템은 미우라가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혹시 그 사이 시스템이 바뀐 건가? 그것도 아니면···."
강탈 권능과 스킬을 빼앗을 때 시스템은 유난히 질척거렸다.
미우라를 아끼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권능과 스킬이 사라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 같기도 했다.
모든 것이 불분명하지만 이제 미우라는 확실히 제거했다고 봐도 좋았다.
놈은 이곳에서 노예와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으으으으! 으으으!"
놈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는데 동정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지금 놈은 전생에 부모님께서 당한 고통 이상을 느끼고 있을 것이었다.
흐엉 때문이었다.
흐엉은 묘한 아이템이었다.
미우라가 괴로워하는 것을 은근히 즐겼다.
내 감정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자아가 있다고는 하지만 아이템일 뿐 소환수는 아닌데 말이다.
<집사! 흐엉 저 녀석 조금 위험한 거 아니야? 사이코패스 같아. 우리야 전생의 일 때문에 미우라가 괴로운 것이 좋지만 저 녀석은 왜 저리 좋아하는 거야? 이해가 되지 않아.>
흐흐흐! 흐흐흐!
어느 순간부터 계속 해서 웃음을 흘리면서 즐거워하는 흐엉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내 감정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해."
<어? 저 녀석 뭐하는 거야? 어떻게 집사가 시키지도 않은 일까지 하는 거지? 아이템에 불과한 녀석이?>
미운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