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신이 들린 물건
우리가 도착한 곳은 영국의 '런던 던전'이었다.
당연히 내가 소유한 던전이었고 장프가 있는 던전이었다.
그런데 던전에 도착한 순간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뭐 하는 거지?"
<글쎄? 꼭 제사를 지내는 것 같은데?>
워프 게이트 밖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워프 게이트를 향해 허리를 반복해서 숙이며 간간이 술을 뿌렸다.
뮤! 뮤! 뮤!
^저 사람들 집사를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워프 게이트 안에 있어서 그래. 그런데 저 사람들 워프 게이트를 보는 것 같지 않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네. 그런데 저러고 있으니 나가기가 뭐 하네."
사람들의 행동만 보고 저들이 워프게이트를 보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사실 워프 게이트는 저들이 보지 못해야 했다.
<그런데 저 사람들 뭐라고 하는 거야? 집사는 들려?>
"구원자를 내려달라고 하는 것 같은데? 맞아. 구원자를 찾고 있어."
<워프 게이트를 통해 누군가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꼬물!
^저는 알 것 같아요. 그건 아마···.^
거기까지 말한 꼬물이가 내 가슴을 꼭 찔렀다.
꼬물!
^올까말까 고민을 했기 때문일 거예요.^
"그게 왜?"
대변혁 이후 영국은 처음이지만 오려고 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두세 번 오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일이 생겨서 오지 못했다.
그런데 꼬물이의 말을 들으니 어렴풋이 이들이 워프 게이트를 향해 구원자 타령을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집사! 뭔데? 저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에 워프 게이트가 있는 것을 아는데?>
나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몇 번 이곳에 오려다 말았잖아."
<그랬지. 그런데 그게 왜?>
"워프 게이트에서 영국을 설정했다가 취소한 적도 있었어."
<그것 때문에 워프 게이트를 본다고? 에이 말도 안 돼.>
"아니. 말이 돼. 한쪽에서 설정을 하면 가려고 하는 곳에 불이 들어오잖아. 그 불빛을 봤는지도 몰라."
<아!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아직 집사가 보지 못하게 설정을 한 것도 아니니까.>
내 소유의 던전이지만 대변혁 이후 클리어를 해야 던전에 있는 것들의 위치를 이동할 수 있고 보이지 않게도 할 수 있었다.
꼬물!
^깜빡깜빡 하니까 신이 들린 물건쯤으로 생각했나?^
뮤! 뮤! 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신을 만들어내는 거야. 어느 것도 확실한 것이 없는 불안한 세상이니 뭐든 더 의지하고 싶었겠지.^
꼬물!
^도뮤! 내 친구! 똑똑해!^
뮤! 뮤! 뮤!
^네가 더 똑똑하지. 넌 한글도 잘 알잖아.^
꼬물!
^너도 알잖아.^
도뮤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나가면 안 되겠다. 구원자라고 생각하면 머리 아프잖아."
워프 게이트 앞에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절박해보였다.
전생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영국은 대변혁 이후 국력을 크게 잃은 나라 중 한 곳이었다.
던전이 많이 터지기도 했지만 특히 이곳은 좀비류의 몬스터가 많이 나왔다.
영국에 나온 좀비들을 보고 사람들은 '과거에서 온 망령'이라고 했다.
유독 과거 복장을 한 좀비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군복을 입은 좀비들이 많았는데 사람들은 그 좀비들이 세계 1차, 2차 대전에서 희생된 군인들 같다고 했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다른 몬스터는 도축을 하면 먹을 것이 조금이라도 생기지만 좀비류는 아니었다.
간혹 귀한 것을 남겨주기도 했지만 그런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대변혁 이후 세상은 뭐든 시스템 상점을 의지하며 살기를 바라는 것처럼 변했다.
그러니 좀비를 죽였다고 해서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나오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좀비가 입고 있는 옷이라도 건지기 위해 도축을 하지 않고 옷을 벗기기까지 했지만 결국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말을 셀 수 없이 들었던 말이었다.
좀비류가 많이 나오는 던전이 많았으니 영국인들의 삶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식량을 집에 쌓아두는 것도 아니니 더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엘리스도 찾는다고 했잖아. 찾기 기능은 언제 이용할 거야?>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고. 어차피 이 던전도 클리어 해야 하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던전에 사람이 많네."
런던 던전도 영국에 있는 던전답게 좀비가 나오는 던전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아직 관리구역이 생기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워프 게이트를 향해 기도를 한 사람들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사람만은 워프 게이트 앞을 떠나지 않았다.
<일부러 저 사람을 남기는 것 같은데? 워프 게이트를 지켜보게 하는 것 같아? 집사 어떻게 할 거야? 계속 여기 있을 거야?>
"나가야지. 한 사람 눈이야 충분히 속일 수 있어."
현재 은신 스킬 등급은 C급이었다.
대변혁 전 빌려 쓴 SSS급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C급도 엄청난 것이었다.
많은 사람이 워프 게이트만 쳐다보고 있을 때는 C급 은신으로는 완벽하게 존재를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눈을 속이는 것은 C급으로도 차고 넘쳤다.
뮤! 뮤! 뮤!
^집사가 이곳으로 옮겨올 때도 번쩍하지 않았나! 아까 그 사람들 자신들의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구원자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워프 게이트의 문을 열었다.
동시가 내가 나가려는 반대방향으로 제법 큰 돌을 하나 던졌다.
대기실에 있던 돌이었는데 약간 푸른빛을 띠는 것이었다.
홀로 남아 워프 게이트만 쳐다보고 있던 남자가 깜짝 놀라서 돌이 떨어진 방향을 향해 달릴 때 워프 게이트에서 나왔다.
그리고 던전의 안쪽을 향해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뮤! 뮤! 뮤!
^하늘이 돌멩이를 내려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저것 봐라! 아주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고 있다.^
<돌이 공교롭게 푸른색이어서 더 그럴 거야.>
한 번 맹신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나왔소.'하고 말할 수도 없었다.
꼬물!
^저 남자 따라와요. 그런데 행선지가 같을 뿐인 것 같아요.^
던전의 안쪽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는데 남자도 던전의 안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아마 기도를 올렸던 동료들에게 가기 위한 것 같았다.
키아악! 캬아악! 크아악!
워프 게이트에서 1킬로미터 정도 이동했을 때 이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집사! F급은 아닌 것 같아.>
"영국의 좀비들은 강한 편이었지."
좀비 소리가 들리고 500미터를 더 나아가자 전투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조금 전 워프 게이트에서 기도를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좀비를 상대로 상당히 고전(苦戰)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많이 약하네.>
좀비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좀비를 상대하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었는데 각성자가 끼어있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로 주먹구구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전략의 부재네. 왜 저렇게 움직이지? 좀비가 어려운 것 같지만 방망이 같은 것만 있어도 처리할 수 있는데···."
뮤! 뮤! 뮤!
^전략이니 전술이니 하는 것도 여유가 있어야 짜는 거다. 저들은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없다.^
도뮤 말대로 였다.
전투를 치르고 있는 사람들은 눈앞의 좀비를 처리하는 것에 급급해서 전장을 넓게 보지 못하고 있었다.
체력이 약하고 확실한 리더가 없는 것도 문제인 것 같았다.
쫑! 쪼로로!
^지휘해야 하는데···. 아무도 하지 않고 있어요. 지휘자 중요한데.^
쪼롱이가 다 답답해했다.
지휘 스킬을 가진 쪼롱이니 답답할 만 했다.
<저대로 두면 희생자가 생길 것 같은데···. 어떻게 해?>
"어떻게 하기는···. 도와야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지만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소환수를 드러내기는 싫었다.
그래서 쇠도리깨을 들고 뛰어나가 좀비에게 잡히기 일보직전의 사람을 구해냈다.
키아아아! 키아아!
다 잡힌 먹이를 놓쳤다고 생각한 좀비가 소리를 질렀다.
빠과아! 빠과아!
소리를 지른 좀비의 머리에는 정확하게 쇠도리깨가 떨어졌다
쇠도리깨에 맞은 좀비는 소리도 제대로 질러보지 못하고 머리통이 깨지며 쓰러졌다.
"아! 감사···."
목숨을 구원받은 사람이 인사를 건네려고 했지만 차근히 인사를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
던전의 안쪽에서 너무 많은 좀비가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거냐?>
나호가 좀비를 향해 하는 말이었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원래 이 던전은 좀비가 많기도 하고 강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가 일본으로 옮긴 던전만큼은 아니지만 말이다.
파각! 파각! 파각!
쇠도리깨는 정말 좀비의 머리통을 잘 부수었다.
잘 부순 만큼 좀비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뒤로! 머리를 노려! 그렇지!"
전투를 하며 필요할 때는 지휘를 했다.
좀비의 수가 많아서 이들도 움직여야했다.
그런데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지휘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지시에 따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제법 지시대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치고 빠지세요. 그 무기보다는 방망이가 나을 것 같습니다."
툭툭 던져주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도 노력하는 사람들이네. 좋은 지도자가 있으면 제법 괜찮을 것 같아.>
"그럼 좋지."
전생에 일본 편을 들던 것을 생각하면 밉지만 지금에 와서 그 죄를 묻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어차피 이번 생에서 이들이 일본 편을 들 일은 없을 것이었다.
파각! 파각! 파각!
팍! 퍽! 파악!
한 번에 좀비를 죽이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嘉尙)했다.
"각성자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야. 두 명은 각성자야."
<그래? 나는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누가 각성자야?>
"저기 저 사람들! 유심히 보면 각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혼자 처리하지 못하고 둘이 함께 움직이는데 각성했다고?>
묘한 두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연계 동작을 하며 좀비를 처리하고 있었다.
한 사람씩 보면 나약해 보이지만 둘을 함께 놓고 보면 둘은 분명 각성자였다.
꼬물!
^쌍둥이 아닌데 쌍둥이 같아요.^
"맞아. 쌍둥이는 분명 아니야. 그런데 쌍둥이처럼 보이네."
쌍둥이라고 해도 저 두 사람처럼 잘 맞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우리가 드디어 이 던전을 클리어 할 수 있는 건가?"
"클리어 할 거야. 할 거라고!"
"클리어! 클리어!"
던전 클리어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원수를 갚을 거야. 우리 가족의 원수!"
"친구의 원수!"
"모두 처리하자!"
"신이 응답했습니다. 이런 돌을 보내주셨습니다."
원수를 처리하자는 구호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내가 던진 돌을 가지고 온 남자가 목청을 높였다.
"오오오! 신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아아!"
"드디어어!"
"우와아아아!"
남자가 돌을 높이 들어 올리자 사람들이 함성을 질렀다.
좀비를 도발하는 것이 되었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사이비가 생기는지 알겠네."
뮤! 뮤! 뮤!
^신앙은 단순하면서도 무섭다! 자칫 사회를 멸망으로 이끌기도 한다.^
"와아아아!"
"쳐라!"
"와아아아아!"
푸르스름한 돌의 색깔이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데 일조한 것 같아.
"사기가 진작 되었어. 움직이는 것부터 달라졌네."
돌의 빛깔을 보고는 단단히 착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사기가 떨어지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내버려두었다.
돌에서 희망을 찾은 사람들은 동일한 사람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 때 던전을 클리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희생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