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 희생양
던전이 클리어 되었다고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것 같은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띠링! 축하합니다. 던전이 클리어 되었습니다. 던전 공략의 공헌도에 따라 소정의 마나가 클리어 보상으로 지급되었습니다. 상태창을 통해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던전 클리어의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클리어 보상으로 마나까지 준다고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이어졌다.
[띠링! 첫 클리어를 기념하는 의미로 '이벤트 보스룸'이 생성됩니다.]
"이벤트 보스룸은 뭐야?"
"나도 모르지."
"보스라고 했으니 더 강한 몬스터가 나오는 거 아닐까?"
"지금 이 좀비들만으로도 힘들었는데 더 강한 몬스터라고? 우리 이러다 다 죽는 거 아니야?"
사람들이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설명은 사람들을 더 기함하게 만들었다.
[띠링! 이벤트 보스룸에 등장하는 보스를 처리하지 못하면 매 세 시간 마다 한 사람이 희생양이 될 것입니다.]
[띠링! 첫 희생양은 이마에 붉은 점이 나타나는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시스템의 메시지 후 다섯 사람의 이마에 붉은 점이 나타났다.
<가장 약한 사람부터 죽이겠다는 거네.>
"너, 너에게 붉은 점이 나타났어."
"정말? 거짓말이지? 거짓말이지?"
붉은 점이 나타난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왜 나야? 왜? 보스룸은 어디에 있어? 어서···."
"싫어! 나는 아니야! 나는 아니라고···!"
"정말 세 시간이 지난다고 사람을 죽이지는 않겠지?"
"안심해.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정말 사람을 죽이지는 않을 거야."
"우리가 처리하면 그만이야. 걱정하지 마!"
"나 버릴 것은 아니지?"
보스룸이 바로 나타났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이벤트 보스룸이 나타난다는 말만 하고는 5분, 10분이 지나도 보스룸이 나타나지 않았다.
붉은 점이 나타난 사람은 불안감에 몸을 떨었고, 붉은 점이 나타나지 않은 사람은 던전 퇴장을 생각했다.
<시스템은 참 잔인해. 인간의 끝까지 꼭 확인하려고 하거든.>
'이래서 혼자 다니는 것이 좋아.'
이런 경우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화와 반목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꼬물!
^보스룸 왜 생기지 않는 거예요? 이상해요.^
꼬물이가 의문을 드러냈다.
뮤! 뮤! 뮤!
^이런 거 정말 나쁘다.^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시스템이 이곳의 사정을 고려해주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 사이 나타나지 않은 보스룸으로 인해 사람들의 불안감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보스룸을 굳이 공략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나가도 될 것 같은데? 보상도 다 받았고."
"그래요. 우리 그냥 나가요. 여기 무서워요."
한두 사람이 나가자는 말을 하자 너도나도 나가자고 했다.
이마에 붉은 점이 찍힌 사람은 더더욱 나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저대로 던전을 퇴장하면 다섯 사람 모두 죽음을 당할 것이었다.
<아직 저 사람들은 시스템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나보네.>
'다양한 던전을 경험하지 못해서 그래. 그런 점에서는 영국이 불쌍하지. 시스템에게 밉보인 것이 있는 것인지···.'
다양한 던전은 대변혁 이후 생각보다 중요했다.
던전에만 의지해서 살아가야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영국은 쓸 때라고는 아무짝에도 없는 좀비류의 던전만 많았다.
지난 역사 동안 저지른 죄악 때문이라는 말도 많았지만 그런 이유라면 어떤 나라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어쨌든 사람들은 나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것 같았다.
<집사! 이대로 두고 볼 거야? 말려야 하지 않을까?>
'말리면? 나가지 말라고 하면 이 사람들이 믿을까? 반발만 할 거야. 자신들의 불안과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내게 쏟아 부을 거라고.'
뻔한 일이었다.
어떻게 아느냐는 말부터 시작할 것이었다.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이대로 두면 저 사람들 죽을 텐데···.>
'그래도 어쩔 수 없어. 그냥 둬. 저 사람들이 던전을 나가기 전에 보스룸이 생기면 목숨을 구할 수 있겠지.'
보스룸이 생기면 들어가서 보스를 잡을 생각이다.
운이 좋다면 목숨을 구할 것이고 저 사람들이 던전을 나가기 전 분명 보스룸은 생성될 것이었다.
보스룸이 생긴다고 하고 이렇게 보스룸이 생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시스템에게 질문했다.
'보스룸이 생긴다고 하고 30분이야. 생기기는 하는 거야?'
[띠링! 생길 겁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생기지 않아? 생길 때가 한참 지난 것 같은데?'
[지금 난이도 조정을 하고 있습니다.]
'난이도 조정을 한다고? 처음 설정된 보스가 있었을 거 아니야!'
[그렇습니다. 처음 설정된 보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대한 님으로 인해 보스를 다시 설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도 있어?'
[저희도 처음이어서 시간이 걸리는 겁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대신 보상은 확실할 겁니다.]
이렇게 말을 한 시스템은 더 이상은 어떤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가자고! 충분했어. 괜히 더 얻으려다가 목숨을 잃을 거라고."
"나간다고 뭔가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이마에 붉은 점이 생긴 사람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괜찮을 거야. 빨리 가자고!"
던전 공략을 함께 한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던전의 입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목숨을 구해주고 함께 던전을 공략한 나에게는 누구도 함께 가겠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던전을 함께 공략할 때는 그리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는데 조금 박정하네.>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그래. 얼마나 무섭겠어. 이런 일이 처음이니."
사람들이 1킬로미터 쯤 멀어졌을 때 던전의 끝에 보스룸이 생성되었다.
그런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어···. 어어엄마아아야아아!"
"으아악! 사, 살려줘어어!"
"안 돼! 안 돼! 죽기 싫어! 죽기 싫다고!"
"이거 왜 이래! 놔! 놓으라고!"
보스룸이 생성된 것과 동시에 이마에 붉은 점이 찍힌 다섯 사람이 강한 자석에 이끌리듯 보스룸 쪽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일에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반항을 하려고 했지만 빨려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도와줘어! 살려줘어!"
"으아아! 무기! 무기 줘!"
"나도 나도 무기!"
끌려가는 사람 중 그래도 정신을 완전히 놓지 않은 사람은 동료들에게 무기를 달라고 했다.
다른 때 같으면 무기를 내놓지 않을 사람들도 이런 상황이 되자 끌려가는 사람에게 자신의 무기를 건넸다.
물론 끝까지 자신이 든 무기를 주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끌려가는 다섯 사람은 동료들 덕분에 좀 더 좋은 무기를 들 수 있었다.
"사라졌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다섯 사람이 이벤트 보스룸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시스템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띠링! 이벤트 보스룸이 생성되었습니다. 보스룸 생성과 함께 희생양을 확보했습니다. 방금 보스룸으로 들어간 다섯 사람은 보스를 처리하기 전에는 퇴장이 불가능합니다.]
"언니이이! 우리 언니 좀! 우리 언니 좀 어떻게 해주세요."
"진정해. 지금은 들어갈 방법이 없어."
보스룸에는 따로 출입문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는 시스템의 허락이 없으면 입장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 순간 보스룸의 전면에 다섯 사람의 사진이 크게 나타났다.
그런데 무슨 포스터 같았다.
<또 시작했네. 애태우기. 이러면 입장이 불가능하잖아.>
'그렇지.'
혼자 입장해서 던전을 클리어 했을 때는 이런 것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이벤트 보스룸이라고 해도 이런 것은 생략되었다.
이건 그야말로 관객이 있기 때문에 시스템이 펼치는 이벤트였다.
뮤! 뮤! 뮤!
^이건 뭐냐? 이런 것은 처음 본다. 아니다. 이런 거 본적이 있다. 그때는 아주 질 나쁜 장난 같은 것이었는데···. 목숨을 가지고 펼치는 장난!^
도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도뮤는 차원 여행을 하는 존재인 것 같아. 그렇지 않으면 저런 이야기가 나올 수 없지.>
뮤! 뮤! 뮤!
^차원 여행 같은 것은 나는 모른다. 단지 현재를 열심히 살 뿐이다.^
도뮤가 교과서 같은 이야기를 하더니 보스룸을 쳐다보았다.
보스룸의 겉면에는 다섯 명이 제법 폼을 잡은 사진이 나타나더니 잠시 후 보스룸 안의 상황이 밖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TV를 켜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게임영상을 틀어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레이! 레이!"
"어떻게! 구해야 하는데!"
"알렉! 힘내라고! 포기하지 마! 뒤를 조심해!"
다섯 명이 끌려들어가는 것을 본 동료들은 보스룸 앞에 모여서 이들을 응원했다.
하지만 모두가 응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던전을 벗어나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 안의 시간이 조금 더 빨리 돌아가는 것 같아.'
<정말 그러는 것 같네. 아니 분명해.>
세 시간 안에 보스를 해치우지 못하면 한 사람이 희생된다고 했다.
하지만 예비 희생양으로 점찍은 다섯 사람이 모두 보스룸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 그 다섯 사람은 보스에 의해 농락당하고 있었다.
보스는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이 이들을 가지고 놀았다.
특히 보스는 이들의 이마에 찍혀 있는 붉은 점에 흥미를 많이 보였다.
꼬물!
^시스템 잔인해요.^
시스템은 원래 인정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동안 나에게 친절했기 때문에 잊고 있었지만 이것이 정상이었다.
그리고 모두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것 자체가 그동안 특별대우를 받았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어? 죽었어! 레이가 죽었다고?"
"먹···. 먹···."
차마 먹혔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조금 전 레이라는 사람은 좀비 보스의 입 속으로 사라졌다.
거인만큼이나 큰 보스 좀비는 갑자기 큰 입을 쩍 벌리더니 레이라는 사람을 삼켜버렸다.
하지만 좀비 보스는 여전히 배가 고픈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좀비 보스가 우리 쪽을 향해 썩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으아악!"
"엄마야아!"
이건 보스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지르는 소리가 아니었다.
보스룸 밖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더니 달아나기 시작했다
<겁이 날만하지. 하지만 저렇게 안쪽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은 감사한 일인데···. 그치?>
"그렇지."
다시 보스룸 앞이 조용해졌다.
사실 이런 경우 보스룸을 클리어하지 않으면 퇴장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보스룸이 보여주는 정보를 파악하는 것에 힘을 써야 했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달아나기에 급급했다.
<달아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전생에 나였으면 저들처럼 행동했을 거야. 충분히 이해해.'
저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는 돌멩이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누군가의 발에 여러 번 밟혀서 바닥에 반쯤 박힌 채였다.
좀비들을 처리할 때는 구원의 등불 같았던 돌멩이였지만 달아나려고 하는 지금은 짐짝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세상의 인심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조금은 씁쓸했다.
사람들이 던전의 입구를 향해 달아나는 것을 지켜볼 시스템이 아니었다.
시스템을 떠나서 설정 자체가 그렇게 허술하게 되어있을 리가 없었다.
뮤! 뮤! 뮤!
^다섯 명 다 죽었다. 저 사람들 구할 방법은 없는 거냐?^
"너도 잘 알잖아. 구할 수 없다는 거. 이런 경우 살기 위해서는 저 사람 스스로 똑똑하게 행동해야해. 내가 억지로 잡아다 두면 내 탓을 할 거야."
뮤! 뮤! 뮤!
^안타깝다.^
<집사를 가장 먼저 입장시키면 문제는 간단한데···.>
"시스템은 바보가 아니야. 그리고 그렇게 설정되지 않았을 거야. 아마 가장 늦게 입장하라고 할 거야."
다섯 사람 중 보스 좀비에게 먹힌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네 명은 형태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상처를 입고 바닥에 누워 있었다.
자신들의 동료가 모두 죽은 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달리고 있을 것이었다.
시야에서 벗어났지만 아마 조금 후면 모습을 드러낼 것이 뻔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시켜주는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띠링! 보스룸에 입장한 다섯 사람이 모두 죽었습니다. 이대로는 이벤트 보스룸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열 명의 희생양을 선정하기로 했습니다. 자! 누가 선정될 것 같습니까?]
<아우! 이런 말까지 전생과 똑같아! 정말 싫어!>
나호가 치를 떨었다.
이런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 미우라는 정말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흐흐흐! 흐흐흐!
꼬물!
^너무 재미있대요. 흐엉이의 취향저격이라고 하네요.^
<무슨 저런 취향이 있어? 정말 이상한 애야.>
히극! 히극! 흐어어엉!
나호가 자신에게 한 소리라는 것을 눈치 챈 흐엉이 울음을 터트렸다.
물론 나와 소환수만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하지만 흘려듣기에는 너무 서러운 울음소리였다.
흐어어엉! 흐어엉!
꼬물!
^가는 곳 마다 자신을 미워한대요. 계속 이러면 자신을 감출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하네요.^
'그럴 거 없어. 다 똑같을 수는 없으니까.'
다 착하기만 해서는 큰일을 할 수 없었다.
흐엉 같은 아이도 분명 필요했다.
[띠링! 어떤 사람이 희생양으로 선정될지 궁금하시죠? 자 그럼 보스룸을 클리어 할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 돌아갈까요? 열 사람의 희생양입니다.]
이벤트 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