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 정보의 가치
던전의 입구를 향해 걸으며 런던 던전의 관리계약을 맺었다.
2킬로미터에 1,000마나짜리 계약이었다.
이 금액은 일본에 있는 던전에 설정한 관리계약과 동일한 것이었다.
한국에 있는 던전은 2킬로미터의 200마나이니 다섯 배 더 비싼 것이지만 아귀세상에 비하면 싼 것이었다.
아귀세상은 2킬로미터에 2,000마나가 매월 빠져나간다.
그곳에서는 A급 치료수를 얻을 수 있으니 그리 비싸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말이다.
좀비가 나오는 던전이라 얻을 것은 많지 않은 던전이지만 안전한 거처는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변한 후에도 열심히 살아가려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사람은 살아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폭동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던전의 입구로 향할 때부터 옆으로 붙어선 사람은 돌멩이를 보고 신이라고 떠들던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말을 정말 잘하고 그것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든 런던과 비슷했지.>
남자의 말을 듣던 나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가 말하는 런던의 상황은 전생에 한국과 비슷했다.
세상 어디든 비슷했을 것이다.
초유의 사태!
던전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열리고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모든 산업과 유통이 멈춰버린 도시에서의 삶이 호락호락할리 없었다.
이렇게 세상이 변하면 꼭 나타나는 족속들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먹고 살기 힘든데 그런 사람들의 등골을 빼먹지 못해서 안달하는 족속들!
거친 말과 행동으로 시민들을 위협하고 군림하려는 자들!
이런 사람들 중 상당수는 변한 세상을 오히려 달가워하기도 했다.
"그놈이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기 존의 딸도 잡혀있고 저기 베르크의 아내도 잡혀 있습니다."
남자가 가리키는 사람들이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여기 콘라드와 앨런은 그 가족을 잃었습니다. 그 놈들에 의해서 콘라드와 앨런뿐만 아니라 여기 윌도, 앤드류도, 스캇도···. 그런데도 그놈 밑에 있으며 그놈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
특별한 대답을 하지 않는데도 남자의 이야기는 끝이 날줄 몰랐다.
이 이야기를 통해 이들이 처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들은 그놈이라고 말하는 놈과 함께 살지는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놈에게 식량을 의지하고 있었다.
매일 마나로 식량을 구매하고 가족이 인질로 잡혀있는 사람들은 보호비 명목으로 또 마나를 지불하고 있다고 한다.
"거처도 툭하면 쳐들어와서 쑥대밭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장악한 곳은 자신들의 것이라고 우기며 집세까지 내라고 하는 통에 살 수가 없습니다. 다리 밑에 움막이라도 짓고 살려고 했더니 거기까지 와서······."
<세련되지는 못한 놈이네.>
이야기를 들은 나호가 내린 평가였다.
"우리는 힘이 없어서 놈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몇 번 공격을 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래서 매번 실패했습니다."
몇 번이고 놈을 처리하기 위해 애를 썼단다.
밤에 기습을 해보기도 하고, 인질을 자청해서 들어가 놈을 제거하려고도 했단다.
그런데 번번이 놈이 알고 있었다고 했다.
"배신자가 아니면 예지 능력자일 수도 있겠군."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지 능력자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놈이······."
공격받는 것은 기가 막히게 알지만 다른 것에는 은근 운이 없기로 유명하단다.
<뭘까? 집사는 놈의 능력이 뭘 것 같아?>
'글쎄? 생존 본능이 기가 막힐 정도로 높을 수도 있지.'
뮤! 뮤! 뮤!
^어쩌면 말이다. 불운으로 행운을 사는 놈인지도 모른다.^
도뮤가 불쑥 하는 말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뮤! 뮤! 뮤!
^저 말 많은 도널드라는 남자의 말을 듣다보니 갑자기 생각나는 도깨비 한 마리가 있다. 그 도깨비는 황금 광산을 정말 잘 찾았다. 그래서 좋은 친구 만나서 호의호식했다. 아마 지금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거다.^
뮤! 뮤! 뮤!
^그런데 그 도깨비는 황금 광산을 찾기 전에는 꼭 운이 지지리도 나빴다. 어쩜 저리 운이 없을까 할 정도다. 그런데 그때마다 그 도깨비는 여유 있었다. 불운을 쌓아 행운으로 바꾼다며 불운을 찾아다니기까지 하는 이상한 도깨비였다.^
변한 세상에서 20년 이상을 산 전생에서 도뮤가 말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운이 없어도 저렇게 없을 수가 있나 하는 사람이 어느 순간 행운을 거머쥐는 거!
절망의 순간에도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행운이 찾아들면 함께 기뻐해줄 수 있었지만 왜 저런 사람에게 행운이 깃드나 하는 경우도 있었다.
행운이라는 것은 눈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많았던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던전을 나와 그놈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점점 내 뒤를 따르는 숫자가 늘고 있었다.
음머어어!
반반이가 내 뒤를 따르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걸어다니는 것이 다행인 사람들이었다.
먹을 것이 없는 곳에서 산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닌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저기! 저기입니다. 아마 이미 우리가 오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늘 그랬거든요."
공손한 어투로 말하며 내 눈치를 보는 도널드였다.
도널드의 눈은 자꾸 대기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푸른색 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었다.
도널드는 자신이 만든 거짓을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꾸루야! 어때?'
꾸!
미리 보내둔 전령조들이 보낸 정보를 취합, 정리해서 나에게 전달해주는 꾸루였다.
이런 면으로는 역시 꾸루가 최고였다.
지금 런던은 멀쩡한 건물이 많지 않았다.
놈이 차지한 건물은 운이 좋게도 식량회사였다.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후 런던은 이전보다 비싼 가격에 각종 곡물을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에서 초반에 많은 곡물회사가 망했지만 살아남은 소수의 기업은 거대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전과 달리 수입과 통관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기업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회사 중 한 곳!
물류창고까지 딸린 회사를 차지한 놈은 런던의 식량을 쥐고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다른 몬스터가 많았다면 놈이 활개를 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런던은 좀비 이외에는 몬스터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은 놈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영리한 놈이네."
"왜 그러십니까?"
"이미 알고 있어."
"그렇죠?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놈을 치려고 한 것이 한두 번이었겠습니까? 식량 욕심에서라도 놈을 치고 싶어 하던 곳이 한두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놈은 귀신같이 알아챘습니다."
"그래. 그랬을 거야. 식량을 쥐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밀고를 하거나 정보를 가지고 오면 값을 매기고 식량을 나누어줬어. 매우 은밀하게."
"예? 그럴 리 없습니다. 그런 말은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럼 그런 말을 누가 하고 다니겠어."
전령조가 가 있을 때도 정보를 팔기 위해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놈은 정보를 듣고 값을 매겼는데 나름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집사에 대한 정보가 겨우 밀 한 그릇이라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집사는 어떻게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집사가 밀 한 그릇인데 괜찮다는 거야? 저거로 갈면 빵 하나도 되지 않아. 집사가 빵 하나만도 못하다는 거야?>
내 정보를 팔고 밀 한 그릇을 받아가는 장면을 보더니 도저히 참지 못하겠는 모양이었다.
'열 내지 마. 저 놈에게는 밀 한 그릇이 어떤 의미일지 모르겠지만 그 밀을 받아간 사람에게는 목숨과도 같았을 거야.'
나호는 갈아서 빵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럴 일 없을 것이다.
저 귀한 밀을 가루를 낼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껴서 먹을 것이 뻔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다들 놈을 몰아내지 못해서 안달을 했는데···."
도널드는 내 말을 쉽게 믿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사실 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놈이 기거하고 있는 곳으로 무혈입성이 가능할 것이었다.
도깨비들이 밧줄을 들고 대기실을 나섰기 때문이었다.
"사실이야. 들어가자고."
"그냥 들어가면 큰일 납니다. 놈은 총을 가지고 있습니다. 총도 한두 개가 아닙니다."
"아악! 누, 누구냐? 잡아! 다들 뭐하고 있어! 잡으라고! 경비! 경비!"
"풀어줘어! 풀어 달라고!"
"나는 이놈들과 한 편이 아니야. 놔! 놓으라고!"
우리가 곡물회사의 정문을 통과하기도 전 상황은 마무리 되었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움찔하던 도널드의 얼굴이 어느 순간 활짝 펴졌다.
"역시 신이셨군요. 그렇게 놈을 잡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는데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시고···. 존! 베르크! 상황 정리된 것 같아! 어서 들어가서 가족들을 찾아······."
도널드가 뒤쪽을 향해서 목청을 높였다.
"신이 내려주신! 아니 신이 강림하셨다! 놈을 잡았어! 감사 인사를 올립시다!"
도널드는 선동하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는 것 같았다.
"조용히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너무 사양하지 마십시오. 이래야 일이 쉬워집니다. 아무리 신이라고 하셔도 이곳에 기반이 없지 않습니까? 기반을 마련하셔야죠."
신이라고 하면서 기반타령을 하는 도널드였다.
어떤 사고방식을 가진 것인지 머릿속이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뮤! 뮤!
^신도 인간의 몸을 입은 순간 먹고 살아야한다는 거냐? 재미있군! 인간은 흥미로운 족속이다.^
도뮤가 도널드를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물론 도널드는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묶여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뮤! 뮤! 뮤!
^전령조들이 묶으라는 사람만 묶었다. 저 사람들은 인질이다.^
도뮤가 묶이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오! 인질과 악인을 구별하시다니···. 그런데 어떻게 들어오기도 전에 이들을 묶으신 겁니까?"
도널드가 침을 튀기며 말했다.
상당히 흥분한 상태였다.
"도널드의 말이 맞았어. 아니 우리의 기도대로 된 거야."
"직접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 다들 묶여 있어!"
우리 뒤를 따라 회사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도 도널드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중 일부 사람들은 회사 안을 뛰어 다니며 자신의 가족을 찾았다.
다행히 가족을 찾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으아아아! 으아! 내 딸! 내 따아알! 내 딸 어디에 있어! 어디에 있냐고!"
존이라는 남자가 한 남자의 위에 올라타서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이곳을 차지하고 그간 런던의 실세 노릇을 하던 사람 같았다.
퍽! 퍼억!
"내 딸 어떻게 했어! 어떻게 했냐고!"
입에 재갈이 물려있어서 대답을 하지 못하는데도 존은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존의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결혼하고 8년 만에 얻은 딸이었답니다. 귀하고 또 귀해서 땅에 내려놓는 것도 아까웠다는데···."
도널드가 존을 보며 말했다.
<도널드 이놈은 말만 많은 것이 아니고 들은 것도 많네. 저렇게 말이 많은 사람은 주로 듣지를 못하던데.>
뮤! 뮤! 뮤!
^도깨비와 비슷한 기질을 가진 놈이다.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것이 어떤 이야기든···. 참견하기도 좋아하는 것 같고···.^
도뮤가 도널드를 평가했다.
꼬물!
^존은 딸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아니에요. 저 맞고 있는 사람이 죽이지 않았어요. 달아난 것 같아요.^
갑자기 꼬물이가 하는 말이었다.
'확실해?'
꼬물!
'살아 있을까?'
꼬물!
^그것까지는 모르겠어요. 여섯 살 아이라 장담할 수 없어요.^
"여섯 살이라고?"
소환수들과 심상으로 이야기하다 여섯 살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존은 허연 수염이 가득해서 딸이 있다는 말에 스무 살 이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존의 딸은 여섯 살입니다. 존! 신께서 자네 딸의 나이까지 아셨어. 이리 와 보라고!"
도널드가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존을 불렀다.
도널드의 말에 눈물로 범벅이 된 존의 얼굴이 나에게로 향했다.
"여섯 살! 제 딸의 이름은 '노엘'입니다.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아이입니다. 제 아내는 노엘을···."
덩치가 산만한 존이 순박한 눈을 반짝이며 말을 하다 목이 메어 말을 잊지 못했다.
존이 눈물을 닦았다.
그런 그의 양손은 피로 얼룩져있었다.
신의 밧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