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 담보설정
[띠링! 창고에 있는 밀을 배분하겠습니다. 배분에는 홀트 씨의 마나를 사용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마나가 많이 부족합니다. 부족한 마나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조용히 이야기하지.'
심상으로 이야기하자 시스템도 조금 전과 달리 나만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띠링! 부족한 마나를 '니콜라스 홀트' 씨에게 부담지우시겠습니까?]
시스템은 나의 의도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다.
'가능한가?'
[띠링! 가능합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설정되어야 합니다.]
<시스템이 호락호락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
그랬다.
시스템은 단 한 번도 만만한 적이 없었다.
만반의 대비를 해도 시스템에게는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시스템이 아무런 조건 없이 거액의 수수료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저 남자의 이름이 니콜라스 홀트라고?'
[그렇습니다.]
'저 남자를 아귀세상에 데리고 갈 생각이야. 저 놈 밑의 놈들도 모두 런던 사람들에게 각종 명목으로 마나를 갈취하던 놈들이야. 너희도 저런 놈들은 싫어하잖아?'
시스템은 인간들끼리의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관심이 있는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마나와 관계된 일이었다.
이놈이 사람들의 마나를 갈취하지 않았다면 시스템은 절대로 이런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놈이 마나를 갈취하는 만큼 자신들이 얻을 것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런 점을 두고 전생의 사람들은 정의의 실현이라고 했지만 냉정하게 보면 정의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저 인간과 시스템 사이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었다.
[띠링! 마나를 갈취하고 독점하는 것은 달가운 것은 아닙니다.]
'그래! 앞으로 저놈은 아귀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거야. 거기서 얻는 마나는 너희가 가지고 가면 되겠네. 저놈 수하의 것까지.'
[니콜라스 홀트가 동의만 한다면 가능합니다.]
'동의하게 될 거야.'
사실 놈에게 수수료 전체를 부담하게 하는 것은 모험이었다.
시스템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시스템이 유난히 마나에 민감하기 때문에 말을 꺼내보았는데 그것이 제대로 통했다.
시스템이 동의를 받으려고 하면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시스템의 음성이 들렸다.
[띠링! 니콜라스 홀트와 그 수하들이 수수료 거래를 받아들였습니다. 대신 이들을 살려준다는 보장을 했으니 목숨은 건드리시면 안 됩니다.]
시스템의 이 음성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들렸다.
일부 사람들은 분통을 터트렸지만 이놈들을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데리고 간다고 하자 화를 가라앉혔다.
<나라도 때려죽이고 싶지. 가족을 죽이고 그동안 이 일대를 공포로 몰아갔는데···.>
"밀은 런던에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공평하게 나누어질 겁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콘라드와 윌, 스캇 등이 반복해서 감사 인사를 했다.
앨런은 한 쪽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잃은 가족이 생각나는 것 같았다.
[띠링! 밀의 배분을 시작합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창고 네 개에 담긴 밀 자루가 일시에 사라졌다.
시스템이 배분을 위해 가지고 간 것이었다.
"사라졌습니다."
콘라드의 목소리에 당황과 걱정이 배어있었다.
"곧 배분이 될 것입니다."
밀이 사라지고 단 1분도 되기 전에 밀의 배분을 알리는 메시지가 들렸다.
[띠링! 이 시간 현재 런던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밀이 배분되어 전달되었습니다. 인벤토리가 있는 사람에게는 인벤토리로 전달되었습니다.]
시스템의 음성과 함께 배분되었다.
곡물 회사에 있던 사람들 중 몇몇 사람의 발 앞에 소량의 밀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밀이 나타나지 않은 사람은 인벤토리가 있다는 말이었다.
"앨런 자네 인벤토리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아까 던전에서 샀지. 좀비를 많이 잡았지 않나. 저놈에게 다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사둔 거지."
앨런이 멋쩍은 듯 대답했다.
"나도 이번에 인벤토리를 구매했어. 다른 것은 몰라도 인벤토리는 꼭 있어야겠더라고."
베르크의 앞에도 밀은 없었다.
"그런데 저놈들에게도 밀이 제공됐습니까?"
콘라드가 물었다.
"제공이 됐을 겁니다. 런던 시민이기는 하니까요."
"저런 놈에게는 가면 안 되는데···. 빼앗을 방법은 없습니까?"
"시스템에게 직접 문의를 해보시죠."
"그래도 됩니까?"
"묻는 것이야 누구든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콘라드는 시스템에게 문의를 하는 것 같았다.
나를 상대할 때처럼 친절한 설명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직접 묻는 것이 오히려 속이 편할 것이었다.
"노약자는 이렇게 받은 것도 빼앗기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윌의 말이었다.
"시스템이 분배한 것은 건드릴 수 없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스템이 이런 식으로 분배한 것은 개개인에게 귀속이 된다.
그래서 빼앗을 수 없었다.
시스템을 이용한 분배가 안전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함께 요리를 했다가 나누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은근히 윌은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만큼 노약자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기도 했다.
"그 점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스템은 생각보다 치밀하니까요."
시스템을 상대로 장난을 쳐서 좋을 것이 없었다.
관여를 하지 않았을 때는 모르지만 자신이 관여한 일에 대해서는 철저할 정도로 관리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좋았다.
"아예!"
윌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직접 경험하지 않았으니 내 말이 이해되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한 번만 경험하면 이런 의문은 갖지 않을 텐데.>
'그렇지. 하지만 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이잖아.'
그때였다.
재갈까지 물려있는 니콜라스 홀트가 몸부림을 했다.
홀트뿐만이 아니었다.
놈의 수하 몇몇도 몸부림을 하면서 저항을 하는 듯한 몸짓을 하더니 축 늘어졌다.
포기하는 듯한 표정을 지은 것이었다.
특히 니콜라스 홀트의 표정이 심각했다.
"저놈들 왜 저러는 겁니까?"
"정확하게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동안 마나로 산 많은 것이 담보로 묶였을 겁니다."
"담보로 묶여요? 그런 것도 있습니까?"
"추측일 뿐입니다."
추측이지만 거의 확실한 것이다.
시스템이 수수료를 대납한 것이나 마찬가지니 그냥 넘어갔을 리는 없었다.
<이 사람들은 아직 시스템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네.>
'마나를 얻는 족족 저놈에게 빼앗겼으니 거래할 일이 없었겠지.'
<하긴···.>
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꾸!
꾸루가 전달했다.
꼬물!
^노엘이라는 여자 아이가 발견됐대요. 장소는 이곳!^
꾸루가 전한 영상의 장소는 런던 던전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숲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혼자 있지 않았다.
"노엘을 찾은 것 같습니다."
"정말입니까?"
콘라드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제가 이곳 지리를 잘 몰라서 어디라고 설명하기 어렵군요. 가시죠."
"존을 데리고 와야 하는데···."
몇 사람이 존을 찾으러 나갔다.
"살아있죠? 왼쪽 볼에 하얀 점이 있습니다. 언 듯 나비로 보이는 점인데···. 그래서 저희가 '하얀 나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얀 나비? 이거 익숙한 명칭인데? 집사! 하얀 나비라는 말 어디서 들은 것 같지 않아?>
'익숙해. 가만! 지하 세력의 이름 중에 하얀 나비가 있었던 것 같은데? 우연이겠지?'
그때 권능 기억이 반응을 보였다.
[지하 조직인 하얀 나비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열람하겠어.'
존과 엇갈릴 수 있어서 존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권능 기억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확인하기로 했다.
권능 기억이 가지고 있는 하얀 나비에 대한 기억은 참으로 많았다.
언제부터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것은 기억이 없었다.
그저 재앙 후 국제 왕래가 가능할 때부터 하얀 나비는 유명했다.
지하조직답게 마나만 많이 주면 어떤 일이든 했지만 자신들이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은 어떤 위협이 들어와도 하지 않는 단체였다.
그래서 이 조직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렸다.
이 조직에 의해 피해를 받은 사람들은 이를 갈았지만 도움을 받은 곳은 이들을 어떻게든 도우려고 했다.
그런데 하얀 나비가 왜 하얀 나비인지···.
수장은 누구인지···.
이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베일에 쌓여있었다.
<설마 미래의 하얀 나비 수장이 이 아이는 아니겠지?>
'이제 여섯 살이래. 말이 안 되지.'
전생에 국제이동이 가능했던 것은 대변혁 후 3년이 지난 후였다.
아홉 살 아이를 수장으로 둔 조직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가능한데···. 아이가 각성자라면 가능해! 충분히.>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니야. 뭐든 가능할 수 있지.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일반적으로는 상상하기 어렵다는 말이야.'
하얀 나비라는 말에 잠시 혼란이 찾아왔지만 꾸루가 보내온 영상을 유심히 살폈다.
확실히 아이의 얼굴에는 흰 점이 있었다.
하얀 나비라고 불러준 것은 아이를 위한 배려인 것 같았다.
<어떻게 봐야 흰 나비라는 거지? 영국의 나비라고 다를 리는 없는데···. 상상력이 대단하네.>
나호도 영상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노엘 맞습니다. 왼쪽 볼에 나비 문양의 점이 있네요."
"아! 존이 정말 좋아하겠습니다. 그런데 저놈들은 어떻게 합니까? 이대로 두고 가면 달아나려고 할 텐데요."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스템이 뭔가를 직접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저 놈을 런던 던전을 통해 아귀 세상으로 옮겨야겠지만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때는 모르지만 지금이라면 분명 시스템이 저놈들을 아귀세상으로 바로 옮겨줄 것이었다.
그래서 시스템에게 문의를 했다.
'너희도 지금 옮기는 것이 좋을 거야. 쟤들 몸이 담보나 마찬가지인데 여기 뒀다 누가 죽이기라도 하면 마나를 받을 수 없잖아.'
흐흐흐!
^아주 마음에 들어요. 이렇게 압박하는 거 딱 제 취향이에요.^
흐엉이가 즐거워했다.
정말 독특한 취향을 가진 흐엉이었다.
[띠링! 이곳에서 바로 이동하려면 한 명당 400마나가 소요됩니다.]
'그건 너희가 저놈들에게 받으면 되잖아.'
잠시 말이 없던 시스템이 이내 이들을 옮기겠다고 했다.
그래서 아귀세상의 끝은 피해달라고 했다.
[저희도 아귀세상의 끝으로는 보내지 않을 겁니다. 그곳의 치료수는 저희에게도 소중합니다.]
'그거 정말 다행이네.'
시스템에게 소중하다고 하면 확실히 지켜줄 것이었다.
[띠링! 니콜라스 홀트와 그 수하 32명이 이동됩니다.]
번쩍하는 것과 동시에 33명이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역시 마나와 얽혀야 시스템은 부탁을 잘 들어주는구나. 대변혁 이후에는 직접 이동해야 한다고 하더니···. 마나와 얽히니 원칙이 사라지잖아.>
나호가 불만을 제기했다.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불만이었다.
그동안 시스템이 하던 말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었다.
'저놈들이 죽어버리면 시스템이 손해를 너무 많이 보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마나가 해답이라는 거야.>
그건 전생부터 익히 알고 있던 것이었다.
시스템은 마나에 대해서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철저했다.
그런 시스템에게 엄청난 빚을 진 것이나 다름없으니 홀트의 인생도 그리 편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집사? 저놈 어디까지 담보가 잡혔을까? 인벤토리? 능력치?>
'알 수 없지. 그런 것은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을 거고. 그곳에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아두기는 했을 거야.'
<어떻게 보면 미우라보다 더 불쌍하게 됐네? 있는데도 쓰지 못하면···. 생각하기도 싫어.>
미우라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권능과 스킬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겼다.
각성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마나를 모으면 다시 살 수 있지만 아귀세상은 마나를 벌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벌게 그냥두지도 않을 거고···.
홀트는 강탈을 사용하지 않았으니 시스템이 뭔가 조치를 취한 것 같았다.
정확하게 그것이 담보를 설정한 것인지 그것이 아니면 전혀 다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홀트는 두고도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 분명했다.
'내게는 잘 된 일이야. 노예가 늘어난 거잖아.'
흐흐흐!
^아귀장이 좋아할 거야. 아귀장 성격 마음에 들어. 마냥 착한 것들은 조금 불편하거든.^
브으으!
^착해져라! 착해져라!^
흐극! 흐극!
^야! 그거 뿌리지 마! 너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똑이가 치료수를 뿌리자 성수에 닿은 것 같은 반응을 보이는 흐엉이었다.
꼬물!
^새로운 앙숙의 탄생인가?^
꼬물이가 둘을 보며 말했다.
그 순간 회사 입구가 소란스러워지더니 눈물범벅인 존이 들어왔다.
"제 딸을 찾으셨다고요?"
신의 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