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 신의 군대
"노엘! 왼쪽 볼에 하얀 점! 그런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거듭하면서 존의 발이 동동거렸다.
어서 딸이 있는 곳으로 가자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지만 이미 마음은 딸이 있는 곳으로 달리고 있었다.
"딸은 무사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도 안전할 겁니다."
주르륵!
아직도 흘릴 눈물이 남은 것인지 딸이 무사할 거라고 하자 눈물을 흘리는 존이었다.
바위 덩어리 같은 손으로 눈물을 벅벅 닦은 모습이 순박해보였다.
<주먹이 솜방망이인가? 각성을 못했나? 저 주먹으로 쳤으면 홀트의 뼈가 남아나지 않을 것 같은데···.>
놈에게 맞은 니콜라스 홀트의 코뼈는 내려앉았다.
하지만 다른 뼈는 멀쩡해보였다.
'홀트 저놈의 방어력이 높았을 수도 있어.'
<그런가? 존 같은 사람이 각성해서 탱커가 되면 무서울 것이 없을 것 같은데···.>
덩치가 좋다고 각성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리다고 각성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갑시다!"
눈물을 흘리는 존을 데리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키까지 큰 존은 보폭이 남들의 1.5배 이상이었다.
그래서 빨리 움직이는 것 같지 않은데도 성큼성큼 이동하는 속도가 빨랐다.
<정말 탐나네. 탐이 나! 경비로만 세워둬도 든든할 것 같다.>
유난히 나호가 존을 칭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한국으로 데리고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얀 나비라는 말도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알았어. 이곳 일이 끝나면 말해볼게.'
<역시! 집사는 눈치가 빨라서 참 좋아.>
'이 정도로 말하는데 알아채지 못한다면 둔한 거지.'
<헤헤. 덩치가 큰 것도 마음에 들고, 순박한 것도 마음에 들어서 그래. 저런 사람들은 배신을 하지 않더라고.>
전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말이었다.
딸까지 찾아주면 배신은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사람일은 장담할 수 없었다.
"왜 이렇게 멀리 갔을까요? 우리 딸 똑똑한 아인데···. 저보다 똑똑합니다. 우리 아이는······."
무사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부모의 마음이 그 말 한마디에 평온할 수 있겠는가?
불안을 해소하려는 듯 끊임없이 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존이었다.
얼마나 애지중지 키워왔는지 목소리만 들어도 알 것 같았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얼마나 딸 걱정을 했을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습니다."
"혹시 그놈들이 우리 노엘을 잡아간 것입니까?"
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좀비가 많은 런던에서는 그 어떤 도시보다 큰소리를 조심해야 했다.
자신은 물론이고 동료까지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존도 그것을 느꼈는지 재빨리 입을 막았다.
"죄, 죄송합니다. 딸 걱정에 그만···."
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좀비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도시도 사람이 살만하게 하려면 도시에 돌아다니는 좀비들을 소탕해야겠네.>
대변혁 이후 나타나는 좀비들은 몬스터였다.
좀비에게 물리거나 긁힌다고 해서 좀비로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막연한 두려움은 좀비를 상대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었다.
좀비에게 잡히면 산 채로 먹히는 아픔을 겪어야 하니 무섭게 느껴질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어떻게 합니까? 너무 많이 몰려옵니다."
존의 목소리를 들은 인근의 좀비가 몰려오고, 그 좀비의 움직임을 감지한 좀비들이 가세해서 점점 수가 불어나고 있었다.
꼬물!
^저 정도는 저 혼자서도 다 처리할 수 있는데요.^
꼬물이가 철 방망이를 휘두르며 말했다.
음머어어!
^허락하면 처리하겠다.^
반반이도 몸이 근질거리는 모양이었다.
영국에 오고는 나서지 못하게 했더니 전투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확실히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 사람들 마나가 바닥이야. 이들도 먹고 살아야지.'
뮤! 뮤! 뮤!
^집사는 참 사람이 좋다. 이 점이 때로는 답답한데 때로는 참 따뜻하다.^
그렇게 말하는 도뮤의 앞발에는 작은 황금 망치가 들려있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물건이었다.
<그건 뭐야?>
나호가 도뮤에게 말하는 순간 좀비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나가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좀비를 잡아야 삽니다. 그래야 가족도 구할 수 있고요."
말을 더 그럴 듯하게 잘하면 좋은데 이것이 최선이었다.
그때 돌을 신이라고 주장하던 남자가 나섰다.
"우리를 구원한 신이 사악한 것들을 향한 전쟁을 선포하셨다. 가자아아! 승리는 이미 우리의 것이다아아아!"
그렇게 말한 남자가 겁 없이 달려나갔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승리!"
"승리!"
확실히 도널드는 선동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신의 전쟁이라는 말은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내는 것인지···.
<졸지에 신이 된 느낌은 어때?>
나호가 빙글거리며 물었다.
'유쾌하지는 않은데 이들의 절박함이 느껴져서 마음이 짠해.'
얼마나 의지할 것이 없으면 동양에서 온 것이 분명한 청년을 신이라고 떠받들까 싶었다.
꼬물!
^사기가 충만해요.^
그 순간 생각지 않은 시스템 메시지가 들렸다.
[띠링! 축하합니다. 강대한 님께서 임시로 이끄는 '신의 군대'의 사기가 올라갔습니다. 이에 신의 군대의 공격력, 방어력이 각각 5%씩 상승합니다.]
이 메시지가 나에게 들리는 순간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메시지가 전해진 모양이었다.
"와아아! 신의 군대!"
"우리는 신의 군대다! 나가자! 승리는 우리 것이다!"
세상이 변하면서 어린 아이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상태창을 가졌다.
그렇다는 말은 각성자가 아니라도 시스템 메시지를 듣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시스템이 신의 군대라고 칭한 것을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들은 것이다.
신의 군대이고 공격력과 방어력이 올라갔다는 말을 들은 순간 사람들의 눈빛은 이전의 그것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퍼억! 퍼! 퍼억!
키아악! 키악! 캬악!
인간과 좀비의 대결에서 겁만 먹지 않으면 아직은 인간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좀비를 상대해본 사람이 많다면 말이다.
런던에 사는 사람들은 긴 막대기를 늘 휴대하고 다녔다.
좀비의 머리를 노리기 위해서였다.
지금 좀비를 상대하는 사람들도 긴 막대기를 이용해서 좀비들의 머리를 깨부수고 있었다.
F급 좀비는 한두 번 맞으면 머리가 깨지지만 E급부터는 아니었다.
특히 아직 요령이 부족한 사람은 여러 번 내리쳐도 E급 좀비를 죽이지 못했다.
퍼억! 퍽! 퍽!
전장을 누비며 덩치가 큰 좀비를 먼저 처리했다.
수수수! 수수!
좀비가 처리될 때마다 마나가 들어온다는 소리가 들렸고 이 소리에 맞춰 검수가 즐거워했다.
검수는 시스템 못지않게 마나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정확하게는 마나를 나타내는 숫자를 좋아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브으으으!
목에 붙은 똑이가 신호를 보내자 가슴에 붙어있던 새끼 문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곱 마리의 새끼 문어들은 상처 입은 사람에게 치료수를 부어주었다.
물론 입으로 토해내는 것이었지만 효과를 확인한 사람들은 그 누구도 더럽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번이라도 더 맞기 위해 애를 썼다.
이들에게 뿌려주는 것은 S급 치료수는 당연히 아니었다.
시스템에게 물물교환으로 받은 F급 치료수였다.
아귀세상에서 가지고 온 S급 치료수 일부를 주고받은 것인데 외부에서 치료수를 써야할 때는 이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벌써 S급 치료수를 내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퍽! 퍽! 퍽!
크아악! 크악!
"도축!"
누군가가 도축을 외쳤다.
바닥에 즐비했던 좀비들이 사라지면서 전리품이 들어왔다.
"바지가 들어왔어. 깨끗한 거야."
한 남자는 새롭게 얻은 바지로 당장 갈아입고 싶어했다.
그만큼 입고 있는 바지가 엉망이었던 것이다.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없는 곳에서 사는 비애였다.
<집사! 런던 던전에 샘 하나 만들 수는 없나? 관리 구역 안에.>
'시스템에게 물어봐야지. 아마 마나만 충분히 주면 방법이 있을 거야.'
아직 이곳 사람들이 알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물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다양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시스템에게 사는 것이었다.
최소 비용이 1마나이지만 한 병에 1마나는 아니었다.
파는 곳과 방식에 따라 가격에 차이가 있지만 하루에 1마나 정도면 물은 부족함 없이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와아아! 승리했다! 우리가 승리했다."
"신의 군대라고 했어! 이 충만감을 다시 느끼고 싶어!"
"나도!"
"다들 확인해봐. 마나가 들어왔어. 그것도···."
승리를 확인한 사람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다들 상태창을 확인하며 방방 뛰었다.
"신님 덕분에 홀트에게 마나를 빼앗기지 않아도 돼. 이 마나는 온전히 우리 것이라고!"
"와아아! 와아아!"
"홀트를 잡을 때보다 더 실감이 나! 이제 뭐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우리에게 새로운 장을 열어주신 분이다! 경배하라!"
도널드가 다시 사람들을 선동했다.
"와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당장 무릎을 꿇고 절이라도 할 기세였다.
"노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 갑시다."
"···역시 신이 분명해. 이렇게 마음이 따뜻할 수가!"
도널드가 있으면 뭘 해도 나는 신이 될 것 같았다.
'너 때문이잖아. 왜 신의 군대라고 해서는···.'
시스템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렸다.
시스템의 말 한마디가 도널드의 가슴에 불을 지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띠링! 저 사람은 저희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도 강대한 님을 신이라고 떠받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좀비처럼 사악한 것을 물리치니 신의 군대라 칭함을 받기 충분했습니다.]
'내가 없어도 신의 군대인 거잖아. 정확하게 설명을 해야지. 괜한 오해를 살 필요는 없는데···.'
[강대한 님께서 이끄시는 군대이기 때문에 방어력과 공격력이 올라갔습니다. 그러니 너무 부끄러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시스템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지난번 자리를 비울 때 일이 미안해서 그런지 나를 띄워도 너무 띄우고 있었다.
"어서 갑시다. 좀비의 일부가 그쪽으로 갔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말하자 그제야 걸음이 빨라지는 사람들이었다.
노엘이 있는 숲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대변혁의 날 집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노엘! 노엘! 아빠다! 노엘!"
숲에 도착하자 존이 작은 목소리로 딸을 불렀다.
하지만 지금 노엘은 잠이 들어있었다.
"저기! 저 천막 안이야."
노엘이 있는 천막을 가리키자 존이 천막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천막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천막 주위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존이 그들에게 노엘을 찾으러 왔다는 말을 했다.
노엘을 보살피고 있는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이들은 존이 아빠라는 말만으로 노엘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존과 함께 온 수많은 사람을 보고는 존의 말을 믿는 것 같았다.
그중 이들과 아는 사람이 한둘 있었던 것이 한몫 하기도 했다.
"노엘이 아빠를 찾고 있기는 했지. 홀트에게 잡혀 있었다고 하더군."
"맞아! 우리 딸은 건강한가?"
"건강해. 아주 똑똑하더군. 상황파악도 잘하고. 여섯 살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어."
"내 딸이야."
존의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전혀 닮지 않았는데···."
노엘을 돌보고 있는 사람이 장난스레 말했다.
듣기에 따라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농담이었는데 존은 전혀 기분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감사하게도 아내는 딸을 닮았지. 하지만 똑똑한 머리는 나를 닮았다고. 이제 내 딸을 봐도 되나?"
"당연히. 어서 들어가 보라고. 겨우 잠이 들었으니 깨우지는 말고."
허락이 떨어지자 존은 날 듯이 천막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낮추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해가 저문 후라 그런지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깨우지 말라고 했는데···."
"덩치가 커서 조심성이 떨어지지."
콘라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콘라드가 손을 내밀며 감사 인사를 했다.
"이런 인사는 필요 없다고. 노엘은 충분히 사랑스러웠어."
"그래도 감사 인사 정도는 받으라고. 존 저 친구 걱정이 많았거든."
"존은 좋은 친구를 뒀군."
"너와도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은데?"
"나야 언제나 환영이지. 난 콘이야."
"콘? 나는 콘라드지."
"콘라드? 하하하! 우린 정말 좋은 친구가 될 것 같군."
두 사람의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구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