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 어떻게 알았어?
<오늘 집사 바쁘네. 구원자도 되었다, 고무신도 되었다···. 이제는 왕자님이네. 어떤 역할이 가장 마음에 들어?>
나호가 살살 놀렸지만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노엘의 반짝이는 눈이 심상치 않아서 나호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노엘!'
노엘을 심상으로 불러보았다.
보통의 아이라면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시스템의 음성을 들었던 아이라면 심하게 놀라지는 않을 것이었다.
'어? 오빠? 오빠가 말한 거야?'
노엘은 침착하게 심상으로 대답했다.
말을 건네는 것과 동시에 팀으로 묶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것으로 노엘이 각성한 것은 확인이 되었다.
'노엘! 각성한 거니?'
'상태창을 말하는 거라면 맞아요. 하지만 각성은 잘 모르겠어요. 아빠가 걱정할까봐 말하지 못했지만···.'
우렁차게 대답하던 노엘의 목소리가 갈수록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아빠에게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빠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되는 모양이었다.
'가슴이 아프지는 않지?'
입 냄새가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마나통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았지만 확실한 것이 좋을 것 같아 질문을 한 것이었다.
'아프지 않아요. 하나도. 그리고 저 엄청 빨라요. 아빠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런데 아빠에게는 말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걱정 끼치면 안 되니까.'
어린 나이에 각성을 하면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상태창을 가지는 순간부터 한 사람 몫을 스스로 해내야 하는 것을 물론이고 마나 관리도 해야 했다.
이것은 고스란히 부모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특히 지금과 같은 대변혁 초기에는 더 그랬다.
사회가 안정이 되고 난 후에는 빨리 각성을 해서 성장하는 것이 달갑지만 지금은 부모도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의 마나까지 관리해야 하니 힘겨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함께 가겠다는 거야?'
'오빠를 따라가야 한다고 했어요.'
'누가?'
'제 스킬이요.'
<저런 것을 가르쳐주는 스킬도 있어?>
나호가 나만 들을 수 있도록 물었다.
'모르지.'
나호에게 심상으로 대답한 후 노엘을 보자 노엘이 멋쩍게 웃었다.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아직 스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하얀 나비가 노엘이라면 3년 안에 지하조직을 거느리는 사람으로 성장할 아이였다.
어떤 스킬을 가졌는지 궁금하지만 대놓고 물을 수는 없었다.
'스킬이 알려줬다고?'
'꼭 데리고 가 주세요. 스킬이 이렇게 강하게 말했던 적은 없어요. 오빠에게 껌 딱지처럼 딱 달라붙으래요.'
노엘이 절박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여섯 살 아이가 지을 표정은 절대 아니었다.
"노엘! 어디 아프니? 너무 많이 먹은 거야?"
"아니야 아빠! 많이 먹지 않았어."
자신의 몫은 물론 이고 내 몫의 대부분까지 먹었으며서 많이 먹지 않았단다.
"더 있으면 더 먹을 수도 있어. 헤에!"
아이가 배를 통통 두드리며 웃어보였다.
"노엘이 등치에 맞지 않게 많이 먹기는 합니다. 세상이 변하기 전에 너무 걱정이 돼서 병원에 데리고 갔던 적도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소화 속도가 빠르다고···. 문제될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존이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많이 먹는 것 때문에 노엘을 밉게 볼까 걱정스러운 것 같았다.
대변혁 전이라면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영국에서는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먹을 것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잘 먹어야 잘 크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안해서···."
존이 주변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존! 신경 쓰지 말라고. 꼬마 아가씨를 위해서라면 먹을 것을 조금 덜어줄 수도 있으니."
"나도 마찬가지야. 노엘을 위해서라면 난 두 숟가락도 양보할 수 있어."
"나는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양보하지."
"나는···."
사람들은 너도 나도 노엘에게 음식을 나눠줄 수 있다는 말을 했다.
한 숟갈의 음식으로도 살인이 날 수 있는 세상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음식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괜찮은 사람들이야.>
나호가 만족스런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쩌면 노엘의 스킬과 관계있을 수도 있어.'
존의 동료들이야 노엘을 오랫동안 보아왔으니 음식을 얼마든지 나누어준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탈출한 노엘을 잠시 돌보고 있던 사람들은 그 정도로 끈끈하다고 볼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까지 노엘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배고픔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이상하기는 하다. 저 사람! 저 사람은 거리에서 합류한 사람이야. 그런데 표정을 봐. 노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어.>
어쩌면 노엘은 매혹과 관련된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와아아! 아빠! 나 이제 배고프지 않아도 되는 거야?"
"당연하지."
"와아! 신난다! 그런데 아빠! 나는 그래도 구원 오빠 따라갈 거야."
<구원 오빠래. 십 원이 못 된 구 원 오빠!>
나호가 또 장난스럽게 말하자 꼬물이가 붕붕 뿌리를 돌렸다.
<알았어. 지금부터는 진지하게 할게. 집사! 그런데 엘리스는 어디에 있을까?>
'그러게. 어디에 있을까?'
3월에는 찾기를 세 개 사용할 수 있었다.
이미 하나를 천기재를 찾는데 사용한 상태였다.
3월에 찾기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두 개!
이것으로는 꼭 찾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엘리스는 그냥 찾았으면 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꾸!
^전령조들이 엘리스라는 여자를 열심히 찾고 있어요.^
'지금까지 얼마나 확인했어?'
꾸!
^절반 이상 확인했어요.^
<그럼 얼마 가지 않아서 연락이 올 수도 있겠다. 날도 늦었는데 자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자네도 5마나야?"
"나? 나는 3마나인데? 자네는 5마나를 지급했나?"
"나는 5마나라고 하던데···."
"나는 4마나야. 아내는 3마나고."
"그래? 나는 아들과 딸까지 해서 6마나를 지불했는데···."
"왜 이리 가격차이가 심하지?"
"이거 구원자님의 배려 아닐까?"
"배려라니?"
"잘 생각해봐. 각성하지 못한 사람은 마나를 적게 내는 것 같아. 나이와 건강도 고려한 것 같고."
"확실히···."
"역시···."
"감사한 일이야."
도널드가 뭐든 내 덕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런 생각을 해낸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변혁 전에 뭘 하던 사람일까?>
'신제품 홍보에 관한 일을 했다는 것 같아.'
언 듯 자신의 직업을 말했었는데 신제품을 알리는 일을 했다고 했다.
애써 만든 물건들이 사장되지 않도록 물건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을 했단다.
그래서 그런지 말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다들 감사하게 생각하고 오늘은 푹 자자고. 푹 자야 일어나서 저것들 처리하지. 구원자님께서 내일은 이런 던전이 몇 곳 더 늘어날 것이라고 하셨어."
"비용은 다 똑같나? 이왕이면 좀비가 없는 곳에서 살고 싶은데···."
"그건 내일 확인해도 되니 어서 자자고. 우리가 시끄럽게 해서 구원자님 편하게 쉬지도 못하겠네."
도널드가 사람들을 잠자리로 들게 했다.
잠자리라고 해봤자 돌을 치운 바닥이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만족했다.
그간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좀비 때문에 단 하루도 숙면을 취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노엘도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다.
'특별하게 느낀 거 없어?'
꼬물!
^없어요. 잘 감추고 있어요. 아주 똑똑한 아이에요. 조용히 들으면서 정보를 모으잖아요.^
보통의 아이라면 자신이 각성했다고 말했을 것이다.
처음 상태창이 보였을 때 바로 말했을 것 같은데 노엘은 말하지 않고 있었다.
아빠를 경계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도 알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뮤! 뮤! 뮤!
^나쁘지 않은 아이다. 대개의 아이가 그렇듯이.^
아이라고 해서 모두 믿을 수는 없었다.
예닐곱 살 아래의 아이들은 그래도 믿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믿었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었다.
잠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이렇게 누워있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서 조용히 일어나서 던전의 입구를 향해 걸었다.
그런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주 작은 생명체!
노엘이었다.
노엘이 일어나서 내 뒤를 쫓고 있었다.
<왜 따라오는 것 같아?>
'글쎄?'
그런데 이 녀석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빠르다고 하더니 정말 빨랐다.
'홀트에게 잡혀있었던 것이 아니고 잡혀 준거네.'
저 정도로 빠르고 은밀히 움직일 수 있는 아이가 누군가의 인질이 된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다면 하루에 열댓 번이라도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꼬물!
^깜찍해! 하얀 나비!^
저런 몸짓을 바탕으로 어느 순간 능력이 개화하듯 피어난 것일까?
그렇다면 3년 안에 지하조직을 거느리지 못할 리 없었다.
어린 아이이니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고···.
'정보를 모으기도 쉬웠을 거야.'
<누구? 노엘?>
'응! 노엘이 전생의 하얀 나비가 맞는 것 같아서.'
<집사가 죽을 때까지 하얀 나비가 누구인지 몰랐는데···.>
전생에 하얀 나비와 직접적으로 얽혔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하얀 나비 조직원이 몇 번 임무를 수행한 적이 있었다.
주로 유럽에서 활동한 조직이었기 때문에 많은 것이 알려진 것은 아니었지만 하얀 나비는 충분히 유명했다.
하얀 나비라는 조직명 이외에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아서 더 유명한 조직이었다.
'어떻게 지하 조직을 꾸리고 이끌었을까?'
<스킬 때문 아닐까?>
'스킬이 아니라 미션 같은 것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킬이 누군가를 따라가라고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내 상식으로는 말이다.
<미우라 놈이 미션을 받고 있는 것 같기는 했어. 지금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으니 미션이 내려와도 수행할 수도 없겠지만 말이야.>
'상식적으로는 그런데 알 수 없어. 시스템이 미우라를 키우려고 한다면 그런 상황에서도 분명 뭔가를 할 거야.'
물론 평상시에 내가 대하는 시스템은 그럴 일이 없었다.
하지만 미우라가 같은 시스템을 대하고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머리 아파! 그렇지 않아도 머리 아픈데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한다니···. 마나통 지키고 사는 것도 버거운데···.>
각성하면 마나통은 1차적으로는 안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완전히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전생에 나는 각성했지만 미우라에게 마나통을 빼앗겼었다.
빼앗긴 것도 모르고 20년을 각성자로 살았다.
각성자라 각성예외자보다는 통증이 덜했지만 때때로 느껴지는 통증을 성장통으로 착각하며 살았다.
아직 각성자의 마나통까지 얻는 방법은 알지 못하지만 조만간 방법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새끼 도둑 고양이를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노엘을 불렀다.
'노엘!'
'엄마야!'
'아빠가 걱정하지 않을까?'
'아빠는 잠이 들면 업어가도 몰라요. 아빠 코 고는 소리 들었잖아요. 오빠도 아빠 코 고는 소리 피해서 산책 가는 거 아니었어요?'
노엘이 능청스럽게 말을 돌렸다.
아주 영리한 아가씨였다.
뒤를 돌아보았다.
멋쩍은 표정을 짓던 노엘이 고개를 푹 수그리고 옆으로 다가왔다.
'죄송해요. 궁금했어요. 제 스킬이 절대로 떨어지지 말라고 했거든요. 제 구원자가 되어줄 거라고 했어요.'
자는 사람들과 충분히 떨어졌는데도 노엘은 심상으로 말하고 있었다.
확실히 영리한 아이였다.
'그랬어? 아빠가 걱정하실 텐데?'
'아빠에게는 말을 남겼어요.'
'말을 남기다니?'
'으으음···. 설명하기 복잡한데 말을 남길 수 있어요. 제 마음을 남긴다고 해야 하나?'
노엘은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비슷하게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도 없어서 속 시원하니 이야기도 못하는 것 같았다.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이지?'
'걱정하지 않아요. 그리고 금세 올 거잖아요.'
'그건 어떻게 알았어? 그것도 스킬이 알려준 거야?'
'그건···
그 무기 어디서 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