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 그 무기 어디서 났어?
여섯 살 노엘이 슬쩍 눈치를 봤다.
나이는 여섯이지만 이미 각성자라는 소리였다.
몬스터화 되는 동물들이 영악해지는 것처럼 사람도 각성을 하면 이전과는 여러모로 달라졌다.
대변혁 전에도 영리한 아이였다고 하니 어지간한 눈치는 성인 못지않다는 말이었다.
'알려주지 말래요. 이런 거 말하는 거 좋지 않다고 했어요.'
노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맞아. 스킬에 관한 것은 아무에게나 말하면 안 돼.'
'그렇게 말했어요. 말하지 말라고. 하지만 난 오빠는 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조심하라네요.'
꼬물!
^스킬은 아닌 것 같아요. 스킬은 저렇게 상세하게 말하지 않잖아요.^
<집사! 내 생각도 스킬은 아니야. 혹시 소환 스킬을 가졌나? 정령을 소환수로 두고 있을 수도 있잖아.>
바람의 정령을 소환수로 두고 있다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아이가 빠르고 은밀한 것도 이해가 되고···.
하지만 아무리 정령이라도 내가 잠시 나갔다 오려고 했던 것까지는 알 수는 없었다.
꼬물이처럼 마음을 읽는 존재를 소환수로 두고 있는 것인지···.
'그래. 나가자.'
떼어놓으려고 해도 달라붙을 것 같아 동행을 허락했다.
그랬더니 노엘이 포르르 다가서더니 내 바지를 잡았다.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무언의 의사표현이었다.
'떼어놓지 않을 거야. 안심해.'
'예.'
그제야 바지를 놓고는 내 손을 쳐다보는 노엘이었다.
손을 잡고 싶은 것 같았지만 선뜻 손을 내밀 수는 없었다.
대변혁 이후 손을 잡는 것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대변혁 전에도 손을 잡는 것이 많은 의미가 있었지만 대변혁 이후에는 더 많은 의미를 내포했다.
'노엘!'
노엘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
'너 각성했지?'
'예!'
새삼스럽게 왜 그걸 묻느냐는 듯한 표정을 짓는 노엘이었다.
'각성을 하면 함부로 네 손을 내밀면 안 돼! 특히 맨손은. 왜 그런지 알겠어?'
'어···. 알 것 같아요. 감사해요.'
'그래. 가자. 그리고 널 떼어놓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예.'
아이의 손을 잡는 것에 무얼 그리 조심을 하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노엘에 대한 것은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여섯 살 아이가 비세계에서의 시험을 통과했다면 남들이 모르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런 아이에게 덥석 손을 내놓을 수는 없었다.
각성한지 몰랐을 때는 안기까지 했지만 말이다.
<흐엉만 아니어도 손을 잡아줄 수 있을 텐데.>
나호가 내 마음을 대변했다.
손을 함부로 잡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 흐엉만 아니라면 그냥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하지만 손바닥 한가운데에서 곰지락거리는 흐엉을 생각하면 손을 잡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흐흐흐!
^연애는 다 했네. 다 했어! 흐흐!^
흐엉이 녀석 은근히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흐엉의 말을 통역하는 꼬물이가 즐거워하고 있었다.
<꼬물이는 예전부터 집사의 연애를 달가워하지 않았어. 이러다가 집사 결혼 못하는 거 아니야?>
나호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그 사이 노엘과 나는 런던 던전을 나와 이동을 하고 있었다.
"어디 가는 거예요?"
"던전."
"어디에 있는 던전요? 던전 엄청 많아요."
짧은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노엘이 따라붙었다.
스킬이나 특성 등을 묻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노엘에게는 자꾸 묻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집사도 나와 같은 마음이구나?>
'그렇지. 안내자마냥 알려준다고 하니 궁금하지.'
"여기서 가장 가까운 던전에 갈 생각이야."
"가까운 곳 요? 거기도 좀비 나오는데···. 이 근처는 다 좀비만 나와요. 좀비가 나오지 않는 던전 보고 싶어요."
이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던전이 없는 세상에 가고 싶다고 할 텐데 노엘은 던전을 궁금해했다.
"너! 던전 가본 적 있지?"
"오빠는 속일 수 없구나! 아빠에게는 비밀이에요. 알았죠?"
"그래. 말해봐."
"저도 마나가 필요해요. 상태창이 있으니까. 상태창이 있다는 것을 아빠가 알면 속상할 것 같아서 혼자 다녔어요."
"사냥도 혼자 했다는 말이야?"
인질로 잡혀 있었어도 노엘에게 탈출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냥은 별개의 문제였다.
"오빠도 알듯이 저 빨라요. 그리고 작죠. 좀비들도 저는 잘 신경 쓰지 않아요. 제가 던전에 입고 다니는 옷도 따로 있고."
지금 입고 있는 옷도 깨끗한 편은 아니었는데 더 더러운 옷이 있는 것 같았다.
"얼마나 자주 다녔어?"
"하루에 한 번은 가려고 했어요. 주로 밤에···. 간혹은 낮에도 가고. 한 번 가면 좀비 한두 마리만 잡고 왔어요. 욕심 부리다 다치면 안 되니까."
노엘이 야무지게 말했다.
여섯 살 아이가 마나를 벌기 위해 던전에 다녔다는 것이···.
꼬물!
^강한 아이에요. 슬퍼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마음에 들어요.^
뮤! 뮤! 뮤!
^영리한 아이다. 절제할 줄도 알고. 한두 마리 잡았다고 설치지도 않고.^
몬스터를 잘 잡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절제이기는 했다.
성인도 통제력을 잃고 날뛰기 쉬운데 노엘은 그러지 않는 것이었다.
"무섭지 않았어?"
"잘 도망가기만 하면 되니까 무섭지는 않았어요."
빠른 몸을 이용해서 사냥을 한 것 같은데 정말 위험한 방법이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건지 알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방법이 없었어요. 나 때문에 아빠가 더 힘들면 안 되니까요. 그러니까 오빠! 나 데리고 가요."
"생각해볼게."
"데리고 가요. 말도 잘 듣고 밥도 조금만 먹을게요. 그리고 종종 스킬이 말해주는 것도 말해줄게요."
"스킬이 말해주는 거?"
"위험을 미리 알려줘요. 그래서 벌써 몇 번이나 목숨을 구했어요."
"항상 알려주는 거야?"
"그건 아니에요. 알려주지 않을 때도 있어요."
노엘이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아빠만 괜찮다고 하면 데리고 갈게."
"정말요?"
"정말이지. 그럼."
"와아아! 스킬이 제대로 된 대장을 만났대요. 제게 잘 된 일이래요."
노엘의 얼굴이 환해졌다.
<전생에는 이상한 놈을 만나서 지하조직을 만든 건가?>
'모르지.'
런던 던전에서 가장 가까운 내 소유의 던전에 들어갔다
이왕 영국에 왔으니 영국에 있는 내 소유의 던전은 모두 클리어를 해둘 생각이다.
"이 던전에도 와봤어요. 런던보다는 약한 좀비가 나와요."
노엘이 앞장서려고 했다.
"위험해!"
"오빠! 나 여기 백 번도 더 왔어. 오빠보다 내가 이 던전은 더 잘 알 거야."
"그래도 안 돼! 뒤로 와!"
"피이이! 이래서 어른들과 던전 오는 것이 싫었어. 오빠는 조금 다를 줄 알았더니···."
"우리 마을에 가면 과수 던전이라고 있어."
"과수 던전? 과일 나무가 자라는 거예요?"
"그래. 한동안은 그 던전만 가도록해."
"그 던전이 가장 안전해요?"
"가장 안전하기도 하지만 먹을 것이 가장 많아."
먹을 것이 많다는 소리에 노엘의 눈이 빛났다.
"뭐가 있는데요? 과일 좋아하는데 몬스터 나오고는 하나도 먹지 못했어요. 상큼한 과일이 너무 먹고 싶어요."
그 순간 대기실에서 뿌리 하나가 불쑥 나왔다.
뿌리에는 사과가 한 알 들려있었다.
"어? 오빠! 이거!"
노엘이 깜짝 놀라 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그 순간 좀비들의 관심이 우리에게 향했다.
캬아아! 캬아아! 크아아!
"에이 시끄러운 것들! 오빠! 뛰어야 해요. 여기서 뛰면 절대로 잡히지 않는 곳이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노엘이 달리기 시작했다.
노엘은 정말 날쌨다.
<도깨비 같네. 정말 빨라!>
도깨비들처럼 공간 이동을 하는 것은 분명 아닌데 순간 사라졌다고 생각할 정도로 빠르게 이동하는 노엘이었다.
뮤! 뮤! 뮤!
^이래서 애들은 잘 봐야 하는 거다. 애들 걸음이라고 무시했다가는 큰 일 난다.^
잽싸게 이동한 노엘은 바위 사이로 쏙 사라져버렸다.
바위 사이의 틈은 노엘처럼 작은 아이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배가 부르면 들어가지도 못하겠네."
"맞아. 그래서 여기는 배가 고플 때만 왔어요. 그런데 오빠는 어떻게 해요? 뒤에 좀비!"
노엘이 뾰족한 막대기로 바위 틈을 겨누고 말했다.
늘 이런 식으로 좀비를 잡은 것 같았다.
<너무 위험한 방식으로 사냥을 했네.>
크아아아아! 크아아!
캬캬아아! 캬아아!
좀비들이 노엘과 나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다 잡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노엘은 좀비들이 막대기를 보지 못하도록 위치를 살짝 틀었다.
방심을 유도하는 것 같았다.
똑똑한데···.
왜 이리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다.
이런 방식을 깨달을 때까지 혼자서 얼마나 위험한 상황을 많이 겪었을지···.
<각성을 조금 늦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여섯 살은 너무 가혹하다.>
몬스터를 상대하기에는 여섯 살은 너무 어린 아이였다.
그런데 노엘은 뾰족한 막대기를 야무지게 쥔 채 다가오는 좀비를 보고 있었다.
운명을 피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스걱!
좀비의 두 팔을 잘라버렸다.
노엘을 공격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고마워 오빠!"
팔이 잘린 순간 중심을 잃은 좀비가 노엘이 있는 바위 쪽으로 넘어졌다.
그러자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막대기로 좀비의 머리를 찔렀다.
런던 던전에 있는 좀비였다면 절대로 머리가 뚫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의 좀비는 F급!
그 중에서도 등급이 가장 낮은 F10이었다.
"마나 들어왔어요. 하지만 1마나에요. 이래서 이 던전은 싫어요. 여기는 쉬운데 마나를 너무 적게 줘."
지금 누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착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말하는 노엘이었다.
노엘 본인에게는 이 상황이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오빠! 잘 싸운다!"
다른 날보다 쉽게 마나를 번 것이 좋았는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스걱!
퍽!
스걱!
퍽!
노엘과 나는 합이 잘 맞는 편이었다.
나이답지 않게 당찬 것도 마음에 들었다.
팔만 잘라주면 좀비를 깔끔하게 처리하고는 도축까지 했다.
"도축 스킬도 산 거야?"
"어른들에게 들었어요. 던전에 다니려면 도축 스킬은 필수라고. 그래서 마나 모아서 상점 오픈하고 바로 도축부터 샀어요."
다른 스킬도 산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오빠! 나 12마나나 벌었어요. 던전에 들어와서 이렇게 빨리 12마나 번 거 처음이에요. 너무 좋다! 오빠랑 매일 던전 다니면 좋겠다."
노엘이 찰싹 달라붙으며 말했다.
"가자. 서둘러야지."
"오빠! 부끄러워서 그러지? 오빠! 오빠!"
노엘이 달려오며 재잘거렸다.
흐흐흐!
^재미있는 아이다!^
흐엉이 노엘에게 관심을 보였다.
달려오면서도 노엘의 눈은 바쁘게 움직였다.
던전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나 이렇게 깊이 들어와 본 적 없는데···. 이쪽은 잘 몰라요."
"오빠만 믿고 따라오면 돼. 조금 속도를 높여도 돼지?"
"당연하죠. 저 각성자에요. 민첩 능력치도 개방한."
"네 스킬이 이런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하지 말라고 했는데 오빠는 믿을 수 있을 것 같대요. 그러니 이건 이야기해도 돼요."
<이야기하지 않는 것도 있다는 말이네. 은근 철저해.>
'노엘을 지키려고 하는 거겠지.'
어떤 스킬인지 아니면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지만 노엘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잘했어. 초반에는 민첩이 높은 것이 좋아."
"그렇다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어요. 헤헤! 그런데 오빠랑 있으니까 공격력이 올라간 것 같아요."
"나와 팀으로 묶여 있어서 그래."
"그래서 그랬구나. 원래 한 번 찔러서는 들어가지 않거든요. 무서워도 두 번 세 번 찔러야 하는데 한 번만 찔러도 들어가서 너무 편했어요. 앞으로는 오빠랑만 던전 다녀야겠다."
<그 오빠가 많이 바쁘시다. 벌려놓은 일도 많고.>
노엘이 빙그레 웃으며 막대기를 들어보였다.
그 순간이었다.
막대기에 햇살이 닿으며 묘하게 빛났다.
"너 그 무기 어디서 났어?"
"이거?"
"어! 그거!"
"오빠! 갑자기 왜 무서운 표정을 짓고 그래? 무섭게···?"
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