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 봉인
노엘이 바위틈에 보관해 두고 사용하는 무기였다.
처음에는 그저 뾰족한 막대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햇살이 막대기에 닿는 순간 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거 어디서 났어?"
"무서워 오빠!"
"화난 거 아니야. 네가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거야. 그러니 말해봐. 그 무기 어디서 났어?"
"이거? 세상이 바뀐 날 있잖아? 그 날! 그 나아알! 어마아아가아! 엄마가아아!"
씩씩하던 노엘의 목소리가 젖어들기 시작했다.
다른 때라면 울지 말라고 달래주겠지만 지금은 끝까지 들어야했다.
"그날 얻은 거야? 어디서?"
"왜에에! 왜 그렇게 무섭게 묻는 건데에! 무서워어!"
"그 무기 위험한 것 같아서 그래."
"왜 위험해? 이 애가 날 살려준 것이 몇 번인데···."
"뭐라고? 이 애?"
"아니···. 그것이 아니고···."
노엘이 내 눈을 피했다.
<집사! 확실한 것 같지?>
'확실해.'
노엘이 어떻게 하얀 나비라는 조직을 만들 수 있었는지 궁금했는데 이제 알 것 같았다.
"노엘! 그 무기는 좋지 않아."
"아니야! 오빠가 이 무기 빼앗으려고 하는 거지? 그런 거지? 얘는 내꺼야. 오빠가 우리 아빠를 구해주고 나를 찾아줬다고 해도 줄 수 없어."
<집사! 벌써 매료가 되어 버린 것 같은데?>
'매혹시키기 위해 애를 썼겠지.'
대변혁이 일어난 후 범죄가 기승을 부렸다.
치안이 무너지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범죄를 저지른 놈들 중 일부가 무기 때문에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저 형벌을 피하기 위한 핑계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핑계가 아니고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피를 갈구하는 무기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야. 지금 네게 그 무기는 독이야. 네가 충분히 그 무기를 다스릴 수 있을 때까지···."
"싫어! 싫다고! 나를 지켜준 아이인데···. 오빠가 빼앗아가려고 하는 거지? 그렇지?"
이대로 두면 노엘을 무기에 잠식이 되어 버릴 것이었다.
자아를 가진 아이템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흐엉만 봐도 잘 알 수 있었다.
혼자 있던 시간이 길었던 아이템들의 자아가 온전할 리 없었다.
"난 네 것을 탐내지 않아. 네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이 많거든."
"알고 있어. 이미 들었어. 오빠는 강하고 친구도 많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흐흐흐!
^고 녀석 신기한 녀석이네. 허락하면 내가 저 녀석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노엘도 말을 들을 거야.^
흐엉이 유난히 즐거워했다.
<맡기는 것이 좋기는 할 것 같은데 살짝 불안하네.>
'노엘을 다치게 하면 안 돼. 무슨 말인지 알지?'
흐흐흐! 히히!
^알고 있어. 걱정하지 마! 내가 고문의 진수 아니 그것이 아니고 취조의··· 그것도 아니고 설득의 미학을 보여줄게.^
흐엉을 접할수록 미우라를 위해 준비된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전생에 미우라가 소환 권능이 없어서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까불지 말고 잘해.'
흐흐흐!
^알겠어요. 주인님! 우리 주인이 조금만 더 과감하면 좋을 텐데. 조금만 더 폭력적이면 금상첨화고···.^
흐엉이 입맛을 쩍쩍 다시며 손바닥에서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 손바닥에서 나갈 때는 투명한 상태로 움직였다.
노엘을 놀라게 하지 말라고 했더니 최대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노엘! 그 무기는 네 힘을 빼앗고 있어. 그러니 오빠가 손을 봐줄게. 네게 덤비지 못하게 해줄 거야."
"아니야! 빼앗으려는 거잖아!"
노엘이 단단하게 막대기를 잡고는 그것도 모자라서 움켜쥔 손을 가슴에 대고는 잔뜩 움츠렸다.
작은 키였기 때문에 막대기가 노엘의 위로 쑥 올라왔다.
억지로 빼앗으려고 하면 쑥 당겨 뽑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억지로 빼앗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싫어! 엄마가 주고 간 거야! 엄마가 날 위해 남긴 거라고!"
"노엘···."
노엘이 울부짖듯 말했다.
무기가 노엘을 완전히 속인 것 같았다.
"오빠에게는 더 좋은 것이 많다고 해서 이건 탐내지 않을 줄 알았는데···. 다 싫어! 다! 왜! 왜!"
노엘이 혼란스러워했다.
그때 은밀히 흐엉이 다가갔다.
막대기를 꽉 끌어안고 움츠려 있기 때문에 노엘은 흐엉이 다가가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싫어! 절대 빼앗기지 않을 거야. 절대로! 절대로!"
노엘이 같은 소리를 반복하며 막대기를 안고 있는 사이 흐엉은 막대기를 칭칭 감고 있었다.
물론 노엘은 그것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
흐흐흐!
^요 녀석 제법 강한 놈이네. 하지만 나를 이길 수는 없어. 가만있어! 흐흐흐!^
흐엉이 즐거워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단순히 막대기를 쇠사슬이 감고 있는 것뿐인데 실상은 그것이 아닌 것 같았다.
꼬물!
^흐엉의 말을 듣지 않아요. 고집이 센 아이에요.^
뮤! 뮤! 뮤!
^아이와 지나치게 많이 얽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노엘이 저 막대기를 놓기만 해도 쉬울 텐데.^
같은 생각이지만 노엘이 막대기를 놓게 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대기실에 보관하고 있던 딸기가 생각났다.
대변혁 이후 과일을 먹지 못했다고 했으니 딸기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었다.
대기실의 딸기 한 팩과 사과 한 알을 꺼내 앉아 있는 노엘의 앞으로 갔다.
"노엘! 딸기야. 먹어봐."
"딸기?"
딸기라는 말에 노엘이 눈을 번쩍 떴다.
"정말 딸기야. 향기가 너무 좋아! 하지만 먹을 수 없어!"
두 손은 절대로 막대기를 놓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내가 먹여줄게. 아!"
"아!"
막대기를 잡은 힘을 풀지는 않았지만 입은 잘 벌리는 노엘이었다.
"와아! 맛있다. 오빠! 정말 맛있어. 하지만 이걸 줄 수는 없어."
노엘이 딸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막대기를 줄 수는 없다고 했지만 잡고 있는 손의 힘이 조금은 느슨해졌다.
그 순간 막대기가 잘 잡으라는 듯 파르르 떨렸다.
그러자 노엘이 다시 막대기를 꽉 움켜 잡았다.
흐흐흐!
^깜찍한 녀석이야. 혼나고 싶어서···.^
흐엉의 쇠사슬이 조여드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노엘은 딸기에 정신이 팔려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깜짝 놀라며 막대기를 놓쳤다.
"악!"
"노엘!"
"아야! 오빠! 피났어. 지금까지는 절대로 날 상처 입히지 않았는데···."
노엘의 손바닥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재빨리 치료수를 부어주었다.
그러자 바로 피가 멈추며 상처가 아물었다.
"신기해. 오빠는 다 신기해. 하나도 아프지 않아. 한 번도 아프게 하지 않았는데···."
노엘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막대기를 내려다보았다.
"말 듣지 않으면 아빠를 해칠 거랬어. 그래서 놓으려고 했더니 상처를 입혔어. 오빠아아! 정말 내 힘을 뺏어갔던 거야? 저 애가?"
"그럴 거야. 널 도와준 것도 네게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일 거야."
"그럼 저 애가 나쁜 거야?"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몇 번이나 목숨을 구해줬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에게서 힘을 빼앗아갔다고 하니 누가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나쁜 것은 아니야. 네가 아직 저 애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뿐이야."
"나쁜 애는 아니라는 거야? 그럼 계속 가지고 있어도 돼?"
"지금 네겐 좋지 않을 것 같아."
노엘이 들고 있는 무기도 흐엉과 기질이 비슷했다.
분명 노엘을 좋지 않은 쪽으로 이끌 것이었다.
전생처럼 지하조직을 이끌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 내가 강해진 다음에는 가지고 다녀도 돼?"
"그럼 당연하지. 자아를 가진 무기는 흔하지 않아. 세계에 몇 개 되지 않을 거야. 넌 행운아야! 단지 때가 아닐 뿐이지."
"그럼! 그거 오빠가 맡아줘."
자아를 가지고 있는 무기의 가치를 안다면 만난 지 24시간도 되지 않은 사람에게 맡기지는 않을 것이다.
"내게 맡겨둬도 되겠어?"
"그 무기가 그랬거든. 오빠는 믿을 수 있다고. 그 녀석 간혹 이상했지만 틀린 말은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
"떨어져 있을 때도 무기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어?"
"저 녀석은 가능했어.바위틈에 넣어두라고 한 것도 저 녀석이었거든."
"그래? 거기 한 번 가봐야겠네."
아무리 자아가 있는 무기라도 떨어져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노엘은 떨어져 있을 때도 무기의 음성을 들었단다.
분명 바위틈 안에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았다.
"바로 갈 거예요?"
"바로 확인하고 싶어?"
"방금 오빠 눈빛이 빛났어. 호기심으로."
노엘은 영리한 것뿐만 아니라 관찰력도 좋았다.
"자아가 있는 무기라도 떨어져 있으면 목소리를 들을 수······."
노엘에게 자아를 가진 무기에 대해 설명을 했다.
다양한 자아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을 할 때는 이해하기 쉽도록 예를 들어가면서 했다.
"도와주었기 때문에 착한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키는 것은 뭐든 하려고 했는데···. 제가 잘못한 거죠?"
"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몰랐잖아. 그리고 나쁜 일을 한 적도 없고."
"간혹 이상한 것을 시킨 적이 있었는데 하지 않았어요. 그런 것은 너무 싫어서."
"잘했어. 네가 강해지면 무기에게 명령도 내릴 수 있을 거야."
"오빠처럼?"
노엘이 흐엉을 가리키며 말했다.
흐엉은 지금 막대기를 칭칭 감고는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흐흐흐!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어요. 첫 째! 이 녀석 봉인을 해둘 수 있어요. 봉인을 제가 하니 저보다 강한 놈이 해제를 할 수 있지만 저보다 강한 놈은 흔하지 않을 거예요.^
<갑자기 이건 무슨 말이야?>
"끝까지 들어보자."
흐흐흐! 흐흐!
^두 번째는 이 녀석의 능력을 줄이는 거예요.^
"줄이다니?"
흐흐흐!
^이 녀석의 능력을 줄일 수 있어요. 대신 꼬마 아가씨가 늘 가지고 다닐 수 있죠. 하지만 다시 원래대로 능력을 되찾을 수는 없어요.^
흐엉이 그렇게 말한 순간 막대기가 파르르 떠는 것 같았다.
"이건 노엘이 선택해야 할 것 같아."
노엘에게 흐엉이 제시한 두 가지를 설명했다.
"그러니까 미래냐? 현재냐?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거죠?"
"노엘 똑똑하네. 맞아. 봉인하면 능력은 사용할 수 없어. 그냥 막대기일 거야. 하지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저는 봉인하면 좋겠어요. 지금은 오빠가 나 지켜줄 거잖아. 그쵸?"
노엘의 눈에는 의심이라고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네가 마을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전할 거야. 들어가지 마라는 던전에도 들어가지 말고."
"알겠어요. 봉인해주세요. 그리고 잊어버리면 안 되니까 오빠가 잘 가지고 있어줘요."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이거 귀한 거야."
"귀한 거니까 오빠에게 맡기는 거예요. 우리 아빠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줬다고 들었어요. 그러니 믿을 수 있어요."
"알겠어. 그럼 봉인하라고 할게."
"예. 아! 잠깐만요. 그동안 고마웠어. 엄마가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엄마는 내게 위험한 것을 쥐어주지는 않거든. 하지만 네 덕분에···. 고마워. 빨리 강해져서 만나자."
노엘이 야무진 목소리로 막대기에게 인사를 전했다.
노엘의 목소리에 여러 감정이 배어 있어서 마음이 짠했다.
"봉인한대."
노엘이 조용히 머리를 끄덕였다.
이 순간 즐거운 것은 흐엉 혼자였다.
흐엉은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봉인에 들어갔다.
흐흐흐! 흐흐!
^이런 일 자주 있으면 좋겠다. 요 녀석 손맛이 있어요. 너무 순종적이었으면 재미없었을 거예요. 흐흐흐!^
흐엉의 콧노래가 계속 되는 어느 순간 막대기에서 푸른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귀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