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동료
<찾았다! 인연이라는 것이 참 이상해. 만날 사람은 이렇게 쉽게 만나져. 그치?>
꾸루가 보낸 온 정보에는 엘리스가 있었다.
혼자 던전을 공략 중이었는데 우리와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았다.
"오빠! 왜 그래요?"
"던전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나는 모르겠는데···?"
"아직 네가 감각 능력치를 개방하지 않아서 그래."
노엘은 감각 능력치를 개방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감각은 뛰어난 편이었다.
타고난 감각이 좋다는 말이기도 했다.
"봉인하기 전에는 다 알 수 있었는데···."
막대기를 말하는 것 같았다.
"이름은 지어주지 않았어?"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는데 지어주지 않았어요."
보통은 먼저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할 것 같은데 지어달라는데도 지어주지 않았단다.
"왜 지어주지 않았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 이름을 부르겠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어요."
아마 무의식적으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느낀 것 같았다.
"잘했네."
"잘했어요? 몇 번이나 이야기를 했는데 제가 허락하지 않았어요. 기분이 이상해서."
노엘은 무의식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잘했어. 아마 네가 이름을 부르는 것을 허락하고 이름을 지어줬으면 더 빨리 잠식됐을 거야."
"착한데 영악한 아이였죠? 그 아이!"
"네가 강해지면 문제될 거 없으니까···."
"맞아요. 제가 강해지면 문제될 거 없어요. 강해지면 그때는 이름을 지어줄 거예요. 내 말을 잘 들을 만한 이름으로."
노엘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멀리 엘리스가 보였다.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있는데도 엘리스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몬야크를 본 순간 무척이나 놀라는 것 같았다.
몬스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몬야크를 처음 본 사람은 누구나 몬스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던전 공략 중이십니까?"
"아!"
"우리도 던전 공략 왔어요!"
"어?"
노엘이 귀여운 목소리로 말을 하며 손을 흔들었다.
서너 살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아이의 목소리에 엘리스의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경계까지 푸는 것은 아니었다.
<이 던전을 혼자 오는 것을 보니 상당히 잘 성장한 것 같은데?>
'전생대로라면 잘 성장했을 거야.'
<전생보다 더 잘 성장했을 수도 있어. 집사가 독도도 줬잖아.>
'입 냄새를 없애준 것뿐이었는데 무슨!'
우리가 다가가자 엘리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보았다.
있을 수 없는 조합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몬스터는···. 그것보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이런 위험한 곳에 입장하다니···. 생각이 있는 거예요? 당신 혹시 아이를 미끼로 사용하려는 것은 아니죠?"
실제로 아이들을 미끼로 삼아서 쉽게 사냥을 하는 놈들이 있는데 영국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었다.
"언니! 우리 오빠 착한 오빠에요. 제가 각성해서 던전에 데리고 온 거예요!"
노엘이 야무진 목소리로 말했다.
각성을 했다는 말에 엘리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노엘을 내려다보았다.
"정말 저 각성했어요. 이런 무기도 있는 걸요!"
조금 전 내가 주었던 무기를 꺼내 보이는 노엘이었다.
"아무리 각성을 했다고 하지만 지금이 몇 시인지 알아요? 이거 아동학대에요. 혹시 아이가 벌어들인 마나를 빼앗는 것은 아니죠?"
엘리스가 도끼눈을 뜬 채 쳐다보았다.
"마나도 빼앗기지 않았는데? 내가 오빠에게 1만 마나나 빼앗았는데···. 그쵸 오빠! 1만 마나면 엄청 많은 마나죠? 아니 정확하게 1만! 2천! 1백 마나라고 했어."
노엘은 내가 자신에게 쓴 마나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12,100마나?"
대변혁이 일어난 지 3개월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1만 마나 이상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았다.
<마나가 모이기 어려울 때지. 사야할 것도 많고.>
"우리 오빠 착해! 한국에서 왔어. 나 데리러. 우리 아빠도 두 번 구해줬어요. 우리 데리고 한국 간다고 했어요."
노엘이 자랑하는 말투로 말했다.
"한국에 간다고 했다고? 지금은 영국을 벗어날 수 없어. 혹시 사기를 당하는 것은 아니니?"
"아니야. 정말 한국에서 온 오빠야! 오빠는 거짓말 하지 않아. 오빠는 모르는 것도 하나도 없어. 오빠는 런던의 구원자라고 했어."
"구원자?"
엘리스의 눈이 커졌다.
"언니도 구원자 알아? 오빠가 밀도 나누어줬대."
시스템이 밀을 나누어준 것은 런던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밀은 인벤토리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구원자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커졌던 눈이 점점 가늘어지더니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사이비 같은 거 아닙니다. 그저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겁니다."
"그러시겠죠."
엘리스가 비아냥거리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대변혁 이후 나타난 수많은 사이비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사이비 교주 취급이네. 오늘 집사 참 바쁘다.>
꼬물!
^엘리스 입장에서는 오해를 할 수밖에 없지. 나라도 의심했을 것 같아.^
나라고 해도 쉽게 믿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다 사람들에게 구원자라고 불린다고 하니 더 불신이 쌓일 것 같았다.
"런던 던전에 한국으로 이동할 수 있는 워프 게이트가 있습니다. 이백 마나만 주면 이동이 가능하죠."
"이백 마나만 주면 한국으로 이동이 가능하다고요? 말도 안 돼! 누가 그런 말도 되지 않는 말을 믿겠어요?"
엘리스가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나를 완전히 이상한 사람이라고 오해하는 것 같았다.
"저 월평의 강대한 입니다."
"월평의 강대한 요? 그게 누구인데요? 잠깐! 월평? 프하하! 흐하하! 하하!"
엘리스가 웃음을 터트리더니 쉽게 멈추지 못했다.
"오빠! 이 언니 이상해. 미친 사람 같아."
노엘이 내 소맷자락을 당기며 뒤로 물러섰다.
전생의 고마움만 아니라면 그대로 멀어졌을 것이다.
"그거 알아요? 독도 이후로 한국인이나 중국인 하다못해 일본인까지 다 자신이 독도를 만드는 집안의 아들이래요. 그렇게 날 찾아온 사람만 한 다스가 넘을 거예요. 이제는 그런 거짓말은 속지 않아요."
인벤토리에서 독도를 꺼내서 보이려고 했다.
그런데 엘리스가 더 빨랐다.
"이거 꺼내서 보이려고 했죠? 하하하! 동양계로 보이는 사람들은 다 이거 한 병씩 사서 가지고 다니더라고요. 하하하!"
엘리스가 꺼내 보인 것은 독도였다.
최근에 시스템이 팔고 있는 제품이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왜요? 당신도 당신 아버지의 이름을 건다고 할 건가요? 하하! 너무 진실 된 표정으로 말해서 속을 뻔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니까요. 하지만 다 거짓이었죠."
<집사를 사칭하는 사람이 많았나보네. 여기서 사칭을 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잠시의 관심을 위해 나를 사칭한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우리 오빠는 거짓말쟁이 아닌데···. 언니도 가보면 알잖아. 나랑 아빠도 한국으로 갈 거야. 언니도 함께 가볼래? 그럼 알 수 있잖아."
노엘이 도발했다.
어떻게든 한 번만 월평에 가 본다면 내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 것이었다.
"어떻게 믿고···."
"언니는 겁나? 나는 겁나지 않는데···. 나는 가볼 거야. 가보고 말할 거야. 진실인지 아닌지."
<노엘 똑똑하네.>
"이 던전을 앞으로 한 시간 안에 클리어 한다면 생각해볼게."
엘리스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지금 각성자들의 수준으로는 한 시간 안에 클리어 한다는 것은 분명 말도 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반적인 각성자는 아니었다.
"30분 안에 클리어 한다면 월평에 열흘 머물겠습니까?"
"장벽이 있다는 그 월평 말하는 거죠?"
"맞아요."
"월평이라면 열흘이 아니라 보름, 한 달이라도 있을 수 있죠.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으니···.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그 장벽들이 어른거리더라고요."
장벽을 세우는 것을 찍어 올린 사람들 덕분에 월평의 장벽은 꽤 유명했다.
"당신은 월평에 한 달 이상 머물게 되겠네요."
"당신이 이 던전을 한 시간 안에 클리어 했을 때에요."
엘리스는 말도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이 던전은 소환수 없이도 한 시간 안에 클리어 할 수 있었다.
"만약 십 분 안에 클리어 한다면 제 동료가 되겠습니까?"
"예? 십 분요? 장난해요? 이 몬스터를 믿고 하는 말이에요? 여기에 나오는 좀비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
"좋아요. 십 분 내로 클리어 한다면 평생 당신의 동료가 되죠. 하지만 십 분 내로 클리어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제게 뭘 줄래요?"
"십 분 내로 클리어 하지 못한다면 십만 마나를 드리죠."
"뭐라고요? 지금 장난해요?"
"장난 아닙니다. 계약서를 쓸 수도 있어요."
엘리스가 화가 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자신을 데리고 장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장난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엘리스에게 말을 하면서 동시에 시스템에게 계약을 체결을 도와달라고 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소정의 마나를 지불하면 시스템이 보증하는 계약이 체결되고, 그 이행을 시스템이 강제하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안전한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아직 이런 것이 알려지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당신은 묘하게 신경을 긁는군요."
"언니! 우리 오빠 거짓말쟁이 아니야. 정말이야. 나에게 12,100마나나 빌려줬다니까. 시스템이 대출해주겠다고······."
노엘은 사실을 말했지만 노엘의 말을 들은 엘리스는 우리를 더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시스템이 마나를 대출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좋아요. 계약해요. 계약해 보면 확실하겠죠."
엘리스가 말을 하는 순간 시스템의 음성이 들렸다.
[······어느 한 쪽이 계약을 이행하면 다른 한 쪽의 이행은 강제될 수 있습니다. 신중을 기하시기 바랍니다.]
일반적인 거래 계약이라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정해진 계약 내용에 따라 물건이 가면 마나를 지불해야 하고 지불하지 않으면 시스템이 강제하겠다는 것이었다.
시스템이 소정의 마나로 이런 계약 체결을 중재하고 이행까지 책임지니 이런 점을 잘 이용하면 사기를 당할 일이 없었다.
계약 내용이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치우치면 이를 충분히 주지시키기 때문에 대변혁 이후에는 사기를 당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평생은 지나치다고 하네요."
"언제든 떠나도 좋습니다. 딱 1년만 우리와 함께 하시죠."
전생의 고마움을 갚는 데는 1년 정도면 충분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면 어떻게 하려고요?"
"이런 던전을 혼자 들어오는 것을 보면 실력은 보지 않아도 확실하고, 노엘을 염려하는 것을 보니 인간성도 나쁘지 않겠죠."
엘리스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은근히 칭찬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오빠 이상한 사람 아니야. 우리 아빠가 오빠를 만난 것은 그동안 착하게 살아온 삶에 대한 보답 같다고 했어. 언니도 분명 그렇게 느끼게 될 거야."
노엘이 가슴을 살짝 내밀며 말했다.
"뭐. 좋아요. 지금부터 시간을 재면 되죠?"
"상태창에 타이머 기능 있습니다. 가장 확실하죠."
엘리스의 눈이 커졌다.
그런 기능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모양이었다.
"시계 옆을 누르면 다양한 기능이 있습니다. 일부는 마나를 주고 개방해야 하지만요."
"아! 찾았어요. 이런 것도 있었네요. 신기해요. 그럼 시작할게요."
엘리스가 타이머를 누른 순간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뒤에서 두 여자의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집사도 이럴 때 보면 짓궂어.>
"이 정도는 괜찮아."
엘리스, 노엘과 10미터 정도 떨어졌을 때 대기실에서 사냥조와 소환식물들이 일제히 출발을 했다.
자주 보는 나도 장관인데 처음 보는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두 사람의 표정이 보지 않아도 훤했다.
뮤! 뮤! 뮤!
^엘리스의 턱 빠질 뻔 했다. 다음에는 귀띔이라도 해줘야겠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도뮤가 즐거워했다.
뮤! 뮤! 뮤!
^집사! 그런데 나 이거 사용해보고 싶다!^
도뮤가 보이는 것은 황금으로 된 곡괭이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곡괭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한쪽은 곡괭이이고 반대편은 도끼였다.
그리고 중간은 망치였다.
어떤 것을 사용하든 불편하지 않도록 설계가 잘 된 것이었다.
뮤! 뮤! 뮤!
^이거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다. 광산에서도 쓰기 좋지만 무기로도 최고일 것 같다. 특히 좀비를 상대로는···.^
도뮤가 새로 만든 무기를 흔들며 말했다.
"좋아!"
뮤! 뮤! 뮤!
도뮤가 소리를 내자 대기실에서 도뮤와 똑같은 무기를 든 백여 마리의 도깨비가 나왔다.
그리고 그대로 좀비를 향해 날아갔다.
이 던전은 십 분이 아니라 오 분도 되지 않아 클리어 될 것 같았다.
당신 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