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 당신 뭐예요?
엘리스가 타이머를 조작한 후 정확하게 4분 48초!
던전을 클리어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일시에 뻗어나간 소환식물과 사냥조!
이들만으로도 던전은 10분 이내에 클리어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던전 도깨비 백여 마리가 가세했다.
던전 도깨비들이 들고 있는 무기는 황금이 덧입혀져 있어서 같은 힘을 가했을 때 훨씬 강한 타격이 가해졌다.
더구나 던전 도깨비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보이지도 않은 녀석들이 갑자기 날아와서 머리통을 부수니 아무리 강한 좀비라도 뭘 해볼 수 없는 것이었다.
던전이 클리어 되었다는 음성이 나오기 전부터 엘리스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듣도 보도 못한 장면을 눈앞에서 확인했는데 말이다.
"당신 뭐에요?"
클리어 메시지가 나오고 엘리스와 노엘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자 한 말이었다.
"강대한 입니다. 월평에서 온!"
"내가 그걸 묻는 것이 아니잖아요."
엘리스가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목소리를 높였다.
당황과 놀람 뿐만 아니라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공포감까지 드는 모양이었다.
"오빠! 너무 멋져! 저것 봐! 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사냥을 마친 사냥조들이 대기실로 들어가는 것을 본 노엘이 물었다.
사냥조들은 한 마리 한 마리가 눈길을 끌 정도로 멋있게 생겼다.
그런 멋진 새 수백 마리가 대기실로 사라지는 모습은 아름답고 신비로우면서도 아쉬움을 자아냈다.
소환식물의 뿌리나 줄기는 이미 대기실로 들어가 버린 후였기 때문에 엘리스나 노엘은 사냥조만 볼 수 있었다.
쫑!
쪼롱이가 왼쪽 어깨 위에 앉았다.
"와아! 오빠! 새가 앉았어요. 만져보고 싶다!"
노엘이 손을 뻗었다.
"뭐든 함부로 만지려고 하면 안 돼. 큰일나!"
"아! 깜빡했어요. 너무 예뻐서! 머리에 솟은 노란 깃털이 왕관 같아요."
쫑! 쪼로!
^뭘 아는 꼬마네.^
노엘의 표현이 마음에 들었는지 노란 머리 깃을 더 높이 세우는 쪼롱이었다.
뮤! 뮤! 뮤!
^신상 무기 성능 점검 끝났다! 아주 만족스럽다. 이런 식으로 크게 만들면 인간이 들고 싸우기도 좋을 것 같다.^
도뮤가 오른쪽 어깨에 앉더니 황금 곡괭이를 흔들어보였다.
도뮤가 들고 있었기 때문에 황금 곡괭이마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소환 식물에게 쥐어줘도 좋을 것 같아.'
심상으로 도뮤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도뮤가 즉각 대답했다.
뮤! 뮤! 뮤!
^그건 이미 구상이 끝났다. 소환 식물들이 가장 잡기 좋게 손잡이까지 생각해뒀다.^
도뮤가 자랑스럽게 말을 하는 순간에도 엘리스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상식에서 벗어나도 너무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당신 뭐예요? 새들도 놀라운데 아까 그 괴물 같은 뿌리는···?"
꼬물!
^꼭 저렇게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짜증 나! 내 모습이 어때서···.^
뮤! 뮤! 뮤!
^친구가 이해해라. 친구가 그만큼 위협적으로 느껴진다는 말이니···.^
꼬물!
^아무리 그래도 괴물은 너무 하잖아. 냄새에서 벗어나면 이런 눈총을 다시는 경험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더니···.^
"괴물 아닙니다. 10분 안에 클리어 했으니 약속은···."
"지킬 거예요! 약속!"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잽싸게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말하는 엘리스였다.
엘리스의 눈에 깃들었던 두려움이 점차 호기심으로 변하고 있었다.
"좋아요. 가죠."
"자, 잠깐만요. 당신···. 정말 그 장벽을 세운 월평 사람인가요?"
"······."
"그렇다면··· 우리 가족도 그 마을에서 살게 해줄 수 있어요? 그렇게만 해주면 평생이라도 동료가 되어 줄게요."
전생에 엘리스는 대변혁의 날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되었다.
가족은 물론이고 살고 있던 집까지 완전히 무너져버린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족이 생존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집사가 소유한 던전의 개방이 늦어져서 생존했는지도 몰라.>
전생과 달라진 것이라면 독도와 런던에 소유한 던전의 개방시기였다.
한꺼번에 터지는 던전의 수에 따라 피해의 정도가 크게 달라졌을 수 있었다.
"······."
전생과 달리 가족이 생존해있다는 말에 놀라 잠시 대답을 미루고 있자 오해를 했는지 엘리스가 말을 이었다.
"동료가 필요하지는 않는거죠? 하지만 이미 제게 최소 1년은 동료가 되어 달라고 했잖아요! 그러니 우리 가족까지 데리고 가줘요. 열심히 할게요."
엘리스가 절박하게 말했다.
<그때 웨딩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결혼은 했나?>
꼬물!
^엘리스 약혼자는 마음에 들지 않았어. 엘리스 입 냄새난다고 싫어하는 것이 눈에 보였거든.^
"좋습니다. 우리 마을에 아직 자리가 있으니 함께 가도 좋아요."
"한 사람당 이백 마나가 필요하다고 했죠?"
가족의 동행을 허락하면 바로 좋아할 줄 알았더니 현실이 발목을 잡는 모양이었다.
"이백 마나로 한국까지 간다면 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많은 마나는 없는데···."
"언니! 언니 가족은 몇 명이야? 나는 아빠랑 나 둘이야. 아마 아빠에게 400마나 정도는 있을 거야. 그런데 가족이 많으면 부담스럽겠다."
"저까지 여섯이에요. 각성자는 저 혼자고요."
<아이고. 허리가 휘겠다. 혼자 벌어서 본인은 물론이고 다섯의 마나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잖아. 가족이 많은 것이 마냥 달갑지 않은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나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변혁의 날 세상은 각성자와 각성예외자로 나뉘었다.
각성이 유보된 사람도 있었지만 이는 전체 인구의 5%미만이었다.
각성을 했든, 각성이 유보되었든, 그것도 아니면 각성을 영원히 할 수 없든지 간에 대변혁이 일어난 순간부터 마나는 인간에게 있어 혈액과 같았다.
매일 일정 이상의 마나가 공급되어야 했기 때문에 마나를 버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각성자가 아니면 마나를 버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가족이 많으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다섯을 책임지고 있습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가족이니···. 통증 때문이라도 뭘 할 수 없어서···."
"우리 마을에 가면 뭐라도 해야 합니다. 놀고먹을 생각이라면···."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 해서든 일을 하게 할 테니까요."
아직 어떤 일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심사도 통과해야 합니다. 가족 중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심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지 엘리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심사 기준은 어떻게 됩니까? 혹시 아픈 사람은 들어갈 수 없나요?"
"환자가 있습니까?"
"여동생이 대변혁의 날 왼쪽 다리를 잃었어요. 그래서···."
<딸린 가족이 다섯인데···. 그중에···. 집사! 엘리스에게는 차라리 전생이 나았을까?>
나호가 복잡한 눈빛으로 엘리스를 바라보았다.
나호 못지않게 내 머리도 복잡했다.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인격이 문제죠."
그렇게 대답한 순간 엘리스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렇다면 당장 가요.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가족이 있거든요."
엘리스의 마음은 이미 던전을 퇴장해서 가족에게 닿아 있었다.
"언니는 이 새가 궁금하지 않아? 나는 새가 너무 예쁜데···."
"나는···."
걸음을 옮기려던 엘리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울컥한 것 같았다.
꼬물!
^왜 그러지? 새가 슬픈 단어도 아닌데···. 새와 얽힌 일이 있나?^
"언니도 새 기르고 싶지?"
"······."
"노엘! 반반이 등에 타자."
엘리스가 대답하기 꺼려하는 것 같아서 노엘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렸다.
엘리스까지 반반이 등에 태워서 던전을 퇴장했다.
<던전이 더 좁으면 좋았겠다. 그럼 던전 전체가 안전할 수도 있잖아.>
이 던전이 다른 던전에 비해 좁다고 하지만 그래도 기본 크기는 있었다.
나호 말대로 도깨비 마을처럼 작은 던전이라면 관리계약을 맺으면 던전 전체가 안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 시스템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기 앞이에요. 골목이 좁아서 이 몬··· 아니 이···."
"반반입니다."
"아! 반반이는 들어갈 수 없어요. 제가 가족을 데리고 올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엘리스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따라가기를 꺼려하던 엘리스가 지금은 혹시라도 내가 사라져 버릴까 걱정이 되는 것 같았다.
"도와줄까요?"
"괜찮···. 고맙습니다."
사양하려던 엘리스가 승낙을 하더니 앞장서기 시작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한 이후로 우리 가족은 외부인을 만나지 않았어요. 그러니 그 점은 감안해주세여."
그렇게 말한 엘리스가 좁은 골목을 지나더니 반쯤 무너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자기 집은 이번 생에도 완전히 무너졌나보다.>
대변혁 전에는 경호원까지 대동하고 다니던 엘리스였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허리를 잔뜩 수그리고 엘리스의 뒤를 따랐다.
엘리스는 앞서가면서 막아둔 합판을 치웠다.
사람이나 몬스터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둔 것 같았다.
꼬물!
^에궁!^
<전생에는 이런 곳에 사는 사람이 정말 많았어. 이번 생의 한국은 정말 양호한 거야.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말이야.>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전생 생각이 나는 모양이었다.
전생에 반지하 집이라도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갑자기 전생의 일들이 떠오르며 마음이 묘해졌다.
"여기에요. 잠시만 여기 기다려주세요."
엘리스가 가구로 막아둔 입구를 치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스가 안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소리가 조금씩 나더니 엘리스가 안에 들어가자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냐앙! 냐앙!
야오옹! 야앙!
조금씩 다른 소리로 보아 두 마리 이상의 고양이가 안에 있는 것 같았다.
고양이가 소리가 들린 후 엘리스의 여동생으로 느껴지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내 두 사람의 목소리가 더 들렸다.
"사람은 셋인 것 같은데?"
<이번 생에도 결혼을 하지 못한 건가? 젊은 남자 목소리는 들리지 않네.>
"썩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았어."
<내 생각도 그래.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이었다.>
밖에서 10분 정도 기다리자 엘리스가 나왔다.
"가족들이 월평으로 가는 데 동의했어요. 옮기는 것 좀 도와줄래요?"
"기꺼이."
엘리스가 조금은 슬픈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네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곳에 고양이 두 마리까지 있었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엘리스의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인사를 건넸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 세 사람을 반반이 등에 태웠다.
고양이 두 마리도 반반이의 등에 탄 채였다.
꼬물!
^엄마, 아빠가 아니야.^
런던 던전으로 가던 도중 꼬물이가 한 말이었다.
'엄마 아빠가 아니라니?'
심상으로 꼬물이에게 물었다.
꼬물!
^정확한 관계는 모르겠는데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에요.^
<피를 나눠야만 가족은 아니야.>
꼬물!
^그것은 나도 잘 알고 있어. 아무튼 가족은 아닌 것 같아. 무척 닮았지만 말이야.^
엄마, 아빠로 보이는 사람들이 엘리스를 너무 공손하게 대해서 뭔가 이상했는데 가족이 아니라니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우리 부부가 폐가 되는 것 같은데···."
"그런 말 하지 마. 미쉘과 나에겐 엄마고 아빠야."
엘리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도 보탬이 되어야 하는데···."
엘리스의 엄마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한숨을 쉬었다.
"여긴 위험하지만 거긴 위험하지 않다고 했어. 거기서는 나 많이 도와줘. 그럼 되는 거야."
"뭐든 도와야죠.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몸부터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야. 그전에는 안 돼."
"알겠습니다. 아가씨."
"아가씨라고 하지 말라니까. 누가 들어서 좋을 리 없어. 그냥 아빠 엄마라고 부를 테니까 미쉘과 나를 딸로 대해줘."
"아가씨!"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보기 좋네. 그나저나 고양이도 마나를 받으려나?>
'모르지. 워프 게이트를 탑승해보면 알겠지.'
반반이를 타고 새벽 거리를 걸어서 런던 던전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갑자기 꾸루가 급하게 정보를 전했다.
꾸!
비릿한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