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 생필품 히든 상점
홀트는 묘한 시선으로 거대 몬날 문어 새끼들을 보았다.
이곳에 와서 처음 본 몬스터였다.
갖가지 색깔을 내며 자신과 부하들 주변을 날던 생명체!
보고 있으면 묘하게 어린 날을 생각나게 만들어서 짜증이 났었다.
그런데 자신을 이곳에 보낸 젊은 놈이 그 생명체를 가지고 위협을 하고 있었다.
상대한다고 말하는 것조차 우스운 것을 가리키며 말이다.
그래서 코웃음을 치려는 순간이었다.
찍!
노란색과 연녹색으로 몸의 색깔을 바꾸던 문어가 무언가를 뿌렸다.
그리고 그것이 피부에 닿는 순간!
"으아아악! 아악!"
치이이익! 치이익!
재빨리 얼굴을 피하지 않았다면 홀트의 얼굴은 녹아내렸을 것이다.
목 옆과 얼굴에 산성액이 닿으며 고통을 안겨주었다.
"으아악! 으악!"
"이제 말을 들을 생각이 조금 들어?"
"으으으! 으윽!"
이곳에 보내기 전 홀트는 기가 완전히 꺾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시 와서 보니 기가 살아있었다.
묶인 채이고 굶주렸지만 언젠가 다시 힘을 회복해서 복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곱게 말을 들으면 좋을 텐데···. 저런 놈들은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
"일어나! 이동이다!"
"으으윽!"
산성용액을 뱉어냈던 문어 새끼는 홀트의 옆에서 푸르르거리면서 입에 남은 산성액을 털어냈다.
그럴 때마다 홀트가 괴로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작은 조각이지만 산성액의 위력은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저 아이를 네 전담으로 묶어줄 수도 있는데···."
"으으으으! 시, 싫어어! 아악! 사, 살려···."
"그러니까 외모만으로 멋대로 생각하고 무시하지 말라는 말이야!"
"아, 알겠어어어···. 사, 살려줘어, 으으!"
새끼 문어는 재미있는 장난감을 만난 듯 쫓아다니며 계속 산성액을 뿌려댔다.
더 이상 나올 것은 많지 않아서 작은 물방울 같은 것만 떨어졌지만 그것만으로도 홀트를 공포로 몰아가기에는 충분했다.
<신기한 생명체야. S급 몬스터의 새끼라서 그런지 산성액도 견디고 말이야.>
알을 품고 있던 문어는 산성액을 피부에 맞고 분명 괴로워했는데 새끼는 산성액을 먹고 뿜을 수 있었다.
피부에 닿으면 괴롭지만 먹는 것은 이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어미보다 강해진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충분히 기꺼웠다.
브으으!
머리 위에서 똑이가 즐거워했다.
검수의 위에 앉아있기 때문에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똑이였다.
이곳에 오면 똑이는 저 상태로 있는 것을 좋아했다.
이곳에 있는 새끼 문어들에게 자신의 위엄을 보이기 가장 좋은 장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홀트와 홀트의 부하들 그리고 이번에 천기재에게서 마나를 강탈하려고 하는 놈들을 데리고 아귀세상의 입구로 향했다.
이곳에 먼저 와 있던 홀트 일행은 그래도 어느 정도 적응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온 범죄자들은 낯설어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아야!"
"억! 아, 아무것도 없는데···."
"여기 귀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억!"
"너무 무서운 곳이야!"
던전 도깨비들이 짓궂은 장난을 했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머리를 당기거나 뺨을 때리고 달아나니 죽을 맛이었던 것이다.
뮤! 뮤! 뮤!
^이런 놈들은 삼일 밤낮을 맞아야 해.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놈들도 있을 거야.^
그렇게 던전의 입구를 향해 열 시간을 이동하자 다들 녹초가 되었다.
아귀 세상이 워낙 넓기 때문에 던전의 입구까지는 앞으로도 하루는 더 걸어야 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 테니 알아서 자도록 해!"
"밥은···."
배가 고픈지 범죄자 중 한 놈이 밥을 요구했다.
"그간 너희들이 빼앗은 거 많잖아. 그거 먹든지···."
"다 빼앗겼습니다. 던전에 입장할 때···."
한국에서 잡힌 놈들은 서울 던전에 입장할 때 던전 덩굴에게 가진 것을 다 빼앗겼다.
그래도 이놈들은 마나는 빼앗기지 않은 상태였다.
"너희 마나 많이 가지고 있잖아. 아니야?"
"······."
놈들이 서로 눈치만 살폈다.
"너희 마나 많은 거 다 알고 있어. 사람들에게 마나 빼앗은 거 보니까 거래창까지 열었을 거고."
"헉!"
<놀라기는 뻔한 일을 가지고···.>
나호가 코웃음을 쳤다.
한국에서 잡힌 놈들은 거래창을 들먹이자 얼굴이 허해졌다.
"혹시 상태창을 보시는 겁니까?"
"보면?"
"아, 아닙니다. 그래도 너무 배가 고픕니다. 몸을 날렵하게 하려고 평상시에 많이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잡히기 전부터 배가 고팠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거야 너희 생존 방식이고···. 그것까지 내가 신경 써야 하는 거야? 그래?"
"아닙니다. 살려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예! 예!"
한국에서 잡힌 놈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 허리를 굽실거렸다.
그러면서 계속 주위를 살폈다.
어디에서 공격이 올지 모르니 두려운 것이었다.
"그런데···. 마나를 드릴 테니···. 물 한 모금이라도···."
<프하하! 이놈들 은근히 맹한 구석이 있네. 마나를 가졌는데 물을 달라니···.>
나호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거래창까지 열었다면 분명 상점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인간에게 물을 청하고 있었다.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상점 개방했지?"
"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빨리 개방했을 겁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의 목소리에 자긍심이 감돌았다.
"그럼 상점에서 물을 파는 것은 보지 못했어?"
"예? 물을 판다고요? 상점에서요?"
놈은 처음 듣는 것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뭐야? 정말 처음 안 거야? 아니면 연극이야?>
상점을 열었는데 물을 파는 것을 알지 못한다?
상점에 정말 관심이 없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보통은 상점을 오픈하면 뭐가 있는지 살피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놈들은 누구도 상점을 살피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상점 살펴봐. 물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생필품은 다 팔 거야. 비싸서 탈이지."
"정말입니까? 음식도 있습니까?"
"음식만 있겠어? 없는 거 빼고 다 있어. 상점을 두고 물을 사겠다니···."
놈의 눈이 상태창을 향했다.
그리고 상점을 열고 부지런히 물건목록을 확인할 것이었다.
'생필품은 찾기 쉬운데 왜 저리 오래 걸리는 거야? 배열이 사람마다 다르나?'
[띠링! 특성에 따라 상품 목록이 달리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갑자기 시스템이 나만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대개는 똑같은 것 같던데?'
[대개는 그렇지만 늘 예외는 있는 법입니다. 가장 선호하는 물건이 위에 나타나야 물건을 팔기 좋으니까요.]
'그럼 저놈들의 메인 상점에는 뭐가 떠있는데?'
[개인적인 정보에 해당할 수 있어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시스템이 말해주기 정말 곤란하다는 투로 말했다.
<시스템의 반응을 보니 듣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 수도 있겠다.
"저어···. 저희 상점에는 아무리 찾아도 생필품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있을 거야. 잘 찾아봐. 다 있는 것이 너희에게만 없을 리 없잖아."
"저희 모두 보이지 않는데···."
"그럼. 시스템에게 물어봐. 왜 없는지."
"아예!"
놈이 시스템에게 문의를 하는 건지 허공에 대고 몇 번 굽실거리더니 미소를 지었다.
아마 생필품을 발견한 것 같았다.
"생필품이 히든 상품이랍니다. 그래서 '생필품 히든 상점'을 오픈했습니다."
"뭐? 뭐가 히든 상품이라고?"
목소리가 높아지자 놈이 움찔하며 눈치를 보았다.
"저희가 뭐 잘못했습니까?"
"아니야.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 필요한 거 사먹어. 그것으로 한동안 먹고 살 수 있겠지?"
"살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대답을 한 놈이 물을 사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마르다고 갑자기 물을 많이 마시면 큰일 나."
"고맙습니다. 천천히 마시겠습니다."
자신을 생각해줬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초코바를 하나 내밀었다.
"이거 하나 드십시오."
"됐어. 너희나 많이 먹어. 나는 됐으니···."
"그래도···."
쫑!
놈이 초코바를 한 번 더 내밀다가 쪼롱이의 위협을 받고는 뒤로 물러났다.
쫑! 쪼로!
^달기만 한 과자로 뭘 하겠다고···.^
쪼롱이가 다 어이없어 했다.
한국에서 잡혀온 놈들은 상점에서 음식을 사서 먹기 시작했다.
배가 고팠기 때문인지 허겁지겁 먹기 바빴다.
"저어···. 저희도 너무 배가 고픕니다. 뭐라도···."
홀트가 용기를 내서 말했다.
"저놈들 자기 마나로 사 먹는 거야. 너희도 너희 마나로 사먹어."
"저희 마나 한 푼도 없는 거 아시잖습니까···."
놈이 말끝을 흐리며 불쌍한 척을 했다.
"그건 너희 사정이지. 시스템에게 대출을 더 해보든지···."
시스템이 이들에게 더 이상 마나를 빌려줄 일은 없었다.
꼬물!
^배가 많이 고픈 것 같기는 해요.^
'고프겠지. 하지만 지들도 당해봐야 해. 그 많은 밀을 썩히면서도 나눠주지 않았잖아. 저놈이 밀 한줌을 얼마나 비싸게 팔았는지 기억하지?'
홀트가 그 많은 마나를 모을 수 있었던 것은 밀을 고가에 팔았기 때문이었다.
살인적인 물가도 울고 갈 정도의 가격으로 밀을 팔던 놈이었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있어도 외면했으니 지들도 당해봐야 했다.
"그럼 저희가 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도 됩니까?"
홀트가 한국에서 온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야 니들 알아서 할 일이지. 나에게 그런 것까지 물을 필요는 없지."
"고맙습니다."
홀트의 눈빛이 비릿하게 빛났다.
내가 상관만 하지 않으면 한국인들에게서 무엇이든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집사! 왜 허락을 했어. 분명 싸움이 날 텐데.>
'싸움 구경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고 하잖아. 정말 재미있는지 궁금해서.'
<에이! 집사가 그런 이유로 허락했을 리는 없지.>
솔직히 이놈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 마나가 어떤 역할을 할지 보고 싶었다.
홀트가 한국의 우두머리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둘이 말이 통하지 않은 것이었다.
<프하하! 그래. 저게 당연한 거야. 재미있네. 둘의 표정이 가관이야.>
언어가 통하지 않은 깡패들이 손짓발짓 하면서 의사소통을 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혼자 보기 정말 아까운 장면이었다.
"에이! 이런 무식한 새끼! 영어 한 마디를 알아듣질 못하네."
"이 새끼 뭐라고 하는 거야? 너 지금 나 욕했지? 그렇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욕은 잘 알아듣는다고 하더니 딱 그 짝이었다.
다른 말은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데 욕은 기가 막히게 알아듣고는 화를 냈다.
"뭐라는 거야? 알아듣게 얘길 해! 새끼야!"
"아우! 배가 고프다고! 배가!"
"똥 마려우면 싸! 나한테 배 들이밀지 말고!"
<흐하하! 곧 치고 박겠네.>
모두가 싸움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고픈 몬스터 같은 놈들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영국 놈들은 소량의 물과 음식을 얻었다.
한국의 범죄자가 나누어준 것이었다.
"고맙네. 자넨 내 형제야! 브라더!"
"내가 주니 고맙다고? 브라보라고?"
"그래. 최고야!"
"이젠 넌 내 밑이야. 그건 확실히 기억해! 알겠지?"
서로 전혀 다른 말을 하는데 묘하게 통하는 두 사람이었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그런 건가? 이거 아귀장이 긴장해야 하는 거야?>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쟤들이 있는 한!"
우리 주변을 날고 있는 새끼 문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귀장의 명령을 따르는 문어 한두 마리만 더 붙여주어도 누구도 아귀장을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적지만 음식을 나누어 먹은 놈들이 잠이 들었다.
자다가 화장실을 가는 놈들이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달아날 곳도 없고 전령조와 새끼 문어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길을 출발해서 네 시간을 걸었을 때 앞쪽에서 바쁘게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아귀장이었다.
<참 충성이다. 몇 시간을 걸어온 거야 도대체?>
지금 이 시간에 만났다는 것은 내가 아귀 세상에 도착한 직후 출발했어야 했다.
정말 지극 정성이었다.
"대표니이임! 대표니이이임!"
아귀장이 이산가족을 만난 것처럼 큰 소리로 나를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아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