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 복수의 대상
언제부터 미션을 받았냐는 물음에 미우라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생각이 나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정신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자 기회는 이때라고 생각했는지 흐엉의 쇠사슬이 놈을 옥죄였다.
"으윽! 으윽! 말하겠어! 그만해! 그마아안! 고통은 싫어!"
고통은 싫다!
전생에 강자로 군림한 미우라가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미우라는 자신의 손으로 뭔가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주로 부하를 통해 일을 처리했다.
왜 직접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미우라는 굳이 숨기려하지 않고 고통이 싫다는 말을 했다.
당시에는 저 말을 참 낭만적으로 해석하고 열광했었다.
정점에 선 남자의 고백이라느니···.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느니···.
약자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한 말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하고, 솔직한 표현이라고도 했다.
당시에는 미우라가 무얼 말하든 뜨거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미우라는 유독 아픈 것을 싫어했다.
특히 육체적 고통은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었다.
때론 각성자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고통을 기피했다.
그런데 지금도 고통이 싫다는 말을 했다.
<엄청난 재생력을 가지고 있었잖아?>
'그랬지. 혹시 재생력의 대가로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것인지 궁금한 거야?'
<정확해. 그렇지 않고서는 재생력까지 가지고 있는 놈이 저렇게 고통에 몸을 사릴 리가 없어.>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래. 말해. 언제부터 미션을 받았던 거야?"
"잠깐! 기억이 나질 않아. 잠시만 기다려."
<얼마나 오래된 일이기에 기억까지 해야 하는 거야? 저놈은 이해되지 않은 일이 너무 많아.>
"으윽! 윽! 기억났어! 그만! 그만!"
흐엉이 다시 고통을 가한 모양이었다.
놈이 고통을 호소할 때마다 흐엉의 쇠사슬이 빛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해!"
"세상이 변하기 한 달 전부터 미션을 받았어."
<헐! 어이가 없네. 그 때 저놈 별 반응 보이지 않았는데···.>
'그때는 기본적인 미션이 내려졌을지도 모르지.'
"처음 받았던 미션은 뭐였지?"
"처음 받았던 미션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특정 물건을 찾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저는 지하철 벽에서 찾았죠."
'물건 찾기라고?'
처음 받은 미션이 물건을 찾는 것이었단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떤 물건을 찾으라고 했던 건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놈의 의심에 기름을 부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대신 단순한 것을 물었다.
"보상으로 받은 것은?"
"보상으로 1마나를 받았습니다."
그때를 추억하는지 미우라 놈의 얼굴이 펴졌다.
그 순간 흐엉이 매우 불쾌해했다.
흐흐흐! 흐흐!
^이건 참을 수 없지. 내가 감고 있는데 즐거워하다니···. 나는 이런 감정 좋아하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이런 감정이야.^
"으아아악! 아아악! 저, 정말이야. 그때 1마나 줬잖아."
미우라가 고통을 호소하며 하는 말이었다.
<누군가는 참 쉽게, 쉽게 성장했구나. 그래서 전생에 미우라가 그렇게 강했던 거야. 그럼 미우라 놈이 대변혁 3년 후에 한국에 온 것도 미션 때문이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내 복수의 대상은 단순히 미우라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었다.
"얼마나 자주 미션을 받았지?"
"적게는 하루에 한 개! 많게는 하루에 세 개의 미션을 받았어. 너도 잘 알다시피. 아아아악! 아악! 두 개! 두 개! 아무리 적어도 하루에 두 개의 미션은 받았어."
"보상은 늘 마나였나?"
"그래. 이제 그만 확인하고 미션을 내려주는 것이 어때? 나 이곳 정말 떠나고 싶어."
"좋지. 미션을 내리도록 하지."
미션을 준다는 말에 놈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 그 전에 하나 더! 이곳에 오고부터는 미션을 받지 못했지?"
"받지 못했어. 정확하게는 강탈 권능과 스킬을 잃어버린 후에는 더 이상 받지 못했어. 시스템의 음성도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아무래도 강탈 권능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좋아. 미션을 내리지."
"미션! 으윽! 들어야 해! 들어야 한다고!"
<저놈 미션이 상태창에 나타나지 않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지. 다행스러운 일이고. 이 미션을 이용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미우라를 조종할 수도 있을 것 같아.'
흐엉의 쇠사슬에 묶이면 놈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럴 때 미션이라고 내려서 놈을 통제하면 놈은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할 것 같았다.
'어떤 미션이 좋을까?'
미우라에게 시킬 마땅한 미션이 떠오르지 않았다.
<갑작스러워서 정말 어떤 미션을 주는 것이 좋을까? 고민스럽네.>
음머어어!
^날마다 밭을 갈라고 하면 어떨까? 호미 하나 쥐어주면서.^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당장 이곳은 농사를 지어야 하니 놈이 열심히 움직이는 것만큼 내게 마나도 들어올 것이었다.
쫑! 쪼로로!
^제 생각에는 지금까지 받았던 미션과 보상을 적으라고 하면 어떨까 싶어요. '추억록'이라는 명목으로요.^
쪼롱이의 의견이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놈이 잘 기록할수록 놈을 파악하기 쉬울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놈은 더 이상 미션을 받고 있지 않고 어떤 스킬이나 권능도 남아있지 않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강탈권으로 모든 것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놈을 그렇게까지 파악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꾸!
^나는 매일 머리털 천 개씩 뽑으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아. 정확하게 천 개여야 한다고 못을 박아두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
뮤! 뮤! 뮤!
^그거 은근히 무서운 미션이다. 정확하게 천 개! 쉽지 않다.^
일정 기간 동안 꾸준히 해야 하는 미션이라면 정말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았다.
꼬물!
^저도 괜찮은 미션이라고 생각해요. 놈의 체력을 길러주지도 않잖아요. 자리에 앉아서 머리만 뽑는 놈을 정상으로 볼 사람도 없을 거고요. 하지만 딱 천 개 보다는 특정 숫자를 지정해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
소환수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것이 확실히 좋았다.
정말 머리카락 뽑기로 하면 좋을 것 같았다.
미우라에게 말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수수수!
머리위에 앉아있던 도깨비 검수가 숫자를 하나 지정했다.
'1234!'
놈에게 제시하는 숫자로 나쁘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이 숫자를 들은 똑이도 만족감을 표시했다.
"으윽! 미션을 내려주십시오."
"좋아! 미션을 주지. 잘 들어!"
"예. 미션만 주신다면···."
"앞으로 보름간 매일 머리카락 1234개를 뽑도록 해. 많거나 적으면 안 돼! 정확하게 1234! 만약 단 한 개라도 많거나 적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야. 할 수 있겠어?"
"할 수 있습니다. 보상은 어떻게 됩니까?"
"다시 미션을 시작하니 1마나부터 시작할 거야."
"고맙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마울 것 없어. 네가 미션을 달성해야 받아갈 수 있으니까."
"저는 미션을 꼭 달성할 겁니다. 1234! 1234! 1234! 1234!"
놈이 1234를 반복적으로 되뇌었다.
"1234! 1234! 1234! 1234! 1234!······ 으아아악! 으어억!"
계속해서 1234를 반복하던 놈이 심하게 몸을 떨더니 축 늘어져버렸다.
기절한 것이었다.
흐흐흐!
^더 이상 들을 만한 것은 없는 것 같아서 기절시켰습니다. 흐흐흐!^
흐엉이 칭찬을 바라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했어. 그것도 아주 잘!"
흐흐흐!
^저놈은 앞으로도 제게 맡겨주십시오.^
어차피 고문은 흐엉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흐엉은 혹시라도 남에게 자신의 역할을 빼앗기게 될까 전전긍긍했다.
"놈을 데려다주고 가자고."
흐흐흐!
^놈을 들고 가고 싶은데 안 되겠죠?^
"안 돼! 그것은 덩굴들에게 맡겨. 네가 놈을 들면 나도 힘들어."
흐흐흐! 흐어어엉! 흐어엉!
^너무 아쉬워요. 주인님이 거인처럼 거대했으면 들고 갈 수 있었을 텐데.^
흐엉은 몸에서 완전히 분리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손바닥에서 생활했다.
이런 흐엉이 미우라를 데리고 관리구역까지 간다고 하면 결론적으로는 내가 놈을 들어 옮기는 것이었다.
미우라를 옮기는데 이런 수고를 하고 싶지 않았다.
소환식물이 있는데 사서 고생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네 능력껏 옮겨보든지···. 내가 고생하지만 않는다면 상관하지 않을게."
히극! 히극!
^정말요? 어떻게 해야 이놈을 옮길 수 있을까요? 이놈에게 고통도 주고 옮길 수도 있는 방법은···?^
흐엉은 아주 즐기고 있었다.
미우라를 고통으로 몰아가는 것이 마냥 좋은 모양이었다.
<전생에는 정말 살맛났겠네.>
미우라가 하는 온갖 나쁜 일을 옆에서 지켜보며 좋아했을 것이 분명하다는 말이었다.
'환상의 커플이었을 거야. 죽이 잘 맞았겠지.'
흐엉이 놈을 일으켜 세우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미우라는 정신을 잠깐 차렸다가도 축 늘어지는 것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흐흐흑! 흐흐!
^안 되네요. 안 돼! 놈의 체력이 너무 좋지 않아요. 겨우 하루에 한 끼를 먹었으니···.^
저런 말을 하면서도 흐엉은 전혀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그런 감정 자체가 뭔지도 모를 수도 있었다.
"그럼 소환식물들에게 부탁할게."
흐흐흐!
흐엉이 알겠다고 대답을 하더니 손바닥으로 복귀했다.
흐엉이 손바닥으로 들어오자 소환식물들이 미우라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관리구역을 향해 걸었다.
미우라는 축 늘어진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관리구역에 다 닿기도 전에 아귀장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대표니이임! 한 시간이라고 하셨는데···."
아직 관리구역을 출발한지 한 시간이 되지 않았다.
"다들 배고플 텐데 식사준비부터 하지."
"대표님께서 일을 하시고 계시는데 어떻게 저희 밥부터 챙기겠습니까."
"아귀장 마음은 기억하지. 저놈부터 받아주면 더 좋고. 저놈 관리에 신경 쓰고."
"식사를 하루에 두 끼로 늘릴까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아귀장의 시선이 미우라에게 닿았다.
절대 호의를 품은 시선이 아니었다.
하지만 미우라를 받아드는 아귀장이었다.
"나는 그만 가볼게. 잘 관리하고."
"완벽하게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놈은 되도록 이런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고요."
아귀장은 눈치가 빨랐다.
비릿하게 웃으며 미우라를 사냥감 보듯이 내려다보았다.
물론 미우라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작별이 길어서 좋을 일은 없었다.
미우라까지 넘겼으니 내가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미 작별인사까지 했으니 이대로 돌아서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대로 돌아서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니콜라스 홀트가 아귀장 옆으로 다가오며 내게 말을 걸려고 했다.
퍼어어억!
"헉!"
내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굴던 아귀장이 니콜라스 홀트를 발로 차버렸다.
<뭐야! 이거 분위기 왜 이래? 그새 뭔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리가 관리구역을 벗어난 후 뭔가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귀장의 발에 걷어차인 홀트가 그대로 넘어졌다.
한국인 범죄자들이 나누어준 물과 음식 약간만을 먹은 홀트였다.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 지금은 절대 아귀장을 이길 수 없었다.
"보내주시오. 보내줘. 영국으로···. 여기는 지옥이야! 지옥이라고!"
넘어진 홀트가 절박하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상황파악이 안 되나? 아무리 저런 말을 해도 돌려보내주지 않을 텐데 말이야.>
"상황파악을 하니까 저렇게 절박하게 나오는 거야. 이제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실감이 되는가 보네."
<아! 그러네. 이곳에서 평생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거구나?>
"그렇지. 가자."
우리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그리고 치료수가 있는 던전의 끝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
달려 워프 게이트에 도착한 후 바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네 시간만 기다리라고 했는데 아슬아슬하게 시간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엘리스와 존, 노엘, 천기재 등이 기다리는 장소로 바로 이동했다.
하지만 이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모두 잠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전한 곳에 와서 씻고 밥을 먹자 졸음이 이기지 못하고 잠자리에 든 것이었다.
<아쉬워?>
"아쉽긴! 쉬어야지. 다들 편하게 잠들었으면 감사한 일이지. 이곳이 저들에게 안정감을 줬다는 말이잖아."
다들 잠이 들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묘하게 뿌듯해졌다.
지금은 이 장막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조만간 국민 모두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