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340화 (340/350)

340. 꼭 복수해줄게.

"형! '유리아'는 괜찮아요?"

"괜찮아질 거야."

"저 좀 내려주시면···."

히카루가 내려달라는 말을 하자 꼬물이의 뿌리가 반응을 보였다.

꼬물!

^기특한 아이의 말은 들어주어야지.^

꼬물이가 히카루를 사랑스럽게 쳐다보았다.

히카루는 무엇이 자신을 내려주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지금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닥에 발이 닿자 히카루는 날 듯이 뛰어서 아이에게 다가왔다.

"유리아! 유리아아아! 흐흑! 흐윽!"

"괜찮아질 거야."

"이렇게 엉망인데···. 살 수 있어요?"

유리아라고 불린 아이의 몸은 어떤 명의가 와도 살릴 수 없을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꼬물!

^저놈이 신파 찍는다고 생각했어요.^

꼬물이가 대기실의 바닥에 글을 쓰는 것과 동시에 뿌리가 나가더니 그대로 대장으로 보이는 놈을 쳐버렸다.

"윽!"

꼬물이의 뿌리가 얼굴을 강타했는데도 놈은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분명 놈은 정상이 아니었다.

퍼어억!

그리고 그런 놈의 태도는 매를 벌었다.

"어? 형! 유리아가···?"

"좋아질 거라고 했잖아."

백지장처럼 하얗던 입술이 색을 갖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상처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S급 치료수의 위력이었다

뮤! 뮤! 뮤!

^멋진 약이야. 아귀세상을 만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도뮤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함께 웃을 수 없었다.

미끼로 죽은 아이가 자그마치 다섯이나 되었기 때문이었다.

꼬물!

^이놈도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네. 너도 좀 맞자.^

꼬물이는 던전 덩굴에게만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놈들이 폭력에 허덕이고 있었지만 전혀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유리아! 유리아! 정신이 들어?"

"히카루 오빠!"

"그래에에! 어어엉! 어엉!"

잘 참고 있던 히카루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버렸다.

동시에 서러운 눈물을 흘리는 히카루였다.

"카나미! 내 동생! 내 동생! 카나미이이! 어어엉!"

반반이의 등 위에서도 아이 한 명이 동생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꼬물이가 재빨리 아이들을 반반이의 등에서 내려주었다.

여덟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아이들의 시체로 다가가더니 시체 하나를 껴안았다.

"카나미! 카나미이이! 따뜻한 스프 가지고 왔는데···. 어어엉! 따뜻한 음식 먹고 싶다고 했잖아아아아! 먹고 싶다고 했잖아아아! 어엉!"

가슴을 헤집고 나오는 울음이었다.

어린 가슴에 켜켜이 쌓인 한이 한꺼번에 터져버린 것이었다.

"아아아! 아앙! 어엉! 카나미이이! 엄마! 엄마아아아아아아!"

아이는 있지도 않은 엄마를 부르며 울었다.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으면서도 차마 동생의 얼굴을 만지지 못했다.

<스프라고 먹여서 오길 잘했네. 아니면 탈진했을 거야.>

"유노! 쥬리!"

"미유키이이! 어어엉!"

아이들이 죽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목 놓아 울었다.

살아있을 때는 제대로 이름이 불리지도 못하고 미끼였을 뿐인 아이들이었다.

음머어어어어어!

반반이가 길게 울음을 토했다.

지금의 울음에는 살기가 전혀 담겨있지 않았다.

위로가 가득 담긴 울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가슴이 조금은 따스해지는 것 같았다.

"형! 저놈들 어떻게 할 거예요?"

"감옥에 보낼 거야."

그 말을 한 순간 히카루의 머리가 획 들리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히카루의 눈에는 실망이 가득했다.

내가 놈들을 바로 응징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살아있는 것이 저주스러울 만큼 힘겹게 살아갈 거야. 그렇게 만들어줄게."

"죽는 것보다 더 한 고통이에요?"

"죽는 것을 날마다 바라도록 만들 거야."

"그런 곳이 있어요? 남들 괴롭히지 않으면서 그렇게 살 곳이?"

"있어! 아귀세상이라고. 원하면 보여줄게."

"보고 싶어요. 놈들이 평생 어떤 곳에서 살게 될지 봐야겠어요. 그렇지 않다면 제 손으로 저 놈들 모조리 죽일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히카루의 눈이 한층 깊어졌다.

<각성해버린 것 같네. 소년의 허물을 벗어버린 것 같아.>

나호의 표현대로였다.

히카루는 갑자기 쑥 자라버린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린 태가 났는데 갑자기 성인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본인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지만···.

"카나미이이! 어어엉! 히카루 혀어엉! 내 동생 어떻게 해! 내 동새에엥!"

여덟 살 아이에게 동생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형!"

"그래."

히카루가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만의 방식이 있어요."

히카루가 이 말을 했을 때 순간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았다.

죽음을 다루는 자신들만의 방식이 있단다.

이 말은 전생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해 버린 후 전생의 삶은 정말 처절할 정도로 힘겨웠다.

집을 잃은 사람이 천지였고 가족을 잃은 사람은 더 많았다.

둘 중 하나 살아남기도 힘겨웠던 세상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대변혁 초기 넘쳐나는 시체는 큰 문제였다.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시체냄새를 맡은 몬스터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2차, 3차 피해를 낳았다.

그래서 참혹한 말이지만 몬스터가 어떤 것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처리해주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아마 지금 일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체를 빨리 치워야하니 전생의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 만의 방법이 있을 것이었다.

"어떤 방식을···?"

차마 끝까지 질문을 할 수 없었다.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던전에서는 얕게라도 파서 묻었고요. 밖에서는···."

히카루가 얼굴만 붉힐 뿐 말을 하지 못했다.

<아이고···. 전생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나 보네.>

꼬물!

^에궁!^

뮤! 뮤! 뮤!

^삶의 민낯은 때때로 마주하는 것이 버겁다. 이번 민낯은 너무 서글프다.^

음머어어어어! 음머어어어!

반반이의 위로가 가슴을 울렸다.

엄마를 부르는 소리 같아서 아이들을 더 울리는 것 같았지만 분명 아이들에게도 위로가 되었을 것이었다.

"던전에 묻으면···."

"알아요. 몬스터의 밥이 되기도 해요.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히카루가 다시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신 잡혀 있는 놈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죽은 아이들을 묻을 시간도 제대로 허락하지 않았어요. 혀엉! 혀어어엉!"

지난 시간이 떠오르는지 히카루가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아이 두 명이 히카루에게 안겼다.

"형! 울지 마! 형 울면 무서워."

"오빠! 울지 마아아! 무섭단 말이야아아아! 어어엉!"

아이들의 말에 히카루가 재빨리 눈물을 닦았다.

<아이고! 어린 녀석이 가장이고 기둥이구나. 목 놓아 울 수도 없는 하늘이었어.>

뮤! 뮤! 뮤!

^울어야 가슴에 눈물이 고이지 않을 텐데. 서러움이 쌓이면 병이 되는데···. 저걸 어쩌나.^

도뮤가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당장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이들은 나보다는 히카루를 믿고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들 월평으로 데리고 갈까?'

사실 이 녀석들의 기특한 모습을 봤을 때 내 소유의 던전 중 한 곳에서 생활하게 해주려고 했었다.

한국까지 데리고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기에는 내 가슴에 쌓인 전생의 한(恨)이 너무 컸다.

아이들 상대로도 한 타령을 하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 아이들도 일본인이었고, 일본인으로 자랄 아이들이었다.

전생이었다면 이 아이들도 당연하게 한국과 한국인을 수탈의 대상으로 여기고 수탈을 할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인간적인 돌봄만 제공할 생각이었는데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아이들의 가슴에 쌓인 설움을 걷어내주고 싶었다.

그리고 전생과는 다른 삶을 살 기회를 주고 싶어졌다.

<아이들답게 살 시간을 주면 좋을 것 같기는 해. 월평의 아이들과 함께 자라면 전생과는 다를 거야. 한국인이네 일본인이네 하면서 구별하지도 않을 거고···.>

음머어어!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다. 좋은 본보기가 있다면 곧게 자랄 거다.^

반반이의 의견이었다.

"가장 좋은 것은 화장(火葬)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히카루는 얌전하고 소심해 보이는데 말을 잘 잘라먹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중간에 끼어들어 제 할 말을 했다.

일본인치고는 드문 성격의 소유자 같기도 했다.

"맞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대신 최대한 깊게 묻어줄게. 어떤 몬스터도 파헤치지 못할 만큼."

히카루의 얼굴이 잠시 밝아지더니 다시 어두워졌다.

"시간이 제법 걸릴 텐데요?"

"그럴까? 너희가 장소를 정해. 그럼 땅을 파는 것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야."

아이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은 소환사 아니었어요? 혹시 땅굴을 팔 수 있는 소환수가 있어요?"

"그런 것을 묻는 것은 실례일 텐데?"

"아! 죄송해요. 아이들과 이야기 좀 할게요."

히카루가 다섯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나미라는 동생을 잃은 아이를 진정시키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이 아이들은 이미 이별이 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죽음의 자리에서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또 다른 희생이 따를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아이! 노인! 여자! 장애인! 대변혁 이후의 시대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지.>

'여자는 아니야. 임신을 하고 있었거나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던 여자만 해당되는 이야기야.'

<그건 그렇지. 일부 여자들은 대변혁 이후를 더 좋아하기도 하더라. 남녀가 사라졌잖아.>

대변혁 이후의 세상은 남자네! 여자네! 하고 있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마나를 벌어야 하는 세상이었을 뿐이었다.

"형! 저기 들꽃이 핀 곳이었으면 좋겠대요."

"그래. 그곳에서 쉬게 해주자."

"고마워요. 형!"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형! 카나미 제 동생이에요. 꽃을 좋아했어요. 특히 분홍색 꽃을요. 분홍색 꽃은 없지만 꽃이 있으니까 좋아할 거예요."

"분홍 꽃은 형이 심어줄게. 동생 무덤 위에."

"······."

분홍 꽃을 심어준다는 말에 아이가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러더니 꾸벅 고개를 숙여보였다.

"몬스터들이 다시 몰려오지는 않겠죠? 이 던전은 늑대가 많이 나타나요. 던전쥐도 있지만···."

히카루가 주위를 경계하며 말했다.

시체 냄새를 맡고 몰려올지도 모를 몬스터가 걱정스러운 것이었다.

"우리가 던전을 나갈 때까지 몬늑대를 볼 일은 없을 거야."

"어!"

히카루의 눈이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뭔가 조치를 취했냐고 묻는 눈빛이었다.

어리지만 똑똑한 아이였다.

고개를 끄덕여주자 그제야 히카루의 얼굴이 편안해졌다.

그러더니 재빨리 다른 아이들도 안심을 시켰다.

<똑똑하네. 탐이 나는 아이야.>

존 이후로 누군가가 탐이 난다고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마을로 데리고 가자. 히카루만 싫다고 하지 않으면.'

<좋지.>

그 사이 아이들이 선택한 곳을 향해 소환식물들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구덩이를 만들었다.

"우와아!"

"와아아!"

"······."

슬픈 와중에도 아이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구덩이의 깊이는 2미터!

사실 1미터 정도만 돼도 안심할 수 있지만 조금 더 깊게 판 것이었다.

구덩이 속에 희생된 아이들을 눕히는 것도 소환식물들의 도움을 받았다.

"카나미이이! 카나미이이! 어어엉! 어엉!"

"아이들의 얼굴을 닦아 주셔서 감사해요."

히카루가 꾸벅 인사를 했다.

"당연한 일이야. 옷까지 갈아입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저희도 알고 있어요. 좋은 옷이 있다면 지금은 산 사람이 입어야 해요."

"그래."

깨끗이 닦인 얼굴을 보니 더 가슴이 미어졌다.

너무도 여리고 어린 아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떤 정신을 가지면 이런 어린 아이들을 미끼로 쓸 수 있는 거야? 으드득.'

<집사! 이 부러져. 아귀장 요즘 심심한 것 같더라. 저놈들 맡겨주면 아주 좋아할 거야. 거긴 남는 것이 시간이잖아.>

'그래. 아귀장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야겠다. 놈들이 어떤 죄목으로 잡혀온 것인지도 알리고.'

<그것도 좋겠네. 범죄자들도 애들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놈들은 인간취급하지 않는다고 하니까.>

"카나미이이!"

아이들의 인사가 끝나고 흙이 덮이기 시작하자 다시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이별은 세상 어느 곳에서나 서글픈 것이었다.

"카나미! 오빠가 꼭 복수해줄게. 꼬오옥!"

한통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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